He returned as a genius violinist RAW novel - Chapter 147
147화
“어. 근데 내가 생전 들어가 확인해 본 적은 없어서 정말로 백업이 되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아마 설정을 한 번 해 놓으면 바꾸지 않은 이상 계속될 거야.”
“아마도 그렇겠지? 근데 그게 데이터를 너무 많이 먹는다고 해서, 아마도 와이파이 환경에서만 되게 설정해 놓았던 것 같아.”
“와이파이….”
페르디난트의 말대로라면, 와이파이의 여부가 관건이었다.
“보통 와이파이도 항상 켜놓긴 하는데, 그때 거기서 와이파이가 됐었는지를 모르겠네. 여기야 참가자들의 핸드폰을 걷어가는 마당이니 당연히 없겠지만, 거긴 다른 장소였으니까. 으음, 내가 와이파이를 따로 연결했던 기억이 있던가…?”
“아마도 있었을 확률이 높아. 여기 역시 그렇고. 우리 말고 직원들도 있잖아.”
“아, 그러게. 비번이 걸려있던 것만 아니면 자동으로 잡혔을 수도 있겠다. 그럼 백업 역시 됐을지도 모른다는 건데… 확인해 볼 방법이 없을까?”
“핸드폰, 못 돌려받겠지?”
“…글쎄. 상황을 이야기한다면 모를까. 그냥은 안 주겠지.”
하지만 벌써 주최 측에 정식으로 말을 꺼내긴 조금 그랬다. 아직 정확한 증거도 없는 일을 문제 삼아 핸드폰을 돌려달라는 건….
만약 확인을 요청했는데 핸드폰에 문제의 장면이 찍혀있지 않으면?
만에 하나 그의 모습이 찍혀있다 해도, 정확히 그 부분의 손동작이 제대로 찍혔다는 보장이 없었다. 작정하고 손 모양만 찍은 게 아닌 이상, 그럴 확률이 얼마나 되겠는가.
“그러고 보니, 그때 그놈이 그렇게 난리 쳤던 것도, 혹시 자동백업이 될까 봐 그랬던 걸지도 모르겠네.”
“그러게. 제 발 저린 구석이 있으니까.”
페르디난트는 새삼 화가 나는 기분이었다. 그때 그렇게 사과까지 하며 저자세로 나갔는데, 그게 다 부정행위를 감추기 위한 히스테리였다니!
이게 다 헛다리를 짚은 걸 수도 있지만, 페르디난트는 서진의 눈을 믿었다. 그리고 촉이랄까, 그때 녀석이 유난히 뾰족하게 굴었던 행동에 확신이 왔다.
“후… 어쩌지. 이걸 그냥 넘어갈 수는 없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이었다.
“일단 좀 더 증거를 잡는 게 좋겠어.”
“무슨 수로?”
말은 그렇게 했지만, 서진 역시 막막했다. 이미 악보를 받은 지금으로서는, 첸의 어떤 행동도 그럴 만한 증거가 될 수 없을 테니까.
“고민하다 보면 뭔가 방법이 있지 않을까?”
똑똑.
노크 소리에 둘은 입을 헙 다물었다.
“여기 있었네, 서진?”
다행히 들어온 이는 마리아였다.
“어어, 무슨 일이야?”
페르디난트가 서진에게도 눈짓했다. 마리아에게도 말하는 게 좋지 않겠냐는 눈빛이었다.
“인터뷰, 네 차례야.”
“아.”
공식 인터뷰.
파이널 과정을 담는 영상 제작을 위해 틈틈이 출전자들의 연습하는 모습을 찍고 인터뷰를 하는 프로그램이 있었는데, 하필이면 이번에 서진의 차례인 모양이었다.
“…나중에 다시 얘기하자.”
“둘이 왜 이렇게 심각해? 무슨 얘기하고 있었어?”
“미안, 이따 얘기해 줄게.”
말을 해준다 한들 일단 지금은 아니었다. 당장 인터뷰를 앞두고 있는 데다, 마리아라고 한들 들어도 뾰족한 방법이 없을 테니까.
“밖에서 들으니까 핸드폰 어쩌고 하던데, 혹시 핸드폰이 필요한 거야?”
한데 갑자기 마리아가 훅 치고 들어왔다.
“어, 어? 어떻게 알았어?”
“너 목소리 완전 크거든? 덩치에 비례해, 아주. 성악 했으면 울림통 하나는 짱짱했을 듯.”
“아 뭐, 칭찬인가. 아무튼, 어 맞아. 핸드폰이 필요한 상황이 생겨서.”
“길게 말할 시간이 없으니 한마디로 요약해 줄게. 악보가 유출된 정황이 뚜렷이 있는데, 정작 증거가 없거든. 핸드폰이 있으면 확인해 볼 수도 있을 것 같아서.”
‘악보 유출’이라는 충격적인 단어에 마리아의 표정이 일순 굳었다 풀렸다.
“…휴. 너네 나 없으면 어쩔 뻔했어.”
“…?”
생뚱맞게 내뱉는 마리아의 말에 영문 모를 표정을 짓던 서진과 페르디난트는, 이내 눈앞에 내밀어진 무언가에 눈이 커다래졌다.
“너, 너 이거!”
지금 인터뷰가 문제가 아니었다.
“핸드폰에 관한 건 나중에 묻고, 그래서 뭐가 필요한데?”
페르디난트가 다급히 마리아의 핸드폰을 받아들었다.
다른 사람의 핸드폰이라도 클라우드 계정에 로그인하면 얼마든지 파일을 확인할 수 있었다.
오래지 않아 페르디난트는 문제의 파일을 발견했다.
정말로, 백업이 되어 있었다.
“…와, 이거 진짜였네. 서진이 네 기억이 정말 맞네.”
하늘이 돕는 걸까. 진짜 말도 안 되는 우연으로 딱 그 모습이 찍혀있었다.
그사이 서진으로부터 상세한 이야기를 전해 들은 마리아는 새삼스레 충격을 받은 모습이었다.
악보 유출이라니….
“이제 어떻게 하지?”
페르디난트의 질문에 둘 다 잠시 말이 없었다.
이 일을 어떻게 터트리는 게 좋을까.
“잠깐만. 시간 너무 지체된다. 나 다시 가서 너 컨디션 안 좋은 것 같다고, 순서 좀 바꿔달라고 얘기 좀 전하고 올게.”
“어, 그래야겠다. 부탁해.”
마리아가 후다닥 다녀오는 사이, 앞으로의 일을 고민하던 서진은 어느 정도 계획을 그려냈다.
“우리, 이렇게 하는 게 어때?”
“뭔데?”
오래지 않아 다시 돌아온 마리아를 향해 서진이 입을 열었다.
“마침 인터뷰가 있다며. 좋은 생각이 났어.”
인터뷰, 이걸 잘만 활용하면, 괜찮은 그림이 나올 것도 같다.
서진은 둘에게 짧고 간략하게 앞으로의 계획을 설명해 주었다.
“…오!”
“좋아. 좋은 생각인 것 같아!”
둘의 동의에 서진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잘 다녀와. 우리는 이왕 핸드폰 켠 김에, 미리 작업할 준비 좀 하고 있을게.”
“오케이. 뒷일 부탁해.”
씨익 웃은 서진이 의미심장한 얼굴로 문을 나섰다.
* * *
인터뷰실에 들어가니, 두 명이 앉아있었다.
한 명은 콩쿨 자체 제작용으로 인터뷰를 담당하는 사람, 또 한 명은 외부 매체에서 나온 사람이었다.
벨기에 유력지인 ‘르 수아’지 기자라고 자신을 소개한 여자가 서글서글한 눈으로 서진에게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이렇게 뵙게 되어 무척이나 반갑습니다. 미스터, 써, 쎄오진? 한?”
“스어진, 에 가깝게 읽으시면 편할 겁니다. 가장 비슷하기도 하고요.”
“오, 그렇군요.”
서진의 이름을 잘 발음하지 못하는 상대를 슬쩍 도와주며 서진이 마주 앉았다.
적응은 잘 되고 있냐, 첫날의 소감은 어떻냐 등등 몇 마디 가벼운 안부 인사가 오간 후, 본격적인 인터뷰가 시작되었다.
“제가 정말 궁금한 게 있어서 말이죠. 이미 음반도 여럿 내고, 제네바 콩쿠르에서 우승했으며, 카네기 홀에 데뷔하고, 나아가 예술계 후원의 거장으로 유명한 분의 후원까지 받고 계신 연주자가 왜 굳이 콩쿨에 나왔는지, 그게 너무 궁금해서요.”
…하하.
이 질문이 왜 안 나오나 했다.
사실 그동안 파이널에 오기까지, 여기저기서 오가는 길에 가볍게 마이크가 들이대질 때마다 빠지지 않던 질문이었다.
이미 대가의 반열에 들어섰으면서 왜 콩쿠르에 나선 것인가. 만에 하나 좋지 않은 성적을 거두면, 오히려 득보다 실이 많을 텐데… 하는 우려였다.
콩쿨이라는 게 워낙 실력대로 수상한다는 보장이 없는 무대다 보니, 충분히 가질 법한 궁금증이었다.
“글쎄요.”
살짝 미소지은 서진이 담담히 대답했다.
“우승만이 콩쿨에 참가한 목적은 아니니까요. 최선을 다해 그 과정에 참여하고, 제가 보여줄 수 있는 최고의 연주를 보여드리는 것. 그 자체에 목적을 두기 때문이죠. 아울러 다른 참가자들을 통해 여러 가지를 배우고 새로운 깨달음을 얻는 것도 빼놓을 수 없는 요소이고요.”
“정석적인 대답이군요. 하지만 혹시라도 좋지 않은 성적을 거두게 되면 실망하지 않겠어요?”
“전혀요. 당연히 성적이 좋지 않을 수도 있죠. 하지만 스스로 최선을 다했다면, 등수가 어떻게 되었든 만족할 겁니다.”
“진심이 느껴지는 대답이군요. 콩쿨 관계자로서, 매우 기분 좋은 이야기네요.”
이어 질문자가 바뀜에 따라 카메라맨이 앵글을 바꾸었다.
“아, 이쪽 앵글도 괜찮을까요?”
“?? 안 될 이유 있나요?”
“하하. 싫어하는 분도 계시거든요.”
특정 앵글이 더 예쁘게 나오고 뭐 그런 이유인가?
“특히 왼쪽 턱이 보이는 앵글을 안 좋아하는 분들이 있어서요.”
“아….”
바이올린을 하는 이들이라면 하나같이 턱 아래 흉이 져 있었다. 그 부분이 턱받침에 닿아 마찰되기 때문이었다. 그러는 과정에서 땀이 차며 피부가 변하게 되는 것. 그래서 피부가 예민한 이들을 꼭꼭 손수건을 받쳐가며 하곤 했다.
비록 서진은 미모에 전혀 신경 쓰지 않는 편이었지만, 턱받침에서 소시지 냄새가 나는 게 싫어서 마찬가지로 손수건을 썼다. 턱받침에 육수(?)가 배어, 나중에는 아무리 닦아도 답이 안 나오는 것이다.
“저는 흉이 없기 한데, 있어도 신경 안 쓰니 괜찮아요.”
아무래도 좋았다. 사실 서진은 인터뷰를 하면서도 마음이 콩밭에 가 있는 탓에, 제대로 질문이 귀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첸의 일에 대한 생각이 머리에서 떠나질 않는 탓이었다.
“그나저나, 초기에 있던 소문 때문에 마음고생이 꽤 있었을 텐데, 그럼에도 좋은 결과를 내어 파이널에 진출하신 것을 다시 한번 축하드려요.”
잠시 분위기를 풀고자 서두를 길게 늘어놓던 그녀가, 단도직입적으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축하를 겸한 은근한 떠보기였다.
“아. 예. 감사합니다.”
“다행히 파이널 악보가 공개되며 헛소문으로 판명 나 지금은 마음이 가벼우시겠어요.”
“네. 한데 지금은 또 다른 소문이 돌던데…, 제가 그랬던 것처럼 누군가 이 소문으로 스트레스를 받을까 걱정이군요.”
서진은 새삼스레 제 이름이 엮인 헛소문에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덕분에 이야기를 꺼내기에 매우 적절하지 않은가.
게다가 ‘소문’이라는 키워드에 관해서는 저쪽에서 먼저 말을 꺼내준 덕에, 화제를 잇는 것도 자연스러웠다.
“소문이라뇨?”
르 수아지의 기자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이미 그녀 역시 알고 있었지만, 모른 척 한 번 더 묻는 것이었다.
애초에 먼저 ‘소문’에 대한 걸 언급한 것도 전부 의도였으니.
“아. 별 건 아닙니다. 어차피 또 헛소문이겠지만…, 파이널 악보가 유출되었느니 어쩌니 시끄럽더라고요.”
걱정하는 척 대놓고 말을 꺼낸 서진의 언급에 콩쿨 관계자 측 인사의 표정이 변했다.
둘의 의중이 은근히 통하는 순간.
“그게 정말인가요?”
“그냥 소문일 뿐이죠. 출처조차 확실치 않은걸요. 그저 현재 파다한 소문이라는 것만 알 뿐, 저도 아는 바가 없네요. 저 역시 소문의 피해를 봤던 만큼, 또 다른 피해자가 나오질 않길 바라는 마음에 언급한 건데… 괜한 말을 했나 보군요.”
르 수아지의 기자가 진하게 미소지었다.
단순히 그랬다면 굳이 자신 앞에서 언급할 필요 없는 일. 분명 이건 떡밥을 던져주려는 의도였다.
‘역시… 파볼 만한 가치가 있겠는데?’
천재 바이올리니스트로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