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 returned as a genius violinist RAW novel - Chapter 16
16화
드디어 방학,
전국의 초중고교 모두가 일제히 휴업에 들어가는 시기.
오랜만에 집에서 보내는 여유로운 시간이었다. 어머니와 마주 앉은 서진은 손맛 가득한 집밥을 숟가락 가득 떠 입어 넣었다.
“우리 서진이, 맛있어?”
“응. 엄마 밥이 최고예요!”
“맛있게 먹어주니 엄마가 너무 행복하네. 요즘 서진이 칭찬이 자자하더라. 정말로 잘한다고, 교수님이 따로 전화도 주셨어.”
요즘 서진의 모친은 매일같이 입가에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여전히 하루하루 생계를 위해 일해야 하는 경제적으로 팍팍한 상황이었지만, 어디에 내놔도 자랑스러울 아들 덕에 매일같이 일할 맛이 나는 것이다.
“아직 그 정도는 아니에요. 그래도 조만간 엄마한테 꼭 들려드릴게요. 정식으로 무대에서요.”
“어머, 정말?”
서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안 그래도 생각하고 있던 일이었다. 어머니께 자신의 무대를 보여드리고 싶다고.
한데….
‘국제음악제에 오실 수 있으려나…?’
자신의 뒷바라지를 위해 남의 집 살림일을 나가시는 어머니다. 대관령까지 왕복 거리를 생각하면 1박 2일은 비워야 할 텐데, 마음대로 일을 빠질 수 있을지 걱정이 되었다.
어머니가 동행하지 못하신다 해도 GMMFS의 수업 자체는 지도교사의 감독 아래 참가 학생들이 다 같이 함께하기에 큰 상관 없었다. 한예종 영재원 학생들 중에서도 참여한 이들이 꽤 있기에 개별적으로 보호자가 따라오지 않아도 괜찮은 것이다.
하지만 그와 별개로 어머니께 무대에서의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었다.
‘협연자 콩쿨에서 우승하면 폐막식 무대에서 솔리스트로 설 수 있을 테니까.’
어쩌면 거장과의 협연 기회도 가질 수 있을지 모르고, 꼭 그게 아니더라도 세계적 예술가를 직접 만날 수 있는 마스터 클래스만으로도 무척이나 기대되는 일이었다.
‘다비트. G도 참가자 명단에 있었지.’
마스터 클래스에도 참여하는지는 모르겠지만, 그가 협연하는 공연이 잡혀있는 건 확실했다. 어쩌면 직접 대화를 나누거나 한 마디 가르침을 받을 수 있을지도.
서진은 무척이나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곧 맞이할 음악제를 기다렸다.
* * *
한예종에서 그랬듯이, 대관령에서도 서진은 단연 주목을 받았다.
갑자기 나타난 혜성 같은 존재라는 것도 그렇지만, 그 어마무시한 발전 속도가 도저히 눈에 띄지 않으려야 않을 수 없는 탓이었다.
하지만 그동안과 다른 점이 있다면, 그런 존재가 비단 서진 하나 뿐은 아니라는 것.
“쟤가 그렇게 잘한다며? 이름이 강윤수라고?”
“응. 직접 들어본 애가 그러는데 완전 하이페츠라더라.”
“에이, 설마 그 정도겠어? 난 쟤보다 한서진이라는 애가 더 잘하는 것 같던데?”
“아, 걔도 동갑이랬지? 올해 초딩들 미쳤네. 누가 더 잘하려나…?”
원래 예술의 세계란 그렇다.
언제나 1등, 최고로 칭송받는 재능에 자부심을 가지는 것도 잠시, 더 큰 세상에 나가보면 자신 못지않게 난다 긴다 1등만 하던 아이들이 한가득 모여있는 것이다.
“근데 강윤수인가 걔는 어디 출신이래?”
“지금 예당 다닌다는데?”
“에이, 한서진은 한예종 영재원 특별입학했잖아.”
“그런가? 그럼 한서진이 더 잘하는 건가?”
아무리 전공생이라도 초딩은 초딩. 초딩답게 유치한 대화였지만, 그만큼 저 둘의 실력이 대단한 건 사실이었다.
‘···다 들린다고.’
강윤수는 목소리가 너무 커서 다 들리는 것을 애써 모른 척하며 곁눈질로 주변을 살폈다.
‘저 애가 그 애라고…?’
한서진.
소문으로 들었다.
정식 접수 기간도 아닌데 특별히 허락해 들어왔다는 천재 소년.
대체 얼마나 잘하길래….
“안녕? 네가 강윤수지?”
그러던 차, 속으로만 생각하고 있던 존재가 갑자기 말을 걸어오자 윤수는 당황했다.
“어? 아, 안녕.”
“나는 한서진이야.”
불꽃 튀는 눈빛 싸움…,
같은 건 없었다. 서진은 먼저 밝게 웃으며 자기소개를 했다.
아무리 바이올린을 귀신같이 잘한다 하나, 그래 봤자 아직 꼬꼬마 어린아이다. 악기 실력이 뛰어나다고 해서 정신연령까지 높다는 건 아니라는 뜻.
경계심을 세우기도 쉽지만, 금세 친해져 헤헤거리기도 쉬운 나이.
‘얘가 이렇게 귀여울 때가 있었다니.’
과거의 라이벌을 만난 감상은 무척이나 신선했다. 한때 그토록 넘을 수 없는 벽처럼 느껴졌었는데, 지금은 아직 꼬꼬마에 불과한 것이다.
하지만 그건 결코 상대의 재능이 모자라서가 아니었다. 회귀, 그리고 특수한 능력이라는 치트키를 가진 자신이 말도 안 되는 존재인 것뿐.
“우리 친하게 지내자! 여기 바이올린 하는 또래 남자애들은 우리 둘밖에 없더라.”
“어? 어, 으응…!”
“우리끼리 서로 도와주고 하면 실력도 훨씬 빨리 올라갈 거야.”
GMMFS에서는 저명한 음악가에게 지도를 받는 것뿐 아니라 학생들끼리도 교류도 장려하고 있었다. 서로의 연주를 듣고 들려주는 것을 통해 함께 성장해 나갈 수 있도록 유도하는 것이었다.
덕분에 처음에는 어색하던 둘은 금세 친해졌다.
거기에는 지연의 존재도 한몫했다.
지연이 국제음악제에 참가할 것은 전혀 예상 밖의 일이었다. 분명 방학 때 바쁘다고 들었기에, 재벌가 금지옥엽답게 온갖 고액 과외들로 일정이 짜여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덕분에 서진은 학교나 한예종에서와 달리 지연과 나름대로 친해졌다. 아무래도 집 떠나 멀리 와 있다 보니 아는 얼굴 사이에서 느끼는 친밀감이 강해지는 덕분이었다.
“서진아, 나 여기 좀 봐줘 봐봐. 여기 왜 이렇게 안 되지? 너 여기 어떻게 연주해?”
“어느 부분?”
서진은 원래 나서서 누군가를 가르치고 하는 성격이 아니었다. 하지만 이곳에서는 서로 듣고 피드백해주는 걸 독려하는 분위기라 자연스레 조언이 나왔다. 희한하게도 누군가 진지하게 바이올린을 대하는 모습을 보면 저도 모르게 도와주고 싶어진다.
상대를 가르쳐 주는 일은 서진 본인에게도 많은 도움이 되었다. 타인에게 설명해주는 과정에서 새삼스레 깨달음을 얻기도 하니까.
“여기가 활 배분이 잘 안 돼.”
“음… 다시 한번 해봐.”
살짝 긴장되는 기색으로 윤수가 부분연주를 했다. 그 모습을 진지하게 보고 있던 서진이 입을 열었다.
“내가 보기엔… 그 문제가 아니라, 뭐랄까… 활 쓰는 게 조금 소심한 느낌이야. 아 이걸 뭐라 설명해야 하지…?”
아무래도 타고난 성격 때문인 것 같은데, 온활을 쓸 때 활의 속도가 처음 부분이랑 끝부분이 조금 다르달까. 처음에는 소심하게 긋다가 나중에야 활을 끝까지 내리려다 보니 속도가 빨라지는 느낌?
“그래서 잘 안 맞는 것 같은데. 다시 해봐.”
“···어? 어.”
서진의 말대로 의식하고 해보니, 확실히 그런 점이 있었다. 여태까지는 한 번도 의식하지 못했던 버릇이었다.
“시작이 소심하다 보니 소리도 아무래도 잘 나지 않고, 전체적으로 영향을 주는 것 같아. 아주 미묘한 정도긴 하지만…. 봐봐 지금도 또, 의식하지 못하는 상태로 또 그러잖아.”
“…아.”
윤수가 멍하니 입을 벌리고 서진을 바라보았다.
이건… 레슨 선생님한테도 한 번도 지적받은 적 없는 문제인데, 어떻게 보자마자 안 거지?
“복잡한 생각을 하지 말고, 편하게 온몸을 맡긴다 생각하고 내리그어봐. 잘해야 한다고 생각을 너무 많이 하니까 자기도 모르게 머뭇거리게 되는 거야. 봐, 나처럼 아무 생각 없이.”
얘는 무슨… 아무 생각이 없는 애가 저렇게 잘할 수가 있나?
직접 ‘아무런 생각 없이 긋기’ 시범을 보여주고 있는 서진의 소리는 오늘도 경이로웠다.
“자, 이렇게. 아, 그리고 이왕이면 약간 이런 느낌으로. 활을 쓸 때 어깨랑 팔 움직임뿐 아니라, 활을 쥐고 있는 손가락이랄까, 손목 쪽을 좀 더 유기적으로 움직이면 좋을 것 같아. 자세도 좀만 편안하게 하고. 긴장 빼고 편하게. 우리 가뜩이나 팔도 짧은데 긴장하면 굳어서 활이 바깥으로 빠진다고. 특히 다운활 끝에서 가끔 그러더라.”
“아, 안 짧거든!”
윤수의 얼굴이 살짝 붉어졌다. 초심자에게나 할 법한 기초적인 조언을 했음에도 윤수는 기분 나빠하는 대신 조금 다른 이유로 발끈했다.
“…흐음?”
그렇게 둘이 티격태격하고 있는데, 어느새 지연이 다가와 있었다.
“사이 좋네.”
“누가!”
“뭐래!?”
“…풉. 어, 그래. 너네 사이 나빠. 그나저나 나도 좀 봐주면 안 돼?”
“너? 내가 널? 넌 알아서 잘하잖아.”
툭 던진 지연의 말에 서진은 어이가 없었다.
아니 지금 누가 누굴 가르쳐 준단 말인가. 그럴 실력이 아닌데.
솔직히 말해 자신은 회귀 치트키로 이만큼 하는 거지, 원래는 지연의 발끝도 못 따라갈 실력이었다.
“하지만 원래 이 클래스 컨셉이 그런걸?”
“….”
할 말이 없었다.
서진은 대답 대신 손을 내밀어 지연에게서 바이올린을 받아들었다. 뭐, 다른 건 알아서 잘하고 있으니 됐고…,
“네 바이올린. 잠깐 줘봐. 이거, 지판이 좀 높네? 일부러 그렇게 만든 건가…? 너 손에 좀 불편할 것 같은데….”
악기를 꽤나 따지는 서진은 내친김에 지연의 악기를 점검해 주었다. 브릿지도 꼼꼼히 봐 주고, 어디 터진 데는 없는지, 턱받침과 어깨 받침은 잘 맞는지 등등 확인해 주었다.
아무리 얼음꽃인지 얼음공주로 유명한 재벌 4세라지만, 지금은 초딩 꼬꼬마가 아닌가. 나이에 걸맞게 칠칠맞은 게 당연했다. 혼자 악기 관리를 잘할 수 있을 리가.
대충 손본 다음 몇 번 그어봤더니 확실히 좀 나았다.
“…! ….”
지연의 표정이 변했다. 볼을 살짝 붉힌 채 고맙다며 중얼거리는 소리는 너무 작아 잘 들리지 않았다.
“와, 서진이 진짜 어른 같다! 바이올린 소리도 서진이가 하니까 완전 달라! 내 것도! 내 것도 좀 봐 줘!”
지연을 대신해 호들갑을 떤 건 옆에서 구경하던 윤수였다. 제가 더 신이 나 폴짝거리는 게 귀여웠다.
하지만 마냥 귀여워하기만 할 수는 없지. 열심히 하지 않으면 뒤처질 수도 있으니까.
서진은 이 시기의 강윤수를 보며 깨닫는 바가 있었다.
누구라도 처음부터 천재였던 건 아니구나.
그 대단해 보이던 강윤수도 이맘때는 그냥 조금 잘하는(어디까지나 서진의 기준에서) 꼬마 아이에 불과했던 것이다.
그것은 즉, 타고난 재능도 있겠지만 결국 중요한 건 노력이라는 것.
아무리 회귀의 이점이 있다고 해서 언제까지나 자신이 앞서있으리라는 보장은 없는 것이다.
‘지금은 상대적으로 잠시 유리한 것뿐이지.’
그 덕에 당장이야 온갖 찬사를 받고 있지만, 만약 다 자라 성인이 된 후에는…?
그동안 알게 모르게 해오던 서진의 고민이었다.
이 나이에 갑자기 엄청난 재능과 실력을 보이면 모두 놀라 감탄하겠지.
하지만 그게 언제까지 갈까.
처음에야 그것만으로도 신동 소리를 들을 수 있겠지만, 과연 10년 후에는?
지금이야 배운지 얼마 안 된 학생이라는 것만으로도 대중의 찬사를 받을 충분한 이유가 되겠지만, 성인이 되어 프로 연주자로 선 이후에는 그건 의미 없다.
중요한 건 어떻게 연주했느냐 그뿐이니까.
‘자만하면 안 돼.’
회귀 치트키로 인생이 너무 쉬워져서 현실을 망각하면 안 된다.
그 어드밴티지가 영원하지는 않으니까. 지금이야 잠깐 유리할지 몰라도, 나중 일은 모르는 것이다.
결국, 중요한 건 하나였다.
소리에 깊이를 더하는 것.
더 좋은 소리를 내기 위해, 사람의 마음을 건드리는, 영혼을 어루만지는 소리를 내기 위해 더 깊어지고 또 깊어지는 것밖에 답이 없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쉬지 않고 노력해야만 했다.
“….”
가만히 눈을 감은 서진이 활을 들어 올렸다.
우우웅.
현의 진동이 공간을 울렸다.
그렇게 다시금 마음을 다잡고 그어본 소리는…,
이전과는 차원이 달랐다.
더욱 깊고 풍부해진 울림.
“….”
“···.”
서진의 소리에 지연과 윤수는 순간 말을 잊었다.
그리고 또 한 명.
밖에서 우연히 연습실 근처를 지나가고 있던 다비트는 깜짝 놀라 발걸음을 멈추었다.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자신이 찾던 그 아이, 바로 그 아이가 낸 소리라는 것을.
“이건….”
기대 이상이었다. 충격적일 정도로.
천재 바이올리니스트로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