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 returned as a genius violinist RAW novel - Chapter 165
165화
유일하게 진실을 아는 게 지연이었는데, 이제는 한 명 더 추가되었다.
“흠흠. 근데 저 혹시…,”
무언가 더 말하려는 듯한 의사의 말에 서진이 자세를 기울였다.
“저, …좀….”
“네?”
“흠흠. 사인 좀 받을 수 있을까요?”
원래는 클래식 음악에 크게 관심 없었다는 주치의였다. 그런데 자신을 담당하며 호기심이 생겨 한 번 들어봤다가 완전히 팬이 되어버렸다고.
이번 콩쿨 영상도 다 찾아봤다는 그는 완전한 팬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작게 웃은 서진은 흔쾌히 펜을 꺼내 들었다.
“어디에 해 드릴까요?”
“음… 아, 여기요!”
“….”
갑자기 벌떡 일어난 주치의가 뒤를 돌았다.
새하얀 가운을 입고 있는 등을 내보이며.
“하핫, 대문짝만하게 부탁드립니다!”
* * *
충분히 휴식을 취한 후의 가장 첫 스케쥴은 인터뷰였다.
콩쿨 우승에 대해 여기저기서 쏟아져 들어오는 인터뷰 중, 그나마 고르고 골라 택한 곳.
늘 그렇듯 음악 저널 강민지 기자였다.
“와우, 정말요?”
신기함에 반짝반짝 눈을 빛내고 있는 건 비단 강민지 기자만이 아니었다.
“그렇다니까요. 다 한서진 씨의 곡 덕분이죠.”
사람들이 현대곡을 제 발로 듣는다고? 그거 콩쿨에나 쓰이는 거 아니었어…?
현대 클래식 곡이라는 것은 그야말로 그들만의 리그의 산물이었다. 작곡 콩쿨에서나 생산해서, 또 다른 콩쿨의 제시곡 용으로나 쓰이는.
그러고 보니 요즘 저작권 수입이 늘었다 싶더니만… 정말로 대중들이 현대곡을 자발적으로 듣게 되었다고?
“…와, 제가 작곡가 본인인데도 신기하네요.”
앨범이 잘 팔려서 오히려 충격받은 당사자의 소감이었다.
“듣다 보니 나름의 매력이랄까, 중독성이랄까… 그런 게 있다 하더라고요. 이번 퀸엘리자베스 콩쿨에서도 증명해 보이셨고요.”
“하하. 이번엔 글쎄요. 워낙 급조한 곡이라….”
“급조라니요! 정말 대단한 일이었는걸요! 그 일로 정말 업계가 한바탕 난리였지 뭐예요. 콩쿨에서 바로 작곡한 곡으로 논란을 딛고 당당히 1위! 하지만 보란 듯 기권으로 항의의 뜻 표현!”
“…아하하. 남의 입으로 들으니 왠지 민망한걸요.”
“무슨 그런 말씀을! 한서진 씨가 실질적 2관왕임은 누구나 인정하는 바인걸요! 참, 뉴욕 타임즈 기사 보셨나요?”
“뉴욕 타임즈요?”
“한서진 씨가 출전한 두 콩쿨에서의 파이널 공연이, 뉴욕 타임즈가 선정하는 2019년 올해 최고의 클래식 음악 공연 중 하나로 선정되었다는군요. 참고로, 콩쿨 무대가 선정된 것은 이번이 최초! 라고 합니다!”
“…예?”
그게 무슨 말인지 잘 이해가 가지 않았다.
아직 올해가 다 가지도 않았는데 무슨 최고의 공연으로 벌써부터 선정되고 어쩌고 한단 말인가. 그런 건 원래 연말은 되어야 뽑는 거 아니었나?
서진의 의문에 강민지 기자는 누구보다 뿌듯한 표정으로 답했다.
“네, 그렇죠! 그런데도 이미 뽑힌 걸 어쩌겠어요.”
“….”
너무 황당하면 원래 말이 안 나오는 거구나.
강민지는 자신이 더 뿌듯하다며 한참이나 호들갑을 떨었다.
“그나저나, 혹시… 그, 퀸엘에서의 기권 관련해서 말인데요….”
혼자 한 5분쯤 떠들던 강민지 기자는 자신이 혼자 너무 흥분했다 싶었는지 아차 하며 이야기를 돌렸다.
그녀가 조심스레 물은 내용은, 다름 아닌 국왕 내외가 보는 앞에서 기권한 일에 대한 것이었다. 당시의 자세한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겠냐고.
“글쎄요. 특별히 자세히 이야기하고 말 것도 없긴 한데…. 한데 그 일은 왜요?”
“아, 다름이 아니라… 제가 그쪽 소식을 통해 들은 이야기인데, 틸다 왕비가 뒤늦게 한서진 씨가 기권한 연유를 알고는 주최 측에 불같이 화를 냈다며, 앞으로 서구권 아니라 세계 유수의 작곡가들을 적극적으로 섭외하라며 특별히 지시를 내렸다는 말이 있더라고요.”
“그렇군요.”
“틸다 왕비가 한서진 씨의 팬이라고 소문이 자자하기에, 당시 상황이나 반응이 궁금해서 말이에요.”
“그런데 정말로 특별히 얘기해 드릴 게 없어서요. 그냥 저는 결심한 대로 기권을 표했고…, 다른 상황은 잘 기억이 나질 않네요.”
“아… 안타깝네요. 그나저나 벨기에 측에서 하반기에 방한 계획이 있다는데…, 한예종과 관련해 교류가 있나 보더군요.”
“한예종에요? 그때쯤이면 전 이미 줄리어드로 떠나고 없을 텐데요.”
그러고 보니 올해 상반기쯤에 그런 예정이 있었다고 들은 것 같았다.
한예종을 언젠가는 전 세계에서 유학 오는 학교로 만들고자 한다며, 총장이 자신에게 직접 찾아와 앞으로도 한예종과 꼭 함께해 달라고 두 손 꼭 잡고 부탁한 적이 있었던 것이다.
‘석박사 과정 개설 및 캠퍼스 통합을 추진 중이라고 했지.’
그걸 준비하기 위해 해외 유수의 기관들과 교류하려는 모양이었다. 한데 원래의 일정이 하반기로 미뤄진 모양.
“맞다. 줄리어드 가신다고 했지… 바로 넘어가시나요?”
“네. 한국에서의 일정만 마치면요. 시간이 그리 넉넉하지 않아 바로 떠나야 할 것 같아요.”
“새삼 느끼는 건데 한서진 씨는 늘 너무 열심히 사시는 것 같아요. 가끔 너무 바이올린에만 매진하느라, 다른 걸 하지 못하는 아쉬움이나 그런 건 없나요?”
“글쎄요. 제가 그렇게 오직 바이올린에만 매달려 사는 편은 아니라 생각했는데, 또 듣고 보니 그것 외에는 따로 인생을 할애하는 데가 없긴 하네요. 한데… 그래도 제가 지금의 경지에 이르고자 다른 무언가를 포기하며 산 것은 아니라 생각해요. 그저 가장 하고 싶은 것을 하며 살았을 뿐.”
정말이었다. 그냥 원하는 것을 위해 최선을 다해 살다 보니, 여기에 이르게 된 것.
신기하게도 회귀 후 새 인생을 시작한 이래 모든 게 잘 풀렸다.
굳이 발버둥 치지 않아도 유명 악단으로부터의 제의가 쏟아질 정도로. 거기에 더해 거장들과의 온갖 인맥까지.
이게 다 순수하게 음악을 즐기게 된 덕분일까. 왜 그런 말이 있지 않은가. 즐기는 자를 결코 따라잡을 수 없다고.
“와, 한서진 씨는 정말로 바이올린을 사랑하시는군요. 진심이 절절히 느껴져요.”
“하하. 왠지 잘난 체를 한 것 같아 부끄럽네요. 아무튼 무엇이 되었든, 단 하나만을 위해 다른 걸 다 외면하고 사는 건 그리 좋은 게 아니라 생각해요.”
앞으로 역시 마찬가지였다. 성과를 위해 앞만 보고 달리고 싶지는 않았다.
그런다고 꼭 잘 되는 것도 아닐 테니까.
바라는 것은 단지, 자신만의 음악 세계를 오롯이 구축하고 싶은 욕망이 전부였다.
그 이상의 욕심은 부리지 않을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 정도로 집요하지 않았다면 이런 대단한 경지에 이를 수 없지 않았을까요?”
음… 이건 어느 정도 사실이라 부정하기 어려웠다.
그만큼 죽도록 노력한 건 사실이니까.
회귀 직후, 내심 초조해했던 적이 많았다. 주변에서 영재니 신동이니 찬사를 받으면서도 불안했었다.
오직 회귀의 이점으로만 어린 시절 잠시 앞서나가는 걸까 봐. 성인이 된 후의 나는, 회귀 전의 그 나이가 된 자신은 결국 그때와 똑같을까 봐.
그래서 더욱 다양한 노력을 기울여 왔던 것이었다. 안주했다간 그대로 멈춰버릴까 봐.
그저 회귀로 인해 남들보다 먼저 잠시 반짝이고 마는 거라면…, 그게 전부라면 너무 괴로울 테니까.
“인정합니다. 제가 조금, 집요한 구석이 있긴 하죠. 하하.”
“호호, 솔직해서 좋군요. 그럼… 이제 앞으로의 목표는 어떻게 되는지, 물어봐도 될까요?”
“목표라면 역시 음악적인 것들이겠죠. 아직 도전해보지 못한 곡이 산처럼 쌓여 있으니까요.”
얼마 전에 세웠던 거창한 목표는 일단 혼자만의 것으로 넣어두기로 했다. 아직은 깜냥도 안 되는데, 대외적으로 떠벌리고 다니기 싫었다.
어차피 그런 외적인 목표 외에도, 음악 내적으로 추구하는 목적지도 아직 까마득히 멀었다.
하지만 그에 서진은 오히려 행복했다. 이번 생에 아직 갈 길이 끝도 없이 멀다는 것이, 아직 밟아보지 못한 미지의 곡이 아직도 이렇게 많이 남아있다는 것이 그저 기쁠 따름인 것이다.
“역시, 그럴 것 같았어요. 한서진 씨는 늘 음악에 진심이니까요. 그래서 제가 십 년째 팬인 거고요.”
“하하. 늘 감사드려요.”
“참, 마지막으로 팬들이 원성이 자자한데, 혹시 음반 녹음 계획은 없으신가요?”
“네. 아마도 내년쯤부터 본격적으로 들어갈 예정입니다.”
“어머, 듣던 중 반가운 소식이군요! 근데 왜 하필 그쯤으로 계획을 잡으신 건지… 그동안은 가물에 콩 나듯 나오는 몇몇 외에는 감감무소식이라 다들 애타게 기다리는 모양이더라고요.”
서진은 대답 대신 빙그레 미소 지었다.
어차피 그쯤부터는 코로나가 터져 공연을 하고 싶어도 하기 어려운 상황이 될 테니까, 라고 솔직히 대답할 수가 없어서였다.
“이제 콩쿨을 통해 객관적으로 실력을 인정받았다고 생각해서요. 아무래도 그전까지는 썩 내키지 않더라고요. 흑역사를 박제하는 것 같달지, 하하….”
그래서 여태 음반 녹음은 코로나 후로 미뤄놓은 것이었지만, 이 역시 거짓말은 아니었다.
여러모로 다 계획이 있었던 거니까.
‘그래도 이왕이면 코로나 안 터졌으면 좋겠는데….’
“흑역사라뇨, 다들 아쉬워서 난리인걸요. 아무튼 조만간 만나게 될 한서진 씨의 음반도 기대하겠습니다. …참, 아까 말한 한국에서의 일정이라 함은… 역시 우승 기념 공연이겠죠?”
“네. 맞습니다.”
“이번에도 기대가 무척 큰데요, 혹시 살짝 언질 좀 주실 수 있을까요?”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클까 봐 조심스럽긴 한데…, 조금 색다른 시도를 준비 중입니다.”
“어머, 색다른 시도라면….”
“죄송합니다만 아직 비밀이라서요.”
서진이 씨익 웃었다.
친구들과 야심 차게 기획한 일이 있었다. 과연 사람들의 반응이 어떨지 궁금한데….
어쩌면 제법 센세이션이 될지도.
* * *
처음에는 단순히 우승 기념 독주회 정도로 생각했던 일이 이렇게 커진 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다.
-차이콥 1등들 싸그리 모아서 다같이 공연이라니… 은혜롭다 흐어어어어
-여기서 눕습니다…
└저 넷이 다같이 친하다니 진심 다시 없을 감사한 마음이…
-엥? 근데 이거 협연이 K 오케인데? 이게 뭐야?
└한서진이 만든 거라는데? K 콰르텟을 규모를 키운 챔버 오케스트라라는듯?
└헐 미친 대박. 그러니까 협연 함께할 오케까지 자기가 알아서 키워 온 거? 미쳤다, 오진다, 능력 대박!
-한서진 진심 사기캐다.
-근데 오케가 이렇게 뚝딱 만들어지는 거임?
└그런듯? 나라도 줄 서서 들어갈 듯?
-건너건너 들은 바로는 아직은 열 명 정도고 나머지는 객원인 듯함.
“…와, 벌써 난리법석인데?”
“우리 일 이렇게 벌여도 되는 거?”
“아니… 정말로 처음에는 그냥 심플하게 독주로 가려 했단 말이지…?”
“그러게. 어쩌다 이렇게 됐지…?”
분명 처음 계획은 이렇게 거창한 것이 아니었다.
천재 바이올리니스트로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