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 returned as a genius violinist RAW novel - Chapter 167
167화
-…다시 한 번 진심으로 축하하네. 어이쿠, 공연 준비로 바쁠 텐데 내가 너무 붙잡았군. 그럼 이만 줄이겠네. 공연도 무사히 잘 치르라는 말은 사족에 불과할 테니 말할 필요도 없겠지. 서진 군이라면 보증수표니까.
“하하. 감사합니다.”
-아, 계약 관련해서는 자세한 내용 첨부해 메일로 다시 보내도록 하지. 천천히 확인해 보게나. 그럼, 줄리어드에서 볼 날을 고대하고 있겠네.
“네. 알겠습니다. 저도 그날을 몹시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때까지 부디 건강하시기를요.”
안부 인사와 함께 서진은 전화를 끊었다.
자그마치 이자크 펄에게서 직접 걸려온 축하 전화였다. 콩쿨 우승 소식에 바로 전화하려 했는데, 공연 일정이 있던 탓에 이제야 연락해 미안하다며.
서진 역시 그와의 만남을 고대하고 있었다. 이번 공연만 끝내면 바로 뉴욕으로 넘어갈 예정이니 곧 만나게 되겠지만, 만약 코로나가 터진다면 계획이 어떻게 될지 모른다.
‘그나마 다행인 건 코로나가 터져도 음반 작업은 문제가 없다는 건데….’
서진은 이자크의 제안에 함께 영화음악 작곡에 참여할까 고민 중이었다. 뜬금없이 받게 된 제안이라 원래는 거절하려 했는데, 머잖아 닥치게 될 팬데믹 상황을 예상하고 있는 만큼 나쁘지 않은 일인 것 같았다.
코로나가 터지면 아무래도 오프라인 공연보다는, 음반 작업 쪽이 주 활동 영역이 될 테니까.
게다가 다른 사람도 아니고 이자크 펄의 제안이 아닌가.
그는 이전부터 영화음악 쪽에서도 활동하곤 했는데, ‘쉰들러 리스트’, ‘게이샤의 추억’ 등의 OST에 참여한 이력 및 음악 영화의 음향 감독을 맡은 적도 있었다.
‘어린 음악 천재를 주인공으로 한 영화랬지….’
앞선 영화들도 그렇지만, 이 영화는 작품의 특성상 음악이 특히 중요한 위치를 차지할 터였다.
이자크는 마음 같으면 서진 군이 직접 출연해 주면 좋겠다며 은근히 아쉬워했지만, 현대 미국을 배경으로 하는 할리우드 작품인 만큼 그건 어려웠다. 게다가 나이도 이제 ‘어린’ 나이와는 거리가 멀어진 입장이니.
서진 역시 영화에 출연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이쪽이 훨씬 편했다. 딱 한 번이었지만 예전에 파가니니 아역으로서 카메라 앞에 섰을 때 그리 쉽지만은 않았던 기억이 있는 것이다.
아무튼 작곡의 범주도 넓힐 겸, 상업 작품의 첫 시도로는 꽤 괜찮은 선택지인데….
게다가 작곡과 함께 음반 녹음 작업을 위해 직접 연주까지 해달라 부탁받았는데, 그 점이 서진은 퍽 마음에 들었다.
‘아무래도 내 곡은 내가 제일 잘 알 테니까’
자신의 곡을 자신이 직접 연주하는 것.
그럴 때 가장 강력한 시너지 효과가 나는 걸 아는 만큼 서진은 그 조합을 즐겼다.
내일의 공연 역시 그런 의미에서 무척 기대되었다.
제가 만든 곡을, 오랫동안 자신과 함께해 온 멤버들과 연주해 낸다.
새로이 챔버 오케스트라를 구성하게 된 멤버들은 전부 서진이 그동안 함께 호흡해왔던 친구들이었다. 오케스트라 수업에서 본의 아니게 지휘를 맡게 되며 이끌어 보았던 이들.
그런 만큼, 급히 결성된 악단으로 짧은 시간 준비했음에도 불구하고 곡의 완성도가 제법 높았다. 자신의 곡이라는 이유로 더더욱 까다로운 눈으로 바라보는 서진조차 은근히 기대할 만큼.
‘잘만 하면 새로운 도약의 기회가 되겠지….’
* * *
올해로 벌써 8년째 대관령 국제음악제의 일을 도맡아 하고 있는 송여름은, 슬슬 후임을 물색하고 있었다.
이제 올해를 마지막으로 예술감독이라는 직책을 사임할 예정이었으니까.
새로운 사람으로 누가 좋을까….
임원진 회의에 든 그녀가 내심으로 점찍어둔 이는 다름 아닌 한서진이었다.
“한서진은… 유명하긴 하지만 너무 어리지 않나?”
“그래. 정말로 훌륭한 청년이긴 한데…. 여름씨의 뒤를 잇기엔 연배가 조금….”
한서진.
프로 세계에 데뷔한 지 한참이라 느낌으로는 서른 줄의 거장인데, 막상 실제 나이로는 성년이 된 지 몇 년 지나지도 않은 새파랗게 젊은 청년이 아닌가.
비록 대한민국 음악계에서 그 이름을 모르는 이가 없을 만큼 유명한 청년이라지만, 젊다 못해 어리다 해도 지나치지 않은 연배라는 게 문제였다.
“글쎄요. 나이가 그렇게 중요한가요? 저 역시 업계에서 아직 나이가 많다고는 할 수 없는데, 벌써 이 일을 맡은 지 수 년째인걸요.”
송여름은 진심으로, 본인이 수락하기만 한다면 한서진을 위촉하고 싶었다.
하지만 나이가 너무 젊다는 지적도 틀린 말은 아니었기에 그녀 역시 조심스러웠다. 일단 본인의 의사도 그렇지만, 그 전에 누군가를 추천하려면 위원회의 의견이 통일되어야 하니까.
“여름 씨랑은 경우가 조금 다르지.”
송여름은 이 음악제의 개최 단계부터 열정적으로 참여해 왔다. 그때가 2011년 즈음이었으니 벌써 8년 전.
그 공로를 인정받아 2016년부터 부예술감독 직책을 맡았고, 덕분에 삼십 대라는 젊은 나이에 예술감독이라는 직책까지 맡게 되었다.
“한데, 또 네임 밸류로는 한서진만한 이가 없긴 하지.”
바로 그게 가장 핵심이었다.
현재 한국에서 대중적으로 가장 유명한 음악가.
심지어 국제적으로는 더욱 인정받았다. 그전까지는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올해 두 콩쿨에서 실질적 2관왕을 차지하면서 해외에서 이름이 부쩍 알려진 것이었다.
“차라리 임찬윤은 어때요?”
“글쎄. 찬윤이는 성격상 그런 거랑 안 어울릴 텐데….”
“맞아요. 보나 마나 거절이에요.”
“그래도 한서진은 얼마 전 실내악 관련 무슨 협회인가 직책도 맡고 한 걸 보면, 이런 쪽으로 아예 관심이 없는 것 같진 않던데 말이에요.”
“아니면 차라리 여름 씨 나이대의, 동료 연주자들 중에 물색해 보는 건 어떨까.”
“음… 그보다는 차라리 원로 선배분들을…,”
그녀 나이대의 연주자들 중에서도 제법 유명한 이들이 있긴 하지만… 국제적 명성으로는 오히려 서진이 훨씬 앞섰다.
물론 서진보다도 훨씬 유명한 존재도 없는 건 아니나, 이쪽으로 관심이 있는지의 여부도 중요하니까.
게다가 국적도 걸렸다. 그녀의 친구 중에서도 국제적으로 꽤 이름이 알려진 이들이 있었으나, 하필이면 대부분 외국 국적자라는 게 문제였다.
예술감독 직책에 국적에 관한 제한은 없다지만, 이왕이면 같은 한국인인 게 낫지 않을까. 아무래도 한국 음악계의 발전을 위해 좀 더 내 일처럼 나서 노력해 줄 테니까.
“에이, 이제 시대가 바뀌었는데. 새로운 물결이 필요한 법이지.”
“그럼 역시 한서진이 제격이긴 한데… 나이가 음….”
역시 누가 뭐래도 인지도로는 한서진이 딱이다.
특히 이번에 논의 중인 아스펜 국제음악제와의 교류를 생각하면, 해외에서의 영향력이 무척 중요하니까.
올해, 대관령 음악제는 그 참고모델이 된 아스펜 음악제 측과 손을 잡고 국제적 규모의 행사를 기획 중이었다. 양측 간의 상호 교환 공연도 예정되어 있는 만큼, 국제적으로 인지도가 높은 이가 필요했다.
단순히 공연에 초빙할 스타 정도가 아닌 음악제 자체를 도맡아 이끌 존재로서, 또한 국제 사회의 관심을 충분히 끌 수 있을 만큼 대외적으로 내세울 인물이 필요한 것이다.
그래서 한서진을 위촉하고자 한 것인데, 어려도 너무 어리다.
송여름도 젊은 나이였다지만 부예술감독을 맡았던 때가 서른 즈음이었는데, 서진은 이제 고작 20대 초반의 나이. 그것도 만으로 하면 아직도 십 대란다.
“허허… 열아홉이라고?”
새삼 놀랍다. 고작 저 나이에 저토록 대단한 성취라니.
보면 볼수록 탐난다. 내 자식도 아닌데 존재 자체만으로도 뿌듯할 정도로.
게다가 그 스타성은 얼마나 또 대단한가. 저런 아이돌급 음악가가 자리를 맡아 적극 나서주어야만 대한민국 클래식계에 미래라는 게 있을 터였다.
“역시 여름씨가 사임하고 나면 한서진밖에 없긴 하네. 지금은 몰라도, 몇 년 정도만 지나면 괜찮지 않을까? 그쯤 되면 서진 군도 이십대 중반은 될 테니 그럭저럭 이상하지 않은 나이지.”
여전히 한 단체의 장을 맡기엔 말도 안 되는 나이였지만, 그래도 만으로 십 대인 것에 비하면야.
“그럼 아스펜은 어쩌고요. 교류 행사가 내년으로 예정되어 있는데, 그 때문에 한서진을 필요로 하는 건데 말이에요.”
“그거야 여름 씨가 몇 년만 더 해주면 되지 않을까?”
송여름은 말문이 턱 막혔다. 아니, 애초에 사임하려고 후임을 찾는 건데, 상황이 이러니 강제로 더 하게 생겼다.
‘하… 어쩔 수 없나.’
마침 이번에 함께 공연하기로 한 것도 있고 하니, 한 번 살짝 물어보기나 해야겠다. 당장은 무리더라도, 혹시 나중에 뜻이 있는지 알아는 두는 게 나을 테니까.
* * *
총 사흘로 잡힌 콘서트의 첫날.
공연장은 발 디딜 틈도 없이 사람들로 빽빽했다. 이미 사흘간의 공연 티켓이 전부 매진인 탓이었다.
일단 한서진의 이름값도 이름값이지만, 연주자들 면면이 하나같이 대단했다. 엄청나게 화려한 라인업이랄까.
전부 유명 콩쿨의 우승자에, 송여름까지 가세했다. 게다가 K 오케 역시 전신인 K 콰르텟이 워낙 인기였기에 덩달아 주목받았다.
“형, 여기서 제가 카덴차를 하고 나면…, 피아노가 들어오는 타이밍이….”
“오케이. 신호 잘 볼게.”
이미 준비는 완벽한 상황이었지만, 서진은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만전을 기했다.
“또, 그리고….”
아무래도 현악 4중주로 시작한 악단이다 보니 관이 문제다. 목관 파트에 인원을 추가하긴 했지만 여전히 관 파트 인원이 부족해서, 그 부분은 피아노로 커버할 예정이었다. 찬윤이 맡아주기로 한 파트를 위해 서진은 특별히 신경 써 편곡했다.
“나중에 관 파트도 보강하긴 해야 할 것 같아.”
“그러게요. 저도 그게 조금 아쉽네요.”
아직 공연이 시작되기까지는 시간이 꽤 남아있었지만, 대기실의 서진은 꽤 분주했다.
단순히 협연자인 솔리스트로서 무대에 서는 것이 아니라, 거의 제 악단을 데뷔시키는 수준으로 공연을 준비해야 했기 때문이다.
규모가 작은 챔버 오케스트라인 만큼 따로 지휘도 없이, 예전에 서진이 악장으로서 그러했듯 직접 호흡을 맞출 생각이었다.
똑똑.
그런 가운데 누군가 대기실의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누구지? 딱히 대기실까지 찾아올 올 사람은 없을 텐데…?’
물론 막무가내로 찾아오는 이들이야 한 트럭이다. 다만 대부분의 사람은 복도 입구에 서 있는 보안팀의 제지를 뚫지 못할 뿐.
“한서진씨. 바쁘실 텐데 잠시 죄송합니다. 밖에 찾아오신 분이 계신데, 아무래도 전해드려야 할 것 같아서요.”
“예. 누가 오셨는데요?”
직원이 서진에게 작게 속삭였다. 그, 예전에…, 지금 아내 분과 함께…,
천재 바이올리니스트로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