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 returned as a genius violinist RAW novel - Chapter 169
169화
정확히는 행사를 주관하는 책임자로서 콕 집어 원하는 건 아니었지만, 미국에서의 한서진 열풍이 상상을 초월한다나…, 제발 좀 함께해 줬으면 하고 사정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런 마당에 서진이 주최자 중 하나로 끼어 있으면 일사천리로 일이 진행될 터.
“아….”
송여름의 설명에 서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야 더더욱 좋은 기회가 아닌가. 아스펜 음악제는 워낙에 유명하고 국제적인 축제다.
한국의 음악가들을 세계적인 무대에 선보일 절호의 기회가 되어줄 터.
‘솔직히 대관령은… 음….’
국제음악제라 이름은 붙어있지만, 정말 세계적으로 아주 큰 관심을 받는 행사는 아니라는 걸 모두가 아는 상황.
그런 마당에 아스펜과 제휴라니, 놓칠 수 없는 기회였다.
이번에 새로이 몸집을 키워 챔버 오케스트라로 업그레이드시킨 K 오케의 이름을 널리 알리기에 이보다 좋은 자리가 있을까.
아무리 서진이라도 다짜고짜 별반 인지도 없는 악단을 해외 유수의 공연장에 세우기는 쉽지 않았다. 서진 개인에 대한 러브콜이야 차고 넘치게 들어오고 있지만, 이건 또 이야기가 다르니까.
공연을 수락하는 조건으로 끼워 넣으려면 끼워 넣을 수도 있겠지만, 그렇게 하기엔 아직 미흡한 구석이 많았다.
하지만 아스펜 음악제라면, 다양한 경험과 배움의 장으로서 악단을 성장시키고 동시에 이름을 알릴 수 있을 터.
“이왕이면 그에 맞춰 네가 적당한 직책을 맡아줄 수 있으면 좋을 텐데… 아쉽다.”
비단 K 오케뿐 아니라 국내의 괜찮은 음악가들을 세계 무대에 적극 소개할 수 있는 자리이니, 송여름이 저토록 눈에 불을 켜고 애쓰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그러게요. 그래도 적어도 행사에 참여하는 것 자체는 어렵지 않으니, 그전까지는 그렇게라도 함께할게요. 아시다시피 저 곧 미국으로 넘어갈 거니까요.”
“정말? 고마워!”
송여름은 그것만으로도 다행이라며 반색했다.
“일단 내년에 있을 첫 행사가 잘 치러지면, 앞으로 주기적으로 이렇게 큰 국제 행사와 교류를 추진할 생각이야.”
“잠깐만, 내년…이라고 하셨죠?”
그러고 보니 왜 이 생각을 못 했지.
그거 코로나로 알아서 미뤄질 것 같은데….
‘오히려 잘 된 건가?’
딱 몇 년 코로나로 모든 게 미뤄지거나 취소되는 등 한바탕 난리가 나고 나면, 그때쯤이면 송여름이 말한 시점이 된다. 자신에게 맡아 달라고 한.
“응. 왜?”
“…아니에요. 아무튼 잘 될 거예요.”
어차피 내년에 축제 없을 테니 걱정하지 않아도 될 거라고 말은 할 수 없었지만, 서진은 자신 있게 미소지어 보였다.
이 몇 년의 유예기간은 서진으로서도 나쁘지 않았다. K 오케를 빡세게 훈련시켜서 키워내는 거다.
언젠가 빈필, 뉴욕필, 베를린필 등 세계 유수의 오케스트라처럼, 친구들과 함께 결성한 K 오케스트라가 최고의 악단으로 인정받을 날이 왔으면, 하는 바람으로.
지금으로서는 허황된 꿈처럼 들리는 일이었다.
국내에서 나름 내로라하는 서울시향이니 부천필이니 등도 이제야 간신히 해외 원정 공연을 시작하는 마당이니까.
하지만 서진은 언젠가 반드시 가능할 거라는 믿음이 있었다.
자신이 그렇게 만들 테니까.
* * *
서진과 친구들의 콩쿨 우승 기념 콘서트는 한국에서 열린 공연임에도 불구하고, 해외에서 더 큰 반응을 보였다.
전 세계에 포진해 있는 한서진 팬들의 열화와 같은 성원에 너튜브 조회수가 뜨겁게 불타오르는 것이었다.
그중에는 이번 콩쿨을 계기로 서진의 팬클럽에 입문한 이들도 상당수였다.
전화위복이랄까. 콩쿨에서 겪었던 일련의 사건·사고와 그로 인한 기권 선언 덕에 그냥 1위를 하는 것보다 오히려 더 유명해지게 된 것이다.
-오, 대박! 한서진 악단이라고?
└정확한 이름은 K 챔버 오케스트라.
└K는 코리아의 K인가? 이거 국영 악단 뭐 그런 거?
└노노. 아님. 그냥 한국인들 아무거나 다 K 붙이는 거 좋아해서 그러함.
└그러니까 그게 한서진이 창단한 악단이라는 거지?
└그런 셈일걸?
└그러니까 그냥 한서진 악단이라고 하자.
-제발. 마에스트로 한. 세계 투어 좀 제발…!
└다 필요없고, 우리나라에 좀 제발!
└맞아. 녹음본 말고 실황 공연을 듣고 싶다고!
└나 콩쿨 파이널에서 실제로 들어봤는데, 지렸음. 진심 이거 말고는 설명할 길이 없었음.
-방구석에 앉아서 이런 음악을 들을 수 있다니 너무나 행복한 세상이긴 한데… 너튜브 따위로는 턱도 없다고!
세계 각국 언어로 달린 댓글.
외국인들이 보이는 반응에 국뽕 컨텐츠의 주 소비계층은 뿌듯함에 광대가 승천했다.
-오오오! 국뽕을 전세계에!
-크, 내가 이맛에 국뽕 컨텐츠 본다!
-요즘 한서진 뽕이 제일이더라…
-일단 영상 보면서 귀가 즐거워서 좋음ㅋ
└나는 눈도 즐겁던데.
└인정. 한서진 존잘… 어렸을 때는 말랑콩떡 졸퀴탱이었는데!
└걔 뭔가 조랭이떡처럼 생겼었음.
└…그건 대체 어떻게 생긴 걸 말하는 거임…?
└하얗고 몰캉하다고
-그래서 둘이 사귄대?
유저들의 댓글도 댓글이지만, ‘한서진’이라는 이름 석 자는 너튜브 국뽕 채널들이 한시도 쉬지 않고 앞다투어 국뽕 컨텐츠를 생산하기로 가장 핫한 소재였다.
국뽕이라는 단어 그대로 한서진에게 취해 정신을 못 차릴 지경.
[콩쿠르 1위 발표 직전, 기권 선언한 한서진! 그 후 밝혀진 진실에 전 세계 발칵] [한서진과 친구들. 자랑스러운 K 클래식의 미래! 차이코프스키 콩쿨 싹쓸이에 국뽕이 차올라!] [한서진의 환상 같은 연주. 결선 무대에서 기립 박수 터져 나와…] [퀸엘리자베스 콩쿨. 지휘자마저 울린 한서진의 역대급 연주!] [등장하자마자 사람들 기절시키는 연주. 한서진의 미친 실력!] [첫 음 연주하자마자 이미 우승 확신해…, 어느 심사위원이 비하인드 스토리에서 밝힌 속마음.] [심지어 이게 초견이었다고? 파이널에서 연주한 시벨리우스 곡에 대한 충격 실화!] [드디어 밝혀지는 차이코프스키 콩쿨 뒷이야기!]이게 다 ‘한서진’이라고 치면 주르륵 나오는 영상 제목들이었다. 가히 어질어질한 수준.
거기에 더해 이번 공연의 여파로 언론 역시 앞다투어 기사를 쏟아 보냈다.
[벨기에 틸다 왕비의 비공식 방한. 한서진의 공연을 보기 위해…,] [개인 휴가를 사용해 방한한 벨기에 왕비의 입국 목적은…!?] [세계 3대 콩쿨 중 두 개 콩쿨 동시에 석권! 실질적 2관으로 해외에서 더 유명세인 한서진] [콩쿨 우승 기념으로 열린 콘서트에 등장한 깜짝 귀빈들] [한서진의 개인 후원자인 미국 호텔왕, 모건 내외의 방한! 방문 목적은 한서진의 콘서트 관람을 위해?] [천재 바이올리니스트 한서진, 올 하반기 미국 유학. 줄리어드로…,]내로라하는 VIP급 인사가 직접 공연장에 발걸음한 일이 차후에 알려지며 난리가 났다. 호텔왕 모건 부부는 그렇다 쳐도, 벨기에 왕비는 확실히 놀랄 만한 일이었으니까.
뒤늦게나마 알게 된 언론이 하도 그에 관련해 떠들어대는 통에, 정작 서진의 줄리어드 유학 소식은 한구석에 묻힐 만큼 한바탕 난리였다.
그렇게 온통 시끌시끌한 가운데, 다행인지 아닌지 서진은 이미 출국해 있었다.
한국뿐 아니라 전 세계가 비슷한 상황이라, 미국에 간다 해도 그리 편할 것 같진 않은 분위기였지만.
“와, 너 이제 미국에서도 선글라스 쓰고 다녀야 하는 거 아냐?”
이미 한국에서는 편히 길거리도 돌아다니기 어려운 지경이 되었다.
서진은 이번 콩쿨과 공연으로 단숨에 확 떴음을 체감했다. 그전까지의 유명세도 결코 적은 편은 아니었지만, 뭐랄까. 일약 아이돌 스타가 된 수준으로 인지도가 달라졌다는 게 느껴진 것.
이게 바로 세계 3대 콩쿨 – 어디까지나 동양의 몇몇 나라 기준 – 의 힘인가….
“뭐래, 아무도 못 알아볼걸? 러시아에서 기억 안 나?”
“그건 콩쿨 직후라 아직 널리 알려지기 전이고.”
아주 짧은 휴식 후 바로 줄리어드로 넘어가기로 결정한 서진은 어째서인지 지연과 함께였다.
지연은 유학이라면 학부를 마치고 천천히 생각해 보겠다며 아직 향후의 거취를 결정하지 않았다. 서진만 특별히 조기 졸업을 한 것이고, 지연을 비롯해 윤수, 하윤 등등은 아직 한예종에 재학 중인 것이었다. 물론 학부 과정 도중에도 유학이야 갈 수 있었지만, 이미 유학 경험이 있는 지연으로서는 급할 것 없다는 생각이었다.
“그나저나 서진이 넌 왜 이렇게 일찍 넘어가? 나야 따로 일정이 있어서 그렇다 치지만, 어차피 개강은 한참 남았잖아.”
“그냥. 먼저 가서 자리도 잡을 겸 해서. 나중에 어머니도 천천히 넘어오시기로 했거든.”
유학 생활 동안 함께 와서 뒷바라지를 해주겠다며, 선희는 미국으로 건너오기 위해 한국 생활을 정리 중이었다.
서진은 사양하지 않았다. 다 커서 뒷바라지가 필요한 나이는 아니지만, 어머니를 한국에 혼자 오래 두는 게 그 역시 마음에 걸렸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지연과 동행할 겸, 어머니가 편하게 자리 잡을 수 있도록 미리 가는 것이었다.
지연은 줄리어드에 함께 가는 건 아니지만 나름대로 스케쥴이 있다고 했다. 뭐라고 했더라… 어딘가의 여름학교인가 여름 축제인가에 참석한다고 했던 것 같은데….
다시 정확히 물어보자니 까먹은 걸 들킬까 봐 서진은 그냥 입 다물고 있기로 했다. 왠지 화낼 것 같다.
“그리고 같이 OST 작업을 하려는 것도 있어서. 아직 수락할지 말지 고민 중이긴 한데….”
“OST? 미스터 펄이랑?”
“응. 영화 제목이… 뭐더라. 아, 제목은 아직 가제라 했어. 워너사에서 제작하는 건데, 내용은 어린 음악 천재가…,”
서진의 대략적인 설명에 지연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
“아니, 어디서 들어본 정보인 것 같은데… 아! 그거구나.”
“??”
“이번에 엄마가 계열사를 통해 영화사랑 엔터테인먼트사를 인수했다고 들었거든. 나도 영화라면 꽤 관심이 있어서 물어보다가 몇 개 들었는데…,”
어쩌고저쩌고 지연의 설명은 한 마디로 이성 그룹과도 관련이 있어 대충 영화에 대한 정보를 알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원작 소설이 따로 있고, 스토리는 대강 어린 음악 천재가 부모님을 찾아서…, 그리고 주연 배우로는… 등등.
“이 영화 맞지?”
“…아.”
지연의 자세한 설명에 문득 떠오른 기억이 있었다.
직접 본 적은 없지만, 회귀 전에 개봉되었던 상당히 유명한 영화.
‘이거 완전 대박 나는 영화였는데…?’
OST에 관해서는 그다지 인상 깊게 기억나는 바가 없지만, 영화 자체는 흥행에 대성공했다.
무명의 아역 배우를 일약 월드 스타로 만들어 준 영화.
“지연아, 고마워!”
그래. 이제 다 생각났다. 이 영화의 유일한 단점이 바로 음악 부분이었다는 것.
음악 천재를 주인공으로 한 영화인데 정작 음악이 허접했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흥행에 대성공했다는 게 신기하긴 한데, 만약 OST 부분이 개선된다면….
서진은 고민을 끝냈다.
이건 반드시 잡아야 하는 영화였다.
천재 바이올리니스트로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