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 returned as a genius violinist RAW novel - Chapter 176
176화
생각해보면 지연 역시 차이코프스키 콩쿨 공동우승자로서 세계적으로 어마어마한 인기를 누리고 있었다. 뉴욕 예술제에 솔리스트로 초빙되기에 충분할 만큼.
“서진아, 왜?”
“…아뇨, 알고 보니 지연이랑 저랑 같은 행사에서 만날 것 같아서요. 같은 무대는 아니지만요.”
“어머, 잘 됐다. 겸사겸사 둘 다 볼 수 있겠네.”
“그러게요. 어, 잠깐만요.”
와 있는 건 지연의 카톡뿐이 아니었다. 실내악 협회에서 온 메일 한 통과, 윤수를 비롯한 친구들의 메시지.
“…K 오케도 온다는 것 같은데요?”
“어머, 정말?”
어째 ‘한서진과 친구들’을 위한 모임의 장이 될 듯한 분위기다. 어떻게 된 일인지 친구들에게 연락 한번 해 봐야지.
* * *
-살아 있었냐? 자슥, 뉴욕 물이 좋긴 좋나봐? 생전 연락도 안 하고.
“하하. 시차 때문에 시간 맞추기가 어렵더라고.”
-그렇다고 치기엔 같은 뉴욕에 있는 지연이도 너 통 연락 안 된다며 입이 댓발이던데?
아니, 근데 연락은 니들이 먼저 해도 되는데….
하지만 다들 자신을 배려하느라, 친구들 중에서도 가장 바쁘다는 걸 알기에 그런 것인지라 서진은 그냥 말을 돌렸다.
“그나저나 너네 갑자기 웬 뉴욕?”
-그게 그렇게 됐다. 초대받았거든. 왜, 작년에 했던 실내악 축제 말야. 그게 올해는 국제 페스티벌로 규모가 커졌는데, 우리 오케가 유명해진 건지 제안이 들어왔어.
“와우. 대박인데? 자세히 좀 말해 봐.”
멀리 바다 건너에서 전해진 소식에 서진은 무척이나 뿌듯했다. 역시, 나 없이도 다들 잘 하고 있구나.
-정확히는 링컨 센터 실내악 협회에서 제안이 온 거야. 이번 예술제에 참여하지 않겠냐고.
링컨 센터의 실내악 협회라면, 당연하게도 그 명성이 상당했다. 아직 걸음마 수준에 불과한 한국의 실내악과는 차원이 다른 세계.
그곳에 속한 이들은 하나같이 거장의 반열에 든 이들일 만큼, 당장 아무 콩쿨에나 나가도 심사위원으로 한두 번쯤 얼굴을 볼 법한 이들인 것이다.
-이제 우리나라에서도 실내악이나 챔버 오케스트라가 꽤 자리 잡은 모양이야. 우리 덕분이라 하기엔 자의식 과잉이겠지만, 어쨌든 작년보다 훨씬 사람들의 관심이 높더라고.
작년까지만 해도 단순히 기존의 ‘교향악 축제’를 벤치마킹해 ‘실내악 축제’라고만 개최되었던 행사가, 올해는 ‘대한민국 국제 실내악 페스티벌’이라는 거창한 이름이 되어 있었다.
그 일환으로 링컨 센터 측과 적극적으로 손을 잡은 것으로, 양측의 악단들이 상호 교류하여 공연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한국과 미국의 다양한 공연장을 돌며 지역 축제와 연계해 행사를 진행할 예정이었다.
그중 하나가 링컨 센터에서의 뉴욕 예술제인 것.
“…글쎄. 꼭 자의식 과잉만은 아닐지도?”
이는 회귀 전에는 전혀 없었던 일이었다. 그러니 자신을 비롯한 친구들, 그리고 K-오케의 활약 덕분일 터.
-푸핫, 한서진이 웬일로 잘난 체를 다 하고? 아무튼 우리 졸지에 월드 투어하게 생겼다. 월드라곤 하지만 미국에 한정되긴 한데, 국내 무대뿐 아니라 미국도 한 바퀴 돈다네. 한국에서는 예당이랑 성남아트센터랑, 부산 샬롯 콘서트홀이랑….
다들 올해의 콩쿨 우승자라 다른 공연 요청도 쇄도하는데, K-오케까지 너무 잘 나가는 바람에 눈코 뜰 새 없다고 윤수는 죽는소리를 했다.
“공연 복 터졌네. 다른 멤버들은 어때?”
편의상 다들 ‘한서진 악단’이라고 부르고 있지만, 엄밀히 말하면 서진은 K-오케에 관해 이렇다 할 직함이 있는 게 아니었다. 공식적으로 지휘자도 악장도 아니었으니까.
한국에 있을 때는 자연스레 서진이 악장이었지만, 현재 바이올린 파트인 지연도 서진도 전부 미국에 건너와 있는 터라 악장은 다른 이였다.
챔버 오케스트라로 규모를 키우는 과정에서 들어왔다가 완전히 고정 멤버가 되어 버린 이들. 따로 적극적으로 꼬신 것도 아닌데, 무슨 일이 있어도 한서진 옆에 붙어야겠다며 얼른 자리 잡은 것이다.
그중 한 명이 바로 새 악장이었다.
-인생 최고의 선택이라는데?
“응? 뭐가?”
-우리 오케에 뼈를 묻은 것 말이야.
“하하. 서로 잘됐네. 아무튼 오면 나한테 연락하고. 내가 너네 담당이야.”
-응? 그게 무슨 소리야?
“알잖아. 나 무슨 협회에 어쩌고 감투 쓴 거.”
-아!
덕분에 비슷한 내용의 메일을 협회로부터도 받았다. 모쪼록 미국에서의 일을 잘 부탁한다는 말과 함께.
“아무튼… 그럼 당분간 바쁘겠네?”
-응. 그래도 해외로 뜨면 학교 안 가도 돼서 그거 하난 좋겠더라.
…그게 중요한 거였냐.
“그렇게 좋냐?”
-어, 학교 재미없어. 넌 좋겠다. 벌써 졸업해서.
생각해보니 친구들도 마음만 먹으면 조기 졸업이 가능할 것 같은데….
-참. 나 부탁이 하나 있는데. 우리 오케 공연에 네 곡 좀 써도 되냐?
“내 곡? 쓰는 거야 자유지. 어차피 저작권료는 알아서 정산되니까.”
-아. 근데 편곡이 좀 들어가야 할 것 같아서. 원작자의 허락이 필요하잖아?
“편곡? 뭘 하려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K-오케가 하는 거라는데 뭐 반대할 이유 없지. 알아서 잘 찜쪄먹어 봐.”
-땡큐! 역시 쿨해, 한서진!
“됐고, 나 이제 연습하러 가봐야겠다. 명색이 독주회인데 망하면 안 되잖아.”
-맞다. 너 독주회 언제랬지?
“다음 주.”
-공연 잘해라. 보러 가고 싶은데, 도저히 짬이 안 난다.
“알아. 됐으니까 예술제 때 보자.”
-크크. 근데 너도 오케 뭐 맡아서 한다며. 한서진 표 두 오케가 붙는다며 난리 나는 거 아냐? 누가 누가 더 잘하나.
“설마. 유치하게 누가 그런 걸로….”
서진은 정말 그럴 리 없다고 생각했지만…,
원래 설마가 사람 잡는 법이었다.
* * *
한서진이 이끄는 줄리어드 오케스트라, 그리고 한서진 악단.
이 두 악단이 뉴욕 예술제에서 각기 공연을 선보인다는 말에 사람들은 후끈 달아올랐다.
사람들은 마치 대결 구도라도 되는 양 ‘줄리어드 VS 한서진 악단’이라며 누가 이길지를 내기하며 관심을 불살랐다.
아니, 이게 무슨 콩쿨도 경기도 아닌데, 어떻게 승부를 내라는 건지… 점수를 매길 수 있는 것도 아닌데 어이가 없는 일이었지만, 사람들은 그저 흥미진진할 뿐이었다.
-한서진이 없는 한서진 악단과, 한서진 리드의 줄리어드 오케?
-닥 후자지.
-ㄴㄴ K-오케 너무 무시하는데?
└맞아. 이름부터가 K-오케잖아. 요즘 K-팝이니, K-클래식이니 난리인데, 바로 그 K라고!
└아닌 것 같은데….
└ㅇㅇ 그건 아님. 그냥 어쩌다 보니 이름만 그런 거고, K-오케가 그 K는 아님.
└그걸 댁이 어케 암? 한서진 피셜로 나온 말이라도 있음?
└ㅇㅇ 그렇다 치자…. 그냥 딱 봐도 알잖아.
-나는 무조건 한서진 악단, K 오케에 한표.
└에이 그래도 신생 악단을 어떻게 줄리어드에 비벼?
└줄리어드라 해봤자 학생들로 이루어진 아마추어 오케잖아.
└한서진 악단도 학생표야….
사람들은 흥미진진해 했지만, 서진은 미칠 노릇이었다.
이거… 어느 쪽이 더 잘하든 결국 다 제가 욕먹는 일 아닌가 싶었다.
물론 그렇지는 않았다. 현재 사람들의 반응으로 보건대, 어느 쪽이 이기든(?) 간에 무조건 서진에 대한 칭송만이 이어질 분위기였으니까.
거기에 대한민국 정부는 더더욱 기름을 부었다.
이게 다 국제 교류를 통해 대한민국 클래식 음악 축제를 더욱 키우기 위한 일환이 아닌가. 이왕이면 대중들의 관심을 더욱 끌고자, 음악계는 관광청과도 함께 손잡고 대대적인 행사를 벌였다.
뉴욕 왕복 티켓 추첨 제공!
링컨 센터 공연 티켓!
사람들은 그야말로 눈이 돌아갔다. 클래식에 관심 없어도, 비행기 티켓 준다는데 뭔들 마다하겠는가.
그렇게 국가 차원에서 엄청 홍보하다 보니, 일반 대중들까지 절로 이 행사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이다.
그러는 와중에,
드디어 서진의 독주회 날짜가 되었다.
* * *
드디어 그날이 되었다.
‘임찬윤’과 ‘한서진’이라는 두 슈퍼스타의 이름을 걸고 열린 아이작 스턴 홀의 독주회.
이 공연은 어마어마한 이슈를 몰고 왔다. 공연이 시작하기도 전부터 온갖 기사로 뉴욕 언론이 도배될 만큼.
서진 역시 새삼스러운 기분이었다. 카네기 무대쯤이야 이미 시들한 기분이겠거니… 한 건 크나큰 착각이었던 것.
커다란 홀을 가득 메운 인파에 약간 질린 기분마저 든달까.
왠지 모르게 처음으로 갓 무대에 섰던 순간의 기억이 떠올랐다. 회귀 전, 바이올린을 한창 배워가던 풋풋한 학생으로서의 추억.
‘여기가 바로….’
그렇다.
회귀 전 그토록 갈망하던 무대였다.
자신의 이름을 걸고 연 카네기 홀에서의 첫 독주회.
이렇게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을 줄은 꿈에도 몰랐는데….
예매 현황이야 매니지먼트사를 통해 전해 들어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두 눈으로 직접 보는 건 차원이 달랐다.
그 큰 아이작 스턴 홀이 꽉 차다니. 정말로 실감이 난달까….
일주일 내내 전석 매진이라니. 간혹 취소표가 나오기 무섭게 사라진다며 벌써부터 넷상에 악명이 자자했다.
심지어 이번 공연에는 VIP 티켓조차 뿌리지 않았다. 독주회 주인공인 서진과 찬윤의 지인을 위한 몇 장 외에는, 기업 찬조 등을 이유로 빠진 티켓이 전혀 없는 것이다.
그럼에도 빈틈없이 꽉 찬 좌석. 전부 다, 제 발로, 제 돈 주고 서진과 찬윤을 보러 온 이들인 것이다.
그래서인지 그 감동이 유난히 남달랐다.
…진짜로, 드디어 내가 이 자리에 서는구나.
오늘이 바로 그 첫날. 일주일간의 대장정을 스타트하는 날이었다.
앞으로 일주일. 하루하루 모든 공연이 중요하겠지만, 오늘은 특히나 특별한 의미를 가진 날.
‘최선을 다하자.’
어머니도, 지연이도 보고 있으니까.
그리고 어렵사리 찬윤과의 콜라보 무대를 성공시킨 자리니까.
짝짝짝짝짝짝짝짝짝짝!!!
서진의 등장에 더는 불가능할 만큼 격렬한 박수가 터져 나왔다. 무대를 마친 것도 아니고, 고작 이제 막 등장했을 뿐인데 이토록 환영의 열기가 뜨거웠다. 독주회인지라 첫 순서도, 마지막 순서도 전부 서진임에도.
박수 소리가 잦아들자,
곧바로 연주가 시작되었다.
관객들의 어마어마한 집중력과 열기를 한 몸에 느끼며, 서진은 바이올린과 한 몸이 되었다.
첫 곡으로는 베토벤이었다.
바이올린 협주곡 D Major, Op.61.
독주회용으로는 조금 의외인 선곡이었지만, 서진은 찬윤을 믿었다.
그의 피아노는 가히 오케스트라의 풍성함을 대체하고도 남으니까.
1악장 Allegro ma non troppo.
찬윤의 청명한 피아노 소리와 함께,
불후의 명곡이 서진의 손끝에서 피어났다.
미국 클래식 공연 역사에 길이 기록될, ‘한서진 레전드’ 시리즈의 시작이었다.
천재 바이올리니스트로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