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 returned as a genius violinist RAW novel - Chapter 180
180화
끝끝내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결국 와본 공연장. 천운인지 운 좋게 취소표를 구해 처음으로 ‘한서진’이라는 천재의 무대를 겪어본 그녀는, 말도 안 되는 충격을 받았다.
그래봤자… 했던 게 우습게도, 그녀는 곧바로 한서진의 팬클럽 회원수에 1을 추가하게 되어버렸다.
생전 클래식에 관심 한 톨 없던 평범한 대중들마저 개미지옥에 빠지듯 열광하며 끌려들어 가는지 알 것 같았다.
단 한 번 들은 것만으로도, 앞으로 그의 음악에서 평생 절대로 헤어나올 수 없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느꼈으니까.
정말로 이상한 일이었다. 뭐랄까… 정신적, 예술적 마약이랄까.
이건 정말로 그동안 자신이 알고 있던 클래식과 전혀 달랐다.
죽어 가던 클래식 음악계에 희망이 보였다. 이미 이 바닥을 떴다 생각한 지 오래였건만, 그 희망의 빛에 그녀는 새삼스레 기대감이 들었다.
한편으로는 정반대의 마음으로, 그에게 극심한 질투를 느끼기도 했다. 이런저런 이유로 이 바닥을 떴다지만, 결국 가장 큰 이유는 재능의 문제였으니까. 제게 그만큼의 실력이 있었다면 아무리 더럽고 치사해도 버텨냈을 테니까.
제게는 없는 그 찬란한 재능이 그에게는 있다는 게 마냥 부러워 한때는 시기심도 들었는데, 직접 와서 공연을 보고 나니 그런 마음이 싹 사라졌다.
차마 질투할 마음조차 들지 않는 경지였으니까.
그는 그렇게밖에 표현할 수 없는 그런 존재였다.
그뿐인가. 단순히 천재성을 넘어, 그에 더해 부조리에 항거하는 기개까지.
서진에 관련된 기사를 찾아보던 그녀는 퀸엘리자베스 콩쿨 관련 사건을 알게 되었다. 수상을 앞두고 기권이라니, 자신으로서는 상상도 못 할 일을 해낸 존재가 아닌가.
거기에 차이코프스키 우승까지 실질적 2관왕.
이쯤이면 동시대에 살고 있다는 게 영광스러운 일이었다.
그렇게, 정신을 차려 보니 어느덧 팬 사인회까지 와있는 그녀였다.
그리고 그를 직접 만나본 순간,
아아….
그의 음악은 물론이거니와, ‘한서진’이라는 존재 자체에 깊이 빠져 버리고 말았다.
* * *
사인회는 그야말로 인산인해였다.
끝없이 늘어선 줄. 보기만 해도 입이 딱 벌어지는 모습이었지만, 서진은 기꺼운 마음으로 팬들을 맞이했다.
참고로 함께 공연한 찬윤은 쿨하게 빠졌다. 자기가 주인공이 될 자리가 아닌 것 같다며.
덕분에 오롯이 혼자 맞이하게 된 어마어마한 팬들의 열기.
이만큼 어마어마한 사랑을 받는다는 사실이 무척 기쁘면서도 벅찬 감정이었다.
“아저씨! 너무너무 멋있어요!”
다른 모든 팬들도 전부 고마웠지만, 특히 사인을 받겠다고 줄 선 꿈나무들의 모습은 보기만 해도 흐뭇했다.
…아니, 근데…
10살짜리 꼬맹이 눈에는 아저씨로 보일 나이구나. 벌써….
눈앞의 어느 한국인 꼬맹이의 한 마디에 오는 현타와는 별개로, 서진은 신기한 마음이 들었다.
사인회에 온 사람들은 대부분 성인이었지만, 간혹 어린아이들도 있었다. 한데 이준 같은 전공생을 비롯한 중·고등학생들이야 그러려니 한다 쳐도, 그보다 훨씬 어린 아이들이 와 있는 모습은 조금 의아스러운 것이다.
이렇게 어린 아이들이 클래식에 진심일 수 있다니….
또한 공연 무대에서도 느꼈던바, 어린이들이 생각보다 얌전히 앉아 듣는 모습 또한 놀라웠다.
“고마워. 자, 여기.”
사인을 받아 든 건 아이였지만, 입이 헤벌쭉 벌어진 건 곁에 함께 있던 모친으로 보이는 여자였다.
아마 아이는 처음부터 사인을 받으려던 건 아니고, 서진의 팬인 엄마 손에 이끌려 왔다가 함께 줄을 서게 된 모양이었다.
줄이 조금 긴 게 아닐 텐데, 무척 의젓한 아이구나 싶었다. 엄마를 생각하는 마음이 각별하거나.
물론 그런 것도 있었지만, 서진의 생각과 달리 꼬마 아이는 정말로 서진에게 홀딱 빠져 버렸다.
원래는 엄마에게 억지로 끌려온 게 맞았다. 투덜투덜 온갖 불만을 내뿜으면서도, 게임기를 사준다는 말에 어쩔 수 없이 자리했던 것.
한데….
무대 위에서 너무너무 멋진 소리가 나는 게 아닌가. 분명 평소에 듣던 지루한 클래식과 다를 바 없는 비슷한 곡인데, 이유를 모르게 너무너무 멋있고 감동적이었다.
심금을 울리는 서진의 특별한 연주에는 남녀노소의 구분 따위 의미 없다는 게 새삼스레 증명된 순간이었다.
공연이 끝나자, 소년은 이어 사인회가 있다는 엄마의 말에 제가 먼저 달려나갔다.
선착순이라니, 죽어라 뛰어야지!
특이하게도 서진의 첫 사인회는, 연예인 사인회처럼 사전 신청이 아니라 선착순 이벤트로 진행되었다.
물론 이벤트 자체는 게릴라성이 아니라 사전에 기획된 것이었다. 서진의 인기가 워낙 하늘을 찌르는 만큼 보안 및 경호에 철저한 준비가 필요하기에, 즉흥적으로 이벤트를 마련한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니까. 그나마 한국이라면 모를까, 뉴욕 한복판에서는 절대로 안 될 말.
아무튼, 별다른 신청 없이 선착순으로 이루어진 사인회 이벤트 덕에 줄은 끝도 없이 늘어서 있었다.
한순간에 서진의 팬이 되어버린 소년은 그 긴긴 줄을 꿋꿋이 기다렸다. 다리 아프다 칭얼거리면서도 두 시간도 넘게 서서.
“엄마엄마, 나 잘했지! 내가 죽어라 안 뛰었으면 우리 다섯 시간은 기다렸을 거야!”
아들의 기특한 말에도, 어머니로 보이는 여인은 서진을 직접 본 감동에 머리가 하얘졌는지 말도 제대로 꺼내지 못한 채 손으로 얼굴만 가리고 있었다.
“어, 어머. 어떡해….”
“참 똘똘한 아드님을 두셨어요. 이렇게 귀한 발걸음 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꼬마야, 이름이….”
“현진이이에요. 이현진!”
“그래. 현진이도 고마워. 아저씨 좋아해 줘서.”
“헤헤. 듣는 동안 너무너무 기분이 좋았어요. 엄마도 너무너무 행복해하는데, 저도 그랬거든요! 그래서 시간이 완전 순식간에 지났어요! 형아, 진짜 너무 멋져요!”
한없이 즐겁고 기쁜 엄마의 감정이 정말로 고스란히 전해지는 기분이었다. 그래서 더욱 좋았던 것 같다.
덕분에 서진은 아저씨에서 형아로 업(?)그레이드되어 있었다.
“저, 저 싱글이에요!”
그러고 있는데, 갑자기 옆에서 비명과 같은 외침이 튀어나왔다.
“…네?”
서진의 눈이 혼란으로 물들었다. 싱글? 그럼 요 꼬맹이는 누구지?
“아, 아니 정확히는 ‘싱글’… 맘이지만요.”
…아.
아니 근데 그건 왜…?
제 어머니 역시 싱글맘으로서 자신을 키워온 만큼 그녀가 새삼 남달리 보이는 부분이 있긴 했지만, 뭐라 반응해줘야 할지 몰라 조금 당혹스러웠다.
“예에. 훌륭하신 어머니 덕분에 현진이가 이렇게 의젓하군요. 와 주셔서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싱글’맘이 아닌 싱글‘맘’에 초점을 둔 서진의 대답.
차라리 다행이었다. 저도 모르게 주책맞은 소리가 튀어나와 버렸는데, 별로 대수롭지 않게 넘어가 주어서.
자신에 이어 아들도 저리 좋아하니 그것만으로도 매우 행복한 일이 아닌가.
방방 뛰는 아들의 얼굴에 그녀의 얼굴에도 미소가 피어올랐다.
서진 역시 미소로 화답하며 둘을 보내고는, 이어 끝없이 이어지는 팬들을 변함없이 웃으며 맞이했다.
그러다, 이번엔 아는 얼굴을 마주했다.
“…아, 안녕하세요.”
이준이었다.
“이준이구나. 와줘서 고마워.”
그러고 보니 이준 외에도 오케스트라 단원들 중 티케팅에 성공한 이들이 제법 있었던 걸로 안다. 무대 뒤에서 따로 만난 적은 없지만, 몇 번 객석에서 아는 얼굴을 발견한 적 있으니까.
한데 공연을 보는 거야 그렇다 쳐도, 모르는 사이도 아니고 사인이라면 얼마든지 따로 받을 수 있는데 왜 굳이…?
서진의 의문에 이준은 배시시 웃으며 답했다.
“그게, 그냥…,”
왠지 까마득 멀게 느껴져서 차마 엄두도 못 냈다고. 그래서 여자친구랑 한참이나 줄을 섰는데, 자신을 특별히 아는 체 해 줘서 무척이나 기뻤다고.
“…아. 여자친구구나.”
서진은 그제야 알아봤다. 그때 예비학교에 갔을 때 봤던 옆자리의 여자아이. 오케에서도 이준의 짝인 소녀다.
풋풋한 커플의 모습에 서진은 흐뭇하니 미소지었다. 참 좋을 때다….
“감사합니다, 마에스트로! 그럼 좋은 시간 되세요!”
“응. 이준이도. 그보다, 그냥 선배면 충분하니까 마에스트로니 뭐니 그렇게 어렵게 부를 필요 없어.”
“저, 정말요?”
이준의 입이 함지박이 벌어졌다.
처음 예상했던 것과 달리 오케스트라의 지휘자가 아닌, 예술제에서 함께 무대에 설 파트너가 된 그였지만, 그것과 별개로 서진이 까마득히 먼 존재인 건 매한가지였다. 아무리 한예종의 선후배 사이라고는 하나, 함부로 그런 호칭이 나오지 않을 만큼.
“물론이지.”
서진이 다정히 미소지었다.
그렇게 좋을까 싶으면서도, 어떤 기분인지 조금 알 것 같아 기분이 묘했다.
자신이 누군가에게 그런 대상이 될 거라고는, 회귀 전만 해도 결코 상상도 못 한 일이었는데….
“가가가감사합니다, 선배님!”
풋풋한 커플을 향해 손을 흔들어 배웅하며 서진은 다시금 주위를 둘러보았다.
오직 자신을 한 번 보기 위해 오랜 기다림을 감내해가며 찾아와준 이들.
처음에는 부담감 가득했던 사인회였지만, 막상 해보니 관객들과 직접 소통한다는 즐거움이 일었다. 특히 자신의 곡을 들으며 어떠한 점이 좋았는지, 어떠한 점을 느꼈는지를 솔직히 말하며 다가와 주는 팬들의 존재는 무척이나 고마웠다.
힘들지만 그만큼 뿌듯한 시간.
서진은 또다시 다가온 다음 사람을 향해 활짝 미소지었다.
* * *
-그럼 한서진 이제 완전 미국으로 넘어가버린 거야?
└ㅇㅇ유학 갔잖아. 결국 줄리어드 갔음.
└영원히 한국에만 있을 것처럼 굴더니….
-근데 한국에서는 왜 팬 사인회 왜 안함?
-?? 언제? 한서진이 언제 그랬음??
└왜, 예전에 유학 제의 다 뿌리치고 막…,
└그거야 그땐 ‘아직’인 거였겠지.
-근데 한국에서는 왜 팬 사인회 왜 안함?
└그러게….
-그럼 이제 한서진 한국에서 못 보는 거?
└뭔소리야 원래 연주자들 하루가 멀다하고 해외 들락날락거리는데. 어디에 있든 뭔상관임
└그건 아니겠지만 아무래도 한국에서 있을 때만큼은 국내에서 공연을 많이 할 수 없겠지.
-ㅎㄹ… 돌아와ㅜㅜ
-근데 한국에서는 왜 팬 사인회 왜 안함?
└얘 뭐냐….
카네기 공연 및 팬사인회에 이어 뉴욕 예술제 소식까지 알려지니, 이번에는 반대로 한국 팬들이 난리가 났다.
“자네도 참 피곤하겠어.”
“네?”
이자크가 보여준 화면을 확인해 본 서진은 피식 웃었다.
이자크는 한국어를 몰랐지만, 댓글이 온통 한서진 한서진, 서진의 이름 세 글자로 도배되어 있다는 건 모를 수 없었다.
“제가 그래봤자 이자크만 하겠어요?”
“글쎄? 나도 자네와 같은 폭발적인 인기는 겪어본 적 없어서 말일세. 아무래도 자네와 나는 팬심의 결이 다른 느낌이지 않나.”
“그런가요…?”
“그나저나 준비는 잘 되어가고?”
“네. 똘똘한 녀석이 하나 있는데, 덕분에 만반의 준비를 거의 마쳤어요.”
“오호, 그때 말한 그 후배 소년인가? 새 악장이라는?”
“네. 같은 한국인인 것에 더해 후배이기까지 하니 조금 공교롭긴 하지만… 그렇게 되었어요.”
“그렇군. 뭐, 잘하기만 한다면 아무렴 상관없는 일이겠지. 근데 그 덕분인지는 몰라도, 들리는 소문으로는 지금 상황이 엄청 심각하던데?”
천재 바이올리니스트로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