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 returned as a genius violinist RAW novel - Chapter 181
181화
“네? 갑자기 그게 무슨…?”
“다들 목숨 걸고 연습하고 있다고.
뒤늦게 불이 붙은 모양이야.”
음? 왜 갑자기…?
그 후로 확실히 달라진 것 같긴 하지만, 갑자기 왜 그 정도로?
“그만큼 자네가 비전을 제시해 준 덕분이겠지. 물론 외재적인 이유도 있겠지만.”
“어떤 이유요?”
“이번 예술제에서의 어워드를 위해서가 아니겠는가. 왜, 무슨 최고의 무대니, 베스트 솔리스트니 그런 걸 뽑지 않는가. 자존심으로 똘똘 뭉친 줄리어드생이 1위를 놓칠 수야.”
아하. 그래서 그렇게 새로운 방식의 도전에 거부감이 있었던 것이겠구나. 괜히 안 하던 짓 했다 망할까 봐.
…그나저나 원래 뉴욕 예술제에 그런 게 있었나? 뭐, 원래는 없던 게 생긴 거라 할지라도 저로서는 알 길이 없었다. 서진 역시 이번이 첫 경험이니까.
서진이 아는 건 관객을 대상으로 하는 이벤트였다. 이번 예술제의 참여단체 중 하나인 한국 실내악 협회 측에서 기획한 이런저런 행사들. 덕분에 올해 유난히 관심이 모인 것이다.
덕분에 벌써부터 경쟁의 불꽃이 파파박 튀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잠깐, 이거 그럼 나도 쉽게 양보 못 하는 상황인데? K-오케로서도 놓칠 수 없는 중요한 국제무대 데뷔 기회니까.
한데 또 줄리어드 역시 남의 일이 아니었다. 어느 쪽을 응원해야 할지 애매한 입장이랄까.
‘반대로 말하면 둘 중 어느 쪽이 더 잘하더라도 크게 상관없는 것이기도 하지만.’
“참, 그나저나 이번 겨울 일정은 어떻게 되는가? 한국에 잠시 돌아갈 예정인가?”
“아뇨. 팬들의 원성대로 아직 한국 쪽 일정은 아직 없어요. 정확히는 그럴 틈이 없다는 것에 가깝지만요.”
월드 투어도 줄줄이 잡혀 있고, 그와 별개로 곧 학기도 시작할 테고 – 아마도 한예종 때와 마찬가지로 거의 이름만 두고 있는 수준이 되겠지만 – 가을에는 다시 차이코프스키 콩쿨 측에서 주최하는 카네기 홀 공연도 있고, 또 여기서 이자크와 영화음악도 마무리해야 하고….
“그래? 그럼 바쁘긴 해도 어쨌든 겨울에도 여기에 머물 예정이라는 게로군?”
“네? 네. 일단은요. 해외를 오가더라도 여길 베이스로 삼아 지낼 테니까요.”
물론 그 후에 코로나가 터지면 음악가들이고 유학생들이고 줄줄이 귀국하게 되어있었다. 어느 나라 상황이 더 안 좋을지 오락가락할 테지만, 어쨌든 웬만하면 자국에 머무는 게 마음 편할 테니까. 특히나 지병이 있는 자신은 주치의가 있는 한국에 머무를 수밖에 없었다.
“흐흠. 좋아. 참고하겠네.”
“…?”
아, 저번에 같이 공연하자고 한 것 때문인 듯했다. 그나마 12월까지면 몰라도 해가 지난 겨울쯤이면 공연이고 뭐고 죄다 줄줄이 취소될 텐데….
차마 그걸 지금 시점에 말해 줄 수 없다는 게 문제였다.
만약 정말로 코로나 때문에 뭔가가 취소된다면 아깝긴 하겠다. 다른 사람도 아닌 이자크가 함께 하자고 한 일이면 결코 별 것 아닌 일은 아닐 텐데.
“아무튼, 그럼 다시 작업으로 돌아가자면…, 이 부분은 아까 얘기한 대로 자네가 맡기로 하고….”
서진은 뭐라 입을 열려다 관두었다. 일단 지금 중요한 건 그런 게 아니었으니까.
둘은 지금 머리를 맞댄 채 영화음악 작곡에 몰두 중이었다.
일단 독주회라는 큰일 하나 치렀으니, 미뤄놨던 일을 간신히 시작할 여유가 난 것이다. 예술제 공연을 바로 앞에 두고 있지만, 일정이 하도 많아 이렇게라도 틈틈이 시간을 쪼개지 않으면 일의 진행이 불가능할 지경이었다.
“하아… 이렇다 할 만한 아이디어가 떠오르질 않네요. 어린 주인공의 천재성을 보여주기 위한 음악이라… 배경이 뉴욕이니 흠….”
일단 대본상으로는 크로스오버 스타일이라는데…, 대충 어거스트 러쉬 같은 느낌이려나…?
클래식을 하는 어머니와 팝을 하는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소년의 이야기.
어린 소년인 만큼 편견 없이 다양한 장르를 넘나든다는, 대충 뭐 그런 건데….
“사골이 되도록 써먹은 소재긴 하지만, 재밌겠네요.”
워낙에 ‘현대음악’으로 상징되는 서진이었기에 이번에는 오히려 조금 다르게 가보고 싶었는데 마침 잘 되었다. 아무리 천재라 한들, 9살 꼬맹이가 갑자기 현대음악을 작곡할 것 같지는 않으니까.
“자네도 크로스오버에 관심이 있었나?”
“네. 언젠가 한 번 꼭 해보고 싶다고 생각했거든요.”
다행히 이자크는 크로스오버에 편견을 가지지 않은 사람이었다.
그는 다비트의 크로스오버 활동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을 보내는 이들에게 오히려 일침을 가하며 되려 옹호하는 사람 중 하나였다.
당신이 아무리 그에게 비아냥과 냉소를 보내봤자 그게 당신을 우월하게 해 주지는 않는다고, 그리고 그 누구도 그걸 전문적인 비평으로 여기지도 않는 법이라고. 그러니 입 다물라며, 취향에 맞지 않는다면 조용히 다른 곳으로 가라는 한마디였다.
“하하. 역시 둘이 괜히 친한 게 아니었군! 순수 클래식뿐만 아니라 크로스오버 역시 얼마든지 바이올리니스트로서 스스로를 증명할 수 있는 길이 될 수 있지, 라고 다비트가 말했지. 참, 말 나온 김에 다비트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것도 괜찮겠군.”
“그러게요. 제가 크로스오버 쪽으로는 잘 모르니까요.”
“말 나온 김에 바로 연락해 보지. 잠시만.”
이자크는 곧바로 핸드폰을 들었다.
다비트가 곧바로 전화를 받는 소리가 들렸다.
영어로 대화하는지라 핸드폰 너머의 소리를 잘 알아듣기 힘들었지만, 이자크가 친절히 전해주었다.
“오, 이왕이면 이번 예술제에서 자기랑 함께 공연하지 않겠냐는데?”
서진은 갑작스레 진행되는 일을 따라잡느라 정신이 없었다. 여기 사람들은 원래 이렇게 즉흥적인가….
“이번 예술제요? 다비트가 공연하나요?”
“정확히는 크로스오버 공연이지. 클래식 공연과는 별도로 진행되는 일정이지만.”
이번 뉴욕 예술제는 전시 및 공연, 워크숍 발표, 영화 상영, 다양한 체험 활동 및 장터 등등 다양한 분야가 있었다. 각 분야 내에서도 꼭 순수예술뿐 아니라 다양한 장르가 기획되어 있었고. 즉 클래식 공연만이 전부가 아니라는 뜻.
“아….”
“잠깐, 그냥 전화를 바꿔주겠네. 자.”
* * *
뉴욕에 도착한 K-오케 단원들은 입국하기 무섭게 쏟아지는 관심에 어안이 벙벙해 있었다.
-안녕하세요! K-오케스트라시죠!?
-이번 뉴욕 예술제에 참여하신다고 들었는데, 혹시…
-잠시만 인터뷰 좀…!
…어라? 우리가 언제 이렇게 유명했었지?
한국도 아니고, 뉴욕에서 이런 관심을 받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는데…?
그게 다 서진 덕분이라는 걸 알기까지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한국에서부터 타이트했던 일정 덕에 거의 공연 날짜가 임박해서야 도착한 뉴욕 예술제. 거기서 만난 서진의 존재에 의문이 풀린 것이다.
‘역시, 이 치트키 덩어리!’
일의 전말은 별 것 없었다.
‘한서진 사인회’ 소식과 함께 들려온 이번 공연 소식에 팬들의 관심이 덩달아 뉴욕 예술제에까지 이어진 것.
비록 서진이 이번 공연에 직접 연주를 하는 건 아니라지만, 한서진이 이끄는 오케스트라라는 것만으로도 사람들의 관심은 훅 쏠렸다.
그러한 상황에, 소위 ‘한서진 악단’이라 불리는 오리지널 한서진표 오케스트라가 함께 참가한다니… 자연히 거기에까지 관심이 확대되는 건 당연한 일.
한서진과 조금이라도 관련 있다 싶은 것들이면 뭐든 사람들이 미친 듯 몰려들고 있는 형국이었다.
물론 그들에게 가장 중요한 요소는, ‘과연 이번 예술제에서 K-오케와 한서진이 함께 공연을 할 것이냐’겠지만, 꼭 그렇지 않더라도 한서진의 이름과 관련되어 있다는 것만으로도 촉각을 곤두세우기 충분하다는 것이다.
* * *
“네에? 제, 제가요!?”
뉴욕 예술제의 공연을 하루 앞둔 날.
한서진 키즈, 아니 민이준에게 악장 역을 맡긴 서진은 상대의 당황스러운 반응에도 무심히 고개를 끄덕였다.
“응. 물론이지.”
“제, 제가 혼자 악장을… 악장의 자리에 서라고요?”
끄덕.
무슨 문제라도 있냐며 대수롭지 않게 긍정을 표하는 서진의 모습에 이준은 말을 잇지 못했다.
“…?”
서진은 오히려 의아했다.
…대체 왜 저렇게 기겁하는 거지? 원래 그러기로 했던 게 아니었나?
그날 악장을 뽑을 때 분명 언질해 두었는데…? 이미 모두가 다 알고 있는 사실에 왜 저렇게 놀라나 싶었다.
이준이 자원했던 것이니 서진이 일방적으로 시킨 일도 아닌 데다가, 그는 짧은 기간 동안이었지만 악장으로서의 역할을 무척 훌륭히 수행해 냈다. 서진의 가르침을 쑥쑥 흡수하며 몰라보게 성장한 것은 물론이다.
심지어 이준이 제안한 아이디어에 따른 연습의 결과, 현재 오케스트라의 호흡에는 아무런 문제도 없었다. 한데 저렇게 대경하니 혹시 따로 무슨 일이라도 있는 건가 싶었다.
“왜, 무슨 문제라도…? 혹시 컨디션이라도 안 좋은 거야? 손이라든가….”
결국 서진은 조심스레 물어볼 수밖에 없었다. 리허설을 위해 미리 무대에 오른 날인 만큼, 컨디션은 중요한 요소였다. 바로 내일이 공연이라는 뜻이니까.
“아, 아니에요! 그런 게 아니라, 저는… 선배님께서 무대에 함께 해주시는 걸로 알고…,”
“…응?”
서진이 눈을 끔뻑였다.
“그게 무슨…, 연습 때처럼 같이 연주하는 줄 알았다고…?”
이준이 당황한 표정으로 마구 고개를 끄덕였다.
“….”
서진 역시 당황스럽긴 마찬가지였다. 대체 어쩌다 이런 오해가 생긴 거지…?
…아. 혹시.
-아직 부족하지만, 마에스트로께서 가르쳐 주신다면…,
-좋습니다. 가르쳐준다기보다는, 함께 한다는 말에 가깝겠지만…, 어쨌든 그렇게 하도록 하지요.
설마 그 ‘함께 한다’는 말을 그렇게 오해한 건가?
하지만 그것과 별개로, 이준은 분명 그보다 먼저 악장의 자리에 자원했다. 지휘자 없이 한다는 거야 이미 알고 있던 일이고, 악장이라면 응당 오케스트라를 이끌어야 하는 법. 오해가 발생할 여지는 없었다.
그래서 서진 역시 당연하게도, 연습 과정에는 같이 도와주고 무대에는 저들끼리만 서는 것으로 생각했다. 그걸 어째서인지 이준은 공연 자체를 끝까지 같이하는 줄 착각했던 것이고.
자신의 우상인 한서진에게 직접 가르침을 받는다는 사실에 너무 흥분한 나머지, 혼자 완전히 엉뚱한 생각을 해버린 것이었다.
어쨌든 이제라도 상황을 파악한 이준은 패닉에 빠져 버렸다.
나, 나 혼자… 어떻게…. 할 수 있을까?
비록 지휘자로서 단상에 섰던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연습 때는 서진의 지도가 있었다. 글자 그대로 딱 붙어 같이 앉아 그에게 오케스트라를 이끄는 법을 알려주었으니까.
한데 지금은 자신 혼자 악장으로서 무대를 성공시켜야 하는 것이다. 그것도 지휘자 없이 연주되는 ‘봄의 제전’을!
이준의 내적 갈등을 알아챈 서진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아무래도, 특단의 조치가 필요해 보였다.
천재 바이올리니스트로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