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 returned as a genius violinist RAW novel - Chapter 184
184화
한서진의 크로스오버 공연 소식에 음악계는 한바탕 들끓었다.
공연 전일에야 알려진 소식. 음악계 관계자들은 거의 당일에 되어서야 알게 된 사실에 경악했다.
크로스오버라니…!
충격이었다. 한서진마저 그런 정도를 벗어난 길을….
음악계의 지긋한 원로들은 이게 다 그가 다비트와 어울린 탓이라며 혀를 찼다. 둘이 가까이 지낼 때부터 어째 불안불안하더니… 21세기 최고의 기대주마저 정통 클래식을 저버리고 만 것이다.
서진보다 하나 위 세대에서, 최고의 신동이라 불리며 승승장구 클래식의 정도만을 밟아오던 다비트가 크로스오버로 빠졌을 때보다 훨씬 큰 충격이었다.
클래식에 대한 희망은 죽었다며 대차게 비판하던 음악계 인사들.
이번에는 서진의 소식에 혀를 차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랬던 것도 아주 잠깐, 일일천하.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꺄아아아!!!”
“와아아아!!!”
공연장은 자지러지는 비명에 귀가 먹먹할 정도였다.
“미쳤어! 대박!”
“와, 이게 일렉으로 가능하다고?”
파가니니의 카프리스 24번을 크로스오버로 들을 수 있을 줄이야.
미쳤다, 미쳤어! 이건 진짜 미쳤다는 말밖에 나오지 않았다.
바이올린이 어려워진 원흉이라 불리는 파가니니의 역작들.
오죽하면 작곡된 당시에는 악마에게 영혼을 팔아야만 연주가 가능하다는 평을 들었을 정도였을까.
비록 그때만큼은 아니지만, 현재 역시 웬만한 거장들에게도 쉽지 않은 곡이다. 콩쿨에서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거라면 모를까, 제 발로 나서서 공연 레퍼토리로 올리기엔 꺼려질 만큼. 완벽해 소화해 내기란 불가능에 가까울 정도로 난곡인지라, 웬만하면 시도하고 싶지 않을 수밖에. 괜히 흑역사나 만들어 낼 수 있으니까.
한데 그런 곡을, 일반 바이올린도 아니고 일렉 바이올린으로 하고 있는 것이다.
어느 쪽 악기가 더 어렵다고 일률적으로 딱 집어 말하긴 어렵다지만, 적어도 정통 클래식을 쭉 해온 서진의 입장을 고려하면 익숙지 않은 일렉 바이올린으로 하기란 결코 쉽지 않을 터.
그럼에도 서진은 신들린 연주를 보였다.
일렉 바이올린이라면 취미로 몇 번 해본 적이 전부일 터인데, 다비트와 주고받으며 연주하는 모습은 바네사 메이의 화신이라 해도 믿어질 정도였다.
급히 결성된 팀이었지만, 처음 보다시피 하는 멤버들과의 호흡은 마치 평생을 함께해온 K-콰르텟 친구들처럼 잘 맞았다.
다비트와는 이미 여러 번 호흡을 맞춰왔던 덕분이었다. 그리고 다비트는 이들 팀과 크로스오버 공연을 한두 번 해본 게 아니니, 절로 소리가 잘 맞을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남들은 기겁할 만큼 어려운 곡이라지만, 서진은 이미 어린 시절 빈필과의 공연에서 저 곡을 연주한 적 있었다. 거침없는 보잉이 현란한 멜로디를 토해냈다.
두 대의 일렉 바이올린이 연주하는 파가니니의 카프리스.
보통 크로스오버 연주에서는 원곡 그대로가 아닌, 적당히 락 스타일로 편곡하여 연주하지만, 정통 클래식 연주에서도 끝판왕을 자랑하는 둘인 만큼 원곡의 기교를 거의 그대로 살렸다.
기존의 메인 테마와 열한 개의 변주곡은 서진의 손에 의해 약간 수정되어 크로스오버에 딱 맞게 편곡되었다.
각종 더블스탑과 이중 트릴, 미칠 듯 현을 넘나드는 보잉 등등…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입이 떡 벌어졌다.
그러니 그 환호성이 오죽하겠는가.
“꺄아아아!!!”
“으아아아아아!!!!”
비주얼 또한 미중년과 미청년의 조합으로, 어디에 눈을 둬도 입가에 즐거운 미소가 떠나지 않을 만큼 훈훈했다.
2시간의 공연이 순식간에 지났다.
땀에 흠뻑 젖은 서진은 체력이 달리는 것을 실시간으로 느끼면서도 몸속에서 끝없이 솟아오르는 엔돌핀과 도파민에 무대 위를 날아다녔다.
새삼스레 다비트가 대단해 보인다. 이쪽은 젊은 몸뚱이기라도 하지, 다비트는 이제 마흔이 다 되어가는 나이인데.
이런 말을 하면 아직 38.9살이라며 발끈할 다비트지만, 어쨌든 한국 나이로는 마흔이니까.
“꺄꺄!! 꺄아아아! 아아아아악!”
저러다 탈진하겠다 싶을 만큼 사람들은 소리를 질러댔다. 원래 크로스오버 공연은 다 이런 건가 당혹스러울 정도로.
그 와중에도 객석 맨 앞줄에 서 있는 지연은 제법 차분했다. 서진이 객석에서 지연의 존재를 발견한 건 거의 처음부터였는데, 저 악다구니의 틈바구니에서도 지연은 크게 휩쓸리지 않았다.
비록 눈빛만큼은 흥분과 정열로 불타오르고 있었지만.
‘취향이 아니라 보기엔 눈빛이 너무 즐거워 보이는데.’
그렇게 어느덧 피날레 겸 앵콜 무대에 들어선 상황.
클래식 공연과 달리 앵콜 곡은 거의 즉흥적으로 결정되었다. 물론 정해놓은 것도 있지만, 다비트가 서비스 차원에서 관객들이 소리 지르며 요청하는 곡을 몇몇 받아준 덕분이었다.
베이스가 우렁찬 신음을 토하며 전주가 시작되었다. 다름 아닌 다비트가 바이올린을 내팽개치고 잡은 악기였다.
이게 얼마짜린데 바닥에 이렇게 내버려 두고…. 누가 밟기라도 하면 어쩌려고.
-다비트! 그럼 편성이 모자라잖아요!
입 모양을 용케 알아들은 다비트는 어깨를 으쓱해 보이며 객석 어딘가를 가리켰다.
-아무나 주워 와!
뭐어?
공교롭게도 그때 딱 서진과 지연의 눈이 마주쳤다.
에라 모르겠다.
서진은 객석으로 뛰어 내려가 지연을 끌어당겨 올라왔다.
“…서, 서진아!”
“같이 하자!”
“가, 갑자기 어떻게!?”
난 연습도 안 했는데…! 라고 외치는 소리가 작게 덧붙여졌다.
“몰라. 여기선 안 되는 게 없더라.”
잠시 당황하던 지연은 씨익 웃으며 다비트가 내다 버린 바이올린을 주워들었다.
몰라. 될 대로 돼라. 어차피 다들 미친 것 같은데 괜찮겠지. 가끔은 이런 일탈도 즐거운 법 아니겠는가.
다행히 다비트의 바이올린은 일렉이 아닌 일반 바이올린이었다. 일렉을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지연으로서는 그나마 다행인 상황.
다비트가 장발을 휘날리며 미친 듯이 베이스를 연주하는 가운데, 지연과 서진이 바이올린을 맡았다.
곡 자체는 알지만 파트가 어떻게 할당되어 있는지도 정확히 모르는 가운데, 두 사람은 되는대로 빈 소리를 메워나갔다. 서진과 실시간으로 눈빛을 교환하며 대충 때려 맞추는 것에 가까운 연주.
정말이지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시끄러울 정도로 꽝꽝거리는 드럼과 베이스, 기타의 소리. 사람들의 환호성. 저 아래에서 구경할 때는 마냥 재밌기만 했는데, 이거 은근히 어려웠다. 그동안은 늘 차분하고 정돈된 질서 속에서만 귀를 기울이는 연습을 해 봤지, 이런 광기 속에서 소리를 맞추는 건 난생처음이었다.
하지만 막상 해보니…,
완전히 새로운 세상이 펼쳐졌다.
…와아…!
이렇게 신나는 일이 또 있을까. 왜 사람들이 사마외도에 빠져버리는지 알 것만 같다.
관객도 기존의 정통 클래식 공연과 달리, 훨씬 가깝게 훅 다가왔다. 물리적인 거리가 아니라, 심적으로 느껴지는 게 그랬다. 정말로 함께하는 매 순간순간, 모든 연주를 같이 호흡하고 있는 느낌.
어느덧 지연의 입에도 함박웃음이 걸려 있었다.
뉴욕 예술제의 하이라이트를 장식할 피날레 무대.
그 어느 때보다도 강한 기억으로 남을 그런 무대였다.
* * *
딱 일일천하로 끝난 비판의 뒤를 잇는 건 무조건적인 찬양이었다.
거의 공연과 함께 실시간으로 쏟아지는 기사.
대놓고 까던 전문가들은 재빨리 태도를 바꾸어 ‘한서진이 크로스오버를 예술로 승화시켰다’라며 난리였다.
서진의 행동을 보고 클래식 음악에 대한 희망은 끝났다며 비판하기엔, 서진으로 인해 클래식이라는 장르가 대중들에게 얼마나 가까이 다가갔는지를 생각하면 그럴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작곡 활동을 통해 현대음악의 발전에 기여한 면 역시 무시할 수 없는 업적.
정통 클래식을 저버렸다 하기엔 불과 몇 달 전에 콩쿨을 휩쓴 따끈따끈한 수상자가 아니던가. 여전히 왕성한 활동 중이기도 했고. 괜히 기분 상하게 해서 완전히 돌아서게 하느니, 좋게좋게 잘 달래는 거다.
어차피 돈에 눈이 멀어 어긋난 길을 걷는다고 비하하기엔 딱히 돈을 목적으로 한 공연도 아니었다. 작정하고 크로스오버 콘서트를 열어 표 값을 쓸어모은 것도 아니고, 그저 예술제에 함께했을 뿐이니.
덕분에 다비트 역시 같이 올려치기를 당했다.
그가 직접 생산해내는 크로스오버 음악이 그동안 상대적으로 미흡했던 크로스오버 음악계의 수준을 한층 높이 끌어 올려놓았다며.
“와, 나 때는 그렇게 욕하더니. 쓰진, 대체 무슨 기름칠을 어떻게 해놨길래….”
푸흡. 다비트의 입에서 ‘라떼’가 나오다니….
“그냥 시대가 달라졌잖아요. 그땐 라떼, 아니 옛날이고…,”
“아니, 난 지금도 꼰대들한테 욕을 먹고 있는데?”
“….”
잠시 할 말을 고르던 서진은 씨익 웃었다.
“잘생겨서 질투하는 거라 해 두죠.”
지금은 나이를 먹고 살도 올라 조금 인상이 푸근해졌지만, 예전에 파가니니 영화를 찍을 때의 그는 정말로 날카로운 턱선의 미남이었다.
“남 말하네.”
“네?”
“써진이 네 덕분에 동양 남자의 위상 자체가 올랐다고.”
“에이, 과장은요.”
“아니 진짠데!?”
놀리는 건지 진짠지 모를 소리로 한참이나 더 열변을 토해내던 다비트는, 오늘 즐거웠다며 서진에게 악수를 건넸다.
오래전 대관령 예술제에서 처음 봤을 때만 해도 꼬꼬마 꿈나무였던 서진이었는데… 어느새 이렇게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로 성장해 있다니.
“불러주셔서 감사해요. 저야말로 정말 즐거웠어요.”
“미스 서도. 반가웠어.”“덕분에 즐거운 경험이었어요.”
아직도 볼이 살짝 상기되어 있는 지연이 눈을 반짝이며 미소지었다. 남아있는 흥분감으로 미미하게 고조되어있는 지연의 얼굴에도 서진과 다비트처럼 생기가 가득했다.
“그나저나, 우리 무사히 도망갈 수 있을까?”
“밖에 장난 아닌 것 같아요. 엄두가 안 나네요.”
“그래도 영원히 여기서 버틸 순 없으니… 자, 가볼까?”
* * *
다비트의 예상은 정확히 맞아떨어졌다.
사람들이 얼마나 몰려들었는지, 늘 도망치는 데에 성공하던 서진도 오늘만큼은 실패하고 팬들에게 둘러싸였다. 팬들이 하도 달려들어서 경호체계가 무너질 뻔할 정도였다.
“뒤로 가세요! 뒤로!”
“여기 넘어오시면 안 됩니다!”
사람들에게 가득 둘러싸여 있는 와중에, 서진은 우연히 아는 얼굴을 마주쳤다.
아니, 쟤가 왜 굳이 이 아귀다툼의 틈바구니에 끼어 있담…? 나를 만나려면 나중에 얼마든지 따로 만나면 될 일을.
-이준?
작게 입 모양으로 말했을 뿐인데, 그걸 알아본 건지 수많은 인파 속에 거의 반쯤 파묻혀있던 이준이 반가운 표정을 지었다.
-오늘 너무 멋졌어요! 최고예요!
한껏 소리높여 외치는 듯해 보였지만, 거센 아우성에 묻혀 역시 입 모양밖에 보이지 않았다.
서진은 빙그레 웃으며 속으로만 답했다.
이준이 너도 머잖아 반드시 그렇게 될 거라고.
* * *
예술제의 어워드는 관객들의 인기투표와 주최 측의 평가로 결정된다.
그리고 클래식 공연 분야, 베스트 무대상의 발표에 서진은 좋아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난감해했다.
천재 바이올리니스트로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