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 returned as a genius violinist RAW novel - Chapter 185
185화
베스트 무대상에서 1위를 차지한 건 줄리어드 오케스트라였다. K-오케 & 링컨 팀의 말러와 마지막까지 박빙의 승부를 겨루었지만, ‘지휘자 없는 봄의 제전’이 주는 센세이션이 워낙 강했던 탓일까, 결국 K- 오케가 밀리고 줄리어드가 승자가 되었다.
하지만 베스트 선곡상은 K-오케스트라가 차지했다. 정확히는 K-오케스트라가 단독으로 연주한 곡. 바로 서진의 작품을 편곡하여 바로크 고악기로 연주한 그 곡이었다.
마지막으로 베스트 솔리스트상은 지연이 차지했다. 이건 거의 압도적으로 표를 차지했다고 들었다.
이상 셋 모두, 하나같이 한서진과 관련 있는 단체나 인물들.
덕분에 뉴욕 예술제를 휩쓴 한국인들이라며 한국에서까지 기사가 떠들썩했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대중음악 분야에서는 서진이 대놓고 모든 상을 휩쓸었다.
대중음악 공연 분야, 베스트 무대상은 서진과 다비트의 크로스오버 공연이었다. 베스트 솔리스트 상 역시 둘이 공동으로 차지했고. 마지막으로 베스트 선곡상도 서진이 편곡한 락 버전 카프리스 24번이었으니, 전부 서진과 직접적으로 관련된 것이었다.
클래식 분야에서는 서진과 관계된 이들이, 대중음악 분야에서는 서진 본인이.
그야말로 뉴욕 예술제를 휩쓴 ‘한서진’ 세 글자였다.
이중 서진 다음으로 가장 주목을 받은 다름 아닌 지연이었다.
서진과 다비트야 워낙에 유명하고, 윤수나 하윤은 K-오케의 멤버로만 연주한지라 개인으로는 그다지 조명을 받지 못한 데 비해, 솔리스트로 이목을 끈 지연은 달랐다.
지연은 이제 구글에서 검색하면 위키피디아에 이름이 뜬다.
[한국의 20XX생 바이올리니스트. 유럽의 마리아 피셔와 함께, 장경화 – 안나 무터의 뒤를 이어 바이올린 여제 계보를 이을 것으로 전망되는…,현재 젊은 바이올리니스트 중 가장 기량이 뛰어난 한 명으로 손꼽히며…, 2019년 차이코프스키 콩쿨에서의 우승과 함께 세계적인 인기와 티켓 파워를 자랑하는 여성 바이올리니스트로…,]
이걸 보여주자 지연의 얼굴이 새빨개졌다는 건 안 비밀이었다.
바이올린 여제라니, 지연은 손사래를 쳐가며 새 별명을 거부했지만 서진은 맞는 말이라며 고개를 깊이 끄덕였다. 실제로 지연은 어릴 적 장경화와 인연이 있었다 하니, 정말로 그 계보를 잇는 셈이었다.
듣자 하니 광고 모델 제의도 들어왔다는데… 토마스틱 인필드 사에서 들어온 광고, 즉 바이올린을 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꽤나 대중적인 도미넌트 현의 광고였다.
정작 지연은 그 현을 쓰지 않지만, 어쨌든 이제는 확실히 월드 스타로 자리매김했다는 뜻.
“축하해, 모두들!”
“감사합니다, 다 선배님 덕분이에요!”
어워드 명단에 줄리어드가 있었기에, 악장인 이준 역시 함께 자리하고 있었다. 서진이 자신을 대신해 이준을 대표로 내보낸 덕분이었다.
“이야, 역시 한서진 옆에 있으면 뭐가 떨어져도 확실히 떨어진다니까? 콩코물이 아주 짜릿해!”
“1절만 해라, 1절만.”
시시껄렁한 농담을 주고받으며 떠들던 서진은 문득 생각나 이준에게 물었다.
“근데 이준아, 그날 거기서 뭐 하고 있었던 거야? 사람들 틈바구니에서…. 그러다 깔리기라도 하면 어쩌려고 그랬어. 손 조심해야 하는 거 뻔히 알면서.”
“아. 제가 이제 한국으로 돌아가거든요. 오케 연습도 끝났으니 앞으로 따로 뵙지 못할 것 같아서…, 공연을 본 김에 멀리서라도 마지막으로 인사드리고 가고 싶었어요.”
“아니 그게 무슨 소리야. 나한테 직접 연락하면 되지.”
“그, 그래도 돼요? 정말요?”
“물론이지. 안 될 거 뭐 있어.”
그러고 보니 아직 전화번호를 따로 알려주지 않았구나. 서진은 내친김에 이준의 핸드폰에 자신의 연락처를 찍어주었다. 해외에 체류 중임을 감안해 시간에 구애 없이 편히 주고받을 메일 주소도 함께.
“…가, 감사합니다, 선배님!”
이준은 마치 최애 아이돌의 전화번호라도 딴 것 마냥 싱글벙글했다.
풋풋하니 귀여운 게 참 좋은 나이다 싶었다. 자신도 저 시절에 저랬을까…? 이를테면 다비트에게 연락처를 받거나 했을 때….
아무래도 인생 2회차인지라 이준만큼 순수한 반응을 보이지는 않았겠지. 회귀 전에는 그다지 주목받지 못했으니 애초에 그럴 만한 기회도 없었고.
“그럼 앞으로도 모쪼록 열심히 하길 응원할게.”
참으로 많은 결실을 맺은 여름이었다.
* * *
뉴욕 예술제 후 급부상한 슈퍼 루키 민이준과 함께, K-오케 역시 단숨에 국제적으로 이름을 알리게 되었다.
비록 그 관심의 시작은 ‘즐리어드 vs 한서진 악단’이라는 대결 구도에서 비롯된 호들갑이었으나, 실제 들어 본 연주 실력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수준 높았기에 그 관심이 그대로 세간의 주목으로 이어진 것이다.
거기에 더해 일단 들어오기만 하면 실력이 부쩍 늘어나기로 유명하다는 소문에, K-오케는 때아닌 입단 문의로 문전성시였다. 심지어 줄리어드 학생들 중에서도 K-오케 단원으로 오겠다고 지원하는 경우가 있을 정도로.
“이렇게 순조롭게 자리 잡을 줄은 기대 안 했는데… 정말 다행이다.”
“그러게. 윤수가 괜히 치트키 치트키 하는 게 아니라니까.”
K-오케의 선전에 흐뭇한 서진은 지연의 놀림에도 흐흐 미소 지을 뿐이었다.
“그러는 지연이 너야말로 요즘 몸값이 치솟던데?”
“글쎄. 난 비평이랍시고 쓴소리도 은근히 많아서. 뭐라더라. 지나치게 정형화된, 기계적인 연주라나…. 완벽주의에 사로잡혀 중요한 걸 놓친다나….”
“개소리니까 신경 마. 뭐라도 깎아내려야 자기가 잘난 건 줄 아는 멍청이들이 떠드는 소리니까. 내가 보장하는데, 절대로 그렇지 않아. 기계적인 게 아니라 정직하게 해석을 하는 것뿐이고, 지나친 완벽주의가 아니라 섬세함을 잃지 않는 것뿐이라고. 실황 공연마저 앨범 수준으로 사운드를 뽑아내는 실력인데 무슨 말이 더 필요해?”
서진의 열변에 지연이 미미하게 미소지었다. 아닌 척해도 서진이 편이 들어주는 게 기쁜 것이다.
“…고마워. 아무튼 넌 그런 쓴소리조차 없다니… 진짜 대단하다는 말밖에 안 나온다.”
지연은 라운지에 놓여 있던 종이 신문을 손수 가져와 건네주었다. 요즘은 다 핸드폰으로 기사를 검색해 보는 시대인데, 여전히 호텔에는 종이신문이 비치되어 있어 기분이 색달랐다.
[관객들의 당혹스러움 가운데 스트라빈스키 ‘봄의 제전’이 곧바로 시작되었다.봄기운에 움트듯 깨어나는 바순의 음색에 목관 악기들이 하나둘 소리를 더하며, 현악기와 타악기를 자극해나가는 아름다운 파동.
이제는 거의 고전이라 해도 좋을 만큼 익숙해질 대로 익숙해진 곡이지만, 약 100여 년 전 파리에서 초연될 때만 해도 이 곡은 충격이었다.
그러한 봄의 제전을 다시금 ‘고전’에서 ‘혁신’으로 탈바꿈해낸 주인공은 바로…,]
아래에는 서진이 한 짤막한 인터뷰도 있었다.
[지휘자의 지시를 눈으로 바라보고 따르는 행위란 의외로 비 음악적인 행위일 때가 많죠. 음악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건 소리를 듣는 귀인데, 시각에 의존하다 보면 정작 귀보다 눈에 신경을 더욱 기울이게 마련이니까요.지휘를 바라봄으로써 확실히 안전을 보장받긴 하지만, 그것이 보다 나은 소리를 만들어준다고는 확신할 수는 없는 일이라 생각해 이런 도전을 해 보았습니다.
‘서로 완벽히 귀를 기울여 완성해 내는 소리란 과연 어떤 걸까?’ 하는 질문이 그 시작이었죠. 마치 앙상블을 불러놓은 것 같은 교향악, 이라는 컨셉으로요. 단원들끼리 충분히 연습이 되어 있으면, 지휘자가 없어도 얼마든지 호흡을 맞출 수 있다는 점에 착안했습니다. 실제로 연습 중에 그러한 생각에 확신을 더하게 만든 사건도 있었고요.(웃음)]
“아주 청산유수야.”
“최대한 그럴싸하게 포장해야 우리 K-오케에도 도움이 될 테니까.”
지금 이곳 미국에서는 줄리어드 오케를 통해 선보인 일이지만, 원래 ‘지휘자 없는 오케스트라’라는 스타트를 끊은 건 K-오케였다.
그러니 이 시도가 최대한 좋게 먹혀들어야 K-오케에도 도움이 되는 것이다.
“그건 그렇지.”
“언젠가 세계 3대 필을 넘어, 우리 K-오케를 세계 무대에 우뚝 세우고 싶거든.”
서진의 높고도 높은 목표였다. 지금으로서는 말도 안 되는 소리같이 들리겠지만, 언젠가는 ‘K필’ 이라는 단어가 세계 최고의 오케스트라를 뜻하는 단어가 될지 어떻게 알겠는가. 오직 그 목표를 위해 서진은 열심히 달릴 뿐이었다.
“…비록 사람들이 흔히 말하듯 K-오케가 ‘한서진 악단’인 건 아니지만 말이야.”
“괜찮아 남들은 다 그렇게 생각하니까.”
“뭐, 그런 건 아무래도 상관없어. 베를린 필을 이끈 카라얀처럼, 난 그저….”
서진이 잠시 말을 골랐다.
지휘자의 역할은 결국 오케스트라의 기량을 끌어올리는 것이 아니겠는가.
서진 역시 마찬가지였다. 지휘봉을 잡고 안 잡고는 중요한 게 아니었다. 어쨌든 서진이 하고자 하는 것은 친구들과 함께 만든 K-오케스트라를 한층 더 높은 수준으로 끌어올리고 싶은 것이었으니까.
그러기 위해서라도 무언가 색다른 시도가 필요했던 것이었다. 후발주자로서 기라성 같은 기존 필하모닉들을 따라잡기 위해서는, 실력도 실력이지만 그 이상의 무기가 필요했다.
그래서 작정하고 패러다임을 바꾸는 데에 앞장섰던 것이었다. ‘클래식의 본분에 충실하자.’라는 타이틀로. 지휘자라는 것은, 원래는 없었으니까.
“또 모르는 일이잖아. 나중에 이게 21세기 들어 가장 핵심이 되는 시류로 자리 잡을지. 그 스타트를 끊은 한서진, 이라고 내가 역사에 남은 유명한 인물이 될지 어떻게 알아?”
“….”
“난 가끔 이런 생각도 해. 내 곡도 언젠가는, 먼 미래에는 ‘고전음악’으로서 분류될 수 있을까? 하고.”
스트라빈스키의 ‘봄의 제전’이 이제는 고전 취급을 받듯이. 물론 여전히 현대음악으로 분류되긴 하지만, 이제는 더 이상 혁신이 되는 시대는 아니었으니까.
그게 나쁜 건 결코 아니었다. 그렇게 분류되었다는 것 자체가 클래식 음악의 역사에, 커다란 시류의 흐름에 들었다는 뜻이었으니까.
그렇게, 자신의 곡 역시 언젠가 그렇게 될 수 있을까?
“그리고 또….”
최초의 원시주의 현대음악으로 분류되는 ‘봄의 제전’의 발표는, 이후에 나타나는 쇼스타코비치 등의 현대 작곡가들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 음악계 내에서 새로운 분야에 대한 개척이 시작된 것이다.
바로 그렇게, 내가 촉발시킨 현대음악의 유행이 새로운 음악 사조의 한 획을 긋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
“내가 다른 건 모르겠는데. 한 가지는 확실히 알 것 같아.”
서진의 긴긴 독백에 지연이 나지막이 답했다.
천재 바이올리니스트로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