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 returned as a genius violinist RAW novel - Chapter 190
190화
이자크와 공동작업이지만, 함께 작곡한 것이 아니라 곡을 나눠 맡은 것에 가까웠다.
즉, 이자크의 곡은 이자크에게 권한이 있다는 것.
“나? 나도 내 깜냥대로 하겠네. 자네가 이렇게 나오는데, 나라고 굳이 비위를 맞춰줄 필요가 있겠는가?”
그건 그랬다. 애초에 이자크의 이름값이 워낙 높은 탓인지, 저쪽에서도 그에게는 그런 요구를 하지 않았다. 오직 서진에게만 슬쩍 찔러본 것이다.
“그럼 내친김에 바로 진행할게요. 엎을 거면 빨리 말해줘야 하니까요. 참 이자크는 저 신경 쓰지 마시고…,”
“오, 잠깐잠깐. 내가 어디로 정했는지는 안 묻는가?”
“…?”
글쎄. 그건 알아서 잘할 테니…, 잠깐.
“이자크, 혹시?”
“그래. 나도 같이 K-오케에 한번 묻어가 보겠네!”
* * *
…이이이이이자크펄이 우리랑 음반 작업을 한다고? 영화 뭐시기 뭐 OST? 네가 작곡한 거라고? 아니 아니 그것과 별개로 이자크가 작곡한 곡도 있다고?
그 소식을 전했을 때 윤수의 반응은 딱 저랬다.
저랑 같이하기로 한 것까지는 그러려니 했던 윤수였는데, 이자크의 존재감이 확실히 크긴 큰 모양이었다.
다행히 호들갑과 달리 녹음 작업은 수월했다.
덕분에 서진은 이자크와 손 꼬옥 붙들고 한국을 또 한 번 다녀와야 했지만.
서진의 강경한 태도에 의외로 감독은 개의치 않았다. 투자자와의 관계가 껄끄러워지는 문제가 있긴 하지만, 이제 와서 판을 뒤집어엎을 수는 없는 노릇인 데다가 무엇보다 서진을 놓치기 싫은 것이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이자크마저 서진과 뜻을 같이하니 어쩔 수 없다는 식으로 투자자의 요구를 밀어낼 수 있었던 것.
혹여 나중에 저쪽에서 압력을 행사해 불이익이 생길지도 모르겠으나, 일단은 감독 역시 나 몰라라 했다.
“오케이!”
“하, 한방에 콜?”
“어, 완벽했잖아.”
“오, 이거 리얼리 오케이? 마에스트로?”
버벅이는 윤수의 목소리에 이자크는 성모상처럼 미소지었다.
서진이 오케이면 자신 역시 오케이였다.
“저, 정말 다시 안 해도 될까?”
“나 바빠.”
“아, 넵! 죄송합니다!”
오랜만에 함께한 연주였음에도 소리는 찰떡이었다.
덕분에 작업은 빠르게 끝났고, 서진은 남은 일정을 여유롭게 보낼 수 있었다.
이자크는 매우 고맙게도, 이렇게 함께한 것도 인연인데 여기까지 온 김에 단원들을 봐주겠다며 노고를 아끼지 않았다.
자그마치 이자크에게 지도를 받는 더없는 행운에 몇몇 단원들은 새삼 한서진 옆에 뼈를 묻어야겠다며 난리를 치는 등의 해프닝이 있었다.
* * *
원래 좋은 날씨는, 특히 가을은 순식간에 지나는 법이다.
뉴욕의 가을은 추웠다. 그 와중에 겨울은 더욱 빨리 다가오고.
그렇게 계절이 훌쩍 바뀌어, 아직 11월이지만 벌써부터 거리에는 캐롤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그 연말의 정취 한가운데에,
엄청난 흥행을 몰고 온 영화가 있었다.
[그 겨울]회귀 전의 기억으로는 코로나 직전 막차를 탄 영화였다.
지금은 그때보다 좀 더 개봉이 늦어졌으니, 정말로 아슬아슬 걸쳐있지 않을까 싶었다.
어쨌든 중요한 건, 영화의 흥행과 더불어 서진이 작곡한 곡이 길거리 아무 데서나 들려오고 있다는 것이었다.
“와….”
이렇게 들으니 감회가 새롭네.
캐롤을 겸해 작곡한 건 절대 아닌데, 막상 크리스마스 시즌에 맞춰 들으니 어쩐지 캐롤 느낌도 났다.
물론 캐롤도 캐롤 나름으로 분위기가 다 천차만별이기에, 머라이어 캐리의 ‘All I Want For Christmas Is You’ 같은 스타일도 있고, ‘Oh, holy night’처럼 차분한 분위기의 캐롤도 있다.
그중 서진의 것은 둘 중 무엇이라도 할 수 없는 묘한 분위기가 있었다.
일단은 바로크를 모티브로 했기에 특유의 분위기 덕에 머라이어 캐리 같은 느낌이 나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후자 쪽으로 보기엔 현대 음악적인 요소가 다분히 섞인 탓에 성가의 느낌이 나지도 않았다.
아무튼 중요한 건 사람들이 참으로 좋아한다는 사실.
한때 ‘친절한 금자씨’의 OST ‘Cessate, omai cessate’가 영화 덕에 갑자기 알려지며 여기저기서 들려왔듯이, 서진의 곡 역시 그랬다.
심지어 녹음 과정에서 서진이 직접 연주하기까지 했으니, 곡이 주는 감동은 말할 것도 없었다.
전 세계적으로 대박을 터트린 영화의 OST, 그것도 한서진이 직접 작곡하고 연주한 것으로 끝도 없이 유명해지게 된 곡.
사람들은 벌써부터 조심스레 아카데미 상을 점쳤다.
“서진아, 엄마 이 노래 너무 좋아.”
모자의 다정한 시간.
서진은 엄마와 팔짱을 낀 채 뉴욕의 거리를 걷고 있었다.
“기분이 어때?”
“네? 어떤 기분이요?”
“자기가 만든 곡이 거리 어디에서나 들리는 거 말야.”
“아… 글쎄요.”
“엄마는 너무 뿌듯하고 아들이 기특해 죽겠어.”
“전 그냥… 조금 낯간지러운 것 같아요. 부끄럽기도 하고요.”
세상에 완벽히 마음에 드는 창작물이란 있을 수 없는 법. 남들이 아무리 다 좋다 해도, 창작자로서는 미흡한 부분이 마음에 걸릴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렇기에 서진은 거리에서 자신의 노래가 들려올 때마다 괜히 민망했다. 아… 저 부분 왜 저렇게 했을까. 차라리 여기를 이렇게 해결할 걸, 등등.
“어머, 누가 들으면 욕할라.”
“사실이 그런걸요. 생각해 보면, 소위 거장이라는 옛 작곡가들도 아마 자신의 곡들이 완벽히 마음에 들지는 않았을 것 같아요. 그럴 수밖에 없는 일이니까요.”
그러니 그 작품들도 실은 현실과 적당히 타협한 결과물이 아닐까.
자신의 작품이 그렇듯이.
그래도 이토록 많은 사람들이 사랑해주니 그것만으로도 만족스러웠다.
“아들이 만든 노래를 들으며 이렇게 거리를 걷고 있다니… 정말 꿈만 같아. 이 순간을 특별히 이름 붙이자면… 뉴욕의 휴일?”
“…어디서 많이 들어본 것 같은데….”
“로마의 휴일?”
“아.”
그녀가 가장 좋아하는 영화였다.
지금은 세상을 떠난 옛 연인과 연애하던 시절, 함께 보았던 이 영화가 오래도록 뇌리에 남은 탓일까.
“그래서 언젠가 꼭 로마에 가보고 싶었는데, 아들 덕분에 꿈을 이루었지 뭐야.”
예전에 언젠가 한 번, 서진이 해외 공연을 위해 출국할 때 같이 나갔다가 로마를 가보게 되었던 것이다.
“로마 정말 좋더라. 영화를 보고 가졌던 환상만큼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딱 이런 느낌이었어. 지금 우리 아들과 같이 나란히 걷고 있는 뉴욕의 거리 같은.”
단순히 거리의 특징을 말하는 건 아닐 터였다. 뉴욕과 로마는 느낌이 전혀 다른 도시니까. 시즌도 다르고.
아마 그녀가 말하려는 것은 ‘가까운 이와 함께 거닐고 있는 여유로운 순간’일 터.
그런데 서진은 그녀의 말에 새삼스레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녀가 지금 느끼고 있는 감상을 부득불 ‘로마의 휴일’에 빗댈 만큼 그 영화가 인상 깊었다는 것이다.
고작 영화 하나로 한 국가 및 도시에 대한 이미지를 전 세계 사람에게 강렬히 심어준다는 것. 그 파급력은 결코 우습게 볼 일이 아니었다.
만약 ‘로마의 휴일’처럼 한국의 이미지를 세계에 좋게 알릴 만한 그런 영화가 있다면…. 그 하나만으로 국가 이미지 제고에 큰 역할을 하는 것이다. 거기에 자신의 음악을 곁들여 화룡점정을 찍으면 더욱 좋고.
‘일본이 잘하는 일이 딱 그런 것들이지.’
자기네 문화를 굉장히 그럴싸하게 고급스럽게 포장해서 내보이는 것.
그 덕분인지 서구권에서 유독 일본에 대한 이미지가 좋은 편이었다. 한국인은 주로 별 볼 일 없는 이미지인 반면, 일본인은 부유한 권력자 등의 역할로 많이 나온다.
일본이 한국에 비해 서구권과 교류 역사도 길고 여러 분야에서 관계가 돈독한 덕분이긴 하지만, 어쨌든 중요한 건 아시아에 특별히 관심 없는 서구권 사람들도 일식이나 일본 전통 의상 등등 일본문화는 상당히 좋아한다는 것.
그나마 요즘은 K-팝을 필두로 하는 적극적인 이미지 메이킹 덕분에 예전보다는 나아졌다지만, 아직 일본을 따라잡진 못했다.
하지만 만약 정말로 그럴싸한 콘텐츠가 하나 터진다면….
이번에 자신이 참여한 영화는 할리우드 영화였기에 제 음악이 아무리 히트를 쳐도 그런 부수적 효과는 없겠지만…, 언젠가 만약 그럴만한 기회가 온다면 절대 놓치지 말아야지.
자신의 음악이 그러한 역할에 조금이나마 보탬이 될 수 있다면, 지금 느끼는 뿌듯함과는 비교도 되지 않게 기분이 좋을 것 같다.
* * *
딱 한 달 후, 코로나가 터졌다.
‘…결국 터졌구나.’
많은 변화가 생겨서 어쩌면 안 터질지도 모른다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하긴, 자신으로 인해 변화한 것들이라 해봤자 고작 음악계와 관련된 일. 저 먼 중국에서부터 퍼진 바이러스에 자신이 무슨 영향을 끼쳤다고 그런 큰 변화가 일어났겠는가.
중국 우한에서 시작된 원인불명의 폐렴.
일단 남의 나라 일이니 사람들은 처음에는 그리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사스니 뭐니 하는 소문에 02년도 말의 악몽을 떠올렸다.
서진은 이 사건의 흐름을 대강 알고 있었지만, 어차피 그 끝이 언제일지는 몰랐다.
일단 연말쯤 불거지기 시작한 폐렴에 대한 소문은, 연초까지만 해도 그리 큰 이슈가 되지는 않았다. 아직 해외로 전파되지는 않은 탓이었다.
주변국에서 환자가 나온다 해도 중국 인근의 아시아 나라들이지, 미국은 워낙에 거리가 멀었으니까.
그래서 아직까지는 서진도 미리 이렇다 말을 하지 않은 채, 준비된 일정을 묵묵히 진행했다.
혼자 하는 일이 아니다 보니 당연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이 사건이 몇 년이나 이어질 줄 아무도 몰랐던 때니까.
“대타 자리라고요?”
“그래. 이게 정말 괜찮은 자리라, 내가 꼭 서진이 자네에게 주고 싶어 적극 추천했네.”
원래는 이자크와 함께하기로 한 공연이 있었는데, 이자크가 꺼낸 말은 전혀 다른 것이었다.
베토벤의 3중 협주곡.
피아노, 바이올린, 첼로. 각 세 대의 독주 악기를 연주하는 협연자가 함께 만들어나가는 곡이었다.
“3중 협주곡!”
서진의 눈이 번뜩였다.
평범한 곡이 아니라 더욱 욕심이 났다. 흔치 않은 기회였으니까.
거기에 더해,
“…누, 누구랑 협연이라고요…?”
피아노에 다니엘 바렌본, 첼로에 유유마라는 입이 떡 벌어지는 거장들의 조합이었다. 거기에 원래대로라면 바이올린에 이자크가 들어가 실로 완벽한 별들의 무대가 되었을.
바렌본은 말할 것도 없고, 같은 동양계인 유유마 역시 엄청난 존재였다.
출생은 파리, 국적은 미국이지만, 핏줄 자체는 중국계인 그는 특이하게도 줄리어드 중퇴 후 하버드를 졸업한 이력을 가지고 있었다. 종종 호불호 및 평가가 갈리기도 하지만, 어쨌든 그는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거장이었다.
서진이 입을 딱 벌렸다. 함께하는 이들의 면면이 장난이 아니다.
평소답지 않게 놀라는 모습에 이자크가 껄껄 웃었다.
“내가 자네랑 하기로 한 공연이랑 날짜가 겹쳐서 어차피 저 자리에 내가 갈 수 없게 되었네. 그러니 저쪽에 나를 대신할 대타를 구해야 하는데, 차라리 서진이 자네가 내 대타를 하고, 나는 자네를 대신할 다른 대타를 구하겠네. 어떤가?”
천재 바이올리니스트로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