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 returned as a genius violinist RAW novel - Chapter 192
192화
문제는 이게 저 혼자 빠지면 그만인 일도 아니라는 것이다. 물론 개별적으로 행동하려면 할 수 있겠지만, 그런다고 공연 자체가 취소되지는 않을 테니까.
게다가 저를 보러 온 관객들을 일방적으로 바람맞힐 수도 없는 일이었다. 모두가 오직 저를 보기 위해 오는 건 아니겠지만, 분명 ‘한서진’이라는 존재가 이번 공연의 가장 큰 이유인 사람들도 있을 테니까.
‘…모르겠다.’
이 공연이 감염병 전파의 온상이 되기라도 하면 큰일이다.
대대적으로 욕을 먹는 거야 그렇다 쳐도, 그로 인해 누군가에게 치명적인 피해를 주게 되는 일. 그게 걱정인 것이다.
‘모 종교집단처럼 집단감염 발생지가 되게 둘 수야 없지.’
“…아무래도 대책이 더 필요할 것 같아요.”
* * *
그리고 공연 당일,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빽빽이 들어찬 관객들은, 단 한 명도 빠짐없이 마스크를 쓰고 있었다.
정말로 이게 가능한 일이라니.
주최 측에서도 놀라 자빠질 정도의 이변이었다.
코로나 공포에도 불구하고 모두가 마스크를 쓰고 참석한 공연. 길이길이 회자될 전설 같은 일이었다.
그것도 마스크 안 쓰기로 유명한 그 미국인들이, 차라리 안 왔으면 안 왔지 이렇게 얌전히 협조적으로 나올 줄은 상상도 못 한 것이다.
여기에는 서진의 덕분이 컸다.
모두가 마스크를 쓰고 온 상황이라지만, 사실 정확히 한 사람도 빠짐없이 쓰고 온 것은 아니었다.
일단 공지를 제대로 보지 않은 사람도 있었고, 주의사항을 읽었다 하더라도 쓰고 올 마스크가 없는 사람도 있는 것이다.
그걸 예상한 서진은 사비로 마스크를 잔뜩 사서 입구에서 나눠주기로 했다.
한국은 마스크 대란으로 공적 마스크니 뭐니 아비규환이라지만, 미국은 상황이 더 좋지 않았다. 평소 수요가 별로 없기에 물량 자체가 없는 것이다.
그걸 구하느라 얼마나 힘들었는지…. 지연을 통해 이성 그룹의 도움을 받지 않았더라면 엄두도 못 냈을 일이었다.
그럼에도 상당히 돈이 들긴 했지만, 역시나 잘한 일이었다.
왜냐하면 이 마스크 착용 규정이라는 게, 공지사항으로 언급하긴 했지만, 처음 예매했을 때부터 동의를 받고 진행한 사항은 아니었기에 강제성은 없는 것이었다.
그렇기에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았다 해서 입장을 거부할 수는 없었다. 이건 레스토랑의 드레스코드와는 다른 문제였으니까.
파인 다이닝을 표방하는 격식 있는 레스토랑이라면 대부분 재킷을 갖춰 입지 않으면 손님을 들여보내 주지 않는다. 한국에서는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빡빡한 규정이지만, 모두가 받아들이는 일이었다.
하지만 레스토랑처럼 단순히 손님을 안 받는 것과, 이미 돈을 지불한 손님의 입장을 막는 것은 다르다.
레스토랑 입구컷은, 해당 손님을 거절함으로 인해 발생할 매출에 대한 기회비용을 업장 측에서 감수하는 것이지만, 공연장은 그 손실을 관객이 감당해야 하는 것이니까.
아직까지는 법적 강제성도 없는 상황에 그럴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래서 서진은 차선책으로 직원들로 하여금, 마스크가 없는 사람을 위해 홀 안쪽으로 들어오는 입구에서 나눠주도록 했다.
각자의 이유로 마스크를 챙겨오지 않았던 사람들은, 의외로 거절하지 않고 순순히 받아들였다.
예상대로 그사이 상황은 더 안 좋아져서 확실히 전보다 더 불안해하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더욱 먹힌 듯했다.
“으음? 마스크?”
“예. 이걸 착용해 주셔야 공연 관람이 가능합니다.”
“강제인 거요?”
“법적 강제성은 없지만, 상황이 상황인지라 부득이하게 추가된 내부 지침입니다. 양해 부탁드립니다.”
오랜만에 공연장을 찾은 중년의 남자, 잭슨은 미간을 찌푸렸다.
아니, 이 답답한 걸 쓰고 2시간 내내 어떻게 버티라는 거지? 내가 뭐 병균을 퍼트리는 것도 아닌데, 굳이 왜 이런 걸….
“불편하시겠지만, 모두의 안전을 위해 협조 부탁드리겠습니다.”
“….”
안전이라. ‘모두의’ 안전.
생각해 보니 빽빽이 모여 앉은 관객들도 그렇지만, 연주자들 역시 불안한 건 매한가지 아니겠는가.
설마하니 객석에서 재채기를 한다고 무대 위까지 비말이 튀진 않겠지만… 그래도 모르는 일.
공연장의 방침을 받아들인 남자는 고개를 끄덕이며 마스크를 받아 들었다. 땀을 뻘뻘 흘리며 연주하는 이들도 저 불편한 마스크를 착용하고 연주한다는데, 그에 비하면 가만히 앉아있는 입장에서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겠다 싶었다.
그래. 소중한 인재들이 아닌가.
암, 특히 한서진은 소중하지. 혹시 모를 일에 대비해 우리 모두가 지켜줘야지…!
* * *
한편,
대기실의 서진은 부르르 어깨를 떨었다.
…뭐지?
갑자기 왜 이렇게 오한이….
“누가 내 욕하나? 어째 기분이….”
“마스크가 답답해서 그런 거 아냐?”
서진의 혼잣말에 곁의 남자가 호응했다.
“예? 아니에요. 전 괜찮아요.”
다른 두 협연자, 마스크를 쓰고 있는 유유마와 다니엘은 영 불편한 기색이었다.
난생처음 써보다시피 하는 마스크다. 이런 걸 쓰고 어떻게 공연을 할지….
서진 역시 마스크를 쓰고 있었지만, 다른 사람들과 달리 서진에게는 이미 매우 익숙한 물건이었다.
‘그러고 보니 죽을 때도 이걸 쓴 채였구나.’
어쩐지 회귀 직후에 얼굴이 뭔가 휑한 기분이더라. 죽었다 살아났다는 사실에 드디어 마스크를 벗었다는 감회를 느낄 겨를도 없었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 회귀해서 좋은 점에는 그것 또한 있었다.
…결국은 이렇게 다시 마스크 신세지만.
앞으로 몇 년간이나 이어질 코로나 블루. 그리고 그로 인한 문화예술의 긴긴 침체기.
그 우울한 세상 속에서, 지난번과 달리 서진은 다른 사람들을 위해 희망을 노래하는 존재가 되고 싶었다. 비록 그때의 자신은, 좌절의 늪에서 허우적대느라 아무것도 하지 못했지만.
그래도 마지막 순간의 기적과도 같은 연주. 그것 하나만큼은 평생 잊지 못할 유의미한 기억이었다.
그 덕분인지 시간을 돌아 다시 지금의 순간에 이르렀으니까.
그때와 달리 건강한 몸으로.
“처음엔 조금 불편해도, 익숙해지면 괜찮더라고요.”
서진이 싱긋 웃었다.
힘든 와중에도 언제나 희망은 존재하는 법이니까.
그러니까 괜찮다.
* * *
코로나가 본격적으로 미국을 뒤흔들어놓기 직전, 막차를 타다시피 열린 콘서트.
불이 꺼지고 오케스트라가 입장했다.
이어 지휘자와 협연자까지 전부 자리하자, 객석의 헛기침 소리도 서서히 잦아들었다.
박수 소리가 그치고, 그제야 관객들의 면면을 제대로 보게 된 연주자들은 깜짝 놀랐다.
거의 단 한 명도 빠짐없이 마스크를 쓰고 있었다.
얼굴을 가린 하얀 마스크의 물결.
난생처음 보는 광경에 지휘자마저 놀라운지 뒤를 흘긋거렸다. 촬영을 위해 자리한 카메라맨들도 신기한지 객석 쪽으로 연신 카메라를 돌린다.
한창 코로나 시기를 살다 왔던 서진에게는 당연한 광경이었지만, 아직 팬데믹이 시작조차 하지 않은 현 상황에서는 정말로 이색적인 풍경이었다.
그만큼 공연을 보겠다는 열정으로 가득한 것이다.
왠지 뭉클해지는 마음에 서진은 마스크 속에서 잔잔히 미소지었다.
‘나 진짜로 가득 사랑받고 있구나….’
분에 넘치게 보내주는 관객들의 애정에 몸이 찌르르 울리는 기분이다.
그만큼 꼭, 최선을 다해 보답해 줘야지.
세 명의 거장이 함께하는 아름다운 밤의 시작이었다.
뉴욕필과 지휘자 츠벤이 함께하는 베토벤의 3중 협주곡.
요즘은 클래식계에서도 워낙 다양한 시도가 이루어지고 있는 터라 앙상블에 관현악을 더하는 게 이상하지 않은 세상이지만, 사실 이 곡은 한동안 푸대접을 받아왔다.
그 이유는 별거 아니었다. 대부분의 협주곡이 하나의 독주 악기를 주인공으로 하는 데에 비해, 이 곡은 당시에 유행했던 실내악 형식, ‘피아노 3중주’에 관현악을 결합한 형태의 특이한 곡이었다.
이른바 ‘협주 교향곡’.
낭만주의 시대 이전까지만 해도 유행했던 형태의 음악이, 시대가 바뀌며 찬밥신세가 된 것이다. 낭만주의 시절의 유행과는 다소 동떨어진 스타일이었으니까.
거기에 더해 작품 완성도에 대한 평가가 애매한 지점도 있었다.
선율 자체는 확실히 서정성이 뛰어나 감미로운데, 전개나 결합이 다소 느슨하달까. 독주 악기가 세 대나 되는 만큼 전체적인 호흡도 길었고.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제대로 연주해내기만 한다면 더할 나위 없는 아름다움을 안겨주는 곡이라는 것이었다. 특히 각 독주자가 각자의 영역에 통달하고, 관현악 역시 그를 서포트할 수 있을 만큼 충분한 역량이 있을 경우, 그 결과물은 믿기 어려울 정도가 된다.
관객들의 기대감을 한껏 끌어올린 전주 속에, 드디어 첼로가 등장했다.
사람의 목소리를 닮은 낮은 선율.
그리고 첼로의 노래를 바이올린이 이어받는다.
그 가운데, 영롱하게 끼어드는 피아노의 선율.
문득, 오래전 대관령 예술제에서 친구들과 숭어 연주를 하던 기억이 떠올랐다. 투명한 피아노의 선율에 그때의 찬윤이 생각난 것.
그때처럼 순수한 마음으로 즐겁고 행복하다.
세 독주자가 하모니 속에서 저마다의 개성을 뽐낸다. 과연 베토벤이 아니었다면 이만큼이나 매력적인 곡이 가능했을까. 풍성한 관현악과 세 독주 악기 사이의 교묘한 앙상블.
이 곡의 녹음으로 서진이 가장 좋아하는 연주는 ‘리히터, 오이스트라흐, 로스트로포비’ 라는 러시아의 세 거장과 카라얀이 이끄는 베를린 필의 연주였다.
베토벤 3중 협주곡 연주로는 모두가 최고라고 꼽는 버전. 더 이상 바랄 수 없는 환상의 조합이었다.
그걸 실제로 볼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러려면 단순히 회귀가 아니라, 완전히 다른 몸으로 과거 시점에 빙의해야지만 가능한 일이겠지만….
그래도 회귀 후, 지난 생보다 넉넉해진 주머니 사정 덕에 다른 이들의 공연에도 종종 가볼 수 있어 좋았다. 어느 순간부터 얼굴이 너무 알려지며 요즘은 쉽게 다니지 못하는 처지였지만, 중·고등학생 때만 해도 내한하는 유명인들의 공연에 자주 가 보았던 것이다.
그렇게 지금의 연주를 듣고 있는 이들도, 이 자리에 직접 와 공연을 볼 수 있어 좋았노라 말하게 되기를 바랐다.
웅장한 분위기의 1악장, 알레그로.
그리고 라르고의 짧은 2악장.
풍성한 비브라토를 타고 첼로의 깊은 울림이 흐른다.
자유롭게 노니는 바이올린의 선율과 잔잔한 피아노 소리.
러시아 거장 3인방의 연주는, 같은 국적을 가진 그들이 평소에도 자주 협연하던 사이였던 만큼 완벽한 어우러짐이 돋보였다.
한데, 난생처음 합을 맞춰본 지금의 셋 역시 만만치 않은 수준이었다.
아니, 어쩌면 그 이상.
바이올린 선율에 이끌려 몰입하다 보면, 자연스레 곡에 녹아들어 있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저도 모르게 서로가 서로에게 몰두한다.
지금 이 순간 느끼고 있는 열정과 환희가 고스란히 음에 녹아든다. 그리고 그대로 관객들에게도 절절히 전달된다.
서진의 깊고 풍요로운 바이올린의 음색이 잔잔한 물결과도 같은 반주들 사이로 높은 파도처럼 뾰족이 솟구친다. 이어 피아노의 연주가 끝나고, 첼로와 주고받으며 다시금 노래하는 바이올린의 선율.
그 어느 때보다 세심히 지휘하고 있는 츠벤의 이마에 땀방울이 송글송글 맺혔다.
천재 바이올리니스트로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