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 returned as a genius violinist RAW novel - Chapter 199
199화
당혹스러웠다.
아무리 코로나 때문에 하늘길이 거의 막혔다지만, 해외여행이나 그런 거지 정말로 업무상 필요한 사람은 나갈 수밖에 없었다.
음악계 역시 관객을 둔 공연을 자제한다뿐이지, 입출국 자체는 할 사람은 하는 추세였다. 비록 입국 시와 귀국 시, 두 번에 걸친 격리라는 무시무시한 패널티가 있긴 하지만.
그래서 서진 역시 필요하다면 해외에 다녀오려 했다. 거의 국내에 칩거한 채 연습만 하다가, 출국해서 레코딩만 딱 하고 돌아오는 일정으로.
코로나 감염에 대한 걱정을 하지 않는 건 아니나, 그렇다고 아무것도 안 할 수는 없으니까.
-그렇다더군. 이번에 새로 생긴 방침이라고….
전화기 너머 장명훈의 곤혹스러운 목소리가 들렸다.
“아….”
분명 서진이 기억하기로는, 원래는 격리가 원칙이지만 백신 접종자에 한해 면제해주는 식으로 출입국이 이루어졌던 것 같은데….
미접종자는 아예 입국 불가라니. 이게 웬 날벼락이란 말인가.
심지어 PCR 음성 확인서만으로도 안 된다고 한다. 입국 시에는 음성이 나왔다가, 격리가 다 끝난 후에 양성이 확인되는 경우도 있어 그렇다나.
무조건 ‘백신 접종자 + PCR 음성 확인 + 격리’ 라니, 이게 무슨 3종 선물세트도 아니고….
-특별한 사유가 있다면 가능하긴 한데, 그걸 인정받기는 쉽지 않은 모양이네. 국가 공무라거나, 뭐 그런 용무일 경우에 한하는 거라….
그렇게까지 하고 싶지는 않았다. 제가 무슨 국가적으로 중요한 일을 하러 가는 것도 아닌데, 자칫 무리수를 두었다가 만에 하나 문제라도 생긴다면 감당이 되지 않는다.
“지금 한국 상황이 워낙 안 좋아서 그런가 보군요.”
회귀 전에도 한때 한국이 감염자 수 최고치를 찍었을 때, 특별한 사유 없는 민간인의 입국 자체를 거절한 몇몇 나라들이 있다고 들었다.
한데 정확한 기억은 아니지만 독일은 아니었던 것 같은데…?
어쨌든 회귀 전과 같은 세상이라 생각한 게 오산이었다.
‘내가 뭐 나비효과라도 일으켰나….’
뉴욕에서의 성공적인 마스크 공연이 선제적 예방의 중요성을 너무 일찍 부각했다거나…?
…하는 허튼 생각마저 들 만큼 난감한 상황이었다.
-그런데 서진 군. 백신은, 아직 차례가 안 되어 그런 겐가?
“…그것도 있지만….”
기저질환 때문에 어차피 못 맞는다. 하지만 장명훈에게는 지병에 대해 알리지 않은 상황이기에 서진은 말을 얼버무렸다.
“아무튼 지금 당장은 맞을 수 없으니 좀 더 방법을 알아볼게요.”
-그래. 나도 이쪽에서 할 수 있는 걸 해보겠네.
“네. 고맙습니다.”
전화를 끊은 서진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이래저래 걱정이다. 아직 국내에 백신패스가 시행되기 전이긴 한데, 만약 그것마저 생기면 정말로 꼼짝도 못 할 테니까. 자택에서 자차로 외출하는 것까지야 상관없다지만, QR을 찍고 들어가는 공공장소에는 전혀 갈 수가 없어지는 것이다.
‘병원도 그렇고….’
주치의와의 면담이야 기저질환 그 자체로 만남을 요하는 것이니 예외로 치겠지만, 다른 이유로 아플 일이 생긴다면….
무엇보다 일은 어떻게 해야 할지. 회귀 전 이맘때는 어차피 투병 중이라 병원 생활만 했기에 이런 생각을 못 했는데, 여러모로 암담했다.
* * *
결국 음반 제작은 한국에서 하기로 했다.
“…어찌 보면 오히려 잘된 일일 지도 모르지.”
“맞아. 꼭 국제적인 음반사와 레코딩 계약을 해야만 하는 건 아니잖아.”
오랜만에 만난 4인방.
넷은 마스크를 쓴 채 서진의 집에 모여 커피를 마시는 중이었다.
때는 아직 겨울이라 마스크를 쓰고 있는 게 그리 답답하지 않았지만, 지난여름만 해도 더운 와중에 정말 고역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너희들의 도움을 좀 받고 싶어.”
“우리, 왜?”
“K-오케랑 일정 좀 조율해 보려고.”
“오, 우리랑 녹음하게?”
“응. 괜찮을까?”
“이쪽이야 당연히 가문의 영광이지! 캬~ 한서진의 레코딩에 참여한다니…!”
서진이 갈 수 없다면, 어쩔 수 없이 저쪽이 한국으로 와야 하는 상황이었다. 레코딩 장소야 한국의 어딘가로 바꾸면 그만이라지만, 원 계약대로 드레스덴 슈타츠카펠레와 녹음하기 위해서는 결국 어느 한쪽이 바다를 건너가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저 많은 인원이 전부 움직이는 건 말도 안 되는 상황. 결국 도이치 그라모폰과의 계약은 취소할 수밖에 없었다.
“솔직히 나도 이편이 좋거든. 도이치와 계약을 하다 보니 드레스덴과 하게 되었을 뿐이니까.”
한때 세계 3대 음반사로 꼽히던 이름들.
지금은 사라진 EMI와 영국의 데카, 독일의 도이치 그라모폰. 이렇게 셋이었다.
이왕이면 이름값 높은 데면 좋겠지 싶어 제안이 들어온 곳 중 하나를 골라 계약한 게 바로 도이치 그라모폰이었다. 그리고 악단이나 녹음 장소 역시 독일 쪽 음반사랑 계약하다 보니 그쪽으로 관련해 구하게 된 것뿐, 특별히 선호하는 게 있는 건 아니었다.
그러니 계약 문제만 원만히 해결된다면 계획을 바꾸어 국내 음반사와 해도 상관없는 일. 어차피 요즘은 스트리밍이 대세라 음반사 레이블은 크게 의미 없으니까.
“그럼 해지하고 국내 음반사랑 다시 계약하는 거야?”
“그렇다기보다, 아마 연기하는 방향이 되겠지?”
정확히 말해 해지는 아니었다. 계약을 해지하는 대신 음반 작업을 코로나가 끝난 이후로 미루기로 했으니까.
사실 독일 측에서는 서진의 입국 문제를 어떻게든 적극적으로 해결해주고자 했는데, 서진이 사양했다. 괜히 무리수를 두고 싶지 않은 것이다.
그러니 어쩌겠는가. 제 사정으로 계약을 이행하지 못하게 된 마당에, 저쪽이 제발 해지만은 하지 말고 연기해달라 사정하는 걸 모른 척할 수야.
“지연아, 혹시 너희 음반 쪽으로도…,”
“있지. 무려 ‘한서진’에게 들이밀긴 너무 조촐한 회사긴 하지만… 너 정도면 어차피 음반사 이름이 중요한 게 아니잖아? ‘한서진’ 자체가 브랜드인 상황이니까.”
“얘가 또 왜 금칠이야.”
“아무튼 영광이야. 한서진 최초의 음반 작업을 맡다니.”
“미리 잘 부탁할게.”
완전히 최초는 아니고. 예전에 ‘한국의 젊은 영재…’ 어쩌고 하는 음반 모음에 참여하긴 했지만, 서진만의 단독 앨범으로 치면 처음이긴 했다.
실황앨범이야 그동안도 여러 차례 발매해 왔다지만, 정규 음반은 이번이 최초. 모두들 기대할 만하긴 했다.
그렇게 K–오케와 관련한 일을 논의한 후, 서진과 따로 산책을 나온 지연은 조용히 물었다.
“너 이제 어떡할 거야?”
백신패스를 도입한다는 말에 서진보다 지연이 더 걱정이었다.
“…그러게.”
차라리 걸린 적이라도 있으면 그 자체로 백신패스를 대체할 수 있을 텐데, 그런 위험을 감수하기엔 리스크가 너무 컸다. 코로나에 걸려도 별 상관없는 몸이었다면 애초에 백신을 맞고 말았겠지.
“서진이 네 지병은 백신 미접종 예외 사유로 인정되긴 어려우려나?”
“알아봤는데, 턱도 없더라.”
“아니, 그 정도 기저질환이 해당 안 되면 대체 뭐가 해당되는데!?”
“항암치료 중인 사람?”
“….”
“혹은 면역억제제 투여로 면역력 결핍 증상을 앓고 있는 경우?”
“…항암도 결국 면역의 문제니까 그게 그거인 셈이네.”
“그렇지 뭐. 아, 혹은 백신 개발에 임상 참여했던 사람이라거나?”
“….”
“아니면 1차에 맞았다고 중대한 후유증이 생긴 사람? 심장 쇼크나 아나필락시스 쇼크 정도로.”
“그냥 웬만해서는 안 된다는 거네.”
“응. 그냥 일반적인 기저 질환자는 예외 없는 셈이야. 그래서 해외는 당분간 포기하려고. 곧 국내도 미접종자면 꼼짝도 못 하게 되겠지만….”
“그럼 서진이 너도 차라리 방송 쪽으로 돌려보는 건 어때?”
“방송?”
그쪽의 원래 느슨하다며 지연이 은근한 목소리로 팁을 주었다.
“응. 사실 나 드라마 관련 제의 받았거든. 브람스… 뭐더라?”
지연이 쑥스럽게 말했다. 일전에 생긴 별명 ‘브람스가 잘 어울리는 그녀’ 덕분인지, 딱 그런 제목의 드라마 제의를 받았다고.
“오, 대역을 맡은 거야?”
“아니, 대역은 아니고 그냥 배역. 여주인공의 아역이야.”
…아, 아역?
서진은 아연실색했다. 아역을 하기엔 우리 나이가 좀…?
“…그 표정 뭐야.”
“아니…,”“나도 알거든? 근데 작중 여주인공이 30대 나이고, 아역은 고등학생 역할이야. 나 아직 나이로는 고3에서 크게 안 벗어나거든? 분장 잘 하고 후처리 잘하고 하면 뭐…, 가능한가 보지. 연기는 거의 없고 회상 씬으로 연주만 조금 하면 되거든.”
서진은 그제야 이해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고딩 정도면… 못할 것도 없지. 지연은 유독 동안이기도 하니까.
“근데 서진이 너도 영화 제의 많이 들어온 걸로 아는데, 생각 없어?”
“난 다 사양했어. 뭐 그거 아니라도 TV 나오려면 얼마든지 나올 수야 있긴 하니까. 방송 쪽으로도 무대 많잖아.”
TV 공연 무대에서 관객만 없애면 코로나 시국에도 충분히 무대는 만들 수 있었다. 실제로 그렇게 몇몇 일정이 잡혀 있기도 했고.
‘생각해 보니 회귀 전에도 방송계는 사회적 거리두기고 뭐고 유야무야 넘어가는 분위기였지.’
백신패스가 시행된다 해도 모든 곳에 적용되는 건 아니었다. 식당이나 카페는 몰라도 방송 쪽은 굉장히 느슨했던 걸로 기억한다. 일각에서 방송계만 차별하냐고 주변에서 말이 나왔을 만큼.
영화관이나 공연장은 사회적 거리두기로 직격탄을 맞았던 데 비해, 방송계는 대규모로 우르르 몰려다니는데도 마스크 없이 촬영하는 등 되려 구설수에 오를 정도로 널널한 것이다.
“아쉽네. 네가 직접 스크린에서 나오는 것도 은근히 기대했는데.”
“…하하. 그런 건 꼬꼬마 아역 때로 만족하려고.”
아무튼 백신 미접종으로 인한 제한은 어쩔 수 없이 어느 정도 감수해야겠지만, 그래도 국내 활동은 어느 정도 가능할 것 같아 다행이었다. 물론 그만큼 위험을 감수해야겠지만, 해외만 안 나간다면 큰 제약은 없다는 게 어디인가.
게다가 슬슬 공연도 다시 재개될 분위기였다.
큰 소리로 기도하고 찬양하는 등 비말이 튈 위험이 높은 종교 집회에 비하면, 조용한 클래식 공연이 무슨 문제냐는 의견이 대수인 것이다.
이자크에게 듣기로 뉴욕은 이미 거의 정상화된 분위기라고 한다. 아니 애초에 그리 제재한 적도 없다고. 비록 마스크를 쓰고 관람해야하긴 하지만, 우리나라처럼 철저히 무관객으로 했던 적은 한 번도 없다는 것이었다.
아마도 코로나 초기에 있었던 마스크 공연의 성공신화 덕인 것 같다는데…, 괜히 제 덕분인 것 같아 서진은 기분이 으쓱했다.
그리고 그 이야기에 한국 음악계도 점점 공연 정상화의 목소리를 높이는 중이었고.
“아무튼 조금만 더 버티면 될 것 같아. 우리 같이 힘내자.”
* * *
새로 시작된 한 해. 2021년, 서진에게 악재만 있는 건 아니었다.
오히려 생각지도 못했던 영예도 있었으니….
“서, 서진아 그게 정말이니?”
“네. 오늘 직접 연락을 받았어요.”
“세상에…! 청와대 초청이라니! 엄마가 살다 살다, 별일을 다 겪어서 이게 꿈인지 생시인지 믿어지지가 않을 정도네!”
천재 바이올리니스트로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