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 returned as a genius violinist RAW novel - Chapter 20
20화
서진은 몰라도 저쪽은 한눈에 봐도 표정이 딱 그런데… 혹시…?
“저기, 혹시… 둘이… 음, 아니,”
무슨 소리인가 싶어 서진이 찬윤을 돌아보았다.
“…??”
아닌가? 오해한 건가?
마침 눈이 마주친 지연은, 다시 보니 언제 그랬냐는 듯 냉랭한 표정이었다.
“…아냐. 아무것도.”
착각인가 싶어 찬윤은 얼른 얼버무렸다. 아무래도 자신이 영 쑥맥이라 완전히 헛다리를 짚은 모양이었다.
“어… 근데, 참, 지연이 넌 협연자 콩쿨 안 나가?”
협연자 콩쿨이란 말 그대로 GMMFS 학생들 중에 폐막 무대에서 연주할 협연자를 뽑기 위한 일종의 오디션이었다.
“나?”
“응. 난 나갈 거거든. 찬윤이 형도 나간다고 했고.”
서진은 그 협연자 콩쿨에서 우승해 폐막 무대의 주인공으로 선 모습을 어머니께 꼭 보여드리고 싶었다.
“글쎄. 난 별로. 어차피 여기까지 보러 올 사람도 없고. 엄마가 워낙 바쁘셔서… 그리고 누가 보러 오는 거라면 할아버지로 충분하거든.”
그렇게 말하는 지연은 별로 실망스러운 기색이 아니었다. 제 일에 최대한 발 벗고 나서주는 어머니였지만, 그래도 대관령은 너무 멀다.
“할아버지?”
잠깐. 할아버지라면… 이성 회장님?
“자선음악회 공연 말야.”
“아….”
근데 거기에 이성 그룹 회장이 온다고?
물론 이성 그룹과도 관련된 행사이긴 하지만, 회장이 직접 발걸음할 정도의 자리는 아닐 텐데…?
아, 손녀딸을 보러 오는 거라면 뭐 그럴 수도 있겠지. 혹은 나름대로 다른 중요한 이유가 있을지도 모르고.
그러고 보니 회귀 전 기억으로, 이맘때쯤 이성 재단 관련해 뭔가 중요한 일이 있었던 기억이 있는데….
뭐였더라. 이성 재단이랑 해외 무슨 재단이랑 교류 어쩌고 하면서 전공자들 사이에서 굉장히 관심이 쏠렸던 일이 있었는데….
“그나저나 윤수는 나간다더라. 음. 그럼 둘이 경쟁해야겠네…? 아, 경쟁이 안 되나.”
“…아하하.”
서진은 윤수에게 왠지 미안했다. 회귀 전 한때는 거대한 벽 같은 라이벌이었던 강윤수였는데, 요즘 윤수는 기운이 팍 죽어 있었다.
처음에는 저를 보며 의지를 불태우더니, 시간이 갈수록 자신감이 사라져가는 듯한 게 아무래도 자신이 원인인 것 같았다.
그 탓인지 윤수는 요즘 오히려 비올라에 열심이었다. 그날, 서진이 한 비올라 연주를 침까지 흘릴 기세로 멍하니 듣더니, 갑자기 바이올린을 내팽개치고는 비올라를 연습하기 시작한 것이다.
어쩐지 자신으로 인해 운명이 바뀐 것 같은 느낌이랄까….
“그런데 우리 듀엣곡 뭘로 해? 몇 개 더 해야 하잖아.”
지연이 물었다. 오늘따라 굉장히 의욕적이었다.
“글쎄. 대중적인 거라면 아무래도 모차르트가 좋지 않을까. 저번에 송어가 너무 좋아서 슈베르트도 생각해보긴 했는데, 모차르트가 나을 것 같아.”
“음… 난 개인적으로 모차르트는 별로 취향이…,”
잠깐, 모차르트?
아! 생각났다!
이성 재단이 이맘때쯤 야심차게 추진하고 있던 해외 교류 사업.
분명 모차르테움과 관련된 일이었다.
“좋아. 모차르트로 가자.”
“응? 취향 아니라며.”
지연이 갸웃하며 물었지만, 서진은 얼른 말을 바꾸었다.
“아냐. 헛소리였어.”
“…?? 어…, 그럼 고마워. 대신 나머지 하나는 네가 정해.”
“그래. 그럴게.”
근데 막상 갑자기 고르라니 생각나는 게 없었다.
“공연 특성상 조금 캐주얼하게 가도 되니까, 꼭 원래 있는 곡 아니더라도 기존 악보를 편곡해서 듀엣으로 만든 것도 난 괜찮아. 우리 어차피 사라사테도 그렇잖아.”
그 말에 문득 생각나는 게 있었다.
“그럼 파가니니의 협주곡을 편곡한 곡은 어떨까?”
“파가니니?”
“어. 영화에도 나오는 곡이야.”
얼마 전 다비트와의 마스터 클래스가 기억에 강하게 남아서일까, 문득 그가 영화에서 연주한 곡이 떠올랐다.
“제목이 뭔데?”
“Io ti penso amore라고, 영화 파가니니에서는 보이스가 있는 곡인데, 바이올린 두 대로 편곡해서 하면 될 것 같아. 그 영화 알지?”
“응. 들어본 적 있어. 아직 본 적은 없지만… 파가니니니까 파가니니 이야기겠지.”
“맞아. 거기 나오는 노래인데, 파가니니 바이올린 협주곡 No.4 D minor, 2악장을 편곡해서 만든 노래야.”
“어? 2악장이면….”
“응. 지난번 마스터 클래스에서의 곡.”
“아….”
영화 파가니니에서, 주인공이 마음에 두고 있던 소녀를 무대에 불러내 부르게 한 노래. 그 곡의 원곡이 바로 파가니니의 협주곡 4번이었다.
서진은 원곡도 좋지만 편곡된 그 곡을 무척이나 좋아했다.
회귀 전, 영화를 본 건 정작 개봉되고도 몇 년이나 지난 한참 후였지만, 보자마자 한눈에 그 곡에 꽂혔다.
그런데 악보를 구하려고 인터넷을 있는 대로 뒤졌는데도 찾을 수 없어, 내친김에 음원 파일을 들으며 직접 피아노 트리오 악보를 그렸다.
그걸 바이올린 두 대로 편곡하는 건 어렵지 않은 일. 저음을 빼면 소리가 조금 비기야 하겠지만, 피아노 파트를 좀 추가하면 크게 문제 될 것 없겠지.
“이것도 편곡해야 해? 악보 있어?”
“아, 걱정 마. 내가 하면 되니까.”
악보야 고스란히 기억하고 있으니 굳이 인터넷에서 찾아보지 않아도 바로 적어 내릴 수 있었다. 그때도 못 찾았던 걸 지금이라고 인터넷에 올라와 있을 리도 없고.
그 말에 지연의 눈이 살짝 커졌다.
서진을 볼 때마다 느끼는 건데, 바이올린도 바이올린이지만 전반적인 음악적 능력이 상당한 수준이다. 어릴 때부터 온갖 예술교육을 받아온 자신보다도 훨씬 더.
조금 전 했던 사라사테의 서주와 타란텔라. 서진이 만든 악보는 원래부터 바이올린 2중주였던 것처럼 완벽했다.
아무리 영재원에서 레슨과 함께 기본적인 음악 이론도 두루 배운다지만, 작곡을 전문적으로 배우지도 않았을 텐데 어떻게 이게 가능한 걸까. 그것도 그런 엄청난 퀄리티로.
이게 바로 재능이라는 걸까…?
지연은 새삼스러운 얼굴로 서진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
처음엔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는 존재에 대한 호기심이었다.
그다음엔 그의 소리에 매료되어, 그리고 지금은 범접할 수 없는 재능에 비교당하는 마음마저 들었다.
“아무튼 괜찮으면 그걸로 하자.”
“어? 어, 응.”
그렇게 일사천리로 결정하고, 서진은 그 자리에서 악보를 슥슥 그려댔다. 직접 악보를 그리고 연주했던 기억이 있어 어렵지 않았다.
물론 바이올린 파트 외의 다른 악기들까지 전부 기억나지는 않지만, 어차피 메인 선율이 있으니 다른 파트는 코드에 맞춰 적당히 만들면 되겠지.
그런데 한 가지, 서진이 크게 착각하고 있는 게 있었다.
회귀 전의 기억과 헷갈려, 얼마 전에 만난 다비트. G가 주연으로 나오는 영화 ‘파가니니’가 아직 개봉 전, 즉 촬영 중이라는 사실을.
지연이 들어본 적 있다는 영화 ‘파가니니’는 1989년에 개봉된 고전 영화라는 것을. 그렇기에 서진이 생각한 그 곡은 아직 세상에 나오기 전이라는 것을.
* * *
다비트는 원래 공연 일정만 끝나면 바로 귀국할 생각이었다. 영화 촬영 일정이 빠듯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마스터 클래스 수업도 첫날로 바꾸어 그것만 하고 바로 떠나려 했던 건데, 어차피 일정을 늦춘 김에 폐막까지 보고 가기로 했다.
폐막 무대에 자신의 연주가 계획되어 있는 건 아니었지만, 협연자 콩쿨의 결과가 궁금한 것이다.
‘그 아이….’
듣자 하니 협연자 콩쿨에 참가한다고 들었는데….
그 아이의 연주에는 특별히 감정을 어루만지는 무언가가 있었다. 듣고 있자면 마음 어딘가가 툭 건드려지는 느낌.
“후….”
다비트는 떠나기 전 그 아이의 무대를 한 번 더 보고 싶었다. 시간이 조금 빠듯하긴 하지만, 그때까지 기다리는 동안 다른 할 일을 하고 있으면 되니까.
요 며칠 내내 그가 몰두하고 있는 일은 다름 아닌 작곡이었다. 정확히는 편곡이랄까, 영화 ‘파가니니’에 필요한 OST 작업.
모든 곡을 그가 전부 만들려는 건 아니었지만, 몇 가지 직접 작업하고자 하는 곡이 있었다.
파가니니의 바이올린 협주곡 4번 2악장을 편곡해 만들 노래. 스토리 상 파가니니와 여자 주인공이 무대에 함께 설 때 사용될 음악이었다.
“음… 여기가 좀 아쉬운데.”
문제는 막힌 부분이 며칠 내내 풀리지 않고 있다는 것.
머리도 식힐 겸, 산책도 할 겸 다비트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다.
강원도의 여름은 저녁이면 꽤 선선하다. 산책을 하기에 딱 좋은 날씨.
얼마나 걸었을까, 멀리서 어렴풋이 음악 소리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GMMFS에 참가하는 학생들의 연습실이 모여 있는 건물. 여러 명이 각기 연습하는 소리가 한데 섞인 음이었다.
자신도 한때 저럴 때가 있었지. 어린 시절, 누구보다 뜨거운 열정을 가지고 바이올린을 연습하던 때. 비록 부모님의 압박으로 스트레스를 받긴 했지만, 바이올린을 사랑하지 않았다면 결코 그렇게 열심히 할 수 없을 터였다.
흐뭇한 마음에 건물 가까이로 발걸음을 옮기던 다비트의 귀에 익숙한 멜로디가 들려왔다.
‘···파가니니 협주곡?’
아니다. 이건….
분명 시작하는 선율은 비슷한데, 뒷부분의 진행이 달랐다.
그리고 바로 그 점에서 다비트는 깜짝 놀랐다. 지금 들려오는 편곡된 곡이 자신이 머릿속으로 구상하고 있던 곡과 거의 똑같은 것이었다.
‘···어떻게?’
물론 차이는 있었다. 자신이 구상하고 있던 건 보이스가 있는 버전이었고, 이건 바이올린 듀엣이었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너무 놀라울 정도였다. 누가 제 머릿속에 들어갔다 나왔나 싶을 정도로.
물론 원곡이 이미 있는 곡이었기에, 그걸 베이스로 편곡을 한다면 결과물이 비슷하게 나오는 게 당연했다.
하지만….
‘누굴까?’
악보 유출 같은 문제는 아니었다. 선율이 완성되기 전이라 아직 악보를 끝까지 그린 적이 없는, 아직 머릿속에만 존재하는 것과 다름없는 곡이었으니까.
이건 그저, 누군가 자신과 영혼의 쌍둥이 수준으로 비슷한 음악적 취향을 가진 사람이 있는 것이다. 심지어 자신보다 뛰어날지도 모르는.
다비트는 홀린 듯 발걸음을 옮겼다. 누구인지 확인해보지 않고는 배길 수 없었다.
“….”
작게 나 있는 유리창 너머로 자그마한 뒤통수 두 개가 보였다.
···아, 역시.
왠지 그럴 것 같은 본능적인 느낌이 있었는데, 정말이었다.
* * *
지연과 함께 열심히 소리를 맞춰보고 있던 서진은 밖에서 느껴지는 인기척에 고개를 돌렸다.
“왜? 누구 왔어?”
“아니, 잠깐만.”
빼꼼 문을 열고 나가본 서진은 전혀 예상치 못한 존재에 당황했다. 다비트가 여긴 왜…?
“오오, 서진…!”
어쩐지 그는 무척이나 멍한 표정이었다.
“오 마이 갓, 서진. 천재야! 넌 정말 천재라고!”
“···네?”
이게 뜬금없이 무슨 소리지?
“바로 이거야, 완벽해! 원곡보다 뛰어날 정도야!”
여전히 무슨 말인지 감을 잡지 못하고 있는 서진에게 다비트가 흥분해 말했다.
“이 곡을 편곡해 아리아로 만들고 싶은데, 딱 마음에 드는 결과물이 나오지 않아 머리를 싸매고 있었거든. 그런데 네 연주를 듣고 완벽히 떠올랐어.”
그러자 서진은 문득 머릿속을 스치는 게 있었다.
설마….
이거 혹시 ‘Io ti penso amore’ 의 작곡에 대한 이야기인가?
그 곡이… 아직 작곡 중이라고? 어째서? 영화에 쓰였던 곡인데?
‘잠깐.’
그 영화의 개봉이 언제였지?
회귀 전, 개봉하고 한참이 지나 KOM티비에 무료로 풀린 영화를 봤던 것이기에 당연히 개봉일은 그보다 훨씬 앞일 거라고, 다비트. G가 이미 유명한 만큼 당연히 영화 역시 이미 개봉한 상태라 막연하게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영화 이야기에 대한 지연의 반응도 그렇고 해서 완전히 착각한 것이다.
‘헉.’
이거 내가 지금, 원작자 앞에서 곡을 스포일러 해 버린 건가?
머리가 띵했다. 생각해보면 그 유명한 파가니니를 주인공으로 한 영화가 어디 하나뿐이었겠는가. 어쩌다 이런 실수를….
‘이 오해를 어떻게 풀어주면 좋을까….’
하지만 서진의 실수는 오히려 좋은 방향으로 작용했다.
서진의 회귀 사실을 꿈에도 알 리 없는 다비트는 냉큼 제안을 해왔다.
“천재 소년.”
“···네?”
지금 이거 나를 부르는 건가?
“나랑 협연을 하지 않겠어? 물론 곡도 같이 만들면 좋겠어. 아니, 나를 좀 도와줘.”
“···네?”
천재 바이올리니스트로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