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 returned as a genius violinist RAW novel - Chapter 200
200화
서진은 작년 봄쯤 아카데미 음악상을 받은 전적이 있었다. 그리고 같은 시상식에서 한국인 출신 유명 영화감독 또한 상을 여럿 받아 한차례 화제가 된 일이 있었다.
전 국민이 코로나 블루로 힘겨워하는 이때, 정부에서는 이 둘을 내세워 대대적으로 홍보하려는 모양이었다. 국민들의 사기를 북돋아 주기 위해.
대통령 초청 청와대 만찬.
자그마치 ‘대통령’과의 식사 자리다. 선희가 저렇게 까무룩 뒤로 넘어가려 하는 것도 이해할 만했다.
사실 서진도 어안이 벙벙하긴 했다. 이런 건 남의 일이라고만 생각했는데.
회귀 전 기억에, 국내외로 대히트를 친 영화 ‘패러사이트’가 있었다. 서진 역시 재미있게 봤던 영화였는데, 아카데미상뿐 아니라 그 직전 해 칸 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도 받은 유명작이었다.
서진이 초대받은 만찬이, 회귀 전 그 영화의 감독과 배우 및 및 제작진들이 초대받았던 바로 그 만찬이었다. 원래대로라면 약 일 년쯤 전에 있었을 일이지만, 왠지는 모르겠지만 그 시기가 지금으로 바뀌어 버린.
아무튼 회귀 전의 서진이었다면 저 영화감독과 배우들은 인터넷에서나 그 이름을 들어볼 법한 유명한 사람들이었다. 한데, 단순히 그들을 만나거나 같이 자리하게 되는 정도가 아니라, 나란히 초대를 받게 되었다니 기분이 이상할 수밖에.
“수락하는 게 좋을까요?”
“얘는! 그걸 말이라고! 설마 거절하려 했니?”
“아뇨, 그건 아닌데….”
사실 고민이었다. 어머니도 같이 초대받은 게 아니었다면 아마 거절했을 테지.
“코로나 중이라 조심스러워서요.”
일단 수락은 할 생각인데, 조만간 도입된다는 백신패스가 문제다.
아직은 백신 접종이 시작된 지 얼마 안 되는 연초라 괜찮지만, 아마도 다음 달부터는 분명 백신패스가 시행될 텐데….
미접종자는 식당 출입도 안 되는데 청와대에서 만찬이라니. 구설수에 오르기 딱 좋은 상황이 아닌가.
그래서 거절하려 했는데, 어머니가 저렇게 좋아하시니 또 고민이었다.
* * *
이 이야기를 전하니 청와대에서도 고민에 빠졌다.
서진에게 연락을 해온 담당 비서관은 곧바로 상사에게 해당 건을 보고했다. 한서진 씨가 기저질환의 이유로 백신을 접종할 수 없는 상태라고. 한데, 그렇다고 또 의학적으로 인정되는 예외 사유에 해당하지는 않아 곤란한 상황이라고.
직속 상사에게 보고되어 위로 위로 계속하여 전달된 이야기는 머잖아 대통령의 귀에까지 직접 들어갔다.
“흠…. 백신패스 도입을 굳이 급히 할 필요 있나?”
짧은 고민 끝에 나온 대통령의 한 마디였다.
“…예?”
예상치 못한 소리에 비서실장은 멍하니 되묻는 것밖에 하지 못했다.
“대통령님. 이 백신 패스 도입은 본디 방역 당국과 논의한바, 국민들의 접종률이 일정 퍼센티지에 이르면 도입하기로 한 지라…,”
“아, 그야 나도 모르지 않은데, 어차피 시행 기준을 정확히 공표한 건 아니니 말이네.”
“예. 그야 그렇지만….”
이걸 어떻게 해보겠다고 접종 속도 자체를 조절할 수야 없는 일이라지만, 어차피 ‘접종률이 딱 어느 선에 이르면 백신패스를 시행하겠다’라고 정확히 고지한 바는 없었다. 정부에서 적당히 상황을 봐 가며 발표하는 방식으로 대응하는 중이니까.
“이를 어쩐다… 꼭 한 번 직접 만나보고 싶은 청년이었는데….”
하필이면 만찬은 그 뒤로 잡혀 있었다. 앞으로 당기자니 빠듯한 스케쥴에 도저히 시간이 안 나고.
“일단 본인이 거북스러워하는 건 아니고?”
“예. 대통령님. 그럴 리 있겠습니까.”
“에이, 꼭 아니랄 법은 없지. 예술 하는 이들, 어디 한 군데씩 독특한 구석 있는 게 뭐 대수라고.”
“하하. 아무튼 그런 건 아닌 듯합니다.”
“그럼 나는 어떻게든 성사시키고 싶네만.”
비서실장은 놀라움을 감추기 위해 애써 표정 관리를 해야 했다. 눈앞의 대통령이 한서진이라는 청년에게 이 정도로 적극적인 호의를 내비칠 줄은 몰랐기에.
그렇다고 구설수에 오를지도 모를 일을 억지로 진행할 수도 없고 곤란했다.
“아! 그래. 거 왜, PCR 음성 확인 이런 것도 있지 않나?”
“예. 그건 그런데… 그게 원칙적으로 48시간 이내로만 유효한지라, 경우에 따라서 안 될 수가 있습니다. 특히 주말을 낀 경우에는….”
아직 검사 결과가 후반의 그것처럼 빠르게 나오지 않던 시기. 월요일 오후에 식사 약속이 있는 미접종자들은, 토요일쯤 받은 결과지가 간당간당할 수 있는 것이다.
“거 참. 복잡하구먼….”
그렇다고 앞뒤로 하루 이틀 정도 날짜를 바꾸자니, 어디 국가 원수의 일정이라는 게 그리 널널하게 비어 있겠는가. 또 함께 초대한 다른 이들의 스케쥴도 있을 테고.
“그냥 얼굴 보고 밥 좀 먹자는데 뭐 이리 신경 쓸 게 많아! 이게 뭐 이렇게까지 문제 될 일이라고…. 사실 이 행사가 백신 패스의 핵심 제한사항인 ‘사적 모임’과는 결이 다른 일이지 않나, 안 그런가?”
“…예. 그야 그렇습니다.”
설령 백신패스가 시행된 이후라 해도 이게 법적으로 문제 될 사안은 아니었다. 백신 패스의 골자는 식당이나 카페 등에서의 ‘사적 모임’을 제한하는 것이었으니까. 특정 인원 이상이 넘어가는 경우나, 백신 미접종자가 포함되어 있을 경우에 대해.
한데 이건 ‘사적 만찬’이 아닌 국가의 ‘공식 행사’다. 공무나 다름없는 것. 여기에 백신 패스를 적용해 미접종자의 참석을 제한한다는 건 어불성설.
문제는 국민들은 그렇게 법대로 딱딱 생각해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하지만 대통령님. 국민들의 시선을 둘째 치더라도, 대통령님의 안전을 고려해서라도 이 부분은 확실히 하고 넘어가심이…,”
“그래, 확실히 해야지. 그나저나 현재 백신 패스 도입 시기를 대강 언제쯤으로 점치고 있는가?”
대외적으로 공표한 퍼센티지가 아닌, 어디까지나 내부적으로 논의했던 기준이었지만, 어쨌든 그걸 기준으로 하면 얼추 계산이 되었다.
“지금 속도라면… 예상으로는 다음 달입니다.”
“…음.”
대통령의 침음에 비서실장은 비서진들에게 눈짓했다. 한서진이라는 청년을 직접 보고자 하는 대통령의 뜻에도 맞춰드려야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VIP의 안전이 아닌가. 대통령을 걱정한 그는 비서진들을 닦달해 어떻게든 해결방안을 찾고자 했다.
머리를 쥐어짜내고 있는데, 돌연 VIP가 주먹으로 제 손바닥을 탁 내리쳤다. 마음이 드는 무언가가 있을 때 나오는 행동이었다.
“그렇다면… 아! 이렇게 하는 게 좋겠군.”
역시, 머리를 쥐어짜면 뭐라도 되게 되어있다. 흡족한 해결책을 떠올린 대통령의 입가에 흐뭇한 미소가 떠올랐다.
“일단 접종률 기준을 좀 더 높이고, 시행까지의 계도기간을 조금 더 넉넉히 주도록 하게나.”
원래 모든 국가 방침에는 계도기간이라는 게 있다. 백신 패스 역시 마찬가지.
계도기간을 원래 계획보다 넉넉히 주는 것으로 어느 정도 해결이 가능했다.
“또 방역 당국에도 한서진 씨의 경우처럼 기저질환으로 인해 백신을 맞지 못하거나 연기해야 할 것 같은 이들이 있는지 알아보라 하고. 그런 경우가 많다면 예외를 마련할 준비를 해야 할 테니 말일세.”
대통령의 입에서 직접 내려진 지시에 비서실장은 빠릿하게 대답했다.
“예. 알겠습니다! 대통령님의 안전을 위해서라도 반드시 차질없이 만찬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만반의 준비를 기하겠습니다.”
“허허. 나는 됐고, 정 신경 쓰인다면 그런 것 말고 괜히 이 일로 그 청년이 구설수에 오를 일 없도록, 그거나 한번 잘 궁리를 해보아.”
정말이지 파격적이라는 말밖에 표현할 길이 없는 언사였다. 비서실장뿐 아니라 주변의 다른 참모진들도 놀라울 따름이었다.
사실 대통령으로서는 한서진이라는 청년을 어떻게든 만나보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미처 놓친 부분에 대한 깨달음도 있었다.
국민들 중 서진과 같은 케이스가 분명 또 있을 테니까.
접종 자체는 권장하되, 이 참에 백신패스 예외 적용 기저질환자의 범위를 다시 한 번 점검해 제도의 맹점을 보완하도록. 그에 더해 다른 지원 정책도 고민하는 한편, 그걸 위해 계도기간을 넉넉히 잡으라 한 것이었다.
‘하마터면 백신패스의 맹점을 놓칠 뻔했는데… 그 청년 덕분에 여러 마리의 토끼를 동시에 잡는군.’
…그나저나, 젊은 나이에 백신 접종이 곤란한 지병이라니.
훌륭한 인재가 가진 패널티에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더더욱 ‘비운의 천재’와도 같은 이미지가 물씬 풍기긴 하지만, 할 수만 있다면 국가 차원에서 치료법에 대한 연구를 지원했으면 좋겠는데….
* * *
그 내용을 전달받은 서진은 깊이 안도했다.
자신이 욕먹는 건 상관없는데, 저로 하여금 다른 누군가를 욕먹게 하는 건 마음 불편한 일이었으니까.
국민들은 죄다 가둬놓고, 정작 청와대는 미접종자랑 웃고 떠들고 밥 먹는다고 욕먹을까 봐 은근히 신경 쓰였던 것이다.
‘그럼 그 문제는 일단 그렇게 마무리하고….’
방역 수칙이 더욱 빡빡해지기 전에 얼른 녹음 작업을 완료해야겠다.
물론 백신패스가 시행된다 해도 업무로 인한 집합은 ‘사적 모임 인원수 제한’에 해당 없었지만, 그 또한 모르는 일이다. 회귀 전과 뭐가 또 달라질지.
다행히 K-오케는 서진의 제안을 선뜻 수락했다.
그건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로, 현재 한국의 악단 중 그 누가 서진과의 음반 작업을 거절하겠는가. 세계 유수의, 소위 말하는 3대 악단조차 서진의 제안이라면 쌍수를 들고 달려올 판인데.
“그럼, 잘 부탁합니다!”
K-오케는 그새 한 차례 더 성장해 있었다. 언제 이렇게 인원이 늘어났는지, 이제 챔버 오케 수준이 아니라 정말로 꽉 찬 관현악단이었다.
오케스트라가 명성을 가지면 인재는 알아서 모이게 되어있는 법. 특히 지난 아카데미상 수상이 큰 역할을 했다. 덕분에 아카데미 음악상을 탄 영화의 OST를 연주한 오케스트라가 되었으니까.
게다가 서진이 지휘를 없앤 덕에, 직접 이끌지 않아도 알아서 자치기구를 갖추고는 잘 운영해나가고 있었다. 비록 코로나가 한창이라 활동에 많은 제약이 있었지만, 그들 역시 서진과 마찬가지로 내실을 다지고 있었던 것이다.
관객은 없었지만, 녹음은 모두가 마스크를 쓰고 있는 채로 진행되었다. 입으로 직접 불어야 하는 관악기 파트만 예외로 두고, 모두가 불편한 마스크 속에 잘도 연주했다.
서진은 이번 코로나 사태를 기회로, 최대한 많은 작곡가들의 곡을 최대한 많이, 가능하다면 전곡 녹음에 도전해 보고 싶었다.
만에 하나라도 더 이상 연주하지 못하게 될 때를 대비해, 최대한 많은 기록을 남기고자 하는 것이다. 공연도 좋지만 음반은 또 다른 의미를 가지니까.
천재 바이올리니스트로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