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 returned as a genius violinist RAW novel - Chapter 201
201화
‘건강 상태가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르니까….’
더불어, 초연 곡들도 가능한 대로 발굴하고 개척해보고 싶었다.
지금은 누구나 명곡이라 인정하지만, 역사 속에 오래 묻혀있다 누군가의 발견으로 빛을 보게 된 곡들. 어느 연주자의 감명 깊은 초연이 그러한 기적을 만들어내는 법이었다.
차이코프스키의 바이올린 협주곡이 그러했고, 라흐마니노프의 작품 중에도 그런 곡이 있었다.
바로 그렇게, 서진 역시 지금은 깊이 묻혀 지금은 세상의 빛을 보지 못하고 있는 옛 곡들을 찾아 발굴해내고 싶은 것이었다.
또, 오케스트라 없이 오직 자신의 소리만으로 녹음 작업도 하고 싶다. 한 마디로 무반주 곡 레코딩.
나아가 코로나가 끝나면 무반주 전곡 연주로 무대에 오르는 것까지.
그건 아직 먼 미래의 일이지만, 조만간 코로나가 심해져 만약 오케와 함께 작업하는 게 어려워지면, 차라리 그걸 기회 삼아 무반주 곡을 녹음하려는 계획인 것이다.
더불어 이번 코로나 기간 동안 자신이 직접 지은 곡들 역시 음반으로 내고 싶었다. 그동안은 아직 자신이 없어 공연에는 올려도 따로 레코딩은 남기지 않았는데, 실황 외 정규 음반에도 부쩍 욕심이 나는 것이다.
‘위기를 기회로. 이 시기에 더욱 성장해야지.’
* * *
“곡 너무 좋은데?”
서진이 이번에 새로 작곡한 3중 협주곡.
찬윤과 하윤을 염두에 두고 쓴 곡이었다. 미리 곡을 들어본 하윤은 이미 기뻐 폴짝폴짝 뛰어댔었고, 찬윤 역시 좋은 반응을 보였다.
찬윤의 얼굴이 저렇게 활짝 웃는 걸 보는 건 드문 일이었다. 수줍은 미청년 임찬윤은 웃을 때도 어딘가 멋쩍은 듯한 미소를 지어 보이는 게 전부였으니까.
“마음에 들어요, 형?”
“마음에 들다마다. 지난번에도 그렇고, 매번 이렇게….”
찬윤은 제가 무슨 대단한 사람도 아닌데 번번이 곡을 헌정받다니, 너무 미안하면서도 고마워서 몸 둘 바를 모르겠다며 머리를 긁적였다.
“저야말로 형의 연주에서 많은 영감을 얻는걸요.”
“그건 내가 할 소린데.”
“하하. 그나저나 저 이번엔 피아노 협주곡을 제대로 한 번 써보려 하거든요.”
“그래?”
“네. 그래서 형한테 도움 좀 요청하려고요.”
3중 협주곡에도 피아노 파트가 들어가지만, 완전히 피아노 하나만을 주인공으로 하는 피아노 협주곡은 또 다르다.
서진은 협주곡 중에 피아노 협주곡을 가장 좋아했기에 전부터 꼭 한 번 제대로 써보고 싶었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피아노를 좀 더 공부해야 했다.
“아시다시피 제가 피아노에 조예가 없잖아요.”
“에이. 이 정도 곡을 쓰는데, 조예가 없긴.”
“정말이에요. 지금은 고작… 그냥 겉핥기로만 아는 정도라서요.”
전부터 하던 생각이었다. 작곡 범위를 넓히기 위해서라도 다른 독주 악기들도 연구할 필요가 있겠다고.
‘적어도 내가 써낸 악보가 어떤 느낌으로 연주되는지는 알아야 음표를 써넣을 테니까.’
그래서 일단 피아노부터 하려는 것이었다.
물론 서진이 피아노를 아예 못 치는 건 아니었다. 모든 악기의 기본이기에 작곡을 배우며 어느 정도는 배웠으니까.
덕분에 악보 역시 어느 정도 볼 줄 알았지만, 문제는 역시나 왼손 파트였다. 바이올린도 양손을 전부 쓰는 건 마찬가지지만, 양손을 제각각 연주하는 피아노는 또 다른 의미로 어려웠다.
“…흐아, 피아노. 진짜 어렵더라고요.”
서진의 엄살에 찬윤이 쿡쿡 웃었다. 천하무적인 줄 알았는데, 한서진이 못 하는 것도 있냐며.
“그럼 한 번 쳐 볼래? 내가 들어볼게.”
마침 코로나로 별다른 일정이 없어 한가하다며 찬윤이 냉큼 권했다.
물론 그의 성격상, 오히려 이때다 하고 틀어박혀 신나게 연습하는 중인지라 나름대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긴 했지만, 이 정도는 상관없었다.
“혀, 형 앞에서요? 직접 봐주신다고요?”
와, 이거 엄청나게 부담인데. 천하의 임찬윤 앞에서 피아노 연주를 해 보이라니.
“응. 부담 갖지 말고.”
“….”
아니, 부담은 둘째 치고, 이건 너무 재능 낭비가 아닌가. 전공생도 아닌 나 같은 쩌리(?)를 무려 임찬윤이 직접 지도해 준다니….
“감사합니다, 형!”
하지만 이런 천금 같은 기회를 놓칠 수야 없지.
서진은 냉큼 피아노 앞에 앉았다.
서진이 연주한 곡은 딱 피아노를 배우는 학생답게 체르니였다.
마음 같아서는 쇼팽이나 베토벤 등을 멋들어지게 쳐 보이고 싶지만, 어찌 보면 오히려 그게 더 쪽팔리는 일이었다. 어떻게 죽어라 연습하면 한 곡 정도는 칠 수야 있겠지만, 진짜 피아니스트 앞에서 너무 부끄러울 것 같다.
그래서 차라리 요즘 열심히 연습하고 있는 체르니를 쳤다. 마침 다 외우고 있었기에.
물론 악보를 다 외웠다고, 꼭 잘 치는 건 아니었다.
“…음.”
서진의 체르니(그것도 30번)를 들은 찬윤이 고개를 끄덕였다.
“너도 사람이었구나.”
“…네?”
“인간적이야.”
피아노를 무척 어려워하는 모습이 어쩜 이렇게 인간적으로 느껴지는지. 솔직히 약간 귀엽기까지 해서 찬윤은 표정 관리에 애를 먹었다.
“워, 원래 바이올린 하는 애들이 피아노 잘 못 치는 건 국룰이라고요…!”
얼굴까지 빨개진 서진이 항변했다.
본디 전혀 다른 악기를 둘 다 잘하기란 쉽지 않은 법. 피아노 좀 못 칠 수도 있지!
“푸흡, 농담이고. 생각보다 잘하는데?”
“그거야말로 농담이죠.”
“아냐. 진짜로. 근데 누구한테 배운 거야?”
“예전에 기초는 한예종 때 겸사겸사 몇몇 교수님들한테 배웠고요. 지금은 혼자 하는 중이에요.”
“혼자? 왜?”
“원래는 전공생한테 레슨을 받으려 했는데, 요즘 코로나라 그런지 잘 안 구해지더라고요. 개인적으로 아는 사람도 없고요.”
차라리 교수님들이라면 인맥으로 구할 수도 있을 법한데, 오히려 아는 사람 중에 피아노를 전공하는 학생은 딱히 없었다.
하지만 제가 피아노를 전공으로 할 것도 아닌데 교수님한테 레슨받을 것까지는 없을 것 같아 상황이 애매했다. 예전처럼 한예종에 적을 두고 있다면 모를까, 지금은 다 졸업한 마당이니.
그래서 결국은 너튜브를 보고 배우는 중이었다. 요즘은 너튜브에서도 나름 체계적으로 강의해주는 데가 많기에.
“그렇구나. 그럼 앞으로 내가 종종 봐줄게.”
“네에? 아니 그거야말로 재능 낭비…,”
“너한테 곡 받아내려는 빅픽쳐니까 절대 사양 말고. 한서진의 피아노 협주곡. 글자만으로도 해도 기대된다고.”
“….”
“그래도 뭐하면 대신 너도 나 바이올린 가르쳐 주든가.”
“아, 뭐 그야 어렵진 않은데… 형도 진짜 바이올린 해보게요?”
서진은 정말로 바이올린을 내밀며 물었다.
“아니. 그냥 해본 소리야. 난 사양할래.”
“왜요, 저도 궁금한데.”
“…만지는 것도 부담스럽다. 어차피 소리 내는 것도 못 할 텐데. 나도 대충 들어서 알고 있거든. 피아노는 그래도 두드리면 누구나 소리 낼 수 있는데, 바이올린은 완전 다르다고.”
“그건 그렇죠.”
“그리고 망가트릴까 봐 겁나서.”
아니, 무슨 그런… 피아노는 아무리 비싼 것도 잘만 내리치더니.
그 말을 하니 그가 씨익 웃으며 답했다.
“피아노는 떨어트릴 일이 없잖아. 바이올린과 달리.”“하긴. 그러네요.”
바이올린은 떨어트리면 바로 박살 나니까. 한순간에 수십억이 증발하는 참사가 일어날 수 있는 것이다.
“그래도 이렇게 서로 남의 악기 기웃대는 것만도 재밌네.”
“저도요. 형도 진짜 생각 있으면 바이올린 적당한 걸로 하나 가져올 테니 말해주세요. 자기 악기도 좋지만, 가끔 심심할 때 취미 삼아 외도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더라고요.”
“그래. 재밌긴 하겠다.”
“전 다른 악기들도 차근차근 조금씩 배워보려고요. 전부 전공생급으로 하려는 건 아니지만요.”
악기뿐 아니라 작곡 자체도 좀 더 심도 있게 공부해볼 생각이었다. 직접 곡을 작곡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좀 더 이론적 베이스를 다지기 위해 기존의 작곡가들에 대해 깊이 있게 연구해보고 싶은 것이다.
각 작곡가들마다 스타일이 다 다르니까. 바흐, 베토벤, 슈베르트, 브람스 등등….
각각 악곡의 스타일뿐 아니라, 작곡하는 스타일도 저마다 다르다. 휘갈기듯 영감으로 곡을 써 내려가는 이도 있는가 하면, 견고한 짜임으로 탄탄히 쌓아가는 경우도 있고, 그런 음악적 이론에 기반하기보다는 서정적 멜로디를 중심으로 느슨한 전개와 약간 부족한 듯한 형식미를 보여주는 스타일도 있고…,
그런 다양한 경우를 연구해 전부 제 양분으로 삼고 싶은 것이다.
“너 진짜 대단하다. 난 피아노만으로도 벅차서 다른 건 엄두도 안 나는데.”
서진의 포부에 찬윤은 질린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나보다 더한 놈 처음 본다며.
“에이, 형은 진정한 음악인이라 그렇고, 전 잡캐라서요.”
“…때려도 돼?”
서진은 재빨리 몸을 뺐다.
* * *
베토벤의 3중 협주곡을 마지막으로 뉴욕을 떠나 귀국한 한서진.
카네기 독주회부터 뉴욕 음악제, 그리고 코로나 직후 열린 3중 협주곡 공연까지.
그야말로 폭풍처럼 뉴욕 음악계를 휩쓸고 사라진 서진의 존재에 음악 애호가들은 아쉬움에 서진 앓이를 했다.
그 후로 벌써 2년째. 단 한 번도 보지 못해 다들 앓아누울 지경인 것이다.
오죽하면 한서진 음악을 들으러 한국에를 다 날아가고 싶어 안달이 났을까. 시국이 시국인 만큼 그조차 여의치 않았지만. 그곳으로 간다 한들 공연이 있는 건 아니었으므로.
그러던 와중 들려오는 단비 같은 소식이 있었다.
바로 한서진이 드디어 정규 음반을 냈다는 소식!
서진의 음반은 곧바로 미국 빌보드 클래식 음악 차트에서 1위를 차지하는 기염을 토했다.
그것도 무려, 데뷔하자마자 곧바로 1위였다. 적당히 순위권에 있다가 한두 주 후 1위에 오른 것도 아니고, 뜬금없이, 곧바로 1위를 차지한 것이다.
한국인 바이올리니스트가 빌보드 클래식 주간 차트 1위에 오른 건 서진이 이번에 첫 번째로 세운 기록이었다.
약 10년 전, 한국인 피아니스트 임씨가 베토벤 소나타 전집으로 1위를 한 기록이 있긴 했지만, 바이올린으로는 처음. 또 피아노 콩쿨로 유명한 반클라이번 대회 실황앨범으로 또 다른 피아니스트가 세운 1위 기록도 있었지만, 실황이라는, 특히 콩쿨이라는 특성을 감안하면 정규 앨범 기록은 더욱 특별한 의미를 가지는 것이다.
물론 서진 역시 실황앨범 기록으로는 이미 수도 없이 여러 번 1위를 달성해 보았다. 서진이 19년도에 콩쿨에 참여해 연주한 기록들은 하나같이 전설로 남았으니까.
그러니까, 실황앨범과 정규 앨범 둘 모두 1위를 찍은 한국인 음악가는 서진이 최초인 것이었다!
그것도 내로라하는 유명 음반사에서 제작한 레코딩도 아니고, 한국의 자그마한(?) 음반사 레이블을 달고 나온 곡으로, 미국 입장에서는 듣보잡 외국 음반인 셈인데 말이다.
-미쳤다. 한서진… 음반 작업 절대 안할 것 같이 굴더니, 제대로 터트렸구만.
-미친, 미친… 이거 누구랑 연주한 거? 실제만큼은 아니지만, 어떻게 이만큼 담아냈지?
천재 바이올리니스트로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