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 returned as a genius violinist RAW novel - Chapter 204
204화
바흐의 바이올린 소나타 1번 G Minor, BWV 1001.
첫 곡이 울려 퍼졌다.
한서진이라는 신이 내린 천재에게 뒤늦게 입덕해, 코로나의 위험에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와본 공연장.
그녀가 처음으로 한서진의 공연에 직접 와보게 된 소감은, ‘아… 그래서 그렇구나’ 였다.
그의 연주를 들어보니 알 수밖에 없었다. 팬들이 그를 왜 그토록 소중하고 귀하게 여기는지 알겠다.
믿지도 않는 신에게 감사하는 마음이 다 들었다. 같은 하늘 아래 이러한 존재를 태어나게 해 주어서. 그와 동시대에 살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행운인지.
한 백 년쯤 후에 태어났더라면 레코드로밖에 이 음악을 듣지 못했을 테고, 반대로 백 년쯤 전에 태어났다면 다 늙어 죽을 때까지 한서진이라는 희대의 천재가 세상에 등장하는 모습을 보지 못했을 테니까.
그래서 참 벅차도록 감사하고 기쁜 마음이었다.
소름 끼치도록 깨끗하게 울리는 선율에, 천상의 하모니와 같이 아름다운 화성에 전율이 일었다.
이게 고작 바이올린 한 대에서 나오는 소리라니… 그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그 소리에는 거대한 우주가 존재했다.
연주자의 이마에 흐르는 땀방울과 함께 제 눈에서도 눈물이 흐를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감동에 말을 잇지 못하고 있는 건 비단 그녀뿐이 아니었다. 꼼꼼히 착용한 마스크 너머, 관객들의 얼굴은 경탄에 물들어 있었다.
저 나이에 원로급 대가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수준이라니… 그뿐 아니라 숫제 차원이 다른 경지의 연주를 보여주고 있었다.
한서진이 연주하는 바흐는… 바흐 본인이 살아 돌아와 연주했다 해도 이보다는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강렬하게, 때론 섬세하게 울리는 선율.
마치 영혼을 달래주는 듯, 마음이 깨끗하게 정화되는 기분이었다.
분명 듣고 있는 건 감각기관인 귀일진대, 마음으로 소리가 들어온다.
눈을 감으면 펼쳐지는 바흐의 세계. 마음을 어루만지는 정결한 소리. 마음이 보드라이 어루만져지는 느낌에 계속 들어도 또 듣고 싶다.
끝없이 힐링되는 기분.
한서진의 바흐는 그런 것이었다. 그의 선율은 마음을 울렸다.
‘바흐가 이렇게 아름다웠나….’
지루하고 딱딱하다고만 생각했는데.
멍하니 무대 위를 바라보고 있는 또 한 명의 관객은, 이미 오래전부터 서진의 팬이었던지라 집에서도 하루 종일 그의 노래를 들었다. 얼마나 반복해 재생했는지, 하루 종일 같은 곡을 재생하기를 몇 달을 이어온 결과, 3살 난 제 아들조차 그의 곡의 멜로디 일부를 흥얼거릴 정도였다.
가끔은 남편이 제발 다른 것 좀 들으라며 성화를 하는 탓에 클래식 채널 내에서 랜덤으로 자동재생을 틀어놓을 때도 있었다. 그렇게 자동재생을 틀어놓은 채 집안일을 하다가도, 한서진의 연주가 나오면 곧바로 알아차렸다. 그만큼 확연히 다른 무언가가 있으니까.
하지만 그조차 실제로 듣는, 이 영혼이 울리는 소리를 백분지 일도 담아내지 못한 것이라는 걸 새삼스레 깨달았다.
무대 위의 스포트라이트를 혼자 온몸으로 받아내며, 우뚝 선 채 굳건히 연주하는 서진의 모습은 마치 저와 같은 인간이 아닌 것 같은 느낌마저 자아냈다.
자신들과 똑같은 인간일진대, 어찌 이토록 지극히 아름다운 소리를 만들어 낼 수 있는 걸까.
‘정말로 저 아이의 소리에는 끝이 없구나.’
실로 오랜만에 서진의 공연을 보러 무거운 발걸음을 옮긴 이들.
오랜 후원자인 임회장과, 어린 시절 서진의 지도를 도맡았던 김무현은 다른 관객들과는 또 다른 감회를 느꼈다.
아무리 마스크를 쓴다 해도 혹시라도 감염의 위험이 있다며, 노령의 나이에 치명적일 수 있다며 주변에서 전부 만류했지만, 임회장은 고집을 꺾지 않았다.
만약 정말로 살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면, 그렇기에 더더욱 서진의 연주를 반드시 봐야 했으니까.
늙은 회장의 눈가에 잔잔한 주름이 잡혔다.
가업을 물려받아 거대 그룹을 운영해 오길 수십 년.
그 과정에서 인간사 희노애락의 수없이 많은 일들이 있었고, 그룹의 성장만큼이나 자손 역시 번성했지만, 죽을 날을 그리 오래 남겨두지 않은 지금에 있어 그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은 오직 하나뿐이었다.
제 인생에 가장 잘한 일이 있다면, 저 빛나는 재능의 아이를 일찌감치 알아보고 적극적인 후원을 한 것이었다.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존재였지만, 임회장은 진정으로 서진을 제 자식들만큼이나 귀애했다.
‘…확실히 소리가 달라졌어.’
무현 역시 비슷한 감정을 느끼고 있었다. 이제는 제 품을 떠난 제자였지만, 여전히 자식처럼 여겨지는 서진이었다.
서진에게서 느껴지는 새로운 색채에 무현의 입술에 흐뭇함이 떠올랐다.
유학을 떠나 이자크를 사사한 탓인지, 어딘지 그의 보잉이 느껴지는 연주였다. 거기에 서진 특유의 소리가 더해지니, 소름 끼칠 정도로 아름다운 소리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영혼이 다 저릿한 느낌. 애제자의 폭풍과도 같은 성장에 무현은 더할 나위 없이 기뻤다.
더는 제 수준에서 가르칠 게 없어진 지 이미 오래.
그것만으로도 말도 안 되는 수준의 경지인데, 거기에서 또 발전하고, 또다시 더 나아간다. 이제 정말 더는 올라설 경지가 없을 것 같음에도, 매번 더욱 성장하는 제자의 모습은 경이로울 정도였다.
‘서진아…. 너를 가르친 건 내 인생에 가장 큰 보람이자 행복이었단다.’
* * *
전국 투어 첫날의 막이 오른 게 엊그제 같은데, 언제 이렇게 시간이 흐른 건지 벌써 마지막 공연을 앞두고 있었다.
참 길고도 짧은 시간이었다.
오직 홀로 긴긴 무대를 감당해야 하는 서진은 뒤로 갈수록 피로가 쌓여감을 느꼈지만, 독주회가 주는 매력에 피로도 잊고 공연에 몰두했다.
확실히 혼자서만 연주하는 독주회인 만큼, 관객들과 좀 더 생생하게 소통하는 느낌이었다.
말이 아닌 소리로 대화를 주고받는 그런 기분이랄까. 마치 영혼이 교감하듯 자신의 연주를 들려주고, 그것을 감상하는 그 행위 자체만으로 서로 대화를 나누는 것만 같았다.
‘벌써 내일이 마지막이네.’
“아들, 너무 무리하는 거 아니니?”
원래 계획했던 것보다 급작스레 일정을 더 늘렸던지라, 엄마인 그녀로서는 아들의 건강이 걱정될 수밖에 없었다.
“괜찮아요. 내일이 마지막이니 하루만 더 버티면 되는걸요.”
“내일 공연 끝나고, 무조건 푹 쉬렴. 원래 이럴 때는, 큰일 다 치르고 나서 긴장 풀리고 나면 아픈 법이야.”
“네. 알아요. 걱정 마세요.”
“우리 아들, 몸 축나지 말라고 엄마가 특별히 보양식 했어. 얼른 먹어봐.”
“어머니, 그냥 룸서비스 시키시지. 힘들게….”
“얘는! 그럴 거면 내가 뭐 하러 따라왔니?”
집 떠나 호텔방을 전전하는 게 얼마나 피곤하겠는가. 아무리 좋은 호텔이라도, 내 집만은 못한 법.
그걸 선희 역시 모르지 않았기에, 부득불 내조를 위해 지방 원정을 따라온 차였다.
그리고 선희는 잘 먹어야 기운이 난다며, 매 끼니를 직접 챙겨 주었다. 그걸 위해 호텔도 일부러 최대한 취사가 가능한 레지던스로 잡기까지 했다.
그렇게 해서라도 엄마가 만든 밥을 먹여주고 싶은 마음.
만날 거기서 거기인 호텔 밥이나 먹고 어떻게 기운을 내겠는가. 룸서비스라 해봤자 메뉴도 다 뻔했고.
그녀는 서진을 위해 해줄 수 있는 거라면 뭐라도 해주고 싶었다.
서진 역시 그녀의 마음을 알기에 만류하지 못했다. 사실 어딜 가나 비슷비슷한 호텔 음식이 지긋지긋하기도 했고.
“자, 우리 서진이가 가장 좋아하는 삼계탕이야. 얼른 먹어 보렴.”
“와…! 너무 맛있겠다! 잘 먹을게요!”
* * *
그렇게 든든히 먹고 맞이한 다음 날.
공연장으로 나선 서진은 아쉬움과 홀가분함을 동시에 느꼈다.
솔직히 힘들긴 정말 힘들었는데, 오늘로 끝이라니 해방감이 들면서 한편으로는 벌써 끝이라니 조금 아쉬운 것이다.
‘그래도 오늘만 지나면 푹 쉴 수 있으니까….’
그렇게 생각해서인가, 유난히 피곤했다. 머리도 조금 아픈 것 같고.
‘뭘 잘못 먹었나…?’
아침만 해도 아무렇지도 않았는데, 이상하게 컨디션이 점점 안 좋아지는 기분이다.
…그럴 리가 없는데. 음식엔 아무 문제 없었는데…?
어젯밤에 어머니와 같이 먹은 건 아무 문제 없었고, 마지막으로 먹은 건 아침 겸 점심이었는데, 오후 공연에 앞서 배가 너무 부르면 오히려 집중에 방해되기에 가볍게 조식을 먹은 게 전부였다.
그것도 코로나로 조식 뷔페가 운영되지 않아 룸서비스로 간단히 컨티넨탈 조식, 그러니까 빵과 커피, 주스 따위를 먹었을 뿐이었다.
상식적으로 5성급 호텔 빵을 먹고 탈이 날 일이 얼마나 있겠는가. 빵 자체가 쉽게 상하는 음식도 아닌 데다가, 만든 지 오래된 빵도 아니고 갓 구운 빵이었을 테니까. 그러니 음식 자체의 문제는 아닐 터.
처음엔 그냥 살짝 체한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점점 머리가 아파지면서도 정작 속이 메슥거리지는 않았다.
순간 드는 생각.
‘…혹시 코로나?’
하지만 이제 잠시 후면 곧바로 무대에 나갈 시간인데, 지금 당장 컨디션이 별로라고 당장 모든 걸 멈추고 PCR 검사를 해 보네 마네 난리를 칠 수는 없었다. 어차피 공연 시작 전까지 결과가 나오지 않을 테니까.
‘하지만 정말이면 어쩌지….’
고작 이 정도 상황으로 시작 직전에 공연을 취소할 수는 없고, 그렇다고 무시한 채 강행하자니 이건 결코 제 컨디션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아.
잠시 고민하던 서진은 이내 가방에 간이 키트를 챙겨 다닌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일단 이걸로 해 봐서 두 줄이 뜨면 관계자에게 알리고 대책을 취해야겠지.
하지만 간이 키트로는 일단 음성이었다. 십여 분 만에 나온 결과이니 정확도가 떨어지는 게 문제지만, 다시 해볼 시간은 없었다.
검사에 걸리는 시간도 시간이지만, 당장 여분 키트가 없다. 이제 십 분 후면 공연 시작이기에 시간적 여유도 없었다.
똑똑.
“한서진 씨. 준비 다 되셨나요?”
문밖에서 공연장 직원이 확인차 묻는 소리가 들렸다.
“…아. 예. 그런데, 약간 문제가 있어서요.”
서진은 문 너머를 향해 답했다. 일단 상황을 알리기는 해야 할 것 같았다.
“예? 문제라니, 무슨…? 잠시 들어가도 될까요?”
“아뇨. 죄송한데, 이대로 이야기할게요. 혹시 몰라서요. 제가 지금…,”
자초지종을 설명한 서진은 관계자의 대답을 기다렸다.
상대 역시 어찌해야 할지 몰라 난감했는지, ‘잠시만요’라고 하더니 여기저기 통화를 시도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러다 안 되겠는지, 직접 가서 윗선과 의논해 보겠다며 어디론가 뛰어가는 듯한 발소리가 크게 울렸다.
잠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되돌아온 그가 밖에서 다시 말을 건넸다.
“한서진 씨. 제가 알아본바, 현재 방역 지침상….”
천재 바이올리니스트로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