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 returned as a genius violinist RAW novel - Chapter 205
205화
길지 않은 말의 결론은 이러했다. 일단 간이 키트로 음성이 나온 이상 공연 진행 자체는 문제없다고.
하지만,
“한서진 씨, 정 걱정이 되신다면 공연을 잠시 늦추고 인근의 병원을 다녀오는 것도 괜찮습니다. 관객들에게 양해를 구하면 될 테니까요. 한데 동네 병원에 가도 당장 결과가 나오는 검사가 간이 키트 뿐이라… 별 차이 없을 거라서요.”
물론 같은 간이 키트라도 서진이 직접 한 것과, 병원에서 의사나 간호사가 해준 것의 신뢰도는 다를 수 있겠지만.
“그보다, 컨디션은 어떠신지요. 지금은 검사 결과보다는, 한서진씨 본인의 컨디션이 공연을 강행하기에 괜찮으실지가 문제인 것 같습니다. 지금으로서는 방역 지침상 공연을 반드시 취소해야만 하는 사유는 없으니까요.”
한 마디로 버틸 만하냐. 코로나 상황이 아니더라도, 컨디션을 이유로 공연을 취소해야 할 만큼의 문제는 아닌지 묻는 것이었다.
“예. 코로나 우려만 아니라면, 이 시점에 펑크를 낼 만큼 몸이 안 좋은 건 아니에요.”
“그럼 한서진 씨 편하신 대로 결정해 주시면 될 것 같습니다.”
잠시 고민하던 서진은 그럼 일단 이대로 진행해 보겠노라 답했다.
이미 시간이 살짝 지체되어 밖에서는 기다리는 관객들의 웅성거림이 커지고 있었다. 현재로서는 코로나도 아닌데, 머리 좀 아프다고 이 많은 사람들을 바람맞힐 수는 없는 것이다.
일단 아니라고 믿고 버텨 보고, 공연이 끝나자마자 제대로 PCR 검사를 해보는 게 낫겠지.
다행히 독주 공연인지라 다른 누군가와 마주칠 일은 없었다. 마스크도 쓴 채로 연주하는 데다가, 무대와 객석은 워낙에 거리가 멀었기에 설령 양성인 상태라 해도 전염의 위험은 없는 것이다.
약 5분 정도 공연 시작이 지연된 것 말고는 일단은 별문제 없는 출발이었다.
문제라면 그저 서진의 컨디션이 무척 안 좋다는 정도.
어쩐지 점점 열도 오르는 것 같다. 갈수록 아파지는 머리 탓에 눈을 뜨고 집중해 있기도 힘들었지만, 서진은 이를 악물고 무대 위에 섰다.
‘이것까지는 어떻게든 끝내야 해.’
쏟아지는 박수갈채 속에, 서진은 단단히 다짐하며 활을 들어 올렸다.
* * *
실로 마지막까지 완벽한 무대였다.
오늘이 길고 긴 투어 일정의 피날레를 장식하는 무대인 것을 아는 관객들은, 유독 아쉬움을 가득 담아 커다란 박수갈채를 보냈다.
끝없이 이어지는 박수 소리. 서진은 수도 없이 허리를 숙였다 폈다 하며 인사로 보답했다.
‘앵콜을 해야 하나….’
관객들은 그저 열광했지만, 서진에게는 상당히 인고의 시간이었다.
원래도 바흐의 무반주 전곡 연주는 자신과의 싸움에 가까운 행위였다.
솔직히 바이올린을 조금 아는 사람이라면,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제 손에 쥐가 다 나는 기분이랄까.
웬만한 바이올리니스트라면, 정작 야심 차게 무대에 올라 놓고는 내가 이 짓을 왜 한다고 했을까 곧바로 후회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의 그런 힘든 일인 것이다.
그런데 컨디션도 안 좋은 마당에 오직 정신력으로만 긴장을 유지한 채 버텼으니, 이제는 정말 한계였다.
짝짝짝짝짝짝짝짝짝짝!!
박수 소리가 계속 이어졌다.
보통 이러한 종류의 공연은 연주자의 체력을 워낙 많이 빼앗아 가기에, 앵콜을 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혼자 두세 시간을 쉬지 않고 연주를 했는데, 앵콜을 할 기력이 남아날 리가.
그래서 서진 역시 완곡한 뜻을 표하며, 무대 뒤로 돌아갔다가 다시 나올 때는 바이올린을 들지 않고 나타났다.
짝짝짝짝짝짝짝짝짝짝!!
그럼에도 박수 소리는 계속 이어졌다. 바이올린을 들고 오지 않은 것으로 보아 관객들 역시 못 알아들은 건 아니었으니, 이 박수는 앵콜을 요구하는 박수가 아닌, 오롯이 혼자 이 드넓은 무대를 꽉 채운 서진의 소리에 대한 찬사의 표시였다.
그나마 다행이었다.
그렇게 끝까지 이어지는 박수를 받으며, 다시 한번 마지막 인사를 하고 돌아가기 위해 숙였던 몸을 일으킨 그때,
휘청.
갑자기 눈앞이 핑 돌았다.
마치 회귀 전 그때, 마지막 순간, 눈앞이 까맣게 물들며 죽음을 맞이했던 그 순간처럼,
그와 똑같이 눈앞이 암흑으로 물들었다.
쿵…!
* * *
서진이 공연 직후 쓰러졌다는 소식에 세상이 발칵 뒤집혔다.
코로나 초기와 달리 지금은 확진자가 나왔다고 해서 예전처럼 호들갑을 떨거나 하는 상황은 아니었지만, 그 대상이 ‘한서진’이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한서진 공연 직후 쓰러졌대!
-기사에서 봤는데 무슨 일이래?
-설마 코로나?
└코로나면 공연을 못 열었지.
└공연장 측에서 밝힌 바로는 코로나 음성이었다는데?
└그럼 왜 쓰러진 거야?
-아 솔직히 너무 무리다 싶긴 했음. 나도 전공해 봐서 아는데, 저거 전곡 연주, 진심 사람 잡는 짓거리임… 근데 그걸 한두 번도 아니고 전국 투어라니. 코로나인지 아닌지는 몰라도 안 쓰러지는 게 이상한 일임…
-헐. 나 그 자리에 있었는데, 진심 놀랐음… 진짜 갑자기 실 끊어진 인형마냥 픽 쓰러지는데…
└나도 진심 깜놀. 연주할 때까지만 해도 진짜 아무렇지도 않아 보였거든? 근데 갑자기…,
└지금 생각해 보니 안색이 안 좋아 보이긴 했음. 그냥 힘들어서 그런 줄 알았는데….
특히 공연을 보러 왔다가 그 자리에서 그걸 실시간으로 목도한 팬들의 충격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공연 잘 듣고 열심히 박수를 치고 있었는데, 갑자기 서진이 무대에서 쓰러져 응급차가 달려오고….
그 난리통을 겪은 이들의 생생한 증언이 더해지며, 기사는 일파만파 퍼져나갔다.
-지금 후속 기사 나온다. 응급실 이송 후 검사 결과 코로나는 음성이라네.
└그럼 그냥 무리해서 쓰러진 건가?
-우리 서진이 아프면 안대ㅠㅠ 아프지마ㅠㅠㅠㅠ 코로나면 어뜨케ㅠㅠㅠㅠ
└코로나 아니라잖아.
└그런데 처음에 음성 떴다가 나중에 양성 뜨기도 하니까 아직은 모르지.
-어디서 들은 소문인데 한서진 지병 있다는데. 코로나 걸리면 중증으로 안 갈지 걱정이네.
└읭? 그런 게 있었어?
└몰라. 나도 카더라 소문 들은 거야. 어디서 흘러나온지는 모르겠는데…
└나도 들었음. 지병 때문에 백신도 못 맞았다고. 저번에 도이치 그라모폰 레코딩 취소된 것도 백신 미접종으로 출국 못 해서 그렇다더라.
└아, 유럽쪽 투어 하려다 말았다는 그거?
└근데 그거 제한 이제 풀리지 않았어? 유럽 첨에 빡시게 난리치더니 이제 완전 개판나서 그냥 방역 구멍이던데. 왜 다시 녹음하러 안 가지?
└아무튼 그때는 그랬으니까. 어차피 계약 취소한 거 코로나 다 끝나면 천천히 다시 잡으려나 보지.
-근데 한서진 지병 뭔데?
└모름. 근데 있긴 있는 듯. 왜, 예전에 한서진 이성그룹이랑 관계있는 거 아니냐는 소문 있었잖아. 그거, 한서진 지병이 이성 그룹에 대대로 내려오는 거랑 똑같아서 그런 소문이 났던 거라는데…
└이성그룹 지병은 뭔데?
└모르지. 이성 측에서 병명을 정확히 밝히지 않았으니까.
└소문으로 듣기로는 CMT 비슷한 증상이라던데? 재벌들 검찰 출두할 때 휠체어 신공하는 거 이성은 쌉인정이라고. 진짜로 못 걸어서….
└ㅇㅇㅇ 나도 그렇게 알고 있음. 대충 비슷한데, CMT보다 좀 더 심각한 것 같더라. 더 드물기도 하고. 특히 나이 들수록 몸이 점점 굳어간다는데….
└헐… 한서진 진짜 그거면 나중엔 연주 아예 못하는 거야?
└어차피 다 카더라니까 괜히 넘겨짚지 말자…. 사실인지 아닌지도 아직 모르잖아.
-그나저나 지병 있으면 코로나 걸리면 더 위험한 거 아냐?
└ㅎㄹ 그러게….
└호들갑은… 요즘 코로나 걸린다고 안 죽음. 변이의 변이의 변이로 약화돼서 그냥 독감 수준이라던데.
-나 걸려봤는데 죽는 줄…. 목구멍에 면도칼 들어온 줄….
└나도. 열도 펄펄나고, 온몸이 두들겨 맞은 듯 몸살 대박이었음….
다행히도 공연장에 와 있던 사람들에 대한 감염 우려는 아무도 하지 않았다. 어디에서 확진자가 나와도 이상하지 않은 시기였기에, 마주 앉아 같이 밥 먹고 수다 떤 사람이 확진된 경우가 아니면 신경 쓰지도 않게 된 것이다.
하루 감염자 수십만 명. 전 국민의 반 정도가 걸릴 만큼 대유행까지 온 상황은 아직 아니었지만, 처음의 공포는 많이 가신 상태였다.
초기의 오리지널 코로나는 그만큼 독해서 위중한 상황으로 가는 경우가 많았던 데 비해, 지금의 변이 코로나는 감염력이 높아진 대신 상대적으로 증상이 약해졌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런 것과 관계없이, 한서진이 쓰러졌다는 소식만으로도 팬들은 많은 걱정을 보내왔다. 거기에 더해 지병에 대한 원치 않는 관심까지.
* * *
“…아.”
하얗고 삭막한 인테리어를 보니 병원이구나 싶었다.
“서진아!”
“엄마….”
어떻게 된 거냐 물을 것도 없었다.
눈앞이 까맣게 물들며 의식이 사라진 게 마지막 기억이었으니까. 보나 마나 병원에 실려 왔겠지.
“서진아, 괜찮니!?”
“저, 뭐래요? 코로나래요?”
깨어나자마자 묻는 소리가 이거였다. 이 와중에 그게 그렇게 걱정일까 싶어서 선희는 마음이 아팠다. 하필이면 공연장에서 쓰러졌으니 혹시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줬을까 봐 걱정이겠지.
“차라리 그런 거면 다행이지. 왜 쓰러졌는지 알기라도 할 테니까… 일단은 음성이야.”
간이 키트로도 그랬지만, PCR로도 재차 음성이었다. 시국이 시국인지라 일단 코로나 검사 결과가 나와야 일반 병동으로 갈 수 있기에, 이제껏 따로 격리 병동에 있다가 막 병실을 옮긴 참이었다.
“…그렇군요. 저 얼마나 이러고 있었어요?”
기운이 하나도 없는 소리로 서진이 물었다.
“오래 안 됐어. 하루 정도.”
말로는 겨우 하루였지만, 꼬박 그 하루 동안 얼마나 걱정했는지 모른다. 아들에게 무슨 일이 생길까 봐. 큰일이라도 난 걸까 봐.
서진이 일어났다는 소식에 오래지 않아 의사가 들어왔다. 오래전부터 봐 온 익숙한 주치의였다.
“한서진씨. 일어나셨군요. 좀 어떠십니까?”
“머리가 아픈 것 빼고는 괜찮은데… 왜 갑자기 그렇게 된 건지 모르겠네요. 점점 두통이 심해지더니 갑자기 눈앞이 핑 돌았는데….”
“일단은 피로가 누적된 게 가장 큰 원인인 것 같습니다. 거기에 더해 코로나 때문일 수도 있고요.”
“코로나요?”
“다시 검사하니 양성이더군요.”
“아….”
계속 음성이더니 여러 번 검사 끝에 결국 양성이 뜬 것이다. 특이한 케이스지만, 아예 없는 경우는 아니었다.
“한데 쓰러졌을 때의 증상이 코로나 때문인지는 확실치 않습니다. 그때부터 이미 증상이 발현되었던 건지, 아니면 그때까지는 아직 잠복기였는데 다른 이유로 머리가 아팠던 건지 알 수 없으니까요.”
사람은 단순히 피로와 스트레스만 누적되어도 발열과 두통 등의 증상을 겪을 수 있으니까.
혹은, 아예 다른 이유가 있을 수도 있고.
천재 바이올리니스트로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