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 returned as a genius violinist RAW novel - Chapter 207
207화
비서를 통해 서진이 쓰러졌다는 소식을 듣게 된 지연은 무슨 정신으로 공연을 치렀는지 기억도 잘 나지 않을 만큼 한동안 혼이 나가 있었다.
그러다 이제 괜찮다는 연락을 서진으로부터 직접 받고는 그제야 조금 안정을 찾았다.
하지만 여전히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지병도 있는데… 상태가 위중해지기라도 하면 어쩌지?
아냐. 괜찮을 거야. 사망률은 노령에서나 유의미한 수준이고, 젊은 사람들은 대부분 별일 없이 넘어가니까.
…아니, 그런데 또 오히려 아주 젊고 건강한 사람들 중에서도 위독해지는 경우가 나온다는데… 사이토카인 폭풍인가 뭔가, 팔팔하게 젊은 사람들도 갑자기 훅 간다고….
게다가 서진은 백신도 안 맞지 않았는가. 걱정이 되어 견딜 수가 없었다.
나흘간의 공연을 마친 지금, 지연은 남은 일정이고 뭐고 당장 한국에 달려가고 싶어 마음이 급했다.
하지만 아직도 남은 스케쥴이 많았다. 기본적으로 공연 뒤풀이 파티에 인터뷰에, 실황녹음도 동시에 진행한 만큼 레코딩 관련해 체크할 것도 있고, 또 오랜만에 유럽에 온 김에 만나고 돌아가야 할 인맥들도 제법 있었다.
일단 어쩔 수 없이 뒤풀이 파티에 참석해 있긴 한데, 솔직히 주변이 제대로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잔을 든 채 영혼이 없이 웃으며 응대하고 있을 뿐.
하지만 그런 지연의 속마음이 어떻든 간에, 매우 성공적인 공연을 마친 그녀를 둘러싸고 사람들은 연신 말을 걸어왔다.
언제 그렇게 빡빡한 방역지침을 자랑했었냐는 듯, 이제 코로나고 뭐고 그동안 못다 한 파티에 대한 한이라도 풀듯 다들 신나 있었다.
물론 모두 마스크를 쓰고 있긴 했다. 그 점이 지연으로서는 표정을 가릴 수 있어 퍽 다행이었다.
“정말 멋진 공연이었습니다, 미스 서.”
“감사합니다, 마에스트로.”
“역시… 여제의 뒤를 잇는 새로운 천재의 등장이라는 기대가 무색하지 않더군요!”
장경화는 한국인 연주자들 중에서 특히 런던에서 무척 인기가 많은 바이올리니스트였다.
2500석 규모의 로열 페스티벌 홀이 전석 매진되었을 만큼. 물론 한 칸씩 띄어 앉기로 인해 실제로는 절반만 찬 것이었지만, 대신 공연 기간을 평소의 두 배로 늘렸기에 결국 관객 수로는 마찬가지였다.
덕분에 이틀 할 공연을 나흘 동안이나 반복했으니 연주자로서는 쉽지 않은 일정이었지만, 이미 그렇게 계획되었던 무대에 대타로 선 탓에 지연 역시 그대로 일정을 소화해냈다.
처음의 티켓 판매는 어디까지나 장경화의 이름 덕이었지만, 공연을 성황리에 마칠 수 있었던 것은 결국 지연의 공이었다.
심지어 어떤 사람은 대타로 서지연이 나온다고 해서 더 기대했다고 할 정도로. 그리고 그 기대는 그대로 현실로 이어졌다.
지연은 세계적 거장인 장경화를 대신해 연주한다는 것에 상당한 압박을 느꼈었지만, 그런 부담감이 무색하게도 관객들은 그녀의 연주에 무척이나 매료되었다.
얼마 전, 메세나상 수상식 기념공연의 연주 영상으로 장경화와 나란히 세계적 스타가 된 지연의 존재는, 그 자체로 이미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는 존재였다.
“한 가지 무척 궁금한 게 있답니다. 미스 서도 그렇고, 경화 장도 그렇고, 피아노나 현악 주자들 중 특히 한국인들이 뛰어난 기량을 보이더군요. 그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나요?”
서진에 대한 걱정으로 영혼 없이 인사치레 멘트만 반복하던 지연은 순간적으로 말이 막혔다.
“글쎄요….”
다른 한국인들은 모르겠지만, 적어도 자신의 성장에 무엇이 가장 큰 영향을 미쳤는지는 확실히 알았다.
“예전에 누군가 답했던 것처럼 한국인들이 젓가락을 사용하는 덕분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저어도 제 경우는… 아마도 한서진이라는 넘을 수 없는 존재의 옆에서 함께하다 보니 절로 이렇게 된 게 아닐까 싶네요.”
…그래. 그거면 충분하다.
한서진은 바이올린과 결혼한 인간이니, 이 이상은 바라지 말아야지.
“장경화 선배님이 저를 이끌어주신 좋은 멘토라면, 친구인 서진은… 평생의 목표이자 높다란 벽 같은 존재니까요. 그렇게 다른 한국인분들도, 저처럼 좋은 멘토와 선의의 라이벌인 친구들을 둔 덕분이 크겠죠. 아, 물론 제가 서진의 라이벌 급이라는 뜻은 결코 아니지만요.”
솔직한 답변에 사람들이 까르르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하. 미스 서는 말을 참 재치있게 하는군요.”
또 다른 누군가가 그의 말을 받았다.
“저는 미스 서의 연주가 미스터 한의 그것에 미치지 못한다고 결코 생각하지 않습니다. 미스 서에게는 그대만의 매력이 있으니까요. 하지만 그 말을 들으니 언젠가 두 분이 함께하는 공연을 기대하고 싶어지는군요.”
한국에 있는 서진이라면 지금쯤 어쩐지 귀가 가렵다고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며 지연은 매끄럽게 미소지었다. 생뚱맞게 서진의 이야기를 꺼낼 생각은 없었는데, 답을 하다 보니 저도 모르게 그에 관한 이야기가 나와버렸다. 제 음악 인생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존재는 누가 뭐래도 서진이었으니까.
‘서진이 괜찮을까….’
* * *
그렇게 남은 일정을 바삐 마친 지연은 귀국하기 위한 준비에 서둘렀다.
“다 되었습니다.”
한국도 이제 입국 전 PCR 검사가 음성으로 뜨면 귀국 후 격리가 면제되었다. 그걸 위해 미리 신청해 놓은 PCR 검사 서비스.
병원에서 파견 나온 간호사가 호텔에 직접 방문해 검체를 채취해 가는 것을 끝으로 지연은 돌아갈 준비를 완료했다.
내일이나 모레쯤이면 검사 결과가 나온다 했으니, 그것만 확인하면 끝이었다. 이제 며칠 후면 정말 한국에 갈 수 있는 것이다. 한데 그 이삼일이 왜 이렇게 길게 느껴지는 건지….
그런 생각을 하며 미리미리 짐을 정리하고 있는데, 핸드폰이 울렸다. 국제 전화, 발신자는 한국에서 간간이 그녀의 일을 챙겨주는 이성 그룹 소속의 비서였다.
한데 해외에 체류 중일 때는 딱히 연락할 일이 없는데….
“여보세요.”
-안녕하세요. 저 김비서입니다. 다름이 아니라…,
급한 일이 있어 연락드리게 되었다는 비서의 말에 지연은 덜컥 불안해졌다.
“무슨… 일이죠?”
-그게… 이성 병원에서 온 연락입니다.
다급한 목소리에 심장이 쿵 떨어지는 기분이었다. 서진이 입원해 있는 병원에서 올 긴급한 연락이라면….
* * *
“임회장님이… 타계하셨다고요?”
여전히 병원에 입원해 한가한 시간을 보내고 있던 소식은, 전혀 예상치 못하게 들려온 소식에 깜짝 놀라 벌떡 일어났다.
-예. 어젯밤 영면하셨습니다.
“….”
방금 들은 말이 믿기지 않아 서진은 멍하니 눈만 깜빡였다.
분명, 바로 얼마 전 자신의 공연에까지 찾아와주실 정도로 정정하지 않으셨던가. 왜 갑자기…?
“혹시…?”
서진이 불안한 목소리로 물었다. 괜히 무리해서 공연장에 찾아오셨다가, 코로나에라도 걸린 것이라면….
-아닙니다. 오랜 지병이 있으셨습니다.
코로나는 아니라며 조심스레 꺼낸 비서의 설명.
그 나이의 노인들이 으레 그렇듯, 임회장 역시 지병 하나둘은 기본 옵션이었다. 그나마 돈과 권력이 있기에 그 나이에도 건강을 철저히 관리해 지금까지 비교적 건강히 버틸 수 있었던 것.
사실 서진의 회귀 전 생에서, 임회장은 이것보다 훨씬 일찍 사망했다. 이번 생에서는 서진으로 인해 그보다 오래 살게 된 것일 뿐.
하지만 원래 이 나이에는, 특별한 이상이 없다가도 잠이 들었다 두 번 다시 눈을 뜨지 못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마치 잠이 들 듯 찾아오는 죽음.
그러니까, 누가 봐도 호상이라 할 수 있는 일이었다.
-주무시다 편히 가셨습니다. 전날 밤, 잠자리에 드실 때까지도 아무렇지 않으셨거든요.
“…그렇군요.”
그런데 왜 이렇게 슬픈 마음이 드는 걸까. 노인에게 호상은 가장 큰 축복이라던데….
아니라 생각했지만, 은연중에 많이 의지했나 보다. 성인이 된 후로는 특별히 후원받은 건 없었지만, 든든한 버팀목이자 늘 소소하게나마 자신을 챙겨주는 존재로서.
“지연이는… 오고 있나요?”
-예. 때마침 귀국을 앞두고 있던 때라, 비행시간을 고려해도 발인 전까지 도착할 수 있다고 합니다.
“…다행이군요.”
* * *
임회장의 장례식은 코로나 와중임을 고려해서인지, 재벌 총수라는 사회적 지위에 비해 그리 요란스럽지 않게 치러졌다.
친분 있는 가까운 이들 외에는 조문객을 받지 않은 채, 언론 노출도 극히 제한하며 거의 비공개로 치러진 장례.
일단 비서에게 연락을 받았던 서진은 혜연을 통해 다시 정식으로 부고를 전달받았다. 괜찮다면 부디 아버지의 마지막 길을 배웅해 주면 고맙겠다는 정중한 부탁이었다. 아버지께서 서진 군을 특별히 여기셨으니, 와주면 몹시 기뻐하실 거라고.
아직 회복 중이긴 하지만, 코로나로 인한 격리 기간은 끝났기에 장례에 참석하는 데에는 문제없었다. 선희와 함께 발걸음하기로 한 서진은 의복을 단정히 가다듬었다.
“서진아, 컨디션은 좀 어떠니?”
“괜찮아요. 아직 조금 증상이 남아있긴 한데, 원래 조금 오래 간다고들 하네요.”
정확히 말해, 증상이라기보다는 후유증이 살짝 남았다.
원래 코로나 후유증이 이런 건지, 자신이 지병이 있어서 그런 건지는 몰라도 가끔 손끝이 저릿한 느낌이 있었다.
주먹을 쥐었다 폈다 하며 감각을 확인한 서진은 별문제 없노라 선희를 안심시켰다.
* * *
지연은 이번에야말로 무슨 정신으로 귀국했는지 모를 지경이었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니….
서진의 일이 아닌 건 다행이었지만, 이건 정말 전혀 예상치 못한 소식이었기에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와병 중이신 것도 아니었기에, 막연히 앞으로도 쭉 정정히 오래도록 사실 거라고만 생각한 것이다.
“…지연아.”
어머니와 함께 와 조문을 마친 서진은 그대로 돌아가지 않고 장례식장에 남아있었다. 지연을 기다리기 위함이었다.
“지연이 왔구나.”
“서진아…. 엄마.”
안에서 나온 혜연이 서진과 함께 지연을 맞이했다. 그녀는 상당히 초췌한 표정이었다.
“오느라 고생했겠구나.”
“아니에요.”
“일단 들어가서 할아버지부터 뵙자꾸나.”
이렇게 와주고 자리를 지켜줘서 고맙다며 그녀가 서진에게 작게 인사했다. 당연한 일이라고 고개를 흔들며 답한 서진은, 스쳐 지나가는 지연의 손을 살짝 잡았다 놓았다.
전해져 오는 온기에 지연의 눈가에 물기가 어렸다.
이제야 실감이 나는 할아버지의 죽음.
하얀 국화에 둘러싸인 영정사진 앞에서, 그에게 가장 많은 사랑을 받았던 막내 손녀는 결국 울음을 터트릴 수밖에 없었다.
* * *
서진은 그 후로 한동안 별다른 활동을 하지 않은 채 휴식을 취했다.
코로나를 앓은 후이니 천천히 컨디션을 회복할 필요도 있었지만, 임회장의 타계가 주는 충격이 꽤 오래 간 탓도 있었다.
서진도 그럴진대, 지연은 말할 것도 없었다. 둘 다 한동안 대외활동을 접은 채 조용히 시간을 보냈다.
그 기간 동안 서진은 임회장을 위한 추모곡을 작곡했다. 머잖아 있을 49재 추모 공연에서 헌정하기 위함이었다.
천재 바이올리니스트로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