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 returned as a genius violinist RAW novel - Chapter 210
210화
“후, 정말로 이름 들어본 이들은 다 모여있는 정도네. 근데 연주자도 많지만, 관객은 더더욱 많은 것 같던데.”
“그러게요. 이렇게나 관심이 모일 줄은 몰랐는데….”
정말로 사람들이 왜 이렇게 많은지 의아할 정도였다. 심지어 한눈에 봐도 외국인인 사람도 상당히 보이는 게….
“아, 이성이 글로벌 그룹이니 행사에 참석하러 외국에서도 왔나 보네요. 이성 그룹의 해외 임원들이라거나…,”
“그럴 리가. 그냥 너 때문이라니까.”
“아니 아까부터 제가 뭘….”
“응. 맞아. 한서진 때문이야.”
“…에이, 설마요.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아무리 그래도 이건 회장님의 추모 공연인데, 이 코로나 와중에 제대로 된 자신의 콘서트도 아닌 공연을 보러 사람들이 저 멀리서 날아오겠는가.
“….”
찬윤은 나보다 더한 놈… 하고 생각하며 포기했다.
그래, 뭐. 진실이 뭐가 중요하겠는가.
* * *
드디어 추모제 공연이 시작되었다.
연주에 앞서 서진은 연주자들을 대표해 고인을 위한 헌사를 읊었다.
“고인께서 주신 가장 큰 선물은…, 비단 … 뿐만이 아니라, 그 무엇보다 세계 무대에서 연주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었습니다. 지금도 가끔 떠오르는 말씀이 있습니다. 회장님께서는…, 늘 그렇게 함께 옆에 계신 존재로서…, 그분께서 애써 오신 젊은 예술가를 위한 노력들이 이후에도 지속되기를 바라며…,”
추첨으로 배부된 자리 외에, VIP를 위해 따로 마련된 자리에는 유족을 비롯해 정·재계 및 문화계의 유명 인사들이 두루 앉아 있었다. 그들은 진지한 표정으로 헌사 낭독에 귀 기울였다.
그들뿐 아니라, 일반 관객들 역시 분위기에 휩쓸려 제법 진심 어린 표정이 되었다. 아무리 이 자리에 온 이유가 따로 있다 한들, 고인을 추모하기 위해 모인 음악가들의 연주를 들으러 와서는 그 본연의 목적에 대해 전혀 나 몰라라 할 수는 없는 노릇인 것이다.
덕분에 절로 모든 사람이 한마음으로 잠시나마 고인을 생각하게 되었다. 그거면 된 거였다.
첫 곡은 서진이 직접 작곡한 추모곡이었다.
부제는 [소풍].
서진의 지휘에 오케스트라가 고요히 선율을 연주하기 시작했다.
오케스트라의 연주가 점점 웅장해지는 가운데, 청아한 피아노 음이 퍼져나갔다.
피아노 협주곡은 아니지만, 피아노 파트도 있는 곡이었다. 서진의 부탁에 피아노는 찬윤이 맡아주었다. 찬윤의 손끝이 건반을 두드릴 때마다 투명한 물방울이 떨어지듯 아름다운 음색이 또렷하게 장내를 울렸다.
추모곡으로 작곡된 작품이지만, 단조가 아닌 장조의 곡이었다. 차분하고 고요히 가라앉는 느낌보다는, [소풍]이라는 부제에 맞게 인생을 아름다운 소풍에 빗대어 표현하고자 함이었다.
상투적인 표현이지만, 그만큼 어울리는 것이 또 없었다. 이 곡을 듣고 있는 이라면 누구라도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을 일이었다.
한바탕 신나는 소풍을 즐기고 떠나는 생.
인생 중의 여행이 다 그렇듯 그 가운데 어려움도 슬픔도 있지만, 결국 그 모든 게 추억으로 남는 법이다.
본디 지난 일은 빠르게 미화되곤 한다. 특히 고인이 된 사람은 더더욱.
이제는 추억으로 남아버린 고인을 떠올리며 유족들은 눈물을 글썽이는 대신, 입가에 잔잔한 미소를 머금었다.
그리 길지 않은 곡이 끝나자 잔잔한 박수 소리가 터져 나왔다. 공연의 특성상 감동과는 별개로 열광의 도가니가 펼쳐지지는 않았지만, 그 절제된 박수갈채로도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이 곡이 모두의 뇌리에 뚜렷이 박혔다는 것을.
이후의 곡은 추모제와 상관없이 평범한 연주들이었다. 한 가지 특이한 것은, 서진의 연주가 매 순서 거의 빠지지 않고 포함되어 있다는 것.
오케스트라가 퇴장하고, 함께 무대 뒤로 들어갔던 서진이 지연과 함께 다시 나왔다.
이번 순서는 차이코프스키에서 공동 우승을 차지한 ‘한서진 & 서지연’의 듀엣 연주였다.
원래는 언젠가 따로 콘서트를 열어 지연과 듀엣 공연을 하려 했던 것인데, 그걸 이런 자리에서 하게 될 줄은 몰랐다. 단순히 공동 우승자라는 이유보다도, 지연이 임회장의 유가족이기에 더욱 의미 있는 연주인 것이다.
모차르트의 클라리넷 협주곡.
그걸 두 대의 바이올린 버전으로 편곡한 곡. 예전에 서진과 지연이 언젠가 임회장의 앞에서 연주했던 곡이었다.
그 때문인지 고인은 생전에 이 곡을 가장 좋아했다고. 특히 오래전 둘이 함께 했던 연주를 닳고 닳도록 들었다고 한다.
피아노는 역시 찬윤이 맡았다. 피아노 반주에 맞춰 두 대의 바이올린이 노래를 시작했다.
같은 곡이었지만, 그때와는 사뭇 다른 느낌의 연주였다. 약 십 년 전, 아직 앳되고 풋풋하던 시절의 연주와 달리, 지금은 보다 더 성숙하고 깊어진 소리가 났다.
그때의 연주는 그때 나름의 매력이 있었고, 지금은 또 지금의 분위기가 있었다. 무엇이 더 낫다 딱 잘라 말하기엔 취향 차이가 있겠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음악적으로는 지금이 훨씬 성장해 있다는 것.
그건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었지만, 오래전의 그 연주를 기억하는 누군가에게 있어서는 상당히 흐뭇한 일이었다.
어리던 두 소년 소녀의 성장을 지켜본 산증인이나 마찬가지인 두 어머니들. 혜연과 선희는 멀지 않은 자리에 함께 앉아 자식들의 연주를 기꺼이 즐겼다.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선희는 혜연과는 또 다른 마음으로 고인을 떠올렸다.
제 아들의 성장에 고인이 큰 역할을 한 것은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가까운 일가친척은커녕 아버지조차 없는 서진에게, 할아버지와 다름없는 역할을 해준 고마운 존재가 아닌가. 조금 더 오래도록 사셨으면 좋았을 텐데….
짝짝짝…!
차분한 박수 소리가 가라앉자 다음 곡이 시작되었다. 하나같이 명곡 중의 명곡들로만 구성된 연주였다.
생상의 서주와 론도 카프리치오소. Op.28.
무대 뒤에서 지연의 독주를 들으며 서진은 입꼬리를 살짝 끌어올렸다.
지연이, 정말 잘하는구나…. 회장님이 정말 좋아하시겠다.
쭉쭉 뻗어 나가는 선율이 영혼에 닿는 느낌이다. 지연이 어떤 마음으로 연주하고 있는지 얼추 알 것만 같은.
숨 막히는 듯한 바이올린의 선율도 선율이지만, 반주를 하고 있는 피아노 역시 만만치 않았다. ‘역시 찬윤이 형…’이라는 말이 절로 나올 만큼 귀에 박히는 맑은 울림이었다.
최고와 최고의 만남.
서진은 그렇게밖에 평할 수 없었다.
* * *
그 후로도 길고 짧은 곡이 여럿 연주되었다.
그중 대부분이 서진의 연주를 포함한 것이었다. 일부러 그러려고 했던 것은 아닌데,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되었다.
일단 서진이 작곡한 곡이 많다 보니 절로 그럴 수밖에 없었다.
얼마 전 작곡한 3중 협주곡. 언젠가 찬윤과 하윤과 함께 공연할 것을 염두에 두고 쓴 곡이었는데, 이 자리에서 하게 될 줄은 몰랐다.
또, 이지영 선배와의 듀엣 연주도 있었다. 한국인 최초, 그리고 최연소로 퀸엘에서 1위를 차지한 이들의 듀엣 역시 엄청난 관심을 받았다.
이 역시 원래는 나중에 따로 무대를 마련해 선보일 계획이었는데, 서진이 지난 공연 직후 쓰러진 탓에 기약 없이 미뤄졌던 것을, 이참에 연주하기로 한 것이었다.
‘그동안 계획했던 연주들을 이 자리에서 다 하게 될 줄은 몰랐는데….’
그만큼 공연의 퀄리티는 어마어마했다.
그렇게 한 곡 한 곡 주옥같은 곡들이 연주된 끝에,
드디어 마지막,
‘차이코프스키의 피아노 삼중주 A minor – 위대한 예술가를 위하여’.
이 자리에 있는 이들이 ‘위대한 예술가’로서 성장할 수 있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은 고 임석호 회장에게 감사의 뜻을 전하는 의미로 선곡된 작품이었다.
피아노에 임찬윤, 바이올린에 서지연, 첼로에 신하윤.
현재 젊은 한국인 음악가들 중, 서진 못지않게 최고로 주가를 올리고 있는 이들의 조합은 실로 완벽했다.
일부 관객들은 서진이 함께하지 않음에 살짝 실망한 눈치였지만, 서진은 일부러 지연에게 양보했다. 모쪼록 몸을 사리라는 의사의 당부도 있었지만, 자신보다는 지연이 하는 게 더 의미 있을 거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셋 모두 기량과 감성 모두 무르익을 만큼 익은 이들이었다. 심금을 울리는 소리에, 관객들은 이 자리의 의미를 새삼스레 떠올리며 가슴 벅찬 감동을 느꼈다. 왠지 모르게 눈물이 흐른다.
활이 멈추었으나, 아쉬운 마음 때문인지 곧바로 박수가 나오지 않았다.
짝짝짝짝짝짝!
이윽고 터진 박수갈채.
추모제 공연이라는 특성으로 인해 절제된 느낌이 들었던 초반의 박수 소리와 달리, 열정적인 성원의 뜻이 가득 담긴 박수였다.
고인을 추모하며, 그가 다져놓은 기반 위에서 새 시대를 열 젊은 음악가들이 모쪼록 당당한 발걸음을 보이기를 바라는 그런 마음이 깃든 것이리라.
깊이 허리를 숙인 연주자들의 등 뒤로 눈부신 후광이 비쳐드는 느낌이었다. 그만큼, 너무나도 아름다운 시간이었으니까.
차이코프스키도 그렇고, 서진의 3중 협주곡도 그렇고, 시간 관계상 일부 악장만 연주되었다는 게 너무 아쉬울 정도로.
오직 서진을 목적으로 온 관객들은 새삼 목이 말라졌다. 뭐랄까, 간신히 아쉬움을 달랠 만큼만의 맛보기 공연이었달까.
아니, 일단 이걸로나마 목마름을 달래기는커녕 오히려 더 갈망만 커졌다. 제대로 전 악장을 연주하는 정식 공연을 듣고 싶다는.
* * *
코로나 사태에도 세상은 생각보다 멀쩡히 돌아갔다.
하지만 서진은 여전히 두문불출이었다. 정확히는 한국에서만 콕 틀어박혀, 해외 활동을 전혀 하지 않았다.
그로 인해 전혀 예기치 못한 일이 발생했다.
결코 서진이 뭔가를 노리고 한 바는 아니었으나, 결과적으로 서진을 비롯한 한국인 출신 음악가들에게는 매우 득이 되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한서진이 있는 곳이 클래식의 중심지다!
일부 극성팬들 사이에서 나오기 시작한 말.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아무리 유명한 스타 연주자라 하더라도, 그 출신지가 동양권인 경우에는 으레 본고장인 유럽이나 미국으로 넘어와 그곳을 근거지로 삼는 걸 당연히 여겼다.
한데, 그러한 인식이 어느 새부터인가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한서진이 한국에 틀어박혀 나오질 않으니, 역으로 관객들이 한국으로 달려오고자 하는 것이다.
지금 당장은 공연을 열지 않으니 오려야 올 일이 없다지만, 만약 한국에서 공연을 열기만 한다면 전 세계에서 날아올 기세였다.
물론 미국이나 유럽 국적의 연주자들도 한중일을 비롯한 동양권에 원정 공연을 온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해외 팬들을 위해 특별히 투어를 도는 개념으로, 동양권 연주자가 본고장인 유럽이나 미국으로 넘어오는 것과는 조금 다른 일이었다.
휴대폰을 확인하던 서진은 조용히 침음을 흘렸다.
“당분간 공연 생각은 없는데….”
천재 바이올리니스트로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