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 returned as a genius violinist RAW novel - Chapter 222
222화
“말씀 중에 죄송합니다만, 제 생각엔 아직 제가 그럴 만한 역량이 못 되는 것 같아 우려되어서요….”
국제적 유명세라면 몰라도, 국내 음악계에서의 입지는 확실히 딸린다. 이번 서울 국제 콩쿨 심사에서 서진은 그걸 확실히 느꼈다.
수십 년을 공고히 쌓아온 기성들의 세계. 거의 담합에 가까운 그 벽은 높고도 높았다.
서진은 얼마 전 송희란과 나누었던 대화를 잠시 떠올려 보았다.
한국 음악계에서는 실력뿐 아니라 파벌 싸움, 즉 라인이 중요하다고.
그녀는 바로 그 부분을 자신이 도와주겠다며, 적극적으로 이끌어주겠다는 의사를 내비쳤다.
자신은 그런 것에 연연하지 않는다고 완곡히 사양하려 했으나, 그녀의 말을 듣고 생각이 조금 바뀌었다.
단순히 저 개인의 일을 위한 것이 아닌, 한국 음악계의 발전을 위한 것이라면 이야기가 다르니까.
하지만 이건 나가도 너무 나갔지 않은가. 갑자기 콩쿨이라니.
“그렇지 않아요. 아, 혹시 이번 서울 국제 콩쿨 때의 일 때문에 의기소침한 거라면, 그럴 필요 없답니다.”
“….”
서울 국제 콩쿨에 관해서는 송희란 역시 실망한 바였다. 이번에 밝혀진 일화도 그렇지만, 원래부터 아쉬운 구석이 많았다.
나름대로 국제적 인지도가 있는 제법 괜찮은 콩쿨이긴 하나, 지나치게 내국인 전용 느낌이랄까?
대한민국의 자존심을 걸고, 세계 몇 대 콩쿨까지는 아니더라도 외국인들이 우승을 차지하고 싶어 애가 닳는, 적어도 그런 정도의 인기는 있었으면 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라도 대대적인 쇄신이 필요했다.
한서진이라는 라이징 스타를 내세워 완전히 새로운 콩쿨을 만드는 것.
그의 이름값이라면 제대로 된 콩쿨 하나 만들어 볼 법도 하지 않을까 싶은 것이다.
마침 이번 정부가 문화예술에 관한 관심이 남다르지 않은가. 코로나를 극복하기 위한 대국민적 차원에서라도 적극 지원을 하고자 한다는 걸 알기에 그녀는 이때다 싶었다.
“…이런 상황인지라, 반 클라이번 콩쿨처럼 특정 유명인의 이름을 걸고 만드는 콩쿨을 문체부에서도 적극 검토 중이거든요.”
“음….”
서진은 솔직히 자신이 그럴 주제가 되려나 싶었다.
제 이름 석 자를 내세워 만드는 콩쿨이라니. 말도 안 되는 일이지 않은가.
“하지만 저는 아직 나이도 어린 편인 데다, 그런 일에 적극 나서기에는….”
서진이 우려하는 바를 캐치한 송희란이 차분히 설명했다.
“그렇지 않아요. 본디 누구 이름을 딴 콩쿨이라고 해서, 그 본인이 직접 나서서 만드는 건 아니니까요.”
“….”
가만히 듣고 있던 한스 역시 말을 보냈다.
“1934년생인 반 클라이번이 제1회 차이콥스키 국제 콩쿠르에서 우승한 것이 24살 때의 일이었죠. 그리고 고작 4년 후인 1962년에 반 클라이번 콩쿨이 생겼어요. 나이는 중요하지 않아요. 얼마나 눈이 부신 재능을 가졌는지, 그 천재성으로 얼마나 널리 이름을 알렸는지가 중요한 법이니까요.”
그는 지금 서진이 그만큼 천재적인 존재라는 말을 하고 있는 것이었다. 아니, 어쩌면 반 클라이번 그 이상으로.
아무리 반 클라이번이라도, 서진처럼 음악계의 흐름 자체를 바꾸어 놓지는 못했으니까.
심지어 서진은 현재 거의 새로운 음악 사조를 만들어 낼 만큼 클래식 음악계에 센세이션인 존재였다.
한서진이라는 존재는 단순히 현대 음악을 부흥시키고 만 것이 아니었다.
단순히 현대 음악의 범주에서 작곡을 했다기보다는, 오히려 자신만의 사조를, 다음 시대를 위한 새로운 사조를 만들어나갔다고 보는 편이 맞았으니까.
‘참 희한한 일이지.’
과거, 클래식의 역사를 돌아보면, 시대와 사조가 바뀜에 따라 과거의 유행은 급속도로 촌스러운 것이라 여겨졌다. 바로크 시대가 지나고 고전음악이 나타나자, 사람들은 옛 음악은 시대에 뒤떨어진다며 빠르게 등을 돌리곤 했던 것처럼.
그렇게 당시에는 클래식의 유행이 빠르게 변화하는 게 당연한 일이었는데, 정작 21세기인 지금은 과거의 음악만이 클래식의 전유물처럼 여겨지는 상황이었다.
‘그건 그만큼 새로이 등장한 음악 사조가 대중들을 매혹시키지 못한다는 뜻이겠지.’
그런데, 한서진은 바로 그 현대적인 개념의 클래식을 유행시켰다.
그것도 단순히 그런 정도가 아니라, 대중들에게 환영받지도, 그렇다고 더 이상 새롭지도 않은 기존의 현대 음악을 넘어 저만의 오묘한 음악 양식을 만들어냈다.
그건 거의 음악계에 새로운 장을 열었다고 보아도 좋은 일이었다.
‘먼 훗날 이것을 한서진 사조라고 부르게 될지도 모르는 일이지.’
“이렇게 말하면 어떻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사실 서진 군이 나서서 일을 진행하거나 할 필요는 없어요.”
아까 말했듯이 이름을 따온다 해서 그 본인이 직접 무언가를 해야 하는 건 아니니까.
반 클라이번 콩쿨 역시 그랬다.
반 클라이번 콩쿨(Van Cliburn International Piano Competition)은 1962년 반 클라이번의 이름을 따 만들어진 국제 피아노 콩쿨이다.
하지만 반 클라이번이 실제로 이 콩쿨에서 심사위원직을 맡거나 재정을 보태는 등 운영에 관여하지는 않았다. 그저 참가자들의 연주 모습을 정기적으로 참관하는 정도의 관심을 보였을 뿐.
그러니 서진 역시 원하지 않는다면 그렇게 깊숙이 관여할 필요 없다, 라는 것이 서진을 설득하려는 그녀의 설명이었다.
얼마 전 그와 직접 대화를 나눠본바, 서진이 완장 차는 걸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된 덕분이었다.
하지만 자리 하나 꿰차고 잘난 체하는 것과 거리가 먼, 순수하게 음악계의 발전을 위한 일이라면 태도가 달라진다는 것 역시 알았다.
“그렇군요.”
“물론, 원한다면 얼마든지 적극적으로 힘을 보태도 좋고요.”
이쯤에서 문체부 관계자가 이성 재단 쪽을 향해 눈짓을 주었다. 아무래도 이성 재단과 서진의 관계가 돈독하니, 중간 역할을 해달라는 뜻이었다.
“한서진 씨. 정 부담스러우시다면 이런 방법도 있습니다. 이름을 내거시는 게 내키지 않으시다면, 콩쿨의 정식 명칭은 따로 두어도 상관없으니 초대 콩쿨의 심사위원 정도를 맡아주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어차피 정식 이름은 따로 있다 하더라도, 사람들은 ‘한서진 콩쿨’이라는 별칭으로 부르게 될 터였다. 중요한 건 한국을 대표하는 콩쿨이 탄생하는 과정에서 서진이 함께 걷는 행보를 보이는 것이니까.
“…심사위원이요?”
하지만 이거야말로 서진을 기겁하게 했다.
그건 되려 새로이 창립될 콩쿨의 명성에 독이 될 것 같았다. 제가 심사위원으로서 아무런 경력도 없는데, 이 무슨 무리수라는 말인가.
아니, 이 일 자체가 무리다.
저 대단한 조수민 선배조차도, 평생을 음악에 헌신해온 세계 정상의 소프라노인 그녀조차도 환갑을 앞둔 나이에 이제야 자신의 이름을 딴 콩쿨을 만들 예정인데, 자신이 뭐라고.
아직은 아는 사람만 아는 일로, 조수민은 처음으로 내년에 있을 2023년 퀸엘 콩쿨의 심사위원에 위촉되었다. 아마도 그 타이틀은 그다음 해에 개최될 ‘제1회 조수민 국제 콩쿨’에 큰 힘을 불어넣어 줄 터.
그리고 그건 반대로 말하면 다음 해에 개최할 자신의 이름을 건 콩쿨을 위한 포석이기도 하다는 뜻이었다.
‘그만큼 누군가의 이름을 따서 콩쿨을 만든다는 게 결코 호락호락한 일이 아닌데….’
다들 너무 섣부른 거 아닐까. 이렇게 밀어붙였다가, 막상 뚜껑 열어보니 쫄딱 망해 허울뿐인 국제 콩쿨이 되어버릴지도 모르는 일인데.
“제가 다른 유명 국제 콩쿨 심사위원으로서의 경력이 하나도 없는데, 갑자기 새로이 창설된 콩쿨의 심사위원직을 맡게 된다 한들 권위가 서겠습니까?”
“오, 그건 저도 동감이군요. 그러니 기존의 명성 있는 콩쿨의 심사위원 경력을 한 번쯤 만들고 들어가길 추천합니다. 아무래도 그편이 좋겠지요.”
“….”
“다른 분들도 아실지 모르겠지만, 실은 제가 한서진 씨께 지난번에도 이런 제안을 드린 바 있거든요.”
한스의 말에 그 일을 이미 알고 있던 송희란을 제외한 이들의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오. 그거 듣던 중 반가운 말이군요. 그럼 그 부분은 모쪼록 부탁드리겠습니다.”
문체부 관계자라며 나온 남자가 반색하며 한스의 손을 덥석 잡았다. 당혹스러워하는 건 오직 서진뿐, 모두 화기애애하니 좋아 보였다.
“참, 새로이 만들 콩쿨의 윤곽을 잡는 데에 필요한 세부적인 사항에 관련해서는 벨기에 측에 자문을 구하면 좋을 것 같네요.”
“오, 그거 좋은 생각이군요. 벨기에의 퀸 엘리자베스 콩쿨은 전 세계적으로 이름이 높다지요. 마침 퀸엘의 심사위원장이었던 마에스트로 휴도 방한에 있는 상황이지요.”
“게다가 한국과 벨기에가 마침 문화예술 교류를 맺고 있는 중이 아닙니까. 일전에 벨기에의 왕비가 방한해 한예종을 둘러본 적도 있었던 만큼요.”
“게다가 여기 있는 서진 군과도 안면도 있답니다.”
“…예. 그때 뵌 적이 있습니다.”
실은 그보다 더 전 퀸엘 콩쿨 때도 나름의 연이 있었으나, 서진은 그 부분은 굳이 언급하지 않았다.
콘서트에까지 직접 찾아왔던 그녀였던 만큼 알 사람은 이미 다 알겠지만.
“퀸엘리자베스 콩쿨, 아니 벨기에 측이라면 필시 도움을 주려 할 거예요. 호호호.”
송희란은 호언장담했지만, 서진은 그런 개인적인 호감과 비즈니스는 별개가 아닐까 하는 생각에 고개를 저었다.
“글쎄요. 반드시 그럴 거라고는…. 콩쿨 우승자야 매번 배출되어 온 만큼, 제가 딱히 특별한 존재도 아닌 것을요.”
송희란은 자기 잘난 걸 몰라도 너무 모르는 서진의 모습이 어쩐지 귀여워 보였다.
‘그런 게 매력이지.’
본인의 가치를 본인만 모르는 것.
사실 그건 오히려 당연한 일이었다. 예체능을 하는 사람 치고, 그것도 정상에 오른 이들 치고 자기가 충분히 훌륭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는 법이기에.
애초에 스스로 그렇게 생각하지 않기에 끝없이 발전할 수 있는 것인지라,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인 것이다.
“글쎄. 설령 그렇다 해도 그 부분은 제가 힘써줄 수 있으니 걱정 말아요, 서진 군.”
“…예. 감사합니다.”
송희란은 연주 실력도 실력이지만, 그보다는 음악계의 정치 쪽으로 뼈가 굵은 존재였다. 애초에 집안 내력이 그쪽이었기에 반쯤 타고난 것이었다.
그녀의 집안은 조부모 때, 즉 거의 개화기 무렵부터 음악가를 배출해온 명문가였다. 그야말로 최상류층 유력 가문 출신.
요즘 사람들은 무슨 의미인지 전혀 모르는 말이지만, 한양 사대문 안에 살던 명문가 출신이라 하면 알 사람은 다 알았다. 지금도 도심 한복판에 엄청나게 많은 땅을 가지고 있었으니까.
그런 만큼 집안에 음악가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정치가도 상당히 많았는데, 그 피를 이어받은 건지 그녀 역시 그쪽으로 발이 넓었다.
그런 그녀에게는 나름의 정치적 신념과 고고함이 있었다.
음악적 정당성을 벗어난 정치싸움은 용납할 수 없다는 것.
즉, 그녀에게 있어 ‘진짜배기’인 한서진은, 반드시 밀어줘야 하는 그런 대상인 것이었다.
천재 바이올리니스트로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