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 returned as a genius violinist RAW novel - Chapter 224
224화
현재 서울 음악제를 계기로, 국제 콩쿨 쪽으로 한가락 하는 인물들이 대거 와 있는 실정이었다. 세계 3대 콩쿨의 심사위원이었던 이력을 가진 그들을 잘 활용하면, 분명 신생 콩쿨이 초반에 자리 잡는 데에 큰 도움이 될 터.
“다행히도 다들 긍정적인 반응이었다더라고요.”
“오!”
만약 그들을 새로이 만들 콩쿨의 초대 심사위원으로 초빙할 수만 있다면….
“거의 가능할 것 같은 분위기였어요. 송희란씨가 정말로 적극 어필하고 계시는 중이시거든요. 정말이지 두 팔 걷어붙이고 나서주시는 덕에….”
송희란이 처음에 한서진을 못마땅해했던 것을 아는 이들은 실로 놀라운 마음이었다. 최악의 경우 그녀가 오케스트라에 광탈해 길길이 분노하며 항의하는 모습을 그렸었는데….
다행히 우려와 달리 되려 좋게 풀린 상황이 아닌가. 송희란이 음악계 쪽으로 워낙 뼈가 굵은지라 만약 한서진을 대놓고 배척하기라도 한다면, 협회 쪽에서도 무척 곤란했을 텐데 말이다.
그녀가 서진에게 잠시 편견을 가졌던 건 사실이었지만, 그래도 은근히 쿨한 면이 있는 그녀는 한 번 인정하고 제 사람으로 여기고 나면 확실히 제 테두리 안에 들이는 성격이었다.
“참, 벨기에 측에서는 답신이 왔나요?”
“예, 아뇨. 아직 연락을 받지 못했는데…, 어? 잠시만요.”
메일을 확인한 직원의 눈이 커다래졌다.
…이런 파격적인 제안이라고?
* * *
퀸엘리자베스 측의 반응에 그 누구보다 놀란 것은 송희란이었다.
벨기에와의 교류도 있고 하니 어느 정도 우호적으로 나올 거라 예상을 했는데 이 정도라고?
아무리 틸다 왕비가 한서진에게 호감이 있는 게 사실이라고 하나, 지난 퀸엘리자베스 콩쿨에서 서진이 수상 거부에 가까운 기권 선언으로 보이콧을 했던 사태를 생각해 보면, 꼭 잘 풀릴 거라는 보장은 없었다.
한데 퀸엘리자베스 측에 콩쿨에 관한 자문을 요청한 결과, 흔쾌히 수락하는 정도를 넘어 파격적인 제안이 돌아왔다.
“내년도 퀸엘리자베스 콩쿨 심사위원 제안이라고…?”
본격적으로 한서진의 이름을 단 콩쿨을 만들기 전에, 서진에게 명성 있는 콩쿨의 심사위원 이력을 만들어 주려 했던 일.
원래 이 부분을 도와주기로 한 건 스위스 콩쿨계에서 뼈가 굵은 한스였지만, 나선 것은 그뿐만 아니었다.
마에스트로 휴, 한때 퀸엘리자베스 콩쿨의 심사위원장이었던 그가 적극 나서준 것이다.
“네. 저도 정말 놀랐어요.”
이만큼까지는 바라지도 않았고, 그저 국가적으로 문화예술 교류를 하는 차원에서 조언 정도를 얻을까 했던 것이었는데….
그 역시 쉽게 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지만, 혹시 하는 마음으로 요청해 보았던 것이었다.
아무리 국내 음악계에서 한 입지 하는 송희란이라고 해서 벨기에 쪽에까지 깊은 연이 닿아있는 건 아니었기에 건너건너 물어본 상황이었다.
그런데 거의 즉답에 가깝게 대답이 돌아왔을 뿐 아니라, 되려 저쪽에서 애원에 가까운 간청을 해오는 게 아닌가.
“그러니까, 콩쿨 개최를 적극적으로 도와주는 대신 한 가지 조건을 붙였다는 게 바로 이거?”
“네. 조건이랄까, 부탁 한 가지만 한다고 하더군요. 한서진 씨를 내년도 퀸엘리자베스 콩쿨의 심사위원으로 모시고 싶다고요.”
“….”
와, 이 정도였구나.
한서진의 세계적 위상이 자신이 상상한 것 훨씬 이상이었다. 어쩌면 국내에서는 오히려 과소평가된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김연아의 위대함을 국내보다 세계에서 더 알아주듯 말이지.’
“내년이라면… 무슨 부문이지?”
“작곡 부문이래요.”
“그거, 예전에 폐지되었던 거 아닌가?”
“네. 맞아요.”
원래는 2012년을 끝으로 중지되었던 작곡 부문이었다. 한데 그게 다시 부활한 것이다.
“작곡 부문을 부활시켰다고? 그리고 그 심사위원으로 한서진?”
누가 봐도 한서진으로 인한 것이라고밖에 생각할 수 없었다.
현대 클래식 작곡이 점점 무의미해져 가던 시장에서, 한서진이라는 존재가 나타남으로 인해 생긴 잔잔한 파문.
“네. 아 그리고 성악 부문도 같이요.”
원래 퀸엘리자베스 콩쿨은 매년 한 부문씩 돌아가며 개최되는데, 20년과, 21년도의 피아노와 첼로 부문은 코로나로 전부 취소되었다.
그래서 22년인 올해 피아노와 첼로가 묶어 열리고, 내년인 23년에는 작곡이 부활하며 성악 부문과 함께 개최된다는 것.
19년도에 1위를 하고도(공식적으로 1위로 공언된 바는 없으나 정황상 모두가 그렇게 생각했다) 기권했던 서진이 심사위원 자리에 앉게 된다니….
이건 엄청난 의미를 가지는 일이었다. 비록 부문은 다르나, 어쨌든 퀸엘리자베스 측에서 한서진을 공식적으로 인정한다는 뜻이었으니까.
“와, 이거 정말 될 것 같은 각인데?”
“그러게요. 조수민과 나란히 심사위원이 되는 데 이어, 자기 이름을 건 콩쿨도 개최하다니….”
* * *
그 소식에 당사자인 서진은 더욱 깜짝 놀랐다.
말도 안 되는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걸 이렇게 순식간에 진행시키다니…. 송희란의 정치력에 새삼 놀란달까.
물론 그건 일부는 오해였다.
벨기에와 퀸엘 측에 자문을 요청하는 일에 대해 그녀가 적극적으로 나선 건 사실이었으나, 그 결과는 어디까지나 한서진의 팬인 틸다 왕비가 흔쾌히 지원을 지시한 덕분이었으니까.
“…대충 이런 상황인데, 이대로라면 정말로 머잖아 네 이름을 타이틀로 하는 콩쿨이 생겨날 것 같아.”
이성 재단측과도 관련된 일이었으니 지연도 돌아가는 상황을 대충 들어 알고 있었다.
지연은 최근 들어 슬슬 재단 쪽 일에도 참여 비중을 늘리는 중이었는데, 임회장의 타계 이후 그룹의 경영권이 전반적으로 한 세대 아래로 내려오게 되며, 지연 역시 재단 일을 이어받을 후계자로서 역할이 중요해진 탓이었다.
“…와.”
“반응이 그게 끝?”
“음, 뭐랄까… 좀 남의 이야기 같이 느껴져서.”
“이해해. 어떤 기분일지 상상도 잘 안 간다.”
“뭐 그건 그거고, 지금은 일단 지금 해야 할 일에 충실해야지.”
말이 끝나기 무섭게 사람들이 우르르 나타났다.
“써진!”
“다비트를 이런 관계로 만나게 될 줄은 꿈에도 생각 못 해봤는데… 하하. 아직도 기분이 이상하네요.”
“새삼 뭘. 저번에도 리허설 해봤는걸.”
“그때랑은 또 상황이 다르잖아요.”
대부분의 프로그램을 서진이 지휘하게 되었다는 말에 오케스트라는 의외의 반응을 보였다. 걱정했던 게 무색하게도, 웬걸 다들 더 좋아하는 게 아닌가.
아예 지휘 없이 가는 곡도 있을 예정이나, 그 역시 서진의 리드하에 준비가 이루어질 거라는 말에 오케스트라 사람들은 전부 손뼉을 치며 반기는 기색이었다.
물론 모든 사람의 반응을 확인한 건 아니지만, 적어도 서진과 가까운 이들은 전부 그랬다. 그리고 아드리아나를 비롯한 다른 협연자들도 비슷한 반응이었다.
그도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다들 호기심으로 가득한 상황이 아닌가.
한서진을 잘 알면 잘 알기에 꼭 한 번 더 함께하고 싶고, 모르는 사람들은 궁금해서라도 꼭 한 번 같이 호흡을 맞춰볼 기회를 가져보고 싶은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지금 저들이 가장 부러워하는 건 다름 아닌 이준이었다. 오케를 함께하는 것만으로도 온 보람이 차고 넘치는데, 듀엣으로 협연이라니…!
“됐고, 나도 라이징 스타 시켜줘.”
“…네?”
“이준이라는 꼬맹이가 세상 부럽다고.”
나도 거장 말고 라이징 스타 대우를 받고 싶다며 다비트가 장난식으로 농담을 던졌다.
세상 황당한 말에 서진은 어이가 없었다. 세계적인 탑스타가 이게 무슨 소리인가.
하지만 다비트는 어느 정도는 진심이었다. 이번 음악제에서 서진은 신곡을 발표할 예정이었는데, 그 직접 작곡한 곡을 이준이랑 함께 협연으로 연주하는 것이었다. 그러니 어찌 부럽지 않겠는가.
“아무튼 신곡 기대할게.”
“기대는 마시고요.”
“이번 곡은 부제가… 아버지라고 했나?”
“…네.”
대답을 하는 서진의 표정은 어딘지 모르게 조금 씁쓸해 보였다.
그에게 있어 ‘아버지’라는 존재는, 단 한 번도 얼굴을 직접 본 적 없이 상상 속의 그리움만으로 이루어진 존재였으니까.
어머니를 부제로 하는 곡과 ‘아버지’에 대한 감상은 전혀 다를 수밖에 없었다.
“사실 제게 있어 아버지는….”
무어라 말을 하려던 서진이 잠시 멈추었다.
“솔직히 잘 모르겠네요. 어떤 느낌인지. 다른 사람들 보면 조금 부럽기도 하고…. 그래서 막연한 상을 풀어냈는데, 이게 맞는 건지 확신이 없어요. 그래서 다른 사람들에게 있어 아버지라는 존재가 어떤 의미인지 궁금하기도 하고요.”
“글쎄. 내가 뭐라 딱 답해줄 수 있는 건 아니지만, 내 경우는… 그래. 나 역시 아버지와 사이가 썩 좋은 편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한마디로 정의하기 힘든 무언가가 있지. 아들에게 있어서 아버지의 존재란 어머니와는 또 다르거든. 롤 모델임과 동시에 넘어야 할 벽이랄까… 나는 그나마 아버지가 같은 음악을 하는 분이 아니라 그나마 낫긴 한데, 특히나 부자가 같은 길을 걷는 경우에는 좀 더 복잡한 관계가 되겠지.”
서진의 고민을 읽어낸 다비트가 길게 답했다. 서진과 친해지며 자연히 그에게 아버지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된 만큼 조심스러운 대답이었다.
“…그렇군요.”
서진은 지연 쪽은 일부러 바라보지 않았다. 지연 역시 아버지가 없는 셈이나 마찬가지였으니까.
물론 서진처럼 정말로 아버지가 돌아가신 건 아니었지만, 오히려 그보다 못하달까. 이혼 후 교류가 전혀 없는 걸로 알고 있었으니까.
온 국민에게 알려진 그대로, 외도로 인해 유책배우자가 된 지연의 부친은 아내에게 친권과 양육권을 전부 넘겼다. 그 후 다른 사람과 가정을 꾸려 완전히 새로운 삶을 살고 있다고 얼핏 들은 바 있는 것 같다.
지연은 서진의 배려에 살짝 감사의 눈인사를 보냈다.
“음… 딸과의 관계와는 또 다르니 난 딱히 보태줄 말이 없네. 하지만 적어도 한 가지는….”
이번엔 어느샌가 페르디난트와 함께 나타나 있는 마리아의 대답이었다.
오늘의 리허설 곡을 보다 깊이 이해하고 연주하기 위한 해석 과정이라 생각한 건지, 다들 진지한 자세로 말을 꺼내기 시작했다.
“…음. 나도 가족사가 그리 평범하지는 않아서 별 도움은 못 될 것 같아. 어릴 적부터 천재 소리를 듣는 자식을 둔 부모들이 보이는 공통적인 집착이라면 모를까.”
“그건 오히려 부러운데?”
페르디난트의 한 마디에 어째 분위기가 점점 묘해지는 가운데, 누군가 불쑥 말했다.
“엥? 진심이야?”
“나를 평생 짓누르는 무게를 가진 존재로서의 아버지보다는 나을 테니까.”
“???”
페르디난트의 얼굴에 의문 부호가 떠올랐다. 저건 또 무슨 소리래…?
서진 역시 궁금함에 그를 돌아보았다.
아는 얼굴은 아니었다. 그런데 묘하게 어디선가 본 적 있는 듯한 기분이랄까?
‘누구지?’
들고 있는 악기는 비올라.
즉 비올라로 오케스트라에 지원했다는 뜻인데….
비올라는 바이올린에 비해 수가 적기에 서진은 어렵지 않게 상대의 이름을 기억해냈다.
이름이 마크였나…?
천재 바이올리니스트로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