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 returned as a genius violinist RAW novel - Chapter 226
226화
“그냥 마스터 클래스 정도…?”
“오오, 대박! 전 세계 꿈나무들 다 달려오겠네!?”
“진심 또 난리 나겠다. 어휴, 유명해지는 게 꼭 좋은 것만은 아니라니까?”
“그러게….”
여기저기 불러주는 데가 많아도 너무 많다. 몸이 두 개라도 모자랄 판.
자신도 이런 수준인데, 더욱 유명한 세계적 거장들은 어떻겠는가. 다들 이런 와중에 빡빡한 공연 스케쥴과, 개인적 음악 성장을 위한 혹독한 연습까지 소화하고 있다니… 존경스러울 따름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자신을 부르는 요청을 매정히 거절하고 싶진 않았다. 다른 것도 중요하지만, 후학 양성을 위한 노력만큼 가치 있는 게 또 어디 있겠는가.
자신 역시 그러한 수혜를 받아 이만큼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이니, 앞서 걸어간 이들에게 받은 가르침을 이제는 후학들에게 돌려줄 때였다.
‘마스터 클래스뿐 아니라 거장들과의 협연으로도 많은 것들을 배웠지.’
가장 최근에만 해도…,
‘어라. 마지막으로 누군가와 협연을 한 게 벌써 몇 년 전이었다고?’
코로나 직전의 막차 연주. 바렌본과 유유마와 함께 했던 3중 협주곡.
그 후로는 아무리 생각해 봐도 딱히 기억이 없다. 그동안 무대가 정말 없긴 없었구나 싶을 정도로.
TV 예술 무대나 독주회, 추모 공연 등등이 있긴 했지만, 전부 국내에서의 무대였다. 해외 원정 공연이나, 다른 유명인사들과 협연은 그때가 마지막이었던 것.
‘그러고 보니 추모식 때뿐만 아니라 그때도 3중 협주곡이었네.’
문득 그때의 기억이 떠올랐다.
다니엘 바렌본과 유유마.
그들 역시 이번 음악제에 함께하고 싶다는 뜻을 전해왔으나, 안타깝게도 둘 다 무산되었다.
바렌본은 고령으로 인한 건강 악화로 기존에 잡혀있던 공연 일정도 취소하고 요양 중이었고, 유유마 역시 개인 사정으로 인해 활동을 자제하는 중이라고 한다.
‘중국계이긴 하나 국적 자체는 다르니 중국 본토의 봉쇄령과는 상관없을 텐데…?’
아무튼 나중에 코로나가 다 끝나면 언젠가 꼭 한 번 다시 함께해보고 싶다. 후학을 이끌어주는 것도 좋지만, 서진 역시 음악적 성취에 욕심이 많기에 그런 기회는 소중했다.
‘…잠깐만.’
바렌본? B?
비올라로 지원한 데다 성을 이니셜로 써서 몰랐는데, 생각해 보니 똑 닮은 얼굴이 아닌가.
* * *
연주자들 라인업도 화려하지만, 음악제에 발걸음한 VIP들의 면면도 그 이상으로 엄청났다. 영부인과 벨기에의 틸다 왕비 등등, 국내외 정상급 인사들의 얼굴을 찾아보는 게 어렵지 않은 자리였다.
“와… 무슨 올림픽 개막식인 줄.”
한때 한서진의 이모팬 1호를 자처하던 강민지는 새삼스러운 감회에 젖어 들었다.
한서진에 관한 소식이라면 뭐 하나 빼먹지 않고 꼼꼼히 챙기며, 적극 알리고자 열심히 기사를 내던 게 엊그제 같은데….
세월이 흐르며 결혼 후 아이를 낳고 키우느라 일은 그만두었지만, 그 마음만은 여전했다.
이건 못 참지.
오랜만에 팬심을 발휘해 오게 된 음악제.
“이게 바로 한서진 파워다 이거야. 훗!”
이제는 일을 떠나 순수한 팬으로 남게 된 그녀는 벼르고 별러 티케팅에 도전했고, 한때 열렬했던 마음을 보답받은 건지 치열한 티케팅에 성공해 이렇게 올 수 있었다.
“어휴, 어련하시겠어. 누가 보면 자기 조카라도 되는 줄 알겠다.”
옆에 앉은 그녀의 남편이 못 말리겠다는 듯 한숨을 푹 내쉬었다.
아내가 한서진을 무척이나 좋아한다는 건 연애 때부터 익히 아는 사실이었지만, 조카뻘인 대상인지라 딱히 질투가 나진 않았다.
“마음은 랜선 이모 맞거든? 그나저나 자기는 한서진 연주 직접 듣는 거 처음이지?”
“응. 난 원래 클래식 같은 거 관심 없었잖아.”
“기대해. 진짜 깜짝 놀랄 거야.”
그렇게 말한 강민지는 팸플릿을 뒤적여 보았다. 이제는 완전한 성인이 된 서진의 얼굴이 자그마하게 보였다.
역시, 여전히 보는 것만으로도 뿌듯한 존재다. 지병이 있다니 걱정이 많이 되긴 하지만, 그래도 일단은 건강한 듯해 다행인데….
“우리 아들도 저렇게 훌륭하게 자라주어야 할 텐데.”
“너무 욕심인데?”
강민지의 중얼거림에 남편이 결국 고개를 내저었다.
배 속에 있을 때부터 태교랍시고 ‘쪼쪼, 따라 해 봐. 엄마 나 커서 한서진이 될래요!’라고 외치던 아내였다.
“하긴, 이미 내 피부터가 글러 먹었지.”
“하하하….”
둘 다 예술가적 기질이라고는 하나 없는 부모였으니까.
물론 꼭 같은 음악가가 되길 바란다기보다는, 저렇게 훌륭하게 자라줬으면 하는 바람이었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음악을 즐길 줄은 아는 아이로 컸으면 좋겠는데….
쪼쪼라는 태명으로 불렸던 아이는 이제 어느덧 5살이 되어 있었다. 아직 어려 같이 올 수는 없었지만, 언젠가 미취학 나이를 벗어나게 되면 같이 손잡고 공연도 보러 다니고 해야지.
“나는 정말로 기대가 돼.”
“뭐가?”
“그냥. 한서진이라는 존재 단 한 명으로 인해 변화하게 될 우리나라 클래식계의 미래가.”
얼마 전 들은 소식.
한서진이 내년도 퀸엘리자베스 콩쿨 심사위원에 위촉되었다는 소식과 함께 논의된 ‘한서진 콩쿨’ 개최에 대한 이야기.
아직은 카더라 수준으로 설레발 치듯 미리 터진 소식이었지만, 그것만으로도 강민지는 심장이 쿵쾅거렸다.
어쩌면, 정말로 우리나라에도 세계 3대 콩쿨이니, 세계 3대 필하모닉이니 그런 게 생기는 날이 올 수도 있지 않을까…?
* * *
이준은 가엾게도 잔뜩 긴장해 있었다. 제법 큰 국제 콩쿨도 몇 번 나갔다 온 녀석이 무슨 고작 이런 일로 떠나 싶기도 했지만, 그 마음이 아예 이해가 안 가는 건 아니었다.
“저 원래는 안 그런다고요. 근데 선배님 앞에만 서면…,”
너무 긴장되고 떨린다나.
그나마 개막식 무대가 아니라 다행이긴 한데, 당초에 생각했던 것보다 음악제의 스케일이 너무 커진 탓에 신경이 곤두서는 모양이었다.
“잘해야 할 텐데… 선배님 이름에 먹칠하면 안 될 텐데….”
“이준아, 영상 봤지?”
서진은 그런 생각 할 필요 없어, 라고 말하는 대신 다른 이야기를 꺼냈다.
“네? 네. 마크 씨가 연주한 리허설 영상 말이죠?”
“응. 그거 보고 무슨 생각이 들었어?”
아무리 마크가 아버지의 명성에 짓눌려 힘겨워하는 연주자라 할지라도, 아직 샛별에 불과한 이준보다는 훨씬 연륜 있는 연주를 하는 게 당연했다. 이준으로서는 비교되어 조금 주눅이 들 수도 있는 상황.
“어, 그게….”
잠시 고민하던 이준이 답했다.
“저분 되게 잘하시네요, 하는 생각?”
“그치?”
“네. 첨엔 약간 헤매시는 듯한 기분이었는데, 아니 연주 자체는 처음부터 문제없었지만, 뭐랄까 심리적으로 조금 확신이 없어 보인달까… 그랬거든요?”
뭐라 딱 집어 말할 수는 없지만, 보잉에서 미묘하게 느껴지는 게 있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자신만의 길을 찾은 듯 소리가 확고해지더라고요.”
“응. 너도 느낀 대로야. 그가 이렇게 말하더라. 중요한 건 다른 사람의 평가나 인정이 아니라, 자기만의 소리라고. 그 역시 그걸 깨닫고 나니 무언가 달라졌다고 하더라고.”
서진은 얼마 전 그가 누구인지 알게 된 후, 따로 만나 짧게 이야기를 나눈 적 있었다. 나름대로 함께 연주했던, 안면 있는 이의 가족인데 모른 척하는 것보다는 부친의 안부 정도는 묻는 게 나을 것 같아서였다.
그리고 그의 변화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아.”
“누군가보다 꼭 더 잘하려 들 필요는 없어. 네 파트를 연주했던 그 사람이랑 비교할 필요 역시 없고.”
그렇지 않아도 그것은 이준에게 꼭 해주고 싶었던 말이었다.
사실 이준이 그 누구보다 의식하고 있는 건, 잠깐 자신의 파트를 대신 연주했던 마크가 아닌, 서진이었다.
자신의 등을 바라보며, 그 뒤를 쫓고자 끝없이 스스로와 비교하며 힘겨워하고 있다는 걸 서진은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다. 그렇기에 일부러라도 이런 기회를 만들어 이준에게 이 이야기를 꼭 해주고 싶었던 것이었다.
“너에겐 네 음악이 있으니까.”
겉으로는 마크와 비교하지 말라고 하는 말 같지만, 서진은 평소 이준이 서진을 무척이나 의식하고 있음을 알고 일부러 그 부분을 짚어주었다.
“…선배님.”
이준 역시 그걸 어렵지 않게 눈치챘다.
“알고… 계셨어요?”
“모르는 게 더 이상하지. 상당히 부담이었을 텐데.”
제2의 한서진이니, 한서진 키즈니, 다 얼마나 어깨를 무겁게 하는 수식어였을까.
거기에 더해, 이번 음악제의 협연으로 이준이 두 번 다시 없을 기회를 갖게 된 건 사실이었지만, 달리 생각하면 그건 무척이나 부담되는 일이었다. 한서진이라는 유명인사와 함께한다는 부담이, 그 이름값을 나누어 진다는 게 결코 쉬운 일은 아닐 테니까.
“반드시 잘하려 들 필요는 없어. 그냥 이 경험을 통해 무언가를 느끼고 배우고, 그러라고 마련한 자리니까.”
“그리고 그 경험을 토대로, 머잖아 오롯이 네 이름으로 우뚝 설 날이 올 거야.”
“정말… 그럴까요?”
“응.”
서진이 미소지었다.
만약 정말로 가까운 미래에 한국에서 새로운 콩쿨이 생겨난다면, 이준이 딱 지원할 나이다.
“열심히만 하자, 오늘.”
“네, 선배님!”
* * *
그날, 이준의 연주는 대성공이었다.
한서진의 존재감에 전혀 묻히지 않는 감동적인 연주.
아직 십 대의 어린 나이라는 게 믿기지 않을 만큼 나이에 비해 깊은 해석과, 벌써 자신만의 소리를 어느 정도 찾아내었다는 점이 특히 인상 깊은 부분이었다.
물론 그만큼 서진이 잘 보조하고 리드해 준 덕분이었지만, 어쨌든 결과적으로는 무척이나 호평을 받게 되었다.
여기저기서 찬사가 쏟아지며, 떠오르는 신예 바이올리니스트 민이준을 조명하는 기사가 터져 나왔다.
한서진의 뒤를 이을 스타의 탄생,
이라는 말이 아깝지 않은 그였지만, 서진이 특별히 언론사 측에 부탁한 덕에 ‘한서진’과 연관되는 단어는 최대한 자제되었다.
이제는 한서진이라는 그림자를 벗어나, 민이준 자체로 자리 잡아 나가야 할 테니까.
‘언론사 쪽에서 순순히 부탁을 들어줄 줄은 몰랐는데….’
이제 이 정도 영향력은 생긴 걸까?
정확히는 서진의 의사에 음협 측에서 나서서 언론사에 요청을 전한 결과였지만, 어쨌든 매우 고무적인 일이었다.
그리고 다음 날인 오늘.
총 일주일에 걸쳐 열리는 서울 국제 음악제인 만큼, 이준과의 공연이 끝나도 서진의 스케쥴은 비지 않았다.
오늘은 특별히 참여 형식의 공연으로 야외에서 열리는 무대였다. 성악가들과의 협연으로 구성된 공연.
특히 오늘의 곡 중 탱고곡인 ‘por una cabeza’에는 특별 퍼포먼스까지 추가될 예정이었다.
바로 음악에 맞추어 전문 무용수가 무대로 올라와 직접 탱고를 추는 것. 남녀 세 쌍씩, 총 여섯 명의 무용수들이 무대에 오를 예정이었다.
야외 공연인 만큼 축제식으로 가자는 이야기에 나온 의견이었는데, 음악 외의 다른 예술 분야에 대해서는 잘 모르는 서진은, 부예술감독이랍시고 나서는 대신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잠자코 받아들이기로 했다.
‘탱고라….’
전문 무용수가 올라오는 것까지는 좋은데….
다 좋은데, 문제는 따로 있었다.
‘괜히 이러다 망하는 거 아냐…?’
천재 바이올리니스트로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