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 returned as a genius violinist RAW novel - Chapter 227
227화
오늘의 프로그램은 오페라 갈라 몇 곡과, 대중들에게 익숙한 곡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앞서 축배의 노래와 넬라 판타지아가 끝나고, 드디어 ‘por una cabeza’의 차례.
그거 진짜 하는 건가….
관객들의 참여까지는 좋다. 그런데…,
지휘를 하면서도 서진은 무용수들 쪽을 슬쩍 흘긋댔다.
무용수들은 지금 남녀 한 명씩 짝을 이뤄 열정적인 탱고를 선보이고 있었다.
아직 초반이라 관객들을 끌어들이지 않은 채 저들끼리만 춤추고 있는 상황.
관객들의 반응은 매우 좋았다. 음악을 듣는 한편 모두 흥미진진하게 무대 위의 댄스를 감사하고 있었다.
그러다 음악이 절정에 이르자,
춤을 추던 무용수, 그러니까 남녀 한 쌍이 각자 갈라지며 무대 아래로 내려가 관객들에게 손을 내밀었다.
“…!?”
“…??”
상대가 탱고를 몰라도 큰 상관 없었다. 남자든 여자든, 상대 무용수의 리드에 따라 몸을 맡기는 걸로도 충분하니까.
사람들은 예상치 못한 일에 살짝 당황한 기색이었으나, 오히려 더욱 즐거워했다.
그렇게 두 팀은 무대 아래로 내려갔고, 나머지 한 팀은 각기 흩어져 무대 위의 누군가에게로 다가갔다.
2 바이올린 수석의 옆자리에 앉아있던 지연이 깜짝 놀라 자신을 가리켜 보였으나, 사실 이건 미리 기획된 일이었다.
무대 위에서 먼저 나서 주어야, 관객들도 자연스레 함께할 거라는 생각에 마련한 퍼포먼스.
배시시 웃은 지연이 남자 파트너의 손을 잡고 일어났다.
그리고 다른 한 명. 여자 무용수는 지휘를 하고 있던 서진에게 손을 내밀었다.
‘이걸 진짜 하네….’
서진은 곤란한 미소를 숨기며 며칠 전의 회의를 떠올렸다.
-내, 내가?
아무래도 무대 위에서 벌떡 일어나 나서야 관객들도 적극 나서지 않겠냐며 나온 의견에, 만장일치로 추천받은 인물.
지연은 기겁했지만, 서진은 좋은 아이디어라고 생각했다.
이런 참여형 무대는 할 거면 제대로 해야지, 어설프게 했다간 이도 저도 아닌 우스운 꼴이 된다.
-왜, 재밌겠는데.
-그럼 너도 해.
순간 서진은 당황했다.
-나, 나? 난 지휘해야지.
-지휘는 무슨. 그 부분 잠깐 놔도 상관없는 부분이잖아?
할 말이 없었다.
관객들이 참여할 시간을 충분히 확보하고자 하이라이트를 두 번 반복하기로 했기에, 지휘자가 일일이 사인을 보내지 않아도 알아서 굴러갈 부분이었다.
-아니 아무리 그래도….
-왜, 좋은 생각인 것 같은데.
-오오, 그러게. 그거 무척 재밌겠는데?
서진은 조금 전에 자신이 했던 말을 거의 그대로 돌려받았다. 차이라면 그 말을 한 것이 지연이 아닌 다른 이들이라는 것뿐.
한 마디로 다들 눈을 빛내며 재밌겠다고 찬성을 표하고 있는 상황.
-그래. 이왕 하는 거 제대로 한 번 해보지?
-….
-여기 마침 잘 어울리는 두 남녀가 있는데 딱 좋잖아.
-오호, 그럼 마침 리허설하는 김에 바로 해 볼까?
식은땀이 주르륵 흘렀다.
…아니, 그게 우리 둘이 같이 춤춘다는 뜻은 아니었던 것 같은데?
하지만 다들 저렇게 기대 어린 시선을 보이는데, 정색하며 우리 그런 사이 아니라는 둥 하는 것도 우스운 일이었다. 춤이라는 게 꼭 연인 사이에서만 춰야 하는 건 아니니까.
-맞아. 둘이 정말 잘 어울리겠어.
-어머. 그러게요. 마침 복장도 딱이고, 연주야 몇몇 빠져도 상관없으니까.
서진은 턱시도는 아니지만 깔끔한 정장 차림이었고, 지연은 검은색의 심플한 드레스를 입고 있었다.
-어… 나 탱고 출 줄 모르는데.
-걱정 마. 내가 리드할게.
마지못해 나온 궁색한 변명마저 막혔다. 뒤로 빼려는 서진을 지연이 냉큼 발목 잡았다.
-아, 아니. 어차피 우리 둘이 추는 건 아니잖아. 아까 의견으로는 무용수들이 각자 너랑 나를….
-그럼 뭐 더 걱정 없는 거고.
에라 모르겠다. 될 대로 되라.
서진 역시 내심 흥미로워하고 있긴 했다. 어차피 본 공연에서 하는 것도 아니고, 리허설에서 재미 삼아 해 보는 것쯤이야.
그렇게 얼결에 미리 연습(?)까지 해보게 되었던 것.
그리고 지금,
서진과 지연은 각자 파트너의 손을 잡고 약간 앞쪽으로 나왔다.
미리 약속된 대로 무대 위에 남은 한 쌍 중 남자 무용수는 지연에게, 여자 무용수는 서진에게 손을 내민 결과였다.
“와아아!!!”
무대 위로 올라온 관객들 중 탱고를 제대로 출 줄 아는 사람은 별로 없을 터인 만큼, 지연의 역할은 꽤 중요했다.
관객들이 마구 환호성을 내질렀다. 흔히 보기 어려운 이색적인 무대에 신기해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생각보다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정색하며 사양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웃으며 신나게 호응했다. 처음엔 얼결에 끌려 무대 위로 올라왔으나, 그들은 어느새 흥겨운 탱고 선율에 몸을 맡기게 되었다.
전문 무용수들의 리드가 그만큼 훌륭했기에 가능한 일이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무대 위에서 연주자들이 먼저 일어나 함께한 덕에 자연스레 같이 어울리게 된 것도 있었다.
확실히 ‘국제’ 음악제는 국제 음악제인 모양이다. 보수적인 한국인들만 잔뜩 모아뒀다면 생각도 못 했을 일일 텐데.
그런데 그때, 서진을 리드하던 여성 무용수가 그를 놓아주며 어딘가로 떠밀었다.
서진이 당황한 얼굴로 고개를 돌리자, 맞은편에는 같은 얼굴을 한 채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지연이 있었다.
이건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었다. 리허설에서 함께 호흡을 맞춰본 적이 있다고는 하나, 그건 어디까지나 재미 삼아 해봤던 일이었으니까.
“어…? 우리 둘이?”
서진이 작게 속삭였다.
“그, 글쎄. 괜찮나?”
주위를 둘러보니, 파트너가 바뀐 건 둘만이 아니었다.
애초에 무용수들이 관객들을 누구누구, 어떤 식으로 끌어들여 어떻게 춤을 출지까지 구체적으로 논의했던 건 아니기에, 대부분 그때그때 상황에 맞는 애드립으로 진행되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그 일환으로 나름의 기지(?)를 발휘해 파트너 체인지를 해버린 듯한데….
‘지휘는 괜찮나…?’
곡은 어쩌나 싶은 생각이 순간적으로 스쳤다.
같은 멜로디의 클라이막스가 반복되는 부분이라 지휘봉을 잠시 놓아도 된다고는 하나, 정말 이래도 되나…?
그때, 악장을 맡은 송희란이 자신을 향해 고개를 끄덕이는 게 보였다.
실력이든 유명세든, 뭐로 보아도 이자크를 넘어설 사람이 없는 상황이었지만, 음악제 오케스트라라는 게 그리 목숨 걸 필요는 없는 자리인 만큼, 국내 음악계에서의 포지션을 보아 그녀에게 양보한 것이었다.
자기가 알아서 잘할 테니 걱정 말라는 의미의 미소.
손을 휘휘 저으며 씨익 웃어 보이는 그녀의 모습은, 꼭 미리 알고 있었던 게 아닌가 싶을 만큼 느긋하니 즐기는 모습이었다.
‘…뭐, 애초에 지휘 없이도 할 수 있으니 괜찮겠지.’
사람들의 충동질에 둘이 탱고를 췄을 때의 경험이 있는 만큼 큰 문제는 없었다. 얼마 전의 리허설 때도 그랬듯, 악장의 재량으로 어느 정도 커버할 수 있을 테니.
역시나, 음악은 알아서 잘만 연주되었다. 씨익 미소 지은 서진이 지연의 손을 맞잡았다.
그 모습에 사람들이 마구 박수를 쳐댔다. 그리고 급기야 다른 관객들도 다들 신나서 일어나 저들끼리 춤을 추기 시작했다.
무용수들의 리드 없이도, 무대와 좌석 사이의 빈 공간에서 쌍쌍이 너도나도 탱고를 추는 것이다. 애초에 그걸 유도했던 만큼, 그리고 딱딱한 격식의 콘서트홀이 아닌 자유로운 분위기의 야외무대였기에 문제 될 것은 전혀 없었다.
제대로 출 줄 몰라도 된다. 대충 흥겹게 음악에 맞춰 즐기면 그만이니까.
“재밌지?”
“그러게.”
호언장담한 그대로 지연은 무척 능숙하게 서진을 리드했다.
다른 것도 아니고 탱고인데, 남녀가 바뀐 상황이 조금 우습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이것도 나름의 재미가 있었다.
아니, 그 이상이었다.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즐거운 일이었다. 웃음이 절로 터져 나올 만큼.
빙글 돌고, 허리를 꺾고, 다리를 걸어 올리고…,
그래도 한 번 해봤다고, 또 어디서 본 건 있어서 그런지 서진은 어렵잖게 금세 호흡을 맞추어 나갔다.
‘음악가 부부라….’
이러고 있으니, 문득 떠오르는 생각이었다.
단순한 음악적 파트너를 넘어서 인생의 파트너가 되는 것.
얼마 전, 주커만 부인의 이야기를 들었던 탓일까. 비록 그녀는 파경을 맞이했다지만…,
‘모두가 그런 결과를 갖게 된 것은 아닐 테니까.’
물론 서진 자신이 누군가를 구체적으로 떠올리고 하는 생각은 아니었다. 그냥, 만약 언젠가 병이 다 나아 결혼이라는 걸 하게 된다면, 그 상대로 이왕이면 함께 음악의 길을 걸어가는 사람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 정도.
그러는 가운데도 서진은 오케스트라를 완전히 놓지는 않았다. 빙그르르 돌면서도 손짓을 보내며 호흡을 맞춰나가는 모습이 베테랑급이었다.
가빠지는 호흡에 서로의 뜨거운 숨결이 가까이 느껴질 때쯤, 음악도 마지막을 향해 갔다.
마지막 포즈를 잡는 지휘자 커플의 모습.
그 자체가 바로 끝맺는 사인이었다. 서진과 지연이 딱 멈추어 있는 타이밍에 맞춰 음악이 마무리되었으니까.
지휘봉을 잡지는 않았지만, 마지막까지 지휘자로서의 책임을 다한 셈이었다.
“와아아아!”
열광의 도가니.
실로 정열적인 무대였다.
짝짝짝!
사람들은 마구 환호성을 질러대며 박수를 쳤다.
코로나라는 전례 없는 전염병으로 인해 우울함의 긴 터널을 지나온 이들에게 더할 나위 없이 즐거운 경험을 선사한 순간.
그동안의 음악제와는 조금 다른 의미로, 사람들의 기억에 오래도록 남을 무대였다.
* * *
-이번 음악제 대박이었음.
└지휘자가 탱고 추며 지휘함zzzzz
└ㅁㅊㅋㅋㅋㅋ남미 온줄ㅋㅋㅋㅋ
└마스크만 없으면 진짜 완벽했는데 ㅋㅋㅋㅋ 탱고 추는데 다들 마스크 쓰고 있는 게 진심 웃겼음 ㅋㅋㅋㅋ
└그것만 빼면 레전드.
-진심 호흡 쩔더라.
-근데 진짜 둘이 안 사귀는 거 맞음?
└ㅇㅇ 우리 서진이 바욜이랑 결혼해서 한눈 팔 여력 없음.
└저런데 대체 왜 안 사귐.?
└저래놓고 진짜 안 사귐??
-한서진 돌면서도 할 거 다 하는데 겁나 신기하면서도 웃겼음.
└돌면서라기보다는 돌리면서 아냐? 서지연 겁나 돌려대던데 ㅋㅋㅋ
└근데 서지연 ㄹㅇ 잘추긴 하더라ㅋ 탱고여신
-우리 이준 꼬꼬마도 잘했는데… 다들 왜 탱고 얘기만 해…
└ㅇㅇ진심 이번에 다들 쩔었음. 오케도 대박이었음. 거장들로만 모아놓은 오케라니…세상에…
올해의 서울 음악제는 채 다 끝나기도 전에 엄청나게 화제가 되었다.
그 덕에 서진은 폐막식까지 성황리에 마무리할 수 있었다.
사람들이 떠드는 대로, 정말 역대급 무대였다. 참여한 이들의 면면이 저러한데, 망하려야 망할 수 없는 일.
“후….”
한바탕 큰일을 치르고 나니 기운이 쭉 빠진다.
하지만 아직 마지막 일정으로, 뒤풀이를 위한 갈라 파티가 남아있기에 끝났다고 끝난 게 아니었다.
천재 바이올리니스트로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