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 returned as a genius violinist RAW novel - Chapter 228
228화
코로나 와중이라 신나게 먹고 마시고 할 수는 없지만, 음악제 기간 동안 친분을 나눈 이들은 마스크를 쓴 채 서로 즐겁게 이야기했다. 마음껏 돌아다니며 떠들 수 없는 상황인지라 가벼운 핑거푸드와 샴페인이 제공되는 대신에, 각자 자리에 앉아 정찬을 즐겼다.
“너무 아쉽네요. 벌써 끝이라는 게….”
“그러게요. 이거 이대로 해체하기 너무 아까운데 말이에요.”
매년 열리는 음악제라고는 하지만, 완전히 상설로 유지되는 건 아니었다. 그 때문에 고정 멤버들도 일부만 소수 존재하는 것이었고.
“이거 거의 그대로 오케스트라 하나 만들어도 되는 정도 아닌가요? 하하…”
“…오? 그거 좋은 생각인데요?”
말 그대로 이 멤버 그대로 이어 새로운 오케를 만드는 건 어떨까.
원래라면 일회성으로 한 번 연주하고 흩어질 이들이었지만, 한서진이라는 구심점이 있다면…?
마크는 원래 서진을 따로 조용히 청해 이야기를 꺼낼 생각이었으나, 마침 말 나온 김에 잘됐다 싶었다.
“오케스트라요…?”
“좋은 생각이지 않나요?”
마크는 확신했다.
직접 겪어보기 전엔 몰랐는데, 한서진과 한 번 함께 해보고 나니 깨달을 수밖에 없었다.
아예 한 번도 겪어본 적 없으면 모를까, 한 번만으로 끝낸다는 건 불가능하다는 것.
“오호….”
“이름은 적당히 K-서울 필하모닉. 이렇게 하면 그럴싸하겠는데요?”
마크의 말에 즉석에서 사람들이 신이 나 떠들기 시작했다.
“오우, 그거 정말 혹하네요.”
“진지하게, 괜찮은 것 같은데요?”
몇몇이 보이는 진지한 반응에 사람들은 일제히 서진을 바라보았다.
대표로 이자크가 물었다.
“어떤가. 서진?”
“오케스트라…요?”
“네. 혹시 정식으로 필하모닉을 만드실 생각은 없나요?”
가장 먼저 이야기를 꺼냈던 마크가 옆에서 덧붙였다.
그는 진심으로, 한서진을 주축으로 하는 새로운 오케스트라가 생긴다면 뒤도 안 돌아보고 투신할 생각이었다.
물론 지금도 일명 ‘한서진 오케’로 알려진 K-오케스트라가 있긴 하나, 그가 공식적으로 이끄는 건 아니라고 알고 있었다.
그리고 SIMF 오케는 모두 알다시피 이벤트성 단체라 지속성이 떨어졌고….
‘앞으로도 꾸준히 함께하고 싶은데….’
마크는 얼마 전 서진과 했던 대화를 떠올리며 더욱 의지를 다졌다.
-소리가 달라졌어요. 깨달음이 있었나 보군요.
-…예. 감사합니다.
-실은, 아버님께 이야기 들은 적 있거든요.
-아버지가요…?
서진이 아는 체를 하자 마크는 그제야 제 풀네임을 털어놓았다.
아버지의 후광에서 벗어나고자 이름을 숨긴 채 지원했다고.
-이번 음악제를 통해 많은 것을 배우고 있습니다. 아직도 많이 부족하고, 아버지를 따라가려면 멀었지만….
-아닙니다. 지금으로도 충분히 잘하고 계십니다. 마크 씨에게는 마크 씨만의 소리가 있으니까요.
중요한 건 누군가를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자신만의 소리를 끌어내는 것이니까요, 라고 덧붙인 서진이 작게 미소 지었다.
-저는 정말 행운이군요. 이렇게 귀한 곡을 한서진 씨와 함께 해 보게 되어… 정말로 행운이라 생각합니다.
다른 것도 아니고 부제가 ‘아버지’라고 붙은 곡이 아닌가.
그건 그에게 정말 큰 의미로 다가오는 단어였다.
-감사합니다. 이제는 정말로, 더는 방황하지 않을 것 같아요.
마크는 진심으로, 서진에게 무척이나 고마운 마음이었다.
사실 부친은 이제 살날이 얼마 남지 않은 상태였다.
만약 이대로 자신이 한 걸음 나아가지 못한 채 아버지를 떠나보냈다면, 영원히 극복해내지 못한 대상으로 남았을 터.
‘그래. 그 순간이었어.’
앞으로도 어떻게든 오래도록 눈앞의 젊은 천재와 함께하고 싶다 마음먹은 게.
“음….”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 속에 서진은 진지하게 고민해 보았다.
지금 이 오케스트라의 구성원들을 잘 살릴 수 있다면….
사실 콩쿨을 개최하려면 그를 뒷받침할 오케스트라도 필요한 게 당연지사였다. 뭐, 따로 구하려면 얼마든지 구할 수 있다지만, 이참에 함께 오케스트라도 창설하는 건…?
결코 불가능한 일만은 아니었다.
이 멤버에 더해 기존 K–오케의 멤버를 더한다면….
K-오케의 가장 부족한 부분이 바로 그것이었다. 오랜 경력의, 연륜 있는 연주자가 부족하다는 것.
신생 오케로서 젊은 연주자 위주로 구성된 단체인지라, 태생적 한계가 있는 것이었다.
한데 만약 시작부터 쟁쟁한 이들로 꽉 채우고 스타트할 수 있다면…?
덕분에 단숨에 올라간 명성에, 추가로 들어오는 지원자들 수준도 당연히 높아질 수밖에.
‘K-서울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라는, 이름부터 찰떡같은 새로운 오케스트라가 순식간에 자리 잡을 수 있는 것이다.
“나도 데려가!”
“뭐? 나도 나도!”
“뭔데? 뭐데?”
“써진이가 오케스트라를 정식으로 만든대!”
어디선가 나타난 페르디, 마리아, 세르겐이 갑자기 와라락 끼어들었다.
그들 역시 이번 SIMF 오케스트라 활동이 이렇게 일회성으로 끝나고 마는 건 도저히 견딜 수 없었다. 그러기엔 너무 아쉽다는 게 모두의 공통된 소감.
“다들… 진심이야?”
다들 솔리스트 활동만으로도 빠듯할 텐데, 사실 조금 당혹스러울 정도로 믿기지 않는 반응이었다.
사람들이 자신의 음악에 끌린다는 걸 서진도 알긴 알았다. 관객들뿐 아니라 같은 연주가들도 그렇다는 것을.
서진은 그게 자신의 특이한 능력 때문이라고만 생각했으나, 그게 결코 전부는 아니었다.
그러한 영향이 있을지언정, 그들은 서진의 음악 그 자체에 매료되어 있는 것이니까.
물론 심상 능력도 완전히 자신의 것으로 체화한 지 오래다. 이제는 의식하지 않고도 발휘할 수 있었으므로, 그 또한 서진이 연주하는 음악의 일부라 할 수 있겠지만…
음악이란 연주가나 작곡자라는 ‘사람’까지 총체적으로 포함하는 만큼, 결국 그들이 매료되는 이유는 서진 그 자체에도 있다는 뜻이었다.
“당연하지!”
세르겐은 이번 기회에 굳게 결심했다.
좀 더 깊이 배우자.
한 해, 한 해 나이만 먹는다고 다가 아니구나.
음악적 깊이란, 그로 인해 자신의 음악 세계를 넓히는 일이란 반드시 그에 걸맞은 양질의 경험을 통해서만 쌓아지는 것이구나.
만약 한서진과 아예 고정적으로 쭉 함께 할 수만 있다면….
“나도.”
“나도. 나 뺄 생각 꿈에도 꾸지 마!”
언젠가 지연과 라이벌 구도였던 마리아조차, 급 친한 척 지연에게 찰싹 붙어가면서까지 부탁할 정도였다.
“좋아. 그럼 나는 거기에 더해 한 가지만 더 추천하지.”
“…아, 선배님.”
협회 쪽 관계자들과 이야기하느라 뒤늦게 들어와 자리한 장명훈의 말이었다.
“이왕 할 거면, 마땅히 세계에서 우뚝 설 그런 오케스트라를 만들어야지. 암. 한데 그러려면 한 가지가 더 필요해.”
“…?”
“지휘자.”
“아….”
“지휘 없는 오케스트라 무대를 해봤던 것도, 이곳에서 부예술감독으로서 해온 경험도 다 좋지만, 더 깊이 알려면 본격적으로 배우길 추천하네. 모든 학문이 그렇듯 지휘 역시 잘 알고 나면 자네가 해보려 하는 그 다양한 시도에 대한 결과 역시 더욱 업그레이드되어 돌아올 것이네.”
“네. 맞는 말씀이에요.”
“박사과정은 어떻게 계획 중인가?”
“박사과정요?”
그러고 보니 아직 전혀 생각해 보지 않았다.
뭐 한 것도 없는 것 같은데 코로나 와중 얼결에 석사학위를 취득해버려서, 그 뒤는 아직 고민해 본 적 없는 것이다.
“나도 이제 와서 지휘 콩쿨이니 그런 거에 나가보라 권유할 생각은 없네.”
서진도 콩쿨 출전은 이제 관심 없었다. 이제는 그런 것보다는 사람들의 말대로 오케스트라를 본격적으로 해보고 싶었으니.
“차라리 최고연주자 과정을 밟는 게 낫겠지. 워크숍도 괜찮은 게 많고.”
이름은 최고‘연주자’ 과정으로 연주자만 해당하는 것 같이 들리지만, 한국어로 번역이 그럴 뿐 원어로는 ‘Artist Diploma’였다.
즉 최고연주자 과정으로 지휘 공부를 하라는 추천.
“한때 지휘자 없는 지휘를 했던 경험이 오히려 큰 밑거름이 될 거야.”
“….”
서진이라고 지휘에 욕심 없는 건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그건 어떻게 보면 최종적으로 갖춰야 할 목표 중 하나이기도 했다.
바이올리니스트로 출발해 작곡, 나아가 지휘까지.
내 손끝 아래 한데 어우러지는 하모니를, 그것이 주는 감동을 어찌 바라마지않을 수 있겠는가.
게다가 지휘에 대해 더욱 깊숙이 알수록, 그 행위에 익숙해질수록, 더욱더 느껴지는 바가 있었다. 그 특유의 능력으로 인한 영향력이 점점 강해진다는 것이.
어느덧 거의 의식하지 않게 된 능력이지만, 가끔 느껴질 때가 있는 것이다. 서진은 분명 다른 이들의 소리에 깊은 영향을 끼칠 수 있었다. 단순히 감동을 전하는 것을 넘어, 모두의 음을 한데 어루만지듯 조율할 수 있는 것이다.
“조언 감사합니다. 한데….”
하지만 단순히 지휘 공부라면 모를까, 오케스트라를 만들어 전적으로 도맡는 건 망설여졌다.
‘내가 그런 큰 단체를 전적으로 맡을 여력이 될지….’
이유는 건강 때문이었다. 선뜻 결정을 내릴 수 없을 정도로 걸림돌이 되는 것이다.
“아닙니다. 우선… 모두 선뜻 함께해주신다고 해서 진심으로 감사드려요.”
모두의 기대 어린 시선에 서진은 일단 좋게 좋게 화제를 마무리하기로 했다.
“저도 여러분 모두와 앞으로도 쭉 함께하기를 온 마음으로 바라고 있습니다. 그러니 천천히, 진지하게 고민해 본 후, 여기 예술감독님과 다른 음협 분들과도 논의해 본 후 다시 말씀드리기로 하죠.”
결론은 어쨌든 고민해 보겠다는 답이었지만, 그래도 퍽 긍정적인 태도에 사람들은 더욱 기대감 어린 표정이 되었다.
정말로 한서진을 중심으로 한 이 드림팀이 결성되기만 한다면, 현재 하고 있는 다른 활동들은 얼마든지 때려치워도 아깝지 않다는 게 이 자리의 대부분이 떠올리고 있는 생각이었다.
* * *
한바탕 떠들썩한 시간을 보내고 난 뒤, 잠시 바람 쐴 겸 나온 테라스에서 서진은 이자크에게 진지한 고민을 털어놓았다.
“이번 음악제가 끝나면, 다시 본격적으로 공연도 생각해 보려고요.”
“잘 생각했네.”
“그런데….”
콩쿨과 음악제 등, 일련의 일들을 거치는 사이 어느덧 코로나도 거의 끝나가고 있었다. 정확히는 사람들이 별로 신경을 안 쓰게 된 것에 가까웠지만.
하지만 서진의 문제는 단순히 코로나 때문만이 아니었다.
“지병 때문에 그런 게지?”
“…네.”
원래는 코로나 기간 동안 혹시 모를 일을 대비해 특별히 조심하라고 했던 것이었지만, 아버지의 일을 알게 된 후 단순히 코로나가 끝난다고 해서 안심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아버지의 일에 대해 들은 주치의는 더욱 적극적으로 만류했다. 병에 대한 연구가 계속되고 있으니, 확실한 치료 방법이 개발될 때까지 연주 활동을 보류하는 게 어떻겠냐며.
아무래도 서진의 아버지와 같은 사례도 있고 하니, 급성으로 악화될 것을 우려한 것이다.
“의사의 말에 따르자면 앞으로 평생 몸을 사리고만 살아야겠죠.”
“음….”
“이자크라면 어떻게 하겠어요?”
천재 바이올리니스트로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