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 returned as a genius violinist RAW novel - Chapter 23
23화
“학생, 학생!”
“한서진 군, 잠시만!”
아니, 이런 반응일 줄이야. 콩쿨에서 우승한 날에도 레슨이라니….
게다가 어린 나이에 인터뷰라면 엄청 흥분해도 이상하지 않은 일인데.
뭐 엄청 대단한 걸 물으려는 건 아니었다. 그냥 수상 소감 정도, 그리고 평소에 얼마나 연습을 하는지, 바이올린은 언제부터 시작했는지, 누구에게 배우는지 등등.
물론 머릿속에는 이미 제법 자극적인 기삿거리가 쫙 뽑혀 있었다.
-초등학생 한서진 군 대상!
-초등부 출신이 전 학년 통틀어 1등 대상! 심사위원들 만장일치로 결정!!
-고등부 제시곡인 생상스의 바이올린 협주곡 3번으로 참가해 전체 대상 수상!
-6학년 한서진 군. 전 학년부를 통틀어 전체 대상을 받은 것으로 알려져.
-혜성처럼 나타난 신동의 데뷔. 과연 제2의 사라 정이 탄생할 수 있을 것인가!?
-직접 참관한 기자의 한 마디, ‘거장의 연주를 보는 줄 알았다.’
등등.
한데 거기에 방점을 찍으려면 본인의 인터뷰를 한 마디라도 따서 첨가해야 한다. 그래야 기사의 생생함이 확 살아날 테니.
하지만 정작 당사자는 이미 저 멀리 사라진 지 오래.
낙동강 오리알이 된 JT일보의 기자는 꿩 대신 닭이라고 서진을 대신해 인터뷰할 사람을 물색하기 시작했다.
‘그러고 보니 공동 예술 감독인 장명훈이 평론가로도 유명했지. 심사위원 중 한 명이라고 들었는데….’
어쩌면 그쪽에서 꽤 솔깃한 기사를 얻어낼 수도 있을지 모르겠다.
* * *
“축하해, 서진아!”
“서진이 완전 대단해!”
“대상이라니! 진짜 진짜 최고야!”
친구들도 모두 서진을 축하해 주었다. 거기에는 찬윤도 포함되어 있었는데, 서진 역시 찬윤에게 축하를 건넸다.
“형도 전체 대상이잖아.”
어린 나이임에도 전체 대상을 차지한 건 서진만이 아니었다. 중학생인 찬윤 역시 피아노 부문에서 위 학년을 전부 제치고 대상을 차지했다.
하지만 찬윤은 자신은 서진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라며 겸손했다.
“에이, 내가 뭘. 너랑은 비교할 수 없지. 넌 초딩이잖아.”
“….”
이거 칭찬이야 욕이야. 저 임찬윤의 입에서 ‘초딩’ 소리가 나올 줄이야.
“아무튼 서진이 진짜 대단하다. 헤헤, 난 너랑 아는 사이인 것만으로도 뿌듯해! 나는 애초에 너한테 이길 생각 같은 건 하지도 않았거든.”
윤수의 목소리였다.
서진은 윤수에게 은근히 미안한 마음이 덜어지지 않았다. 회귀 버프라는 사기 스킬로 혼자만 앞서나가 그의 자신감을 빼앗아버린 것 같아서.
“나도 축하해, 윤수야. 우리 학년부 1등 했잖아.”
“에이, 그거야 서진이 네가 고등부로 나갔던 덕분이고.”
무슨 대답을 해야 할지 몰라 어색지려던 찰나,
똑똑.
바깥에서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서진아, 예술 감독님이 잠깐 보자고 부르신다는데?”
예술 감독님…? 국제음악제 예술 감독이면 바이올리니스트로 유명한 장경화이었다.
알겠다고 고개를 끄덕인 서진은 곧바로 방을 나섰다.
* * *
“네? 전 악장 연주요?”
“그래. 네가 가능하다면 그게 어떨까 해서.”
예술 감독의 제의는 예상치 못한 것이었다.
원래 콩쿨 곡은 한 악장만 골라 하는 것으로 지정되어 있었다. 자연히 폐막 무대의 협연 역시 전 악장이 아닌 한 악장만이었다. 보통 연주회에서 협주곡 연주는 전 악장 연주가 기본이지만, 아직 어린 학생들에게는 무리인지라 그렇게 정한 것이었다.
전 악장을 모두 연습하는 것도 그렇지만, 그걸 전부 암보해 거의 30~40분에 달하는 시간 동안 내내 무대에 서서 연주하는 것도 무척이나 힘든 일이다.
“갑자기 당혹스러울 수도 있겠구나. 실은 이번 네 연주가 상당히 인상 깊었거든.”
“감사합니다.”
“네게도 좋은 기회가 될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하니?”
그녀는 이 아이의 가능성이 어디까지인지 궁금했다.
어린 나이에 협연자로서 무대에 서는 것으로도 모자라, 전 악장을 연주해 낸다면 서진 본인에게도 굉장한 경력으로 남을 터.
그뿐 아니라 이러한 경험은 앞으로 성장하는 데 있어 매우 큰 밑거름이 되어줄 것이다.
“아, 바로 결정하지는 않아도 돼. 천천히 생각해보고…,”
“할게요.”
콩쿨과 폐막 무대까지 시간적 여유가 약간 있긴 했지만, 그리 넉넉하진 않았다. 보통은 곡이 미리 준비되어있지 않다면 결코 쉽게 도전할 수 없는 일.
하지만 다행히도 서진은 이 곡의 전 악장을 할 만큼 해봤다. 1악장뿐 아니라 3악장 역시 입시나 콩쿨 단골곡이기에 회귀 전에 레슨을 받아봤고, Andantino quasi allegretto인 2악장은 기교적으로 크게 무리 없었다.
서진이 꾸벅 허리를 숙였다.
“귀한 기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열심히 준비할게요!”
“참, 그리고 말인데…,”
그런 서진을 흐뭇하게 바라보던 그녀는 파격적인 제안을 해왔다.
“···네?”
이건 더욱이 생각도 못 한 일. 서진은 예상치 못한 그녀의 제의에 눈이 휘둥그레졌다.
* * *
서진은 곧바로 맹연습에 돌입했다.
자그마치 음악감독인 그녀가 직접 레슨해 주는 수업이다.
한예종의 지도교수 무현도 훌륭하지만, 세계적인 거장 장경화에 비할 수는 없는 일. 한 마디 한 마디가 주옥같은 조언들이었다.
서진은 스펀지처럼 쑥쑥 모든 것들을 흡수해 나갔다. 회귀 전 원래도 익혔던 곡인 데다가, 그때에는 없던 세계적 거장의 가르침까지 있으니 그 발전 속도는 상상 이상이었다.
‘정말 놀라운 아이야….’
하루하루, 아니 한 시간, 한 시간 실력이 달라지는 기분.
사실 장경화는 일단 시켜보고 무리다 싶으면 중간에 그만둬도 된다고 하려 했다. 프로그램이야 원래대로 수정해 없던 일로 하면 되니까.
하지만 애초에 그건 완전한 기우였다. 이제는 그녀로서도 해줄 말이 거의 없을 정도였으니.
저만한 재능을 가지고 저토록 노력하는데 실력이 늘지 않으면 오히려 이상한 일. 서진은 그만큼 열심히 했다.
또 한편으로는 다비트와의 비밀작업(?)까지. 몸이 두 개라도 모자랄 지경으로 충실한 하루하루를 보냈다.
그렇게 시간이 훌쩍 흘러,
드디어 폐막식 공연 당일.
“···헉, 많다.”
빽빽이 잔뜩 들어찬 관객의 모습에 찬윤이 살짝 질린 듯 탄성을 내뱉었다.
요즘 들어 통 보이지 않는다 싶더니, 대체 얼마나 틀어박혀 연습을 했는지 찬윤은 약간 좀비 같은 몰골이었다.
“갑자기 실감 나….”
은근히 긴장한 기색의 좀비.
찬윤이 형, 귀엽다…. 라고 저도 모르게 속내를 내뱉을 뻔했던 서진은 얼른 말을 돌렸다.
지난 생에서의 그는 범접할 수 없는 천재 피아니스트일 뿐이었는데, 가까워져 인간적인 면모를 알게 되니 친근한 구석이 무척이나 많은 그였다.
“그러게. 무대도 완전 커.”
공연장은 상당히 큰 무대였다. 서진도 그렇지만, 찬윤으로서도 아직 한 번도 서본 적 없는 크기의.
관객들 대부분은 다른 거장들의 연주를 들으러 온 것이겠지만, 이곳에 서는 학생들로서는 어쨌든 부담이 될 수밖에 없는 상황.
물론 그런 것과 전혀 거리가 먼 사람도 있는 법. 오늘의 서진은 오히려 상당히 들떠 있었다.
‘…어머니께서 오실 수 있을 줄이야.’
그동안 그랬듯 당연히 못 오실 줄 알았는데, 어렵사리 일을 빼 먼 길을 달려오신다는 것이다.
엄마가 온다는 소식에 서진은 앞쪽의 가장 좋은 자리인 초대석을 특별히 준비해 둔 채 무대 뒤에서 그녀를 기다렸다.
“서진아! 우리 아들!”
“엄마!”
백스테이지에 들어서는 어머니의 모습에 서진이 반갑게 달려나갔다. 자차도 없이 고속버스와 기타 교통편을 갈아타 가며 먼 길을 오느라 고생하셨을 걸 생각하니 마음이 좋지 않았지만, 이 순간의 반가움에 모든 게 날아갔다.
“아유… 우리 아들, 어쩜 이렇게 대견할까.”
한선희는 오랜만에 보는 아들의 모습에 눈물까지 글썽였다. 아직 어린 나이인데, 보호자도 없이 멀리 보내놓고 어찌나 걱정을 했는지.
하지만 이렇게 부쩍 성장한 듯한 모습을 보니, 그동안 한 번도 곁에 있어 주지 못해 미안한 것과는 별개로, 서진의 바람대로 해주길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록 직접 와서 보지는 못했지만, 서진을 통해 꾸준히 소식을 전해 들은 그녀였다.
선희는 전체 대상을 받았다는 아들이 너무나도 기특했다. 비록 이 바닥을 잘 알지 못해 그게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까지는 정확히 몰랐지만.
“잘생기긴 또 왜 이렇게 잘생겼고. 이렇게 해 놓으니 너무너무 귀엽고 멋있네…!”
···어머니. 그런 말은 좀.
서진은 그녀의 말에 괜히 주위를 둘러보았다. 혹시 누가 들었을라.
친구들이 들었다면 민망해서 기절했을 텐데, 다행히 그걸 듣고 놀릴 만한 사람은 대기실에 없었다.
“엄마가 아들을 잘 둬서 이런 자리에도 와 보고…. 서진아, 다른 무엇보다 네가 즐거운 게 가장 중요한 거 알지?”
선희는 더는 서진의 손발을 오그라들게 하는 대신, 아들의 준비에 방해되지 않기 위해 마지막 응원과 함께 슬슬 자리를 비켜주려 했다.
“네. 엄마. 잘하고 올게요.”
서진이 여러 가지 다짐을 담아 그녀에게 답했다.
다시 얻은 삶의 기회, 이번에는 소중한 이들을 꼭 행복하게 해주고 싶었다.
지난번에 못다 한 효도도 해야지. 저 때문에 어머니께서 힘든 일을 하지 않으시도록, 얼른 음악으로 돈도 많이 벌어서 호강시켜 드리고 싶었다.
오늘의 무대가 아마 그 첫 발판이 되어줄 터.
강렬한 스포트라이트의 빛이 환히 쏟아지는 무대를 향해 서진이 힘차게 발걸음을 옮겼다.
* * *
폐막 공연이 열리는 알펜시아 홀.
음악제의 메인 무대이자 가장 하이라이트인 공연인 만큼 기자들도 많이 왔고, 객석 중간에는 촬영용으로 커다란 방송 카메라까지 설치되어 있었다.
선희는 그제야 이게 얼마나 큰 무대인지 실감이 났다.
무려 저 많은 사람들이 이 공연을 보기 위해 비싼 돈을 주고 티켓을 사서 들어온 것이다.
비록 서진의 이름을 보고 온 것은 아니겠으나, 어쨌든 저들이 보러 온 무대에 제 아들이 서는 건 변함없는 사실.
그녀는 자신이 무대에 올라선 것도 아닌데 너무 긴장되는 나머지 심장이 쿵쾅거렸다.
프로그램을 보니 서진의 이름은 첫 순서에 있었다.
오래지 않아 박수갈채와 함께 지휘자와 함께 서진이 등장했다. 지휘자는 장경화의 남매로 공동 예술 감독이자, 한때 서울시향의 상임 지휘자로 유명했던 장명훈이었다.
서진의 모습에 주위에서 작게 소곤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생각보다 어린데?”
팸플릿에는 협연자의 이름과 협연자 콩쿨 우승자라는 기본적인 정보만 적혀 있기에, 연주자의 나이에 대한 것은 미리 알 수 없었다.
“저 꼬마애가 협연자인 거야? 솔로?”
“헐.”
관객들은 프로그램에 쓰인 영재 학생들의 협연이라는 설명에 고개를 끄덕이다가, 아무리 그래도 너무 앳된 모습에 다시 갸웃거렸다. 중고등학생 정도의 나이를 생각했는데….
딱 봐도 초등생인 어린 학생은 흰색 나비넥타이에 턱시도를 차려입고 당당히 걸어들어오고 있었다.
박수 소리가 이어지는 동안, 무대 가운데에 도착한 서진은 깊이 허리를 숙였다 일어났다.
관객을 또렷이 바라보고 있는 서진의 모습이 보석처럼 빛났다.
이 많은 사람들 앞에서 어쩜 저렇게 태연하고 당당한지… 선희는 너무너무 자랑스러워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천재 바이올리니스트로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