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 returned as a genius violinist RAW novel - Chapter 231
231화
크게 두 가지였는데, 첫 번째는 진짜로 글자 그대로 대중가요를 의뢰한 것이었고, 두 번째는 한국 학교를 배경으로 찍는 미국 드라마에 나올 OST 의뢰였다. 그 드라마의 남자 주인공 역할을 맡는 배우가 K-팝 스타였는데, 아마 OST를 직접 부를 모양이었다.
K-팝이 전 세계적으로 인기가 높은 지금 꽤 괜찮은 제안이었지만, K-팝은 너무 생소한 장르라 서진은 선뜻 수락하지 못했다.
크로스오버 정도도 아니고, 완전히 대중가요 쪽으로는 영 아니다 싶었기 때문이다. 대중가요가 클래식보다 못하거나 그런 이유에서가 아니라, 저 둘은 아예 영역이 다르니까. 한 마디로 아는 바가 전혀 없어서였던 것.
‘그나마 전자보다는 후자가 낫겠다 싶긴 한데….’
일단 전자는 전부 거절했고, 후자는 아직 고민 중인 상황.
본격적으로 하늘길이 다시 열리는 건 이제부터니, 천천히 고민해 봐도 되겠지. 지금은 일단 모레의 공연에 집중해야 할 때.
“한서진 씨!”
게이트를 나서니 매니지 측에서 나온 직원이 마중 나와 있었다.
비행 자체는 홀로 했지만, 고가의 악기 때문에라도 온전히 혼자 돌아다닐 수는 없어 입국 전까지와 출국 이후를 담당하는 사람이 늘 따로 존재했다.
조금 번거롭지만 현지 가이드(?) 겸 나쁘지 않았기에 서진은 좋게 생각했다. 원체 돌발행동과는 거리가 먼 편이었기에 굳이 따돌리고 혼자 다니거나 할 생각도 없었고.
“비행은 편하셨는지요.”
“단거리라 뭐 힘들 거 있나요. 덕분에 편히 왔습니다.”
“하하. 그럼 오늘은 일단 쉬시는 거지요? 호텔로 안내해 드리면 될까요?”
“네. 공연이 원래보다 이틀 미뤄진 덕에 여유 있네요. 부탁드려요.”
원래는 오늘이 공연일이었는데, 공연장 측의 사정으로 이틀이 미뤄진 상황.
그 때문에 하필이면 딱, 정확히 광복절이 공연일이 되어버렸다.
그 부분이 조금 걸리긴 하지만, 어쨌든 오늘은 저녁 도착으로 푹 쉬고, 내일 리허설을 해본 후, 다음날 본 공연을 하고 돌아가는 것으로 널널한 일정이었다.
거리가 가까운 탓에 공연일은 일단 하루만 잡았다. 장거리였으면 간 김에 좀 더 긴 일정을 잡았을 텐데, 일본 본토에서 자신에 대한 인지도가 유럽이나 미국만큼은 아닐 거라는 생각에 일단은 하루만 하기로 한 것이다.
“근데 이거… 괜히 욕 좀 먹겠는데요?”
한국인이 광복절에 일본에서 공연이라니.
그것도 수도 없이 많이 해외를 다니던 시절도 아니고, 몇 년간의 공백을 깨고 처음으로 택한 해외 공연이 하필이면….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서진의 뜻으로 이렇게 된 건 아니니까.
딱히 그 누구도 일부러 의도한 건 아닌 상황.
미뤄진 이유도 별로 대단한 건 아니었다.
다른 공연 스케줄로 인한 것이 아닌, 공연장의 설비실에서 일어난 작은 화재로 인한 시설 점검 및 공사 일정 때문이었으니까.
“설마요. 누가 이런 일로 한서진 씨를 욕하겠습니까. 한서진 씨는 그야말로 국뽕의 아이콘인걸요.”
“….”
왜 이렇게 쑥스럽지.
자신이 너튜브 등에서 그런 쪽으로 은근히 유명하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직접 들으니 왠지 민망하다.
서진의 표정에 말한 본인도 뻘쭘한지 죄송하다며 하하 웃었다.
“이런, 제가 인터넷 용어를 너무 직설적으로….”
“아뇨, 괜찮습니다.”
국뽕을 국뽕이라 하지, 달리 뭐라 표현하겠는가. 순화해 말한다고 ‘한서진 씨는 워낙 애국자시니까요!’라고 말하면 더욱 이상했을 터였다.
“하하, 그럼 갈까요?”
* * *
다음날.
호텔에서 푹 휴식을 취한 후 리허설을 위해 찾은 공연장.
관계자가 나와 서진을 반가이 맞이했다.
“반갑습니다! 뵙게 되어 진심으로 영광입니다, 한 상!”
영어와 일본어를 섞어 쓴 인사에 서진은 유창한 일본어로 답했다. 그러자 요시키라고 자신을 소개한 남자는 살짝 놀란 얼굴로 말했다.
“일본어가 무척 유창하시군요!”
“초보적인 수준이긴 하지만, 한국어와 어순이 같아 어렵지 않게 배웠습니다.”
“무슨 그런 말씀을. 정말로 잘하십니다.”
“평소 일본에 관심이 많아 조금 배워두었습니다.”
사실 말과 달리 서진은 딱히 일본에 관심은 없었다.
정확히 말하면 크게 좋아하는 편은 아니었다. 일단 일본과 한국 사이에는 껄끄러운 과거가 있으니까.
물론 과거는 과거의 일일 뿐, 그렇다고 대놓고 싫어하는 것도 아니었다. 비록 일본인과 관련해 몇 번 작은 마찰이 있긴 했지만, 개인적인 유감은 없는 것이다.
어쨌든 초면에 관계를 악화시켜 좋을 건 없기에, 비즈니스적 차원에서 좋게 좋게 말하려는 의도였다.
덕분에 화기애애해진 분위기로 서진은 공연장을 한 바퀴 둘러본 후 간단한 미팅 시간을 가지게 되었다.
“아노…, 실례합니다만 아직 한 상으로부터 답을 듣지 못해서 말입니다.”
“예?”
“그것이, 일전에 드렸던 질문 말입니다. 앵콜곡에 관해….”
“아.”
한국에 있을 때부터 미리 물어왔던 것.
일본 측에서는 그 후로도 몇 번 더 앵콜곡에 관해 물어보았으나, 서진은 당일에 결정하겠다며 아직 답하지 않은 상황이었다.
“내일의 앵콜은… 일단 이렇게입니다.”
그렇게 말하며 서진은 악보를 직접 건네주었다. 오케스트라도 함께 연주하려면 미리 알려줄 필요가 있는 것이다.
“감사합니다.”
악보를 건네받은 요시키가 미소로 답하며 확인차 되물었다.
“혹시 이렇게가 전부인가요? 따로 더 추가로 하실 곡은…,”
“그건 그날 상황에 따라 다를 터라 아직 모르겠군요. 추가로 할지 안 할지, 한다면 어떤 곡을 할지, 즉흥적으로 결정하는 편이라서요.”“…아.”
요시키는 난감한 기색이었다. 바로 그 부분을 확실히 해야 하는데….
“이런 말씀 드리기 조금 그렇지만…, 이번 공연이 워낙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무대인 만큼, 음악계의 높은 분들을 비롯해 평론가나 기자들이 많이 와 있어 그렇습니다.”
“….”
역시나.
무슨 말을 할지 알 것 같다. 얼핏 짐작했던 그대로였다.
“그래서 드리는 말씀인데, 양국 간의 갈등을 초래할 수 있는 곡은 자제해 주셨으면 해서….”
“갈등을 초래할 수 있는 곡이라면, 어떤 걸 말씀하시는 거죠?”
서진의 목소리가 대번에 딱딱해졌다. 기껏 부드럽게 만들었던 분위기가 무색하게도 순식간에 얼어붙은 것이다.
상대 역시 그걸 여실히 느낀 건지 땀을 삐질 흘리며 어렵게 입을 뗐다.
“혹시 아리랑… 같은 걸 할 계획이 있으시다면, 부디….”
조금 전 서진이 건넨 악보에는 일단 아리랑과 같은 국악은 없었다. 하지만 문제는 따로 추가 앵콜에서 연주할까 봐, 바로 그 점이 신경 쓰이는 것이다.
“….”
“여기는 일본 본토인데, 8월 15일이 한국에서는 좋은 의미로 기념비적인 날이겠지만, 저희 일본에서는 역사적으로 전혀 다른 의미를 갖는 날인지라….”
그야 당연한 일이었다. 한국이 광복을 맞이한 날은 즉, 일본 제국이 패망한 날과 같은 날이니까.
“그래서 당시 역사적 저항을 상징하던 종류의 곡은 조금, 그 아무래도 정치적으로 민감하게 받아들여지지 않을까 하는 우려에…,”
빙빙 돌려 하는 말은 결국 하지 말라는 소리였다.
서진은 매우 언짢은 한편 어이가 없었다.
아리랑이 뭐가 어때서?
한국의 민속곡일 뿐, 독립을 기원하거나 일본의 패망을 조롱하는 노래도 아닌데 대체 왜?
‘그때 그 피아니스트도 이런 기분이었겠구나….’
이건 서진이 첫 번째로 겪는 일은 아니었다. 예전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으니까.
정확히는 그때 그런 일이 있었기에 더욱 눈에 불을 켜고 경고하는 것일 터.
지금은 벌써 꽤 시간이 지난 일이라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도 많을 테지만, 예전에 한 한국인 피아니스트의 일본 공연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일본이 딱 지금과 같은 요구를 했던 것.
지금처럼 하필 광복절이랑 딱 겹치는 타이밍도 아니었건만, 일본은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대놓고 했다.
하지만 결국 앵콜에서 아리랑은 연주되었다.
“불쾌하군요.”
“하, 한 상….”
“전 세계 수도 없이 많은 공연장에서 연주해 보았지만, 앵콜곡을 검열당하는 건 난생처음이군요.”
“아, 아닙니다! 검열이라뇨! 저는 그런 의미가 아니라, 단지….”
“어쨌든 그런 무례한 요구라면 거절하겠습니다.”
매우 직설적인 답변이었다.
그 즉답에 요시키는 무척이나 당혹스러운 기분이었다.
한국인들이 에둘러 말할 줄을 모르고 단도직입적인 건 알고 있었지만… 이건 너무 심하지 않은가. 이쪽은 예의를 갖추어 정중히 말했건만… 예의를 모르는 것도 정도가 있지.
이건, 일단은 알겠다고 대답하고는 앵콜에서 뒤통수를 후려친 그때의 그 피아니스트보다 한술 더 뜨는 수준이다.
‘그때 그 여자의 대답도 어이가 없었는데….’
서진은 모르는 뒷이야기.
당시, 왜 말과 달리 행동했냐며 일본 측에서 성을 내며 따지자, 그 피아니스트는 얼굴색 하나 바꾸지 않고 이렇게 답했다.
아, 깜빡했다고.
그에 다들 뒷목을 잡았던 건 당연지사.
이번엔 또 다른 이유로 요시키는 뒷목이 당겨왔다.
대체 한국인들은 하나같이 왜 이렇게 고분고분하지를 않은 건지….
불편한 속내와 달리 요시키는 차분히 미소 지었다.
“불쾌하게 해 드렸다면 사과드립니다. 높으신 분들이 노파심에 그러신 것이니, 부디 기분 푸시길 바랍니다.”
어차피 어찌할 방법이 없었다.
계약서에 따로 특약사항을 건 게 아닌 이상, 서진에게 억지로 강요하거나 이 일을 이유로 대놓고 불이익을 안겨줄 수는 없는 것이다.
“걱정해주셔서 감사합니다만, 제 공연은 제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예, 예. 물론이지요. 그럼….”
* * *
앞에서 있던 일이 워낙 불쾌했던 탓일까, 무슨 정신으로 리허설을 했는지 잘 기억도 나지 않았다.
어쨌든 공연 준비를 끝마치고 호텔로 돌아온 서진은 찝찝했던 기분을 털어낼 겸 시원하게 샤워하고 편히 누웠다.
리허설 자체는 괜찮았다.
명불허전이라고, 역시나 도쿄도 교향악단의 실력은 상당했다. 얼마 전 쟁쟁한 이들로만 모은 SIMF 오케스트라를 이끌었던 서진이 깜짝 놀랄 정도로.
‘K-서울 오케스트라가 정말로 가능성이 있을까….’
세계 3대 오케스트라 어쩌고는커녕, 아시아의 탑을 달리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 아닌가. 저 도쿄도 교향악단의 실력을 직접 보고 오니, 갈 길이 까마득히 멀어 보였다.
‘뭐, 첫술에 배부를 수야 없지.’
상념을 털어낸 서진은 방을 나섰다. 식사를 하기 위해 레스토랑으로 내려가려는 것이었다. 귀찮은데 룸서비스를 할까 하다가, 기분전환 삼아 산책도 할 겸 나온 것이었다.
이왕 일본까지 온 거, 맛있는 거라도 먹고 가야지.
은근히 거리에서 알아보는 사람들이 많아 신경 쓰이는 한국에서와 달리, 여기서는 훨씬 마음 편히 돌아다닐 수 있을 테니까.
한데 웬걸,
그건 완전한 착각이었다.
“꺄아아!”
“한 사마!”
“여기요, 여기!”
“마에스트로 한! 꺄!!!”
로비에 내려가자, 어떻게 알고 온 건지 일본 팬들이 와글와글 모여 있었다.
천재 바이올리니스트로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