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 returned as a genius violinist RAW novel - Chapter 232
232화
그간 미국이나 유럽 위주로 활동해 와서 일본에는 팬들이 거의 없을 줄 알았는데, 의외였다.
“사인 좀 해주세요!”
“여기도 한 번만 봐주세요!”
“꺄! 잘생겼어요!”
서진은 순식간에 사람들에게 둘러싸였다. 다행히 가드의 제지로 완전히 파묻히지는 않고, 일정 간격을 두고 둥그렇게 사람들이 에워싼 형국이었다.
“여기도 한 번 봐주세요!”
“너무 잘생겼다!”
반복되는 외침에 서진은 자신이 마스크를 쓰고 있지 않다는 걸 뒤늦게 깨달았다. 한국은 아직 마스크 규제가 풀리지 않았지만, 외국은 이미 대부분 안 쓰고 다니는 상황.
대중교통, 병원 등 예외가 있긴 하지만 일본도 마찬가지였기에 자연스레 안 쓰고 내려왔던 것이다. 그 탓인지 유독 외모를 언급하는 소리가 많아 조금 민망했다.
졸지에 인기 연예인이라도 된 듯한 기분에 서진은 어색하니 미소를 지으며, 여기저기서 내민 종이 쪼가리에 사인을 해주었다.
일본에서 이런 일은 상상도 못 했기에 어안이 벙벙하달까. 그간 수많은 해외 공연을 해왔지만, 이런 경험은 처음인 것이다.
아무래도 서구권과 동양권의 차이 같은데…. 요즘은 K팝 스타들의 활약으로 조금 달라졌다지만, 서구권에서 동양 남자는 이성으로 어필되기 어려우니까. ‘바이올리니스트 한서진’으로서의 인기라면 모를까, ‘남성 인기 스타’ 그 자체로서의 느낌은 아닌 것이다.
“탱고 좀 연주해 주세요!”
“꺄! 같이 탱고 추고 싶어요!”
왜 그런가 했더니, 얼마 전 음악제에서 공연했던 탱고 영상이 일본에서 엄청나게 인기였나 보다. 전혀 짐작하지 못한 일이라, 이런 반응은 무척 당황스러웠다.
사실, 꼭 이번 음악제 무대 때문이 아니더라도 서진은 원래 국제적으로 인기가 높았다. 19년도에 콩쿨 우승으로 빵 하고 이름을 터트린 직후, 곧바로 코로나 사태를 맞이하여 국내에 칩거해 있었던 탓에 제 인기를 채 느껴볼 겨를이 없었을 뿐.
어쨌든 과분한 사랑에 고마워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일의 공연에서 앵콜로 아리랑을 하고 나면….’
이렇게 좋아해 주던 팬들이 곧바로 등을 돌릴지도 모른다.
순간 그런 생각이 들었으나, 오히려 뜻이 더 확고해졌다. 이 팬들을 위해서라도 자신만의 소신 있는 음악을 들려주고 싶은 것이다.
음악은 한 사람을 이루는 세계를 소리로써 표현하는 행위. 즉 자기 자신을 온전히 드러내는 일이다.
정치적 이유로 그걸 포기한다면, 그 음악은 진짜가 아니게 될 터. 설령 누군가 실망하여 욕한다 하더라도 어쩔 수 없었다.
한바탕 소란이 지난 후,
서진은 드디어 식사를 하기 위해 움직였다.
하지만 이번에도 난관이 있었다.
“죄송합니다, 손님. 오늘은 예약이 꽉 차 자리가 없습니다.”
호텔에 딸린 레스토랑이 전부 만석이었다. 예약을 안 하고 그냥 워크인으로 왔더니, 식사를 할 수가 없는 것이다.
‘호텔 인기는 한국만 그런 게 아니구나….’
한국의 특급 호텔 레스토랑들도 당일 예약은 거의 불가능할 정도로 사람들이 바글바글하다.
일전에 이사 때문에 귀국 후 잠시 호텔살이를 했을 때 겪었던 일이었는데, 서진은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호텔 레스토랑을 이용하는 줄은 상상도 못 했다.
어쩌지….
바깥으로 나가 먹을까 잠시 고민했지만, 아까 로비에서의 소동을 생각해 보면 그리 좋은 생각이 아닌 듯했다.
결국 남은 선택지는 인룸 다이닝밖에 없는 상황.
기껏 여기까지 와서 아쉬운 선택이었으나, 매니지 직원이랑 같이 먹으면 좀 덜 궁상맞겠지.
그렇게 생각하며 발걸음을 돌리려는데,
“아노….”
누군가 서진을 불렀다.
“혹시… 마에스트로 한 아니십니까?”
레스토랑 지배인으로 보이는 이가 서진을 알아보고는 물어본 것이었다.
“네. 맞습니다만.”
“오, 이런! 반갑습니다! 제가 마에스트로 한의 오랜 팬입니다! 한데… 무슨 문제라도 있으신지요?”
“아뇨, 문제라기보다….”
식사를 하러 왔으나 자리가 없어 돌아가려던 참이라는 짧은 설명에, 지배인이 당황한 얼굴로 얼른 서진을 안으로 들였다.
“이런, 곤경을 겪으실 뻔했군요…! 제가 따로 모시겠습니다. 만약을 위해 여분으로 빼놓은 좌석이 있습니다. 이쪽으로 오십시오.”
귀빈들을 염두에 두고 따로 빼놓는다는 별실. 서진은 얼결에 그곳으로 안내되었다.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후한 일본에서의 대접에 서진은 여러모로 놀랐다. 한국에서 일본 연주자들의 인지도가 낮듯, 일본에서 역시 마찬가지일 줄 알았는데….
별실로 이동하는 짧은 사이, 지배인이 조심스레 말을 건넸다.
“…실은 저도 내일의 공연을 예약했습니다. 경쟁이 치열해 겨우 성공했지요.”
“성원에 감사드립니다. 오늘의 배려도 그렇고…, 모쪼록 좋은 음악으로 보답해 드리겠습니다.”
“일본에 와 주셔서 제가 더 감사하지요. 그럼, 즐거운 식사 되시기를요. 내일의 무대도 응원하겠습니다.”
국적도 인종도 정치도…, 음악은 모든 것을 떠나서 통하는구나. 서진은 그 사실에 무척이나 뿌듯했다.
왠지, 내일은 아주 뜻깊은 무대가 될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하필이면 광복절에 딱 걸린 공연이라 이래저래 시끄러운 소리도 있지만, 서진은 오히려 잘 됐다는 생각이었다.
‘그만큼 당당히 보여줘야지.’
* * *
한편,
서진과 한 차례 리허설을 마친 도쿄도 교향악단 단원들.
리허설은 아무 문제 없이 잘 마쳤으나, 그 후로 듣게 된 공연장 측의 당부 사항에 분위기가 착 가라앉아 있었다.
“…마에스트로 한과 그런 불화가 있었다고…?”
“예. 얼핏 듣자 하니 앵콜 곡 관련해 약간 문제가 있었던 듯합니다.”
“…허.”
공연장 측에서 왜 갑자기 이상한 소리를 해대는가 했더니, 또 저거다.
도쿄도 교향악단의 정지휘자인 고바야시는 대놓고 쯧쯧 혀를 찼다.
‘하필이면 한국의 광복절, 즉 일본이 완전히 패망한 날에 열리는 무대인 만큼 우려하긴 했다만….’
정말로 또 그 개짓거리를 할 줄이야.
그가 직접 겪었던 일은 아니지만, 예전에 한국의 피아니스트가 방일했을 때, NHK 교향악단으로부터 당시의 일화를 전해 들은 적이 있었다. 산토리홀 측에서 연주자에게 이래라저래라 간섭을 했다는 것.
이번 역시 그 연장선에 있는 일이었다.
“우리는 어떻게 행동하는 게 좋겠습니까?”
산토리 측에서 조심스레 부탁해온 말은 이러했다.
모쪼록 앵콜이 너무 길게 이어지지 않도록 적당히 일어나라는 것. 정확히는 한서진이 솔로로 앵콜곡을 연주하도록 놔두지 말라는 것이었다.
비록 주인공은 독주자라지만, 무대를 전체적으로 컨트롤하는 건 지휘자에게 달린 일인 만큼, 예정된 앵콜을 전부 연주하고 나면 적당히 마무리하라고. 박수갈채가 잦아진다 싶을 때쯤 재빨리 단원들을 일으켜 인사를 시켜 퇴장하는 분위기를 만들면, 독주자로서는 뭘 더 하려야 하기 곤란하지 않겠느냐는 것이었다.
“음….”
사실 고바야시로서는 내키지 않는 일이었다. 일본인으로서 양국 간의 민감한 사항이 이해가 안 가는 건 아니었으나….
“저는 반대입니다.”
고바야시의 표정을 읽은 악장이 먼저 나서서 말했다.
도쿄도 교향악단은 원래 모험적이고 도전적인 성향이 강했다. 전체적으로 새로운 시도를 좋아한달까, 즉 보수적인 성격과는 거리가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그들은 한서진에게 특히 호감이 있었다. 이번에 적극적으로 제의를 보낸 것도 그에 대한 개인적인 호기심 때문이었는데, 특히나 그의 당돌한 도전들과 혁신적인 행동을 높이 샀다.
끊임없이 새로운 시도를 보여주는 참신한 작곡, 새로이 오케스트라를 만들어 키워내고, 자신의 이름을 딴 콩쿨을 개최하려는 등등…. 큰 포부를 가지고 이상을 향해 달려나가는 모습이 무척이나 멋진 것이다. 절로 응원하는 마음이 들 정도로.
그러한 점은 도쿄도 교향악단의 특성과도 매우 닮아 있었다.
한때 중간 수준 정도로밖에 평가받지 못했던 도쿄도 교향악단이 이만큼 성장할 수 있었던 것도 다 그러한 향상심에 기반한 노력의 결과였으니까.
지금에 이르러서는 당당히 NHK 심포니 오케스트라, 요미우리 니폰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더불어 일본 빅 3 반열에 들어 있지만, 처음부터 그랬던 건 결코 아닌 것이다.
게다가 도쿄도 교향악단에는 실내악을 좋아하는 단원이 유독 많은데, 일본을 대표하는 유명 콰르텟들이 대거 이 오케스트라 단원 중에 포함되어 있을 만큼 관심이 높았다. 그런 그들에게 있어 서진이 작곡한 수많은 현악 4중주 곡들은 가뭄의 단비와 같았다.
또한 새로운 시도를 하는 데에 적극적인 도쿄도 교향악단은, 그동안 음악적으로 다양한 도전을 해온 것으로도 유명했다.
맨 처음 산토리홀이 개관했을 당시에는 윤이상의 ‘교향곡 제4번’의 세계 초연을 맡기도 했고, 이듬해부터는 ‘일본의 작곡가 시리즈’라는 정기적인 연주회를 통해 일본 작곡가들에게 작품활동을 독려하는 등, 적극적인 행보를 보여오기도 했다.
바로 그러한 코드가 이번 프로그램 및 한서진을 초빙하는 것과 맞아떨어지는 것이었으니….
이런 마당에 대부분의 단원들이 서진에게 호감이 없으려야 없을 수 없는 상황.
하지만….
“이거 곤란하게 되었군. 어찌하면 좋을지….”
문제는 지금 이 일이 저 혼자 결정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것이었다. 이번 공연의 지휘를 맡게 되었다고는 하지만, 자신은 고작 정지휘자에 불과했으니까.
‘만약 음악감독과 수석 지휘자였다면 어떻게 했을까….’
지금은 부재중인 두 명을 떠올리며 고바야시의 고민은 깊어졌다.
* * *
공연은 순조로웠다.
첫 곡.
서진이 고심 끝에 프로그램에 올린 곡은 20세기 어느 여성 작곡가의 유작이었는데, 약간의 재즈풍이 가미된 현대음악으로 무척이나 매력적인 곡이었다.
‘처음 들어보는 곡인데…?’
‘작곡가가 누구지? 한서진 건가?’
‘어? 처음 보는 이름이네?’
‘…이렇게 좋은 곡이 여태 안 알려져 있었다고?’
‘세상에….’
‘한서진 아니었으면 영영 묻혀있었겠지….’
소리로는 꺼낼 수 없는 감탄사를 연신 속으로 남발하며 사람들은 서진이 자아내는 마법 같은 선율에 정신없이 빠져들었다.
생소한 곡명에 긴가민가하며 발걸음했던 관객들은, ‘역시나 한서진’이라는 생각이었다. 단 한 번도 실망시킨 적 없는 그였으니까.
그야말로 한서진에 의해 발굴되었다 해도 좋은 곡.
사망한 지 얼마 안 되는, 그리 오래된 인물도 아니건만 그동안 곡이 거의 알려지지 않았던 것이다.
사실 그런 작곡가가 한둘이 아니었다. 현대음악은 물론이거니와, 오래된 클래식 음악에서도 그러한 경우가 상당히 많으니까.
서진은 세상에 빛을 보지 못한 채 묻혀있는 곡들은 최대한 많이 발견해내 사람들에게 들려주고 싶었다. 그런 주옥같은 곡들이 꽁꽁 묻힌 채 잊혀져 있는 건 역사적으로 큰 손실이 아니겠는가.
천재 바이올리니스트로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