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 returned as a genius violinist RAW novel - Chapter 234
234화
그만큼 좋으니까. 너무나도 매혹적이니까.
아름답다. 모든 것이 그저 너무도 아름답다.
가냘프면서도 힘찬 바이올린의 선율.
끝없이 제 이야기를 토해내는 작은 악기의 소리에 관객 모두 자아조차 잊었다.
어쩌면 이렇게 맑고 시린 걸까.
세상의 편견과 질시 따위 오직 소리로만 이겨내 보이겠다는 듯, 너무나도 청명한 현의 울림이었다.
마치 사랑을 속삭이는 듯 다정하면서도 열정적인, 가슴을 어루만지는 듯한 풍려한 울림.
듣고 있는 것만으로도 눈물이 글썽여진다.
“비외탕의 환생인가….”
누군가 작게 중얼거린 소리에, 옆자리에 있던 몇몇이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이 순간 생각나는 단어는 딱 그것밖에 없었으니.
‘인정하기 싫지만….’
한국인들, 과연 대단하긴 하다.
얼마 전 알게 된 한국인 피아니스트. 임 누구였나… 그 청년도 정말이지 천상의 울림 같은 피아노 소리를 들려주었는데….
그 청년이야 어쩌다 한 번 나온 천재라 생각하고 말았는데, 이렇게 대단한 바이올리니스트까지 있다니.
그래서 저도 모르게, 상대적으로 일본이 밀린다는, 덜컥 차오르는 위기감에 저도 모르게 깎아내리려 했던 것이었구나.
‘이건 정말로 인정하지 않을 수 없잖아.’
완전히 감동한 관객들은, 아까의 졸렬했던 대화를 얼른 머리에서 지웠다. 너무 부끄러워서, 없던 일로 만들지 않고는 견딜 수 없었기에.
조금만 덜 어리석었다면, 바보 같은 편견에 빠져있지 않았다면 첫 곡에 단번에 깨달았어야 하는 것이었는데.
사실 아까라고 느끼지 못했던 게 아니었다. 인정하기 싫었을 뿐.
하지만 이제는 도저히 그럴 수 없었다. 여전히 그렇게 우겨댄다면, 귀나 뇌 중 둘 중 하나가 기능하지 않는 존재일 테니.
자존심을 내려놓으니, 남는 것은 순수한 감탄과 찬사였다.
더없이 지고한 경지의 예술에 대한 경외와 우러름.
어떻게 그의 음악을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한 마디로, 누구라도 이 순간 서진에게 깊이 반하지 않고는 못 배기게 된 것이었다.
그것은 한 번 빠지면, 영원히 빠져나올 수 없는 깊고도 깊은 늪이었다.
* * *
함께 연주하고 있는 오케스트라 역시 더할 나위 없는 즐거움에 빠져 있는 건 마찬가지였다.
만약 실력이 모자란 오케였다면 독주자를 따라가기 벅차다거나, 상대적으로 비교되는 마음에 기가 죽는다거나 할 수도 있는 일이었지만, 도쿄도 교향악단에게는 해당 사항 없는 일이었다.
서진이 결코 멋대로 독주하는 스타일도 아닐뿐더러, 도쿄도의 실력 역시 상당했기에.
거기에 더해 서진의 능력으로 오케스트라와의 조화를 더욱 자연스레 어우러지게 하니, 오케스트라로서는 이보다 즐거운 순간이 없는 것이다.
최근 몇 년간의 연주를 통틀어, 이토록 음악적으로 완벽한 합일을 느끼며 깊이 고양되는 기분을 겪어본 적 있었던가.
순간순간이 너무나도 기쁘고 영광된 연주 경험인지라, 이보다 행복할 수 없겠다는 기분마저 들었다.
‘다행이야.’
관객들도 이제는 눈을 뜨게 된 것 같아서.
악장인 스미스는 지휘자 고바야시를 바라보며 작게 미소지었다. 아까 우려했던 일은 그리 신경 쓰지 않아도 될 듯하다며.
조금 전, 인터미션을 틈타 휴게실에 다녀왔던 스미스는 우연히 관객들이 떠드는 소리를 듣게 되었다.
연주자용 흡연 부스와 관객용 흡연 부스가 따로 나누어지지 않은 탓에 발생한 일이었는데, 일본 생활 7년 차, 어느 정도 일본어를 할 줄 아는 그는 어렵지 않게 사람들의 말을 알아들었다.
뭐라 끼어들 가치조차 느끼지 못할 만큼 한심한 자존심 싸움.
음악 외적인 일에 휘둘려 상대를 평가절하하는 건 옳지 못한 일이겠으나, 어디 사람의 마음이라는 게 그리 이성적으로만 움직이겠는가.
스미스는 관객들의 말에 그저 헛웃음이 나올 뿐이었다. 전문가인 그로서는 관객들보다 훨씬 더 많은 게 보이는 게 당연했다. 한서진이 얼마나 괴물 같은 수준인지, 깔 게 없는 정도가 아니라 그냥 말이 필요 없다는 걸, 아까 첫 곡의 첫 음을 연주한 순간부터 알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러니 저들 역시 결국은 스스로 깨닫게 될 터.
하지만 그 말을 전해 들은 고바야시는 조금 걱정이 되었다.
고바야시 역시 오늘의 관객 중 일부 사람들이 묘하게 서진에게 배타적이라는 걸 느꼈다. 싫으면 보러오지 않으면 그만이지, 기껏 공연까지 와 놓고 왜 그러는가 이해가 잘 안 가는 일인 한편, 혹시라도 그들이 비매너 행위를 보일까 봐, 그 부분이 살짝 우려되는 것이었다.
세상에는 눈을 감고 귀를 틀어막은 채 아무것도 보지도 들으려고도 하지 않은 이들이 있으니까.
물론 일본인이라고 다 그런 건 아니었지만… 만약 끝까지 인정하지 않고는 깎아내리려는 가운데, 앵콜에서 한서진이 특별한 곡이라도 연주한다면? 그래서 관객들이 대놓고 야유라도 퍼붓는다면…?
그런 일이 발생한다면 그야말로 부끄러워 얼굴을 들지 못할 것이다. 그건 함께 연주한 도쿄도 교향악단의 얼굴에도 먹칠을 하는 일이니까.
그런 걱정과 함께 관객들이 어떻게든 상대를 인정하지 않으려 드는 모습 자체도 안타까웠는데….
‘진짜배기는 결국 누구든 알아보는구나.’
정말이지 들어본 것 중, 아니 함께 연주해 본 것 중 최고의 비외탕이다.
지금까지뿐 아니라 미래에 있을 모든 것을 포함해, 영원히.
그런 흐뭇한 감상으로 지휘를 하고 있는데,
갑자기, 솔리스트인 서진이 살짝 삐끗하는 모습이 보였다.
정확히 표현하자면 손이 미끄러져 음정을 삐끗한 건 아니고, 틱 하고 현이 끊어지며 몸을 약간 움찔한 것뿐. 소리에는 조금의 흔들림도 없었다.
‘줄이… 하필이면….’
서진의 얼굴에 낭패의 기색이 순간적으로 스쳤다.
아무리 미리 꼼꼼히 점검해도 줄 문제는 간혹 발생할 수 있는 일로, 연주자를 가장 난처하게 만드는 요소 중 하나였다.
원래도 바이올린의 e현은 잘 끊어지는 편인데, 서진이 애용하는 현은 유독 내구가 약하기로 유명했다. 그럼에도 이 브랜드의 현이 악기와의 궁합이 가장 좋았기에 늘 같은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지만.
문제는 지금처럼 e현에서 격정적이고 화려한 테크닉을 구사하는 경우에는 줄이 끊어질 가능성이 기하급수적으로 높아진다는 것이었다. 특히 피치카토라도 세게 할 때면….
게다가 서진은 워낙 시원시원 강렬한 보잉을 하는 스타일이라 그런지 원래도 현을 잘 끊어먹는 편이었다. 오죽하면 ‘한서진 string break’라는 모음집 영상이 너튜브에 있을 만큼.
‘그래도 손이 굳거나 한 상황은 아니라 다행이긴 한데….’
연주 중에 겪을 수 있는 상황 중 최악의 경우는 아니었지만, 타이밍이 좋지 않았다.
아무리 포지션을 즉석에서 바꿔 한다 해도, 남은 세 줄로는 도저히 커버되지 않는 악보라 곤란한 것이다.
즉 악기 교체를 해야만 하는 상황.
악장, 스미스는 이미 자신의 바이올린을 건네주기 위해 반쯤 일어나 있었다. 솔리스트인 서진이 서 있는 방향이 관객들 쪽인 탓에 지휘자보다 살짝 늦게 상황을 알았지만, 대처 자체는 빨랐다.
하지만 서진은 스미스를 향해 고개를 작게 끄덕이면서도, 악기를 곧바로 내려놓지는 않았다.
서진은 연주의 흐름을 끊는 걸 무척 싫어했다. 오케스트라 단원이야 워낙 인원수가 많으니 한두 명 손이 멈춰도 티가 나지 않다지만, 솔리스트는 달랐다. 클래식 공연은 관객들이 온전히 음악에 집중하는 시간. 그 흐름과 분위기가 무척이나 중요했다. 한 번 집중력이 끊기면 다시 회복되기 어려운 것이다.
게다가 지금 이 부분, 여기는 독주 악기의 연주가 무척이나 중요한 부분인데, 솔리스트가 손을 멈춘 채 오케스트라만 흘러가게 놔두고 싶지는 않았다.
스미스가 제 바이올린을 들고 서진을 향해 다가오기까지 단 몇 걸음.
그 짧은 시간 동안 서진은 가만히 기다리는 대신, 악보상 연주해야 하는 부분을 즉흥적으로 편곡해 연주했다.
서진이 즉흥 연주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지휘자를 비롯한 오케스트라 단원들 정도나 눈치챘지, 관객들 대부분은 전혀 알지도 못했다. 그만큼 너무도 자연스러웠던 탓이다.
분명히 세 개뿐인 현으로 원곡 그대로 연주할 수 없어 즉흥 변주를 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오케스트라의 음과 부딪히지도, 비외탕 고유의 색을 잃지도 않았다.
그야말로 신기에 가까운 일.
이건 엄청난 연주실력뿐 아니라, 해당 곡에 대한 깊은 이해가 뒷받침되어 있어야만 가능한 일이었다.
사람들은 이게 즉흥 변주인 줄 전혀 모른 채, 그냥 원래 곡이 이렇구나 생각할 뿐이었다. 비외탕 콘체르토가 바이올린 매니아들 사이에서 무척 유명한 곡이라고는 하나, 아마추어들로서는 모든 악보를 완벽히 외우고 있는 경우까지는 잘 없기에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다 잠시 악보의 음이 빈 사이, 재빨리 악장의 악기를 건네받는 모습을 보고서야 눈치챘다. 끊어진 현이야 눈으로 봐서 알고 있었지만, 아무렇지도 않게 연주하는 모습에 그전까지는 별문제 없는 부분이라 생각했던 것이었다.
“…?”
“…!!”
“…!?”
심지어 현이 끊어진 줄조차 미처 몰랐던 관객들의 눈에는, 둘이 뜬금없이 서로의 악기를 교환한 상황으로만 보였다.
순간적으로 ‘틱’하고 거슬리는 소리가 나긴 했으나, 뒷줄에 앉은 사람들은 끊어져 너덜거리는 현이 육안으로 직접 보이지 않았기에 누구의 현이 끊어지며 난 소리인지 몰랐던 것이다.
그래서 전혀 상황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었는데, 악장이 갑자기 엉거주춤 다가오더니 쉭쉭 전광석화처럼 악기를 서로 바꿔 드는 게 아닌가.
아… 현이 끊어졌었구나.
그제야 알게 된 상황에 감탄이 나올 뿐이었다.
관객들의 감상에 방해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 애쓰는 모습. 그야말로 나중에 ‘한서진 레전드급 대처 능력’이라는 제목의 영상으로 두고두고 남을 순간이었다.
악기를 교체한 후의 일도 물 흐르듯 자연스러웠다.
조금의 당황스러움도 느껴지지 않는 침착한 태도.
남의 악기를 갑자기 빌려 하는 입장이건만, 서진에게는 조금의 부자연스러움도 없었다. 역시 명장은 연장을 탓하지 않는다는 말이 딱이랄까. 대단한 평정심에 지휘자인 고바야시는 도무지 감탄을 금할 수 없었다.
덕분에 공연은 무사히, 끝까지 완벽하게 끝났다.
“와아아!”
“최고다!!!”
우레처럼 쏟아지는 박수와 함성 소리.
아까 인터미션 시간에, 그 누구보다도 적극적으로 나서서 한국인 어쩌고 깎아내리던 사람 중 하나인 와타나베는 부끄러움을 참을 수 없었다.
음악에 국적이니 인종이니 정치니, 그런 걸 끌어들인 자신이 너무 한심했다.
이렇게 놀라운 소리를 선보이는 존재인데….
오늘의 공연을 보기 전에야 직접 듣지 못해 그랬다 쳐도, 1부의 공연을 보고도 인정하지 않으려 했던 건 결국 제 편협함을 인증하는 꼴밖에 안 되었다.
‘한국인들이 정말 부럽구나….’
한서진과 같은 나라에 태어나서.
언제고 달려가 그의 연주를 들을 수 있어서.
이건, 오디오로는 결코 온전히 담아낼 수 없는 그런 소리였으니까. 반드시, 직접 들어봐야만 느낄 수 있는.
살면서 바이올린을 좋아해 수도 없이 많은 공연을 봐왔지만, 오늘 한서진이 보인 충격적인 연주는 영원히 잊지 못할 것 같다.
그에게서가 아니라면, 다른 그 누구에게도 이와 같은 소리를 듣지 못할 테니까.
* * *
끝없는 박수가 이어지는 결과는 당연히도 앵콜 연주였다.
서진은 적당한 타이밍에 다시 나와 정해진 앵콜 곡을 연주하기 위해 무대 중앙에 섰다.
천재 바이올리니스트로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