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 returned as a genius violinist RAW novel - Chapter 243
243화
비록 그런 걸 근절해야 한다고는 하나 대놓고 티가 나는 게 문제지, 그러한 행위 자체는 다들 어쩔 수 없는 일 아니겠는가.
…물론 아무리 같은 국적의 참가자라 해도 무조건 몰아주는 건 아니니, 어쩌면 한서진 라인이 아니라 그런 걸 수도 있다. 파이널에 오른 한국인 국적, 혹은 한국계 인물이 무려 세 명이나 되니까.
그 와중에 한서진 저 자는 또 왜 저렇게 오묘한 표정이람. 맨 처음 연주가 시작될 때부터 세상 아리송한 표정이더니만….
‘골치 아파 죽겠네….’
어쩌다 이렇게 새파랗게 어린 것의 눈치를 보는 처지가 되었는지….
하지만 이 바닥은 원래 인지도가 깡패인 세상.
저 카라얀이 그랬듯, 그가 옳다고 하면 옳은 거다. 그가 인정하면 누구나 인정하던 것처럼. 그만큼 서진이 거물이라는 의미였다.
만약 별다른 문제 없이 콩쿨이 마무리된다면 아무래도 상관없을 일이지만, 혹여 추후에 뭐라도 비리가 터지며 줄줄이 문제가 제기되면, 괜히 엮어서 일이 생길 수 있다. 그러니까, 괜히 저만 전혀 다른 채점표로 인해 구설에 오를지도 모르는 것이다.
아무리 비공개 채점표라 해도 유출되려면 얼마든지 유출될 수 있는 법.
‘한서진이 이러이러하게 평가한 참가자를, 누구누구는 정작 이렇게 평가?’, ‘저 인간은 귀가 멀었대냐?’ 라며 욕하는 반응들이 절로 눈앞에 떠오른달까….
‘그래도 이 곡이 제일 좋단 말이지?’
어쩐다….
에라 모르겠다.
윗선에서 무조건 투명하게 진행하라 지시했으니, 그냥 소신 있게 밀고 나가자.
나중에 누가 뭐라 욕하든, 나도 눈 있고 귀 있어서 매긴 점수니 적어도 스스로에게 당당할 수 있겠지.
그렇게 심사위원들 각기 저마다의 생각으로 바쁜 순간이었다.
* * *
이준은 심장이 터질 것만 같았다.
‘한서진 선배님이 보고 계셔…!’
그것도 그냥 참관하는 정도가 아니라, 심사위원으로.
비록 바이올린 연주 실력을 평가하는 콩쿨은 아니지만, 자신의 연주가 수상 여부에 큰 영향을 미칠 거라 생각하니 가슴이 두근거리지 않을 수 없었다.
어쩌면 참가자 본인보다 자기가 더 떨리는 것 같다.
다행히, 마음이 그렇다는 거지 실제로 연주가 흐트러지거나 하는 일은 없었다. 무대에 올라 손을 바들거리지 않도록 평소에 워낙 단단히 훈련해 왔기에, 긴장한 가운데서도 이준은 정말로 잘했다.
다만 한 가지 걱정이라면 연습시간이 충분치 않았다는 것과, 갑자기 연주하게 된 곡인 만큼 오케스트라와 맞춰보지 못했다는 것이었지만, 벨기에 국립 오케스트라는 프로답게 매우 능숙하게 이준의 연주에 맞춰주었다. 이준 역시 오케스트라와 호흡을 함께하는 능력이 탁월했고. 다 서진에게 평소 잘 배워둔 덕분이었다.
‘서진 선배님… 분명 날 알아본 것 같았는데….’
분명 아까 무대에 올랐을 때, 자신을 알아보고 살짝 표정이 변한 걸 확인했다. 예상치 못한 일이었는지 조금 놀란 눈치.
‘선배님이 보고 계신데, 반드시 끝까지 잘해야지…!’
기회를 양보해 준 지영 선배뿐 아니라, 자신을 믿고 맡겨준 참가자에게 미안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그날, 지영은 유현에게 적극적으로 양보했다.
다른 이유도 이유지만, 이 무대가 이준에게 좋은 기회가 될 거라는 생각에서였다. 만약 이 곡이 1위를 차지한다면 그걸 연주한 이준 역시 함께 이름을 알리게 될 테니까. 추후 공개될 영상에서, 솔리스트로 협연을 한 이준의 존재에도 사람들이 절로 관심을 갖게 될 거라는 판단이었다.
자신은 이미 이 콩쿨에서 우승한 전적이 있기에, 우승자 특전을 비롯해 여러 무대를 안정적으로 확보하고 있는 상황. 이번 일은 이준에게 훨씬 더 필요한 경험이라 여긴 것이다.
물론 그녀의 그런 생각보다 중요한 건 그들을 요청한 작곡가 본인에게 가장 유리한 방향이겠지만, 그 역시 이준이 찰떡이었다.
이준의 연주는 지영도 감탄할 수준이었다. 초견으로 바로 한 연주임에도 작곡자의 의도를 찰떡같이 살려냈으니, 사운드 체크 때 들었던 것과 완전히 다른 느낌을 받은 유현은 깜짝 놀랐다.
그렇게 여러 가지 상황이 맞물린 끝에 유현은 결국 이준을 택했다. 지영 역시 대단한 실력자이긴 하지만, 아무래도 부담스러운 것이다. 자그마치 예전 우승자라니… 그러면 제가 너무 꼼수를 쓰는 기분이라며, 그는 정중히 사양의 뜻을 밝혔다.
그런 일화를 뒤로 한 채, 자신의 곡이 연주되고 있는 것을 지켜보는 유현.
이준의 실력을 믿는 한편, 그럼에도 불안한 마음이 남아있을 수밖에 없었다. 오케스트라와 한 번도 맞춰보지 않은 채 다짜고짜 결선 무대에 오른 상황이기 때문이었다.
그 역시 시향 단원으로서 오래 활동을 해왔기에, 독주를 잘하는 것과 오케스트라랑 호흡을 맞추는 건 또 다른 이야기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다행히도 이준은 매우 안정적이면서도 인상적인 연주를 선보이고 있었다. 유현 역시 본디 바이올린을 전공했었기에 그의 기량을 한눈에 알 수 있었고.
‘정말 대단하구나….’
저 아이가 괜히 제2의 한서진이라는 별명으로 불렸던 게 아니었구나 싶었다. 곡의 원작자이자, 콩쿨에 직접 출전한 입장인 유현은 한결 마음이 놓였다.
‘그나저나 한서진 씨가 날 기억하면 어쩌지…?’
오히려 걱정되는 점은 따로 있었다.
심사위원 중 한 명인 서진이 자신을 싫어하지 않을까, 그것이 우려되는 것이다.
그동안 이건 최대한 생각하지 않고 있으려 했는데… 그런다고 있었던 사실이 없어지는 건 아니었으니까.
실은 시향 단원이던 시절, 어리던 서진에게 부끄럽게도 텃세 비슷한 걸 부린 적 있었던 것이다. 설마하니 그가 자신같이 이름 없는 연주자를 기억할 리는 없겠지마는, 그런 일이 있었던 만큼 은근히 걱정이 되었다.
* * *
‘비리 없는 청정 콩쿨’의 기치를 내걸었던 만큼, 최종 심사 역시 더없이 깔끔히 진행되었다.
예전 서울 국제 음악 콩쿨에서처럼 심사위원들 간의 토의 끝에 1위를 결정하는 등의 과정 없이, 심사 결과를 토대로 그대로 1위가 결정되었다. 딱히 동점자도 발생하지 않아, 따로 우위 여부를 따질 것도 없었던 것이다.
드디어 최종 발표의 시간,
연주 때와 마찬가지로 이준은 제가 다 떨렸다. 이왕 벨기에에 온 김에 참관하러 온 지영과 함께 관객석에 앉아있던 이준은, 유현과 서진 쪽을 연신 번갈아 흘긋대며 초조한 기색을 내보였다.
“아… 이거 진짜 긴장되네요. 저도 이런데….”
“떨리는 게 정상이야. 자기 일이면 더더욱 그럴 테고.”
“제가 상 받는 것도 아닌데 말이에요.”
뭐랄까, 내년도에 있을 콩쿨을 미리 체험하는 기분이랄까. 진짜 당사자보다도 더 긴장되는 기분이다.
“그렇다고 완전 남의 일은 아닌 상황이니까.”
이준은 뒤늦게 후회가 들었다. 안 좋은 결과가 나오면 엄청 미안할 것 같은데… 너무 깊이 생각하지 않고 저지른 게 아닐까. 이렇게 부담스러운 일일 거라고는 미처 생각 못 했다.
“어, 이제 발표하나 봐요!”
사회자가 마이크를 드는 모습에 이준은 양손으로 흡, 하고 입을 막았다.
“2023년도, 퀸엘리자베스 콩쿨. 작곡 부문 영예의 1위는…!”
연말 연예 대상 발표도 아니건만, 사회자는 은근히 뒷말을 끌며 극적인 분위기를 고조시켰다.
“한국의 유현 최!”
“…!”
우승은 결국 이준으로, 아니 이준이 연주한 곡으로 결정되었다.
진짜로 한 치의 외압 없이 투명하게 결정된 상. 유현의 승리였다.
“…꺄!!!”
비명이 터져 나온 건 객석에 있던 이준 쪽이었다. 어째 이준은 참가자 본인보다 더 좋아 비명을 질렀다.
사람들이 황당하게 쳐다보는 가운데, 이준은 당당히 만세 손을 들어 올렸다.
이준이 조금 전 무대에서 솔리스트를 했던 연주자임을 알아본 몇몇은, 상을 받기 위해 무대 위로 올라온 유현뿐 아니라 그에게도 함께 박수를 보내주었다.
짝짝짝짝!!
무대 위의 유현이 주륵 눈물을 흘렸다.
이대로 가망 없을 줄로만 알았는데….
포기하려던 마지막 순간, 기적 같은 일이 발생했다.
그동안의 마음고생이 주마등처럼 눈앞을 스쳐 갔다. 작곡가로 먹고산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이루 말할 수 없이 힘들었던 시간들.
이대로 영원히 아무도 몰라주는, 사람들에게 이름 한 번 남기지 못한 존재로 초라하게 끝날까 봐 늘 불안했었다. 오직 사람들이 자신의 곡을 듣고 좋아하는 모습을 꿈꾸며 버티고 또 버텼는데….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자신을 위해 달려와 주었던 이준과 지영에게 너무 고맙고, 자신감을 되찾아주었던 계기가 되었던 서진에게도 말할 수 없이 고마웠다. 일부러 의도한 건 아니었겠지만, 서진이 피아노로 자신의 곡을 연주하는 것을 듣고 희망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이니까.
…지금 생각하니, 그가 자신에게 부러 나쁜 점수를 주지 않을까 걱정했던 건 정말로 쓸데없는 생각이었다. 그럴 거였으면 애초에 제 곡을 그렇게 아름답게 음미해 보지도 않았을 터.
짝짝짝짝!!!
눈물을 흘리는 그를 보며 이준도 같이 열심히 박수를 쳤다. 옆에 앉은 지영도 함께였다.
제 일도 아니건만 제가 다 뿌듯한 마음이다. 콩쿨에 임하는 그 치열하고도 절박한 마음을, 그리고 우승하는 순간의 짜릿함 또한 알았기에.
동시에 이준은 그런 생각을 했다.
이 곡…, 머잖아 엄청나게 유명해질 것 같다.
설마하니 그러는 자신 역시 이 우승곡으로 덩달아 스타가 될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 못 하는 일이었지만.
* * *
드디어 긴긴 콩쿨이 끝났다.
서진은 마음 한구석에 남아있던 걱정을 완전히 털어낼 수 있었다. 예전에 참가자로 왔을 때와 달리 아무런 탈 없이 깔끔히 끝난 콩쿨이었으니까. 심사위원으로서의 일을 무사히 마친 데에 더해, 한국인 우승자까지 보게 되었으니 그야말로 뿌듯한 시간이었다.
거기에 더해 서진은 내년도 바이올린 부문에 필요한 파이널 제시곡의 작곡까지 부탁받았다.
19년도에 있었던 바이올린 부문 콩쿨이, 서진의 곡에 대한 루머와 관련해 엉망진창이었던 것을 떠올리면 참 아이러니한 일이었다.
서진은 흔쾌히 수락했다. 내년도 콩쿨은 그때와 달리 잡음 하나도 없이 완벽한 콩쿨로 만들겠노라 내심 다짐하며.
그렇게 드디어 모든 일들을 마무리한 서진은 홀가분한 발걸음을 옮겼다.
“저…, 한서진 씨.”
그런데 막 홀을 벗어나려는데, 누군가 서진을 불렀다.
“최유현 씨?”
서진은 상대를 곧바로 알아보았다.
사실 서진은 처음부터 그를 알고 있었다. 예전에, 어릴 적 언젠가 한 번 시향과 협연했을 때의 그를 기억하는 것이었다.
사실 이름까지는 기억 못 했는데, 얼굴을 보니 생각나 이번에 이름도 알게 되었다. 마침 줄리어드 때 유학생 친구 중에도 똑같은 이름의 친구가 있었기에 기억하기도 쉬웠다.
“…저를 기억하세요?”
천재 바이올리니스트로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