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 returned as a genius violinist RAW novel - Chapter 251
251화
“아, 나는 학부생 아니라서….”
“으잉? 앗, 미안. 난 한참 후배인 줄 알고… 하하. 미안, 해요.”
요즘 세상에 아무리 후배로 보여도 모르는 사이에 다짜고짜 말을 놓는 일은 흔치 않았지만… 말을 건 남자의 액면가를 보니 이해가 갔다.
상대는 서진을 전혀 모르는 눈치였다.
서진이 아무리 클래식계를 넘어서까지 대중적으로 유명하다고 하나, 모두가 얼굴을 아는 건 아닐 수밖에. 아무리 유명한 국민배우라도 그 얼굴을 모르는 사람이 있기 마련인 법이니까.
자국의 대통령쯤 되면 모를까, 서진도 모두가 자기를 알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기에 그의 반응을 당연스레 받아들였다.
“어라? 근데 석사도 그만큼은 안 되는데…?”
“…아, 박사라서요.”
“엥? 박사과정이야, 에요?”
서진이 고개를 끄덕이자 상대방은 괴상한 표정이 되었다.
아니, 액면가는 아직 군대 다녀오기 전의 1학년생 같은데, 박사과정이라고…? 천잰가!?
이 학교에 고등학교를 조기 졸업하고 온 천재들이 많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이건 정도가 심한데?
궁금한 마음에 남자는 서진이 카트에 산더미처럼 쌓아놓은 책 목록을 훑어보았다. 한데 종류가 하도 중구난방이라, 대체 무슨 전공인지 유추가 불가능했다.
‘…응? 근데 어디서 본 것 같은 얼굴인데…?’
영재 프로그램 같은 데 나왔었나?
현재 서진은 악기도 안 들고 있었기에, 음악 쪽일 거라고는 유추하지 못하는 그였다.
그런데 그때,
“어, 한서진이다!”
누군가 서진을 발견하고는 큰소리로 외쳤다.
“어? 진짜? 어디어디?”
“우리 학교 다닌다던데, 진짜네!?”
파릇파릇한 학부생들이 서진을 발견하고는 신기한 마음에 다가왔다. 나름대로 난다긴다하는 브레인들이 모인 서울대라지만, 유명인을 만나면 어쩔 수 없는 모양이다.
사람들이 수군대는 소리에 서진에게 말을 걸었던 남자, 서준이 뒤늦게 ‘앗!’하고 외쳤다.
“생각났다! 국뽕 채널에서…!”
자신과 이름 ‘한서준’과 비슷해서 기억에 남았던 그 사람이었다.
다행히 학생들의 관심이 오래 유지되지는 않았다. 신기한 듯 흘긋대면서도 다들 바삐 제 갈 길을 갔다.
물론 예외도 있었다.
서준은 여전히 서진 곁에 남아 눈을 초롱초롱 빛내고 있었다.
“우와…! 아, 그래서 박사과정이었구나! 해외 러브콜 다 뿌리치고 우리 학교 다니는 애국청년이라고!”
딱히 애국심에 그런 건 아닌데…. 묘하게 사실과 다른 정보였지만, 서진은 굳이 정정해주지 않았다.
“아앗, 그나저나 아까는 미안, 아니 실례했어요. 하하하… 워낙 동안이시라….”
서준은 무무위키에서 본 서진의 출생연도를 재빨리 떠올려 보았다. 우연히도 둘은 동갑이었다.
“괜찮아요. 무겁게 옮겨놓고는 낭패를 볼까 봐 한마디 해줬나 보다 하고 있었어요.”
“맞아요. 하하… 제가 오지랖이 좀 문제라…. 그나저나 전 한서준이에요.”
“…? 이름이….”
“네. 되게 비슷하죠?”
너스레를 떤 서준은 우리 동갑이라며 나이도 밝혔다. 누구와 달리 동안이 아니라, 액면가와는 다르게 이십 대 중반도 안 되었다고.
마침 같은 나이에 이름도 비슷하다니, 서진은 신기한 마음에 냉큼 손을 내밀었다.
츠벤이 예전부터 일반인 친구도 좀 사귀어 보라고 조언했었는데, 워낙 숫기가 없어 여태 친구를 만날 여지가 없었다.
어쩌면 이 새로운 인연을 계기로, 음악에서 한 발자국 떨어져 새로운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경험이 도움이 될지도 모르지 않은가.
“그러게요.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인데, 같이 점심이라도 드실래요?”
* * *
언제나 그랬듯 서진은 꾸준히 인내심을 가지고 연습 중이었다.
지금의 이 상태가 원래부터 타고난 모습이라 생각하고, 0부터 다시 시작한다는 생각으로 기교를 연습하고 있었지만… 마음과 달리 잘 될 리 없었다. 기억 속의, 자유자재로 움직여지던 손가락을 머리가 너무나 잘 알고 있는 만큼 그 괴리감에 답답한 것이다.
‘그나마 다행히 상태는 그대로 유지되고 있는데….’
여기서 더 악화되지 않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희망적이라 할 수 있으나, 여전히 미래를 확실히 장담할 수 없어 마음이 조금 힘들었다.
그래도 테크닉적으로 많이 끌어올리긴 했는데, 욕심 나는 대로 끝없이 연습에 매진할 수 없다는 것도 문제였다.
지나치게 무리하면 안 되니까. 재활 및 연습에 쏟을 수 있는 시간이 결국 한정되어 있는 것이다.
“휴….”
…도서관에나 다녀올까.
최근 들어 도서관에서 거의 매일 같이 만나고 있는 새 친구.
서진은 그가 무척 마음에 들었다.
음악 전공자가 아닌 친구로서는 처음이 아닌가. 평범한 대학 생활 이야기가 그렇게 재밌을 수 없는 것이다. 나이도 동갑이라 잘 통하는데, 살아온 세월의 내용이 전혀 다른 점에서 오는 신선함도 있었다.
서진은 내친 김에 바로 도서관을 찾았다.
서울대 입구에서 자취하고 있는 서준은 늘 연구실 아니면 도서관에 처박혀 있는 인생이었기에, 오늘도 어렵지 않게 항상 있는 곳에서 발견할 수 있었다.
“…에이, 그러지 말고 한 곡만 들려주면 안 돼?”
“응, 안 돼.”
“헐… 왜애애애.”
“아쉽게도, 지금 악기가 없어서?”
원래부터 스스럼없는 성격이었는데, 어느 정도 친해지고 나니 서준은 장난기를 숨기지 못했다.
오늘따라 서진의 연주를 꼭 한번 들어보고 싶었는지 은근히 시작한 서준의 요청에, 서진은 씨익 웃으며 텅 빈 두 손을 들어 보였다. 악기를 안 들고 온 나의 승리다!
“까비… 근데 있으면 해줬을 거야?”
“아니. 그건 또 아니지.”
“…뭐임?”
“아, 좀 그래. 쑥스럽잖나.”
“공연할 때는 잘만 하면서!”
“몰라 그런 거 있어. 원래 음악 하는 사람들, 주변에서 한 번 해보라 하면 절대로 안 할걸?”
“아니, 왜?”
“야, 너 프랑스어 좀 해봐.”
“…?”
“전공이잖아. 프랑스어 겁나 멋있을 것 같은데 나 한번 들어보고 싶다. 난 못하거든.”
외국어를 여럿 구사할 줄 아는 서진도 프랑스어와 독일어만큼은 어설픈 수준이었다.
“…아니, 야. 갑자기 그렇게 해보라 하면… 무슨 말을 해.”
“그냥 아무 말이나.”
“…죽을죄를 졌습니다.”
“그치?”
“어. 이런 거구나….”
“나중에 공연에 정식으로 초대할게. 언제가 될지는 잘 모르겠지만…, 머잖아 할 거거든.”
서준은 왜 요즘 그가 생전 공연을 열지 않는지 궁금해하지 않았다.
서진과 친해지게 된 후 서진에 관해 인터넷을 찾아보다가 요즘 관객들이 불만에 차 아우성치는 소리를 그 역시 들었지만, 먼저 캐묻는 대신 가만히 기다렸다.
“그래그래. VIP 티켓 꼭 주는 거다?”
“걱정 마. 나 너 말고는 줄 사람도 없어.”
“친구 없냐…?”
“….”
친구가 있긴 한데…, 어차피 다들 음악인들인 데다가, 대부분 같이 무대에 서는 이들이라 초대권을 줄 필요가 없었다.
티켓을 줄 만한 이라고는 어머니가 거의 유일한 실정.
‘나 진짜 너무 음악밖에 모르고 살았구나.’
“크으, 내가 아픈 곳을 찔렀어… 우리 국민스타 한서진이 국민왕따일 줄이야…!”
“….”
“좋아, 이 형이 특별히 선심 쓴다!”
“…?”
“공연 표가 공짜로 생겼는데, 같이 보러 가지 않겠는가? 뭐, 네 눈에 차지는 않겠지만…,”
공연이라는 이야기에 서진이 눈을 반짝였다.
“무슨 공연인데?”
“대단한 건 아니고, 내가 봉사하는 데가 있는데….”
서준이 봉사활동 하는 장애인 복지단체에서 초대를 받은 거라며, 한 팔이 없는 어느 장애인 소녀가 연주하는 공연이라는 설명이었다.
“와, 너 좋은 일 하고 있었구나.”
서진이 감탄사를 내뱉었다.
서진도 재능기부의 형태로 자선연주를 하거나, 공연 수익을 기부하는 등을 한 적은 있지만, 서준처럼 직접 장애인 단체에 봉사활동을 해보거나 한 적은 없었다.
“뭘, 쑥스럽게. 아무튼, 갈래?”
서진은 새삼 그가 대단해 보임과 동시에, 서준이 말한 장애인 소녀의 연주라는 것에도 관심이 갔다. 장애인들을 위해 연주를 한 적은 있어도, 그들이 직접 연주하는 무대를 본 적은 한 번도 없는 것이었다.
“응, 나 꼭 가보고 싶어. 고마워.”
* * *
며칠 후,
서진은 혹시라도 누가 알아볼까 봐 마스크를 착용하고 공연장으로 향했다. 오늘의 주인공은 저 소녀인데, 자신이 그녀를 대신해 주목을 받아서는 안 된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왔어? 얼른 들어가자.”
그럼에도 서준은 용케 서진을 알아보고는 손을 흔들었다.
조촐한 공연인 만큼 무대의 규모는 크지 않았다.
-교통사고로 오른팔을 잃은 열아홉 살의 소녀. 1여 년의 칩거 끝에 신체의 한계에 도전하다!
팸플릿에 쓰인 문구였다.
사진을 보니 정말로 그녀에게는 오른팔이 없었다. 팔꿈치 정도가 아니라, 정말로 어깨 아래로 뭉툭하니 아무것도 없었다.
한데 바이올린을 켤 수 있다고…?
잘 믿기지 않는 일이었으나, 정말로 기적 같은 일이 눈앞에 펼쳐졌다.
“…!”
활이 움직이자, 귀로 들으면서도 믿어지지 않을 만큼 깨끗하고 투명한 음색이 펼쳐졌다. 어깨에 부착한 견갑대의 기계 관절에 바이올린 활을 연결해, 오직 어깨의 움직임만으로 보잉을 하고 있는 것이었다.
아무리 기계 관절에 활을 연결해 놓았다지만, 어깨의 들썩임만으로 활을 조절한다니…. 상상할 수 없을 만큼의 힘든 노력이 있었을 거라는 건 굳이 묻지 않아도 알 수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연주를 하고 있는 그녀의 모습은 너무나도 행복해 보였다.
물론 워낙 말도 안 되게 어려운 일인 만큼 힘에 꽤 부치는지, 중간중간 악보가 비는 어깨를 푸는 모습도 보였다.
그녀를 보고 있노라니 벅찬 감동에 눈물이 절로 흘렀다. 서진뿐 아니라 관객들 모두가 울고 있었다.
사고 직후 그녀는 오른팔을 잃었다는 사실에 절망해 약 일 년여를 방에만 틀어박힌 채 자포자기했었다고 한다.
그러다 우연히, 재활을 위해 찾았던 병원 강당에서, 땀 흘리며 농구 연습을 하고 있는 장애인 농구팀을 보고는 의지를 다잡았다고.
신체적 한계를 극복해 보이기 위해 그 길로 수영에 도전했고, 엄청난 연습 끝에 패럴림픽에 출전하여 결승에 오르는 쾌거를 보였다.
“전에 우연히 패럴림픽 중계를 보게 되었는데, 어린 학생이 한 팔로도 능숙히 수영을 해내는 모습을 보고 이루 말할 수 없는 감동을 느꼈었어.”
“….”
곡과 곡의 사이, 컨디션을 고려해서 매번 쉬는 타이밍이 있었다.
서진의 안색을 살핀 서준이 말을 이었다.
“그런데 이번에 바이올린을 연주한다는 말을 듣고, 이상하게 서진이 네 생각이 나더라.”
“…아.”
그는 서진이 무언가 문제를 겪고 있다는 걸 어렴풋이 눈치챘다.
물론 손에 대한 걸 짐작한 건 아니었다. 지병이 있다는 거야 인터넷에서 봐 알고 있었지만, 일상생활에서는 전혀 티가 나지 않았기에 전혀 몰랐다.
다만 최근 들어 공연을 하지 않는 모습에, 슬럼프라든가 정신적인 문제를 겪고 있는 게 아닐까 추측할 뿐이었다.
그래서 오지랖일지 모르겠지만, 일부러 같이 공연을 보러 오자 권한 것이었다.
자신 역시 삶의 목표를 찾지 못해 방황하고 힘들었던 시절, 그녀가 패럴림픽에서 수영하는 모습을 보고 완전히 새로이 의지를 다지게 되었으니까.
“…고마워.”
손의 문제를 겪으며 알게 모르게 방황하던 중 우연히 보게 된 한 소녀의 연주.
그것은 서진에게 충격에 가까운 깨달음을 주었다.
천재 바이올리니스트로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