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 returned as a genius violinist RAW novel - Chapter 253
253화
“와, 워크인으로 입석도 가능하대!”
티케팅에 실패해 들어오지 못한 관객들의 성화가 하도 심해서, 부랴부랴 따로 입석 존을 마련한 것.
사람들이 반색하며 안으로 들어섰다. 역시, 포기하지 않고 기다려보길 잘했다.
“와…!”
안쪽으로 들어가는 입구.
지난번 여기에 와봤을 때는 출입이 안 되던 곳이 열려있으니 기분이 이상했다. 정식으로 공연이 열리면 단순히 유적을 관람할 때와는 오픈되는 영역이 다르구나.
관광객으로서, 텅 빈 유적을 눈으로만 구경하고 가던 것과 전혀 느낌이 달랐다. 게다가 안쪽에 들어와 보니, 위에서 보던 휑한 느낌과는 전혀 달랐다. 중앙의 무대에 절로 집중이 되는 구조랄까, 그래서 극장이 이렇게 지어진 거였구나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공연 시작은 아직 한참 남았는데, 이미 좌석은 만석이었다.
앞뒤, 양옆 좌석 간의 간격이 워낙에 빽빽한데 사람들이 가득 들어서 있으니, 가뜩이나 더운 여름 날씨에 사람들의 체온까지 합쳐져 무척이나 무더웠지만, 그럼에도 주변에서 들리는 풀벌레와 새소리에 기분이 좋아졌다.
이게 바로 야외극장의 묘미구나….
그 야외극장의 분위기를 만끽하고 있는 관객 중 한 명, 서진의 특별 초대권을 받아 VIP석(그래봤자 다 똑같은 돌바닥이지만)에 앉아있는 서준 역시 특유의 기대감에 행복한 표정이었다.
서준은 한서진의 연주를 직접 들으러 온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이름이야 많이 들어봤어도, 클래식에 딱히 취미가 없는 이상 가게 되지 않았는데, 어쩌다 보니 친해져 이런 귀한 티켓까지 받아든 상황. 마침 계획했던 유럽 여행과 날짜도 딱 맞아떨어져 다행이었다.
‘치사한 놈…. 그렇게 졸랐는데 한 번도 안 해주더니.’
…라고 투덜거리려 해도, 그가 요즘 손가락 문제를 겪고 있다는 걸 알기에 차마 욕할 수가 없었다.
뭐, 오늘 이렇게 짠 보여주려고 했나 보다.
그리스는 해가 정말 길었다. 9시는 다 되어야 어둑해지다니.
낮 내내 햇빛에 데워진 석재에서 온기가 올라와 처음엔 더웠지만, 해가 지니 선선한 바람이 불어 살만했다.
공연이 시작된 건 그때쯤이었다.
박수갈채 속에 오늘의 주인공들이 등장하고, 곧이어 한서진의 지휘에 따라 K-서울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연주가 시작되었다.
낭만 가득한 밤의 서막이 열렸다.
두 젊은 남녀의 주고받는 바이올린 선율은 그들의 훈훈한 비주얼만큼이나 감미로웠다.
힘과 열정이 가득 느껴지는, 보배로운 소리. 서진은 희망을 노래하고 있었다.
서준은 비록 클래식에 대해서는 문외한에 가까웠지만, 정말이지 시간 가는 줄을 몰랐다. 서진의 연주는 아무것도 몰라도 마음에 절로 톡톡 와닿는 소리였으니까.
모르는 사람으로서는 서진이 현재 손가락에 문제를 겪고 있다고는 상상도 못 할 만큼 아름다운 소리였다.
서진 본인의 말로는 손에 문제가 생기기 전과 약간 연주 스타일이랄까 소리가 달라졌다는데, 예전 연주를 직접 들어본 적 없는 서준으로서는 그 차이를 알 수는 없었다. 그저 좋고 또 좋을 뿐.
하지만 잘 모르는 막귀임에도 미묘하게 느껴지는 무언가가 있긴 했다.
연주에 있어 결점이 티가 난다는 뜻이 아니라, 뭐랄까… 삶의 고뇌와 무게, 아픔이 느껴지는 선율이랄까.
사실 재활 과정이라는 게 결코 쉬울 리 없었다.
서진은 주변에 내색하지 않았지만 상당히 힘든 시간을 보내왔고, 글자 그대로 죽을 만큼 노력해 이만큼 재기해 낼 수 있었다. 정신적으로 힘든 것도 힘든 것이지만, 기본적으로 육체적으로도 상당히 고통스러운 과정이 수반되었던 것이다.
일단 손가락도 많이 아프고, 예전과 달리 어깨 근육 자체를 사용해 움직임을 전달하는 식으로 조절하려 하니 실로 온몸이 다 쑤신달까. 예전에 K–서울 오케 단원들이 삭신이 쑤시네 어쩌네 하며 엄살을 떨었던 건 애교일 정도로.
그러한 아픔과 인고의 시간이 있었던 덕분인지, 서진의 소리에는 보다 깊은 울림이 생겨 있었다.
말 그대로 역경이 있었기에 만들어진 소리.
애초에 서진은 죽음과 회귀를 겪으며 한 차례 그러한 것들을 깨달은 바였지만, 이번의 경험을 통해 다시 한번 내면을 확장해 냈다. 거기에 더해 세상을 바라보는 눈 역시 예전과 조금 달라졌다.
그러한 것들이 아무것도 모르는 이들의 귀에도 다 느껴지는 법.
한서진, 한서진 하고 사람들이 찬탄하는 걸 알고는 있었지만, 정확히 그게 어떤 느낌인지, 다들 왜 그렇게 좋아하는지 그 이유를 몰랐는데…,
그런데 이렇게 그의 연주를 실제로 듣는 순간, 서준은 그대로 영혼을 빼앗긴 기분이었다. 오묘한 선율에 그야말로 넋을 잃고 말았다.
평소 친근하게만 여겨졌던 그 녀석이, 지금 무대 위의 그와 같은 사람이 맞나 싶어 어안이 벙벙하기까지 하다.
서지연과 호흡을 맞추며 한편으로는 오케스트라를 리드하고 있는 그의 모습이 어찌나 커다래 보이는지….
이 순간, 서진은 연주자임과 동시에 지휘자이기도 했다.
사실 둘은 상당히 괴리가 있는 역할이다. 연주자는 악마에게 영혼이라도 판 듯 몰입해 연주한다면, 지휘자는 차분히 이성을 유지하는 쪽이니까. 마치 비유하자면 배우와 감독의 관계랄까.
그래서 원래는 쉽게 공존하기 어려운 일일 터인데, 서진은 모든 것이 물 흐르듯 자연스러웠다.
자연히 두 협연자의 듀엣과 함께, 오케스트라 역시 더할 나위 없는 즐거움을 선사해 주었다. 오케와의 합이 착착 맞아떨어지는 것이, 어딘지 모르게 뒷골 짜릿한 흥분감이 차오른달까.
서진과 지연의 연주는 실로 놀라웠다.
서로가 서로를 보듬어주는 연주.
지연이 서진에게 무리가 되는 기교적인 부분을 보완해주고, 서진은 그런 지연과 조화를 맞추며 전체의 연주를 리드해 나간다.
그 결과 둘의 연주는 마치 오랜 친구 사이의 대화처럼 편안했다.
둘이 함께 재잘거리며 즐겁게 수다를 떠는 듯, 함께 고대의 유적지를 거닐며 산책을 하며 담소를 나누는 듯, 그런 자연스러운 속삭임.
거기에 더해 오케스트라까지.
두 협연자와 오케스트라. 크게 세 파트를 구성하는 이들 모두가 한마음이 되어 음악이라는 하나의 큰 그림을 그려나가고 있는 것이었다.
마치 한 폭의 완벽한 명화와도 같은 장면. 단순한 그림과의 차이라면 소리가 있는 명화랄까. 시간 속에서 생생히 살아 숨 쉬는 모습을 담고 있다는 점이었다
“….”
“….”
이 많은 사람들이 숨소리조차 잊을 정도로 푹 빠져있는 시간.
서준은 해외에서 서진이 얼마나 유명한지 피상적으로야 알고 있었지만, 그게 구체적으로 어느 정도의 위치인지까지는 잘 몰랐다.
그런데…,
공연이 끝나자 모든 관객들이 약속이라도 한 듯 일어나 기립박수를 쳤다. 서준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자신이 연주한 게 아닌데도, 고작 관객 중 한 명에 불구함에도 서준은 이 순간 벅차오르는 무언가를 느꼈다.
우연히 사귀게 된 친구가 너무나 자랑스러운 동시에, 그 역시 지독한 한서진 앓이를 시작하게 되었다. 이래서 다들 그렇게 한서진에 빠져 헤어나오지 못하는구나 생각하며.
또한, 그래서 더더욱 안타까운 마음이었다. 이 멋진 순간을 만들어낸 주인공, 서진이 겪고 있는 문제를 알기에.
부디 핸디캡을 극복하고 오래도록 연주 생활을 이어나갈 수 있어야 할 텐데….
* * *
아테네 공연을 마친 직후, 서진은 드디어 공식 석상을 통해 자신의 상황에 대해 알렸다.
이미 손 문제를 겪은 지 시간이 꽤 흘러, 아무것도 모르는 팬들로서는 답답함에 원성만 쌓여가고 있을 터. 이제는 손 문제와 함께 재활을 하는 중이라는 걸 밝혀야겠다고 생각한 것이었다.
물론 이건 어디까지나, 아테네 공연을 무사히 해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제 어느 정도 희망과 자신감을 가졌기에.
-한서진이 투병 중이라고?
└원래 그랬던 거 아냐?
└아니아니 그건 아니고, 지병이 있긴 한데 정확히는 아직 발병 전인 상태였다고 했어.
└헐…?
-이번에 공백 있었던 것도, 증상 나타나서 재활 때문이었다고…,
└어뜩해….ㅠㅠㅠㅠㅠㅠ
사람들은 무척이나 충격받았다.
-헐… 전혀 짐작도 못했어. 소리가 뭔가 달라진 건 느꼈지만, 그런 일이 있었는지는….
-난 그저 이 얼마 만에 들어보는 한서진이 연주하는 한서진 곡인가… 하고 감격하고 있었는데ㅠㅠㅠㅠㅠ
-흑흑… 우리 서진이… 전설 같은 거 되지 말라고….
└뭔소리임?
└베토벤 느낌 나는 것 같아서….
└ㅇㅇ 맞음. 왠지 모르게 베토벤이 되어가는 느낌?
└비록 귀가 안들려도… 처럼, 비록 손이 굳어가도…, 불후의 명곡을 남기고….
└뭐래. 죽을병 아니거든?
-근데 한번 공연하려면 한참 재활해야 한다고…ㅠㅠ 이제 한서진 연주 ㄹㅇ 레어해진 듯…?
└미디움레어같은 소리 하고 있네
└…?
-윗댓… 베토벤보다는 세나가 아닐까?
└???
└아일톤 세나
└그게 누구?
└F1 레이서… 너무 일찍 은퇴해서 오히려 전설이 된….
└은퇴라기보다 죽어서겠지…ㄷㄷ
└ㅁㅊ 경우가 다르잖아… 한서진 안 죽었거든? 베토벤까지만 하자?
└귀도 멀쩡합니다만?
비록 경우는 전혀 다르지만, 정말로 베토벤이나 아일톤 세나처럼 비극으로서 더욱 전설로 남는 게 아니냐는 걱정이 은근히 보였다.
그래도 손 문제를 밝힘과 동시에, 꾸준한 재활 훈련을 통해 어느 정도 공연이 가능하다는 것을 함께 알린 덕에 사람들의 충격이 예상만큼 크지는 않았다.
이제 두 번 다시 그의 음악을 못 듣는다거나 하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까지는 아니었으니까.
아니, 오히려 찬사도 있었다. 그리고 드물어진 공연 만큼 그에 반비례해 인기는 더욱 치솟았고.
-그래도 역시 한서진….
└ㅇㅇ 누가 뭐래도 한서진은 한서진이지. 하이페츠도 울고 갈 천재. 왜 투병 중인데 소리가 더 좋아진 거지…?
-역시 뭔가 소리가 달라졌다 했더니… 그런 일이 있었구나.
-그럼 이제 한서진 폼 떨어진 거임?
└뭐래 ㄲㅈ
└예전과 다르긴 한데, 절대로 폼이 떨어지거나 그런 건 아니라 생각함.
└ㅇㅇ 맞음. 어린 시절, 십대 한서진의 소리가 빛나는 천재성의 결과물이라 할 수 있다면, 이십 대 때엔 그야말로 완벽한 연주를 선보였고, 지금은… 영혼의 울림이랄까. 가슴속에 오래도록, 깊이 남는 그런 소리가 되었다고 생각함.
└ㄹㅇ띵언 ㄷㄷㄷ
└진짜 갓띵언은 이거지. 한서진 인터뷰 발췌… ‘비록 예전과는 많은 것이 달라졌지만, 저는 여전히 바이올리니스트고, 한국의 음악가이고, 한서진이니까요’ 크 찢었다
└ㅇㄱㄹㅇ그저 빛
-근데 그럼 상대적으로 국내에 머물 거 아냐. 해외 비중 줄어들어 좋은 거 아님?
└ㅂㅅ아 연주 비중 자체를 줄이겠지. 공연 한 번 하려면 앞뒤로 재활 한참 해야 해서 쉽게 할 수 없다잖아.
└아… 한서진 더 귀해졌어…. 가뜩이나 보기 힘든데, 공연 더 뜸하게 간간이 열면… 손 느린 나란 년은 영원히 티케팅 실패하라는 거….
그러한 가운데, 한편 교육계에서는 오히려 적극적으로 러브콜을 보내오기 시작했다.
한예종과 서울대 음대. 양쪽 모두에서 서진에게 교수직을 제안해 온 것이다.
천재 바이올리니스트로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