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 returned as a genius violinist RAW novel - Chapter 256
256화
이건 어디까지나 북한과 뉴욕필의 일이니 대놓고 나설 수는 없는 일이지만, 나라에서도 은근히 바라는 일이었다. 만약 국가 차원에서 직접 여는 행사였다면, 서진에게 대놓고 부탁했을 테니까.
현재 서진은 남한을 대표하는 가장 유명한 음악가였다. 그런 그가 평양에서 공연을 하고 온다는 게 어떤 뜻이 되겠는가. 그야말로 북한까지 한서진의 이름이 알려졌다고 호들갑을 떨기에 충분한 일이었다.
“예, 그렇군요.”
어쨌든 잘된 일이었다. 서진이 남한 국적으로 북한에 입국하려면, 국가의 협조가 반드시 필요한 게 사실이었으니까.
“…한데, 만약 하게 된다면, 저 혼자 가는 건 조금 그렇네요.”
“…?”
“이왕 제가 끼게 되는 행사라면…, K–서울 오케도 함께할 수 있으면 좋을 것 같아서요. 저와 호흡도 가장 잘 맞고 하니 꼭 함께 선보이고 싶네요.”
서진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분명히 전 세계에 생중계되는 역사적인 공연이 될 텐데, 그런 자리라면 K–서울 오케도 반드시 함께해야 했다.
“제 쪽에서 역으로 제안드리죠. 저를 솔리스트로, 뉴욕 필과 K–서울 오케의 합동 공연으로 가는 것으로요.”
말만 들어도 국가 간의 엄청나게 골치 아픈 조율이 수반될 듯한 일이었지만, 어쩌겠는가. 칼자루를 쥐고 있는 측이 그렇게 요구하는 것을.
어차피 정치적, 외교적으로 복잡한 일들은 서진이 알 바도, 소관도 아니었다. 정 원한다면 이해관계에 엮인 이들이 알아서 해결해야지.
* * *
동평양대극장에서 열리는 뉴욕 필하모닉 & K–서울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공연. 솔리스트 한서진.
이 공연 소식에 유일하게 슬퍼하는 건 한국의 팬들이었다. 자신들로서는 절대로 갈 수 없는 곳이니까.
하지만 전 세계에 생중계된다는 소식에 다들 일찌감치 시간을 비워놓고 TV 앞을 차지하고 기다렸다.
요즘 세상에 생방송을, 그것도 클래식 음악 방송을 누가 목숨 걸고 사수하려 들겠냐마는, 이 특이한 조합의 전 세계에서 가장 폐쇄적인 장소에서의 공연은 수많은 사람의 관심을 불러일으키기 충분했다.
-와… ㅎㄷㄷ하다. 근데 아무리 뉴욕필이랑 합동 공연이라도 남북관계를 생각하면 한서진을 협연자로 내세우기 어려울 텐데…?
└그러게? 시추에이션이 좀 특이하긴 하네. 남북 합동 공연도 아니고, 한-미 합동공연을 평양에서? 뭐지 이거…?
└나는 개인적으로 한서진이 정상회담 등 행사에 찬조식으로 동원되어 공연한 게 아니라 더 대단하다고 생각함.
└ㅁㅈ 그건 그냥 국가 행사면 당연히 한서진 부르겠지~ 이런 느낌인데, 이건 뭐랄까. 국가 행사가 있어서 한서진이 불려진 게 아니라, 한서진이 있어서 상황이 만들어진 느낌이라….
└ㅇㅇㅇㅇㅇㅇ인정
└근데 이거 원래는 합동 공연이 아니라 뉴욕필 단독 방북 공연이었음. 전에 2008년에 왔을 때 그다음 방문까지 얘기되어 있던 거래.
└엥? 뭔소리? 첨 듣는 말인데?
└ㅇㅇ 뉴욕필 예전에 평양 왔을 때 공연한 거 별로 좋은 결과 못 봤던 걸로 아는데…. 북한 측 반응도 영 시원찮고, 약간 보여주기식 이벤트 느낌으로 되다 만 것 같았는데….
└뭔소리야? 이때 뉴욕필이 연주한 아리랑 레전드였음.
└그때도 아리랑 했음? 북한 아리랑 ㄹㅇ 좋아하는 듯ㅋ 그럼 더더욱 한서진 포기 못하지ㅋ
└다들 나랏일 하시는 분들이라도 됨? 높으신 자리라도 하나씩 꿰차고 있음? 어케 안다고 다들 아는 척임?
-아는 척이 아니라 상식 아님? 일명 오케스트라 외교 모름? 20세기 후반 냉전 시절부터 유구한 전통임. 자유 진영 악단이 공산권 국가 방문해서 화해 분위기를 조성하고 그러는 거.
└요즘 애들은 그런 거 모름….
2020년대도 중반에 들어선 시점에 냉전 시대 이야기라니, 웬만한 ‘라떼’들 아니고서야 태어나기도 전의 이야기일 터였다.
하지만 실제로 냉전 시대 음악 외교는 종종 있어 왔던 일이었다.
1950년대, 양국 관계 정상화를 위해 소련을 방문했던 보스턴 심포니와 뉴욕필. 또 1970년대 중국과의 해빙 무드를 조성하기 위해, 당시 문화대혁명으로 쇄국 상태였던 중국을 방문해 공연했던 최초의 서양 관현악단,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
‘음악’이라는 하나의 언어로 성큼 문을 두드려온 서방세계의 제스쳐가 정말로 공산주의의 붕괴에 일조했는지까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냉전을 종식시키는 화해의 서곡 정도는 되지 않았을까.
그런 의미에서 이번 서진의 방북 역시 역사적으로 상당히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 일이었다.
-에이, 지금은 음악 외교고 뭐고 그런 게 아니라, 그냥 한서진이라서잖아. 한서진이니까.
└단순히 그렇게 보기엔 상황이 특수하다 이거지.
사람들의 반응은 각양각색이었지만, 어쨌든 중요한 건 오늘의 공연을 무척이나 기대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어! 시작한다!
-오오오오! 대박…! 평양이다!
-저기 어디야?
└동평양대극장이래.
└이름도 진심 북한스럽다….
└북한이니까….
* * *
장내를 빼곡히 메운 북한 고위층 인사들과 평양의 부유층 시민들.
그리고 한국의 몇몇 고위 관계자들과, 극히 일부의 외국인 관객들.
외국인 관객은 북한 입국에 제재를 받지 않는 국적의 사람들이었는데, 이들은 난생처음으로 ‘한서진 보유국’인 한국 사람들을 부러워하지 않는 순간을 겪어보게 되었다.
남한 사람들과 달리 이 공연을 직접 보러 올 수 있었으니까.
그렇게 북한 한가운데서 공연하고 있었지만, 서진은 연주하는 동안 이곳이 북한이라는 사실을 달리 의식하지 않았다.
그저 자신의 소리에 충실할 뿐.
그 어떤 외교적 의미도, 정치적 복잡함도 서진을 방해할 순 없었으니까.
긴긴 공연 동안, 단 한 번도 집중이 깨어지지 않았다.
그건 서진뿐 아니라, 관객들까지 전부 마찬가지였다.
심지어 이 공연은 최고위층 인사들도 전부 발걸음한 자리였다. 김정은이 불참했던 2008년 공연과 달리, 현재는 북한 최고 권력자의 일가족 전부가 함께 자리해 있었다.
3대째 세습을 이어온 북한의 최고권력층을 서진 개인으로서는 무척이나 불편하게 생각하는 바이나, 지금 이 순간은 그저 한 명의 관객으로만 생각했다.
어쨌든 다들 관객으로서는 최고의 자세를 보여주고 있었으니까.
드디어 이제, 마지막 곡이었다.
정규 레파토리로 예정된 곡들이 전부 다 끝나고, 마지막으로 준비한 앵콜 곡.
지휘자의 손길에 따라, 두 오케스트라가 넘실거리는 아름다움을 함께 자아내기 시작했다.
평양에서 울려 퍼지는 아리랑의 선율.
일본 공연에서도 그랬지만, 북한에서 울리는 아리랑은 유독 의미가 남달랐다.
남북이 원래는 한민족이었다는 새삼스러운 깨달음.
이제는 그런 인식을 가진 사람조차 거의 없어진 세상이었지만… 만약 음악으로 세상을 하나되게 할 수 있다면, 이게 바로 그런 것이겠구나 싶은 마음이었다.
그 장면은 전 세계로 생중계되었다.
서진이 직접 앵콜 연주를 맡은 아리랑의 물결에 심지어 눈물을 흘리는 이들도 있었다.
짝짝짝짝짝짝!!!
연주가 끝나자, 북한 고위측 인사들까지 전부 일어나 기립박수를 보내왔다.
음악사뿐 아니라, 세계사에 길이 남을 순간이었다.
* * *
-진심으로 레전드다….
└ㅇㅇ이건 아예 천상계의, 인간 외의 존재임….
-인류 역사에 길이 남을 명연주.
└말로는 도무지 지금의 이 벅찬 감동을 표현할 방법이 없다… 고작 생방 중계로 본 건데도….
└저기 가 있던 사람들 진심 부럽
-테크닉도 대단하지만, 감정 표현력이 진짜 최고임. 한서진 아프고 난 후 이제 기교적으로는 승부 못 볼 거라 생각했는데, 뭐랄까 온몸의 감각을 한껏 살려서 연주한달까 오히려 난 더 좋은 것 같아.
└ㅇㅇ테크닉이고 곡 해석이고 그저 완벽
-드넓은 황야를 가르며 훑어 지나가는 바람, 자연의 물결과 같은 청량함….
└아재감성ㅋㅋㅋㅋㅋ
-님들 그거 암? 북한 최고 권력자 딸이 한서진 팬이라 공연 끝나고 사인해달라고 달려온 거 ㅋㅋㅋ
└ㅎㄹ ㄹㅇ?
‘…응??’
이게 무슨 소리지?
우연히 댓글을 보던 서진은 뜬금없는 이야기에 갸웃했다.
…그러고 보니, 나중에 누가 팬이라고 달려와 사인을 해주긴 했다.
사인을 해주니 얼굴 한가득 좋아죽으려 하는 기색이 가득 차오르던 게 기억난다.
스스럼없이 나설 수 있었던 걸로 보아 고위층 자녀라고는 생각은 했는데, 설마 그 애가…?
-사진에 떡하니 다 찍혀서 빼박임 ㅋㅋㅋ
-ㅇㅇ 걔가 한서진 광팬이래 ㅋㅋㅋㅋ
└설마 그래서 한서진 거기서 공연한 거?
└몰루? 듣기로는 딸보다는 김씨 쪽이 더 좋아한다고…, 생중계 화면에 표정 잡히는 거 보니까 완전 빠던데…ㅋㅋㅋ 부녀가 합심해서 초청한 듯ㅋㅋㅋㅋ
└이거 진짜일지도 ㅋㅋㅋ 내가 뉴욕필 쪽에 아는 사람 있어서 들었음 ㅋㅋㅋ 한서진 부른 거… 뉴욕필의 요청인 것처럼 내세웠지만, 애초에 북측이 간청한 거라고.
└북한에서도 어떻게든 한서진 한번 보고 싶어서 ㅋㅋㅋㅋ
└하긴. 그렇지 않고서야 이런 그림이 나오지 않지. 뉴욕필 & K-서울 오케 합동 공연이라니 어쩐지 엄청 요상한 시추에이션이다 싶긴 했음 ㅋㅋㅋ
└ㅋㅋㅋ딸래미가 하도 티 내서 다 들통났네ㅋㅋㅋㅋ
-그나저나 난 아리랑도 좋았지만 한서진이 특별 작곡했다는 ‘KOREA’라는 곡도 너무 좋았음.
└아 진짜 그거 뭉클하더라.
└한서진 진심 볼 때마다 어떻게 저런 곡을 뽑는지 신기함….
└괜히 천재겠음?
└인정
-한서진이 진짜 대단한 게… 나도 작곡 좀 깨작거려봐서 아는데, 저렇게 견고한 짜임과 서정적 선율 두마리 토끼를 다 잡는다는 게 ㄹㅇ 어려운 일이거든
└맞아. 그 둘을 모두 잘하기란 쉽지 않지.
└완전 모차르트급임…. 모차르트랑은 감성이 완전히 다르긴 하지만
-난 동양적 색채 물씬 나는 게 특히 좋더라. 약간 옛날의 민족주의 음악가 스타일?
-ㅋㅋㅋㅋ 한서진 안 죽었는데도 더 유명해지고 더 잘나가네? 신기 ㅋㅋㅋㅋ
└미쳤나…
└아니 내말은 보통 죽어야 유명해지잖아….
└아 그건 맞음. 이쯤이면 진짜 살아있는 전설이다….
└진심 갓벽….
-한서진 유일한 문제라면 언제 은퇴할까, 더 이상 연주 못 하게 될까 봐 늘 불안불안하다는 거….
└건강 문제 너무 치명적….
└문제라기보단 걱정이지.
└어쨌든…!
서진 역시 그 점이 조금 근심이었지만, 많은 사람들이 걱정해준 덕분인지 다행히 상황은 그리 나쁘지 않았다.
* * *
오늘도 연일 화제에 오르는 주인공, 서진은 사람들의 우려 속에서도 여전히 건재했다. 오히려 핸디캡을 극복하고 더욱 성숙한 음악 세계를 선보이고 있었으니….
“축하해, 서진아!”
“와… 벌써 3년이라니…!”
그러게. 정말 시간 빠르다.
병세가 본격적으로 발병한 후, 어느덧 벌써 3년이나 되는 시간이 흘러 있었다.
천재 바이올리니스트로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