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 returned as a genius violinist RAW novel - Chapter 26
26화
“저쪽에 뒷문.”
다행히 지연은 눈치가 빨랐다. 서진이 무엇을 우려하는지 기민하게 눈치챈 것이다.
“다행이다. 저기로 가자. 엄마, 이쪽이에요.”
서진이 얼른 모친의 손을 잡아끌었다.
“어, 어어! 저기, 학생! 잠깐만!”
기자들은 순식간에 사라져 버리는 일행을 놓칠 수밖에 없었다.
* * *
“···하아. 피곤하다.”
어제,
공연이 끝난 시간이 꽤 늦은 탓에 바로 서울로 올라갈 수가 없어, 서진은 선희와 함께 제공된 숙소에서 하루 더 잤다.
“에구구, 삭신이야….”
왜 잠을 잤는데도 잔 것 같지 않지…?
분명 아직 건강한 새 몸일진대, 왜 이렇게 피로에 찌든 20대 알바생의 몸뚱어리같이 느껴지는 걸까.
그래. 방학 내내 좀 너무 열심히 살긴 했다.
게다가 어제의 그 굉장했던 무대.
아무리 무대 체질이다, 떨지 않는다 해도 큰일을 앞두고 사람의 몸은 본능적으로 긴장을 유지하게 마련.
그게 한순간에 풀리니 가뜩이나 탈이 나기 쉬운데, 밥 먹고 돌아와서 제대로 쉬지도 못했다.
‘기자들이 그 정도로 끈질길 줄이야….’
그날, 결국 서진은 인터뷰를 했다.
밥을 먹고 돌아와 보니 숙소 앞에 진치고 있던 기자들. 이제는 정말로 피할 수가 없었다. 이걸 끝내지 않고서는 계속해서 시달릴 것 같았기에.
다행히 기자들은 이미 다비트의 인터뷰를 따고 온 듯, 그와의 협연에 관련해서는 딱 예상했던 정도의 질문만 던졌다. 기자들이 몰려올 것을 대비해 미리 다비트와 대답을 맞춰두었던 덕분에 특별히 곤란한 건 없었던 것.
오히려 곤란했던 건 서진의 신상에 대한 질문들이었다.
서진은 기자라는 이들이 그렇게 집요한 줄 몰랐다. 거의 사생팬처럼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낱낱이 파헤치려 드는데, 진짜로 탈탈 털리는 기분이었다. 인생 2회차의 내공이 아니었으면 저도 모르게 술술 불었을 터.
‘고작해야 지역 신문사에나 기사 한 줄 실릴까 말까 한 행사인데, 이렇게까지 인터뷰를 따려 하다니….’
아무래도 다비트와 협연한 덕분이겠지만, 어쨌든 서진에게도 나쁜 일은 아니었다.
서진은 차마 그 진짜 이유가, 서진의 연주를 직접 본 기자가 너무 감명을 받은 탓이라는 사실을 상상도 하지 못했다.
그리고 그러한 골수팬을 고작 한두 명 만든 게 아니라는 사실도.
* * *
YN 음악저널의 강민지 기자.
“으흐흐흐….”
음악제가 끝난 후, 두 명의 스타 영재가 탄생했다.
한 명은 혜성처럼 등장한 천재 소년 한서진, 그리고 또 한 명은 임찬윤이라는 소년이었다.
그중 한 명의 광팬이 된 그녀는, 입가 한가득 이모 미소를 띤 채 열심히 모아놓은 서진에 관한 기사를 흐뭇한 얼굴로 읽고 있었다.
“여기 이모 팬 하나 추가요!”
“뭐래….”
“너 말이야, 너. 꼬맹이 아주 납치라도 할 기세다.”
“인정! 나 앞으로 얘 콕 집어서 따라 다니려고.”
“으이고, 주책이다…”
민지를 타박하던 옆자리 동료는 뜬금없이 턱을 괴며 꿈꾸는 소녀 같은 표정을 했다.
“난 걔, 걔가 귀엽더라, 피아노 치는 더벅머리 소년.”
“아 윤찬인가 찬윤인가 하는 애. 걔도 귀여웠지. 중학생이라 완전 애는 아니고 얼굴이 벌써 제법 청년 느낌이 나는 게….”
입으로 떠들면서도 눈으로는 서진이 나온 기사를 열심히 읽고 있었다.
“어쩜, 애가 말도 유창하다니까?”
“음악만 잘하는 줄 알았더니 말발도 대박이네.”
물 흐르듯 자연스러운 인터뷰.
그녀들로서는 알 길 없는 일이었지만, 회귀의 승리랄까.
반면 찬윤의 인터뷰는 어버버하는 게 꽤나 앳되고 수줍어 보였다. 만약 서진이 봤더라면 ‘역시 형은 귀엽다니까’라고 했을 모습.
“내 말이. 얘는 진짜 인생 2회차 같다니까? 그리고 은근 소신도 있더라?”
그중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기사에는 없지만 오프 더 레코드로 남긴 한 마디.
-칭찬은 감사하지만 제2의 누구, 이런 건 사실 조금 사양하고 싶어요.
왜 그러냐고 물었더니 부담스럽다고, 그와 같은 프레임이 씌우면 꼭 그 틀에 맞춰야만 할 것 같기에, 그런 칭찬은 사실 음악가에게 독이라는 게 아닌가.
그때를 떠올린 강민지는 다시금 감탄하며 이마를 탁 쳤다.
내 자식도 아니지만 너무 대견해서, 생각하면 할수록 절로 흐뭇한 미소가 나온다. 이게 바로 이모팬의 팬심이라는 걸까.
“으흐흐….”
“너 또. 또… 입가에 침 흐를라. 하루 종일 한서진 기사만 보는 건 너무하지 않냐? 일 좀 해. 일 좀! 인터뷰 자료 좀 정리해서 부족하다 싶은 것 좀 더 따오든가!”
음악제를 기점으로 서진을 비롯한 몇몇 영재 아이들에 대한 기사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물론 그중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건 서진이었다.
특이한 건 본인이 한 인터뷰보다 다른 사람의 입을 빌린 이야기가 더 많았는데, 그중 신랄한 평론으로 유명한 장명훈이 남긴 한 마디가 특히 눈에 띄었다.
그는 서진에 대해 직접적인 평을 내리는 대신 이렇게 말했다.
-이 아이로 인해 그동안의 생각을 바꾸게 되었다.
그동안의 생각.
아마도 ‘천재는 없다’라는 그의 지론을 말하는 것이겠지.
그렇게 인터뷰한 그는 폐막 전까지는 기사를 내지 말아 달라며, 아이에게 괜히 부담을 주어서는 안 된다며 신신당부를 했다.
그리고 이어, 음악제가 전부 끝나자 폭풍 같은 칭찬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오케스트라와의 호흡이 특히 놀라운, 신이 내린 재능의 학생. 서진 군과 함께한 연주가 음악제를 통틀어 가장 기억에 남았다.
-해외의 유수 오케스트라와 협연해도 모자람 없는 실력.
지휘자인 그는 독주 능력뿐 아니라 협연을 이끌어 나가는 총체적인 능력을 중시하기로 유명했다. 그런 만큼 그의 극찬은 의미가 남달랐다.
게다가 장명훈은 피아니스트로 출발한 지휘자인 만큼 바이올린 쪽에는 원래 큰 관심이 없었는데, 그런 그가 이례적으로 서진을 칭찬한 것이었다
세계적인 명성의 관현악단들과 교류를 하고 있는 그의 언급인 만큼 그 파급력은 상당했다. 아마도 장명훈의 관심이 서진에게 매우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될 터.
“으흐흐…. 얘 진짜 봐도 봐도 대단하지 않아?”
“1절만 해라… 좀!”
“아냐, 이거 봐봐. 다비트는 또 뭐랬는지 알아?”
깜짝 협연자였던 다비트의 인터뷰도 놀라웠다.
-천재적인 재능이라는 말로는 턱도 없이 부족한 소년. 영혼을 뒤흔드는 연주. 이 소년을 보니 어렸을 때의 나는 결코 천재가 아니었다는 걸 깨달아…,
-협연에 쓰인 곡은 서진 군이 직접 작곡한 것으로, 나는 조금 거든 게 전부.
믿기 어려운 이야기였지만 다비트 씩이나 되는 사람이 거짓말을 할 리는 없을 터.
“어휴. 정작 얘가 직접 한 인터뷰는 별 내용이 없네….”
인터뷰를 따긴 땄다.
한데 말은 청산유수였는데, 정작 그 내용을 보면 그냥 다 비슷비슷 겸손한 소리였다.
아직 부족하다는, 더 노력하고자 한다는. 바이올리니스트라 불리려면 멀었다고, 아직은 그저 ‘음악을 공부하는 학생’으로 만족한다고.
“구체적인 거! 몇 살부터 배웠고, 누구한테 가장 처음 배웠으며, 바이올린을 왜 시작했는지, 영재원에 들어간 계기라든가… 뭐 그런 것들 말이지!”
사실 서진이 인터뷰를 최대한 얼버무린 이유는 따로 있었다.
바이올린을 시작한 지 1년도 채 되지 않았다는 거짓말 아닌 거짓말을 차마 제 입으로 공식화할 수는 없어서. 본격적으로 배운 건 얼마 안 되었다는 애매한 말로 적당히 얼버무릴 수밖에.
“아쉬우면 뛰어, 발로! 좀!”
“어휴. 얘 인터뷰 같은 거 관심 없어. 아… 역시 찐 천재! 음악에 미친 은거 기인의 풍모! 오직 음악과 함께하는 인생!”
“….”
어쩐지 사생 이모팬이 생겨버린 듯했다.
* * *
“누가 내 욕하나…?”
음악에 미친 은거 기인과는 전혀 거리가 먼, 현실 초딩 서진이 귀를 후비적거리며 중얼거렸다.
“서진아, 귀 간지러워? 엄마가 귀 파줄까?”
“아뇨.”
단호박 대답에 선희는 시무룩 입을 내밀더니, 오랜만에 우리 아들 맛있는 것 좀 해주겠다며 부엌으로 총총 나갔다.
“후아암….”
서진은 지금 얼마 안 남은 약간의 방학을 만끽하는 중이었다. 빡세게 보낸 만큼 꿀 같은 휴식이었다.
이상하게 잘 안 믿어졌다. 한차례 몰아친 폭풍 같았던 국제음악제가 완전히 끝났다는 것이.
그만큼 알차게 시간을 보낸 탓이겠지.
보람차고 행복했던 순간들.
많은 것을 배웠고, 그만큼 성장했다.
‘아, 동영상!’
일명 실황 레코드. 까맣게 잊고 있었다.
원래는 어머니께서 못 오실 걸 대비해 이걸로 보여드리려 했는데, 현장에 직접 오셨으니 이건 처박혀서 나나 열심히 돌려봐야지.
어차피 며칠 후가 바로 또 자선음악회 공연이다. 미흡했던 점이 있다면 조금이나마 고치기 위해서라도 동영상 피드백은 중요했다.
“···헐. 뭐야, 이거.”
무현이 그동안 업로드한 동영상이 꽤 있었다. 일부러 음악제 기간 동안에는 인터넷을 하지 않았기에, 하나하나 확인하려면 꽤 걸릴 것 같았다.
하지만 서진이 놀란 것은 동영상의 양 때문이 아니었다.
…댓글이 왜 이렇게 많지?
아직 너튜브가 유행하기엔 한참 전이 아닌가. 이 사이트에 이렇게 사람이 많았나? 아직은 조회수도 그렇게 많이 나오지 않는 시기일 텐데…?
인터뷰 및 신문 기사로 유명해진 탓에, 그쪽을 통해 사람들이 들어왔다는 사실을 서진으로서는 알 리 없었다.
“일단….”
정석대로라면 공연 영상부터 봐야 하겠지만, 서진도 사람인지라 댓글이 궁금했다.
그래. 일단 궁금한 것부터….
-와, 초딩인데 성인인 나보다 억 배쯤 잘해.
└그러게. 이 전공생 누나 억장 무너지게 잘하네.
-작곡가가 살아 돌아와 들어도 깜놀했을듯
└위에 받음. 그냥 니 곡해라, 했을 듯.
아하하….
서진은 새삼스러운 기분으로 자신이 연주하는 동영상을 감상했다.
일전의 동영상과 비교하니 신기하게도 제 눈에도 실력 차이가 보였다. 마지막 공연 때에 비하면 아직 애기 같은 수준.
물론 사람들은 그저 찬양할 뿐이었지만.
-17살의 나, 의문의 1패… 오늘부터 전공 바꾼다….
└난 어디서 바이올린 전공이라고 말하고 다니지 말아야겠다…
-얘꺼 듣고 나면 딴 거 못 듣겠음. 귀썪.
-님들 그거 모름? 얘 인생 2회차잖아. 빼박.
은근히 찔끔하게 만드는 댓글도 있었다.
-실화? 11살에 생상스? 미친, 보고도 안 믿긴다. 11살에 이게 가능함? 나이 잘못 쓴 거 아냐?
└영상에 쓰여있잖아. 6G라고. 만 나이인 듯.
“…아, 젠장.”
서진의 감상은 엉뚱한 데 꽂혔다.
표정, 왜 이렇게 구리냐. 이거 분명 영구박제 될 텐데… 흑역사 생성이었다.
그래도 댓글은 대부분 흐뭇했다. 간간이 안 좋은 댓글도 있었지만.
-존나 거만한 표정이네.
-잘난 체 오진다.
-애새끼가 벌써부터 관종인가.
-천재라고 떠받들어져서 겁나 싸가지 없을 듯.
“…?”
아니 난 그냥 연주한 것뿐인데, 무슨 수로 연주하면서 잘난 체를 해? 그냥 연습한 거 쏟아내기도 바빠 죽겠는데?
아마 음악을 느끼고 있는 표정이 그렇게 보인 모양이지만, 서진은 굳이 정정해줄 필요를 못 느꼈다.
마지막은 폐막 공연의 영상이었다. 이건 무현이 따로 찍어 올린 게 아니라, 공식 촬영 팀에 의해 업로드된 영상.
실황 생중계는 아니고 녹화된 걸 올린 것이었지만, 현장감은 상당했다.
-빙의야, 빙의. 파가니니가 불완전 환생을 하는 바람에, 어린애 몸에 빙의해서… ㅈㅅ
-그냥 미쳤다. 다비트와 협연. 근데 전혀 쫄리는 느낌이 없다니….
-이 연주는 영원히 기억될 거다. 정말 너무 말도 안 되는 일이잖아.
-이 누나가 격하게 스릉한다! 한서진!
-와… 이게 풀사이즈도 아닌 바이올린으로 날 수 있는 소리임?
└존나 비싼 악기겠지. 졸라 명품 고악기.
“…아쉽게도 그 정도는 아니거든요.”
이성에서 후원받은 거긴 하지만, 그런 고가의 명품 고악기는 대부분 풀사이즈로 제작된 것이지 이런 어린이용 사이즈로는 잘 없었다.
아무튼 중요한 건 그런 게 아니라…,
거기까지 보던 서진은 댓글은 그만 보기로 했다. 중요한 건 자신의 소리이지, 남들의 반응이 아니었으니까.
댓글을 보고 킥킥댈 때와 달리 진지한 태도로 돌아온 서진은 영상을 보고 또 보았다.
그러다 문득,
눈에 들어오는 무언가가 있었다.
천재 바이올리니스트로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