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 returned as a genius violinist RAW novel - Chapter 3
3화
하지만 정작 소리를 낸 장본인은 주변의 반응을 모르는 듯 가만히 제 할 일을 계속하고 있었다.
천천히 내리그어졌던 활이 조율을 위해 다시금 움직이고 있었다. 왼손으로는 줄을 조였다 풀었다 하며 완전 5도의 화음을 맞추고 있었다.
더블스탑으로 개방현(왼손으로 음정을 짚지 않은 상태의 현)을 긋는 보잉이 어찌나 자연스러운지, 그녀는 저도 모르게 입을 벌린 채 아이를 쳐다보았다.
그러던 중, 드디어 딱 맞아떨어지게 된 완전 5도의 화음.
웅—
그 순간, 지금까지와는 차원이 다른, 뭐라 형용할 수 없는 완벽한 파동이 퍼져나갔다.
멍하니 듣고 있던 최지현은 단 한 음의 울림이 주는 여운에 묘한 감상에 빠져들었다. 고작해야 단순한 5도 화음일 뿐인데, 누가 심장을 건드리기라도 한 듯 울컥이는 이 기분은 뭔가 싶었다.
‘…뭐지. 이 느낌은….’
물론 고작 한 음으로도 심금을 울리는 게 불가능한 일은 아니겠지만, 그래도 이건….
조금 전에 들은 소리가 마치 뇌에 단단히 파고들기라도 한 듯 깊이 각인되는 기분이다.
대체 어떻게 이런 소리가….
고작해야 개방현을 그은 것이었지만, 믿기지 않는 수준이었다.
학교에서 강사를 하며 가장 괴로운 점이 무엇이었던가.
말 안 듣는 아이들을 관리하는 일도, 수업을 준비하는 일도 아니었다.
바로 극 초심자들이 내는 끔찍한 소리를 견디는 것이다.
엉망으로 현을 긁는 특유의 끼익 끼익 소리를. 그냥 아무것도 짚지 않은 채 개방현을 긋는 것조차, 대부분의 학생들은 제대로 밀착되지 않은 뜬 소리를 내는 게 고작이니까.
“아, 그… 선생님?”
주변의 반응에, 조율에 이어 천천히 스케일을 연습하던 서진이 뒤늦게 머리를 긁적였다.
이러려 했던 건 아닌데, 저도 모르게 신난 나머지….
무엇보다 소리를 낸 장본인인 서진 역시 당황스러운 건 마찬가지였다. 스스로도 깜짝 놀랄 만한 음색이었으니까.
“…으응? 아,”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에 퍼뜩 정신을 차린 최지현이 멍하니 대답했다. 그러다 대뜸 묻는다.
“저기, 너 이름이….”
“서진이요. 한서진.”
뒤늦게 정신을 차린 건 서진 역시 마찬가지였다. 원래는 영재원에 대해 정보를 얻으러 온 것이었으니까.
“그래. 서진아. 그, 선생님이 궁금한 게 있는데….”
“참, 선생님. 저 여쭤볼 게 있어서 그런데요.”
둘의 말이 거의 동시에 나왔다.
“아, 어떤 거요?”
“아냐. 먼저 물어봐.”
“…네. 제가 사실 영재원을 알아보려 하고 있는데요….”
“영재원?”
최지현은 자기가 묻고 자기가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이 아이라면 당연히 영재원에 보내 제대로 배우게 해야 한다. 이런 재능을 썩히는 건 국가적 낭비였다.
“그래. 어떤 게 궁금한데?”
“네. 일단….”
사실 서진이 영재원에 들어가려는 이유는 간단했다.
최고의 교수진으로 이루어진 교육과정이야 당연히 기대하는 바, 무엇보다 중요한 건 따로 있었다.
‘국가에서 운영하는 영재원은 학비가 무료지.’
일단 한예종은 확실히 그렇다.
서진이 예당 영재 아카데미를 애초에 염두에 두지 않았던 것도 그 때문. 예당 아카데미는 수업료가 상당했으니까.
한예종 외에도 참여할 수 있는 영재 프로그램이 있냐는 서진의 질문에 최지현이 손뼉을 딱 치며 답했다.
“맞아. 마침 올해부터 교육청 쪽인가… 아무튼 국가 기관에서 새로 예술 영재 클래스를 신설한다고 공문이 내려온 게 있거든. 잘 됐다. 마침 지금이 지원 기간인데, 여기에 관심 있는 거니?”
“네. 그거 어떻게 지원해요?”
“음, 아마도 각 학교 단위로 추천을 받아서 지원자를 뽑은 다음에 다시 시험을 치는 걸 거야.”
“그렇군요.”
시험이니 선발이니, 벌써부터 경쟁 세계의 소리가 들린다.
사실 서진의 병을 생각하면 예술계의 치열한 경쟁은 스트레스 관리 측면에서 좋지 않았다.
하지만 상관없었다.
그곳이 치열한 경쟁의 온상인 곳은 맞지만, 모든 일은 마음먹기에 달린 일.
서진이 영재원에 가려는 것은 남들과 경쟁하기 위함이 아니었다.
서진은 대외적으로 내보이는 성과보다는, 그저 음악 자체의 깊이에, 자신의 내면에 집중하고 싶었다.
영재원에 가서 보다 양질의 레슨을 받으려는 것도 그 때문이었다. 아무리 회귀의 기억이 있다 한들 모든 것을 독학으로 해결할 수는 없으니까.
회귀 전 진도까지야 혼자 순식간에 따라잡으면 그만이라지만, 그 후에는?
사고로 희귀 난치병 진단을 받은 것이 중3에서 고1로 넘어갈 무렵이었다.
어느 정도 자신만의 음악 세계가 무르익으며 가장 폭발적인 성장을 보이는 시기에 그렇게 되었으니, 그 후의 음악적 성장은 전무하다시피 할 수밖에.
지난 생에 못다 이룬 염원으로 인해 서진은 음악적 욕심이 무척이나 강했다.
보다 높은 경지에 이르기 위해 레슨은 반드시 필요했다. 그리고 이왕이면 최대한 빠르게, 제대로 배우는 게 중요했다.
“서진이, 지원해 보려는 거니?”
“네.”
“그래. 너라면 잘 될 거야. 그럼 선생님이 담임 선생님께 얘기해 둘게. 부모님께도 말씀드려야 할 테니까. 추천서라면 걱정 마.”
좋은 생각이라며 최지현은 반색했다.
안 그래도 그녀는 막 생각을 바꾼 참이었다. 지난번에 봤을 때만 해도 재능이 꽤 있다는 생각에 제대로 레슨을 받아 보라 추천했는데, 다시 보니 고작 그 정도가 아니었다.
사실 지금 들은 거라고 해봤자 개방현 몇 번 긋고 스케일 잠깐 연습한 게 전부였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스케일의 중요성이야 두말하면 입 아픈 이야기고, 활을 다루는 자세며 소리를 내는 수준만 봐도 알았다.
될성부른 존재는 떡잎부터 남다른 법. 이런 곳에서 아무도 몰라주기엔 너무도 아까운 아이가 아닌가.
비록 지금은 소일거리 수준으로 방과 후 강사를 하고 있긴 하지만, 음악교육과 출신인 그녀는 나름대로 어릴 때부터 음악을 한 재원이었다. 안타깝게도 임용에 연달아 떨어져 정식 교사가 될 수 없었던 것뿐, 재능을 보는 눈만큼은 자신 있었다.
“네, 감사합니다!”
다행히 일이 쉽게 풀릴 것 같았다.
* * *
띵, 띠링. 띵.
현을 튕겨 몇 번 음정을 맞춰보는 소리가 나더니, 이윽고 방안에서 유려한 선율이 흘러나온다.
서진의 어머니, 한선희는 비록 막귀임에도 그 소리가 퍽 아름답게 들린다는 건 알 수 있었다.
하지만 그녀의 수준으로는 감히 서진의 소리가 내는 경지를 파악할 수 없었다. 그녀에게 있어 바이올린 소리란 으레, 가끔 오디오에서 흘러나오곤 하던 우아한 소리인 게 당연했으니까.
그게 거장의 선율이기에 그렇게 아름답다는 것을, 본래 초심자가 연주하는 소리는 절대로 그와 발톱의 때만큼도 비슷하지도 않다는 것을 몰랐다.
그렇기에 아들의 연주 소리가 무척 좋구나… 하는 게 감상의 전부였다.
그건 딱히 그녀가 무식해서는 아니었다. 아마추어의 바이올린 소리를 들어본 적 없는 사람들은 대부분 그렇게 생각하곤 하니까. 대충 눌러도 어느 정도 들어줄 만한 소리를 내주는 피아노처럼, 바이올린도 그럴 거라 생각하는 것이다.
‘녀석, 그렇게 좋을까.’
요즘 아들의 모습은 평소와 무척 달랐다.
하루 종일 바이올린을 끌어안고 씨름을 하는데, 그 모습이 제법 진지하면서도 또 무척이나 행복해 보였다.
이토록 하루 종일 무언가에 집중할 수 있다니 그것만으로도 대단한 일. 한선희는 담임 선생님의 말대로 정말로 서진에게 특출난 재능이 있는 것 같다는 생각에 뿌듯한 미소를 지었다.
한편, 벌써 몇 시간 째 방 안에 틀어박혀 있는 서진은 진지한 표정으로 고민에 잠겨 있었다.
‘확실히 뭔가 달라.’
며칠 전 방과 후 수업에서 있었던 일.
그건 서진 본인에게도 놀라운 일이었다. 본래의 자신은 그 정도 소리를 낼 수 있는 수준이 결코 아니었으니까.
나름대로 전성기였던 때도 그랬을진대, 아직 미숙한 지금의 몸으로는 더더욱 안 될 말이었다.
한데 그날뿐 아니라, 이후로도 쭉 남다른 소리가 났다.
회귀를 겪으며 뭔가 특별한 능력이 생긴 걸까?
그때, 마지막 순간 겪었던 그 특이한 경험. 그게 무언가 영향을 준 게 틀림없었다.
‘뭐였을까, 정말.’
소리가 자아내는 심상이랄까… 소리를 청각이 아닌 시각, 아니 오감으로 전부 느끼는 기분.
심지어 그날의 일을 돌이켜 생각해 보니, 그 특유의 감각은 단순히 자신에게만 느껴진 게 아니었다.
그 특유의 현상으로 인한 특수효과인지 그날의 소리는 유난히 마음을 강하게 건드리는 느낌이었는데, 그 감정의 파동이 다른 이들에게도 전해지는 게 무의식적으로 느껴졌다.
그러니까, 상대방에게 전해진 소리가, 그로 인해 출렁이게 된 감정의 색깔이 다시 자신에게 고스란히 되돌아온 듯한 기분이 들었던 것이다.
‘죽음 직전, 무언가를 계기로 눈이 뜨인 건가….’
소위 천재적 음악가들이 느끼는 세상이 이런 걸까.
조금 특별한 능력이 생겼다 한들 스스로 천재라 생각하는 건 아니었으나, 왠지 모르게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아무튼, 뭐라고 명확히 표현할 수는 없지만, 확실한 건 예전과는 무언가 달라졌다는 것.
‘그걸 다시 한번 느껴보았으면 좋겠는데….’
아쉽지만, 그 덕인지 소리의 깊이가 몰라보게 달라진 것만으로도 놀라운 일.
똑똑.
“서진아, 밥 먹어야지~”
벌써 네 시간 째. 어느덧 밖은 어둡다 못해 깜깜해져 있었다. 저녁 먹을 시간이 이미 한참 지나 있었다.
“아, 벌써 시간이….”
“배 안 고팠어?”
“고파요. 배고파서 더는 못하겠네요.”
여태껏 배고픈지도 몰랐다.
“그러게. 밥도 안 먹고… 너무 열심인 것도 안 좋아. 쉬엄쉬엄하렴. 자, 밥 먹자.”
서진은 대답 대신 씨익 웃을 뿐이었다.
잠시 후, 조촐한 밥상 앞에 모자가 마주 앉았다.
“바이올린이 그렇게 재밌어? 그렇게 좋아?”
“음… 글쎄요.”
가볍게 물은 질문이었으나, 서진은 쉽게 답하지 못했다. 그에게 음악이란 단순히 ‘좋다’라고 말할 수 있는 그 이상의 무언가였으니까.
흔히들 음악을 하나의 ‘세계’에 비유하곤 한다.
그건 서진에게도 마찬가지였다.
원래도 그랬는데, 회귀를 겪은 후에는 더욱 그랬다. 그에게 있어 음악은 세상을 표현하는 매개체, 세상과 소통하는 수단을 넘어 세계 그 자체였다.
음악으로 만드는 세계.
물론 그 경지에 이르려면 아직 가야 할 길이 멀긴 하지만, 그건 차근차근 시간과 노력이 해결해줄 일. 나름의 재능도 재능이었지만, 독종이라며 다들 학을 뗄 만큼 그 누구보다 노력했던 자신이었으니.
“그냥, 끌리더라고요. 특유의 음색이요.”
“하하. 우리 아들이 이렇게 푹 빠질 줄은 엄만 정말 몰랐는데? 진즉 시켜줄 걸 그랬다.”
왠지 모르게 미안한 표정인 어머니의 얼굴을 서진은 새삼스러운 기분으로 바라보았다.
“…아니에요.”
아직 만으로 삼십 대의 젊은 나이.
회귀 전 그때와 달리 더없이 건강하시긴 하지만, 혼자 자신을 키워오느라 얼마나 고생이 많으셨을까.
“참, 그나저나 담임 선생님께서 영재원 이야기를 꺼내시던데. 그게 정말이니?”
“네. 안 그래도 말씀드리려 했어요. 오케스트라 담당 선생님이 적극 추천해 주셔서요.”
천재 바이올리니스트로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