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 returned as a genius violinist RAW novel - Chapter 33
33화
“분명 좋은 경험이 될 것 같긴 해요. 세계 무대에 진출할 발판도 될 것 같고요.”
“그럼 엄마도 반대하지 않아.”
“한데 학업 문제도 있고 하니… 좀 더 고민해보려고요. 참, 비용은 제작사 측에서 다 대준다고 하니, 그런 걱정은 안 해도 되고요. 출연료도 당연히 받고요.”
“그래. 그럼 엄마는 서진이 결정을 존중할게. 천천히 고민해보고 정하자.”
“네. 그럴게요.”
서진이 예쁘게 눈가를 접었다.
만약 하게 되면 엄마 모시고 공짜 관광도 할 수 있을 테고… 또 출연료 받아서 돈 생기면 엄마한테 좋은 옷도 좀 사드릴 수 있겠지. 맛있는 것도 같이 먹으러 가고….
* * *
“다비트, 그 아이라면 정말 가능한 거야?”
영화 파가니니의 감독 베르나르 로즈는 다비트의 적극적인 추천에도 미심쩍은 기색을 완전히 떨쳐내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이제 갓 바이올린을 배웠다는 꼬맹이가 아닌가. 게다가 동양인인데 얼굴은 어떻게 하고.
“실력이야 연주 영상을 봤으니 그렇다 치고… 근데 아무리 저 정도 협연 능력이 있다 해도 기교는 또 모르는 일이잖아. 그 특징을 소화해낼 수 있을지….”
“별걱정을. 아무리 파가니니라도 어린 시절이잖나. 카프리스 24를 연주해야 하는 것도 아닌데 뭘.”
“그러니까 말이네. 아역 수준의 연주라면 여기서도 할 수 있는 애들 발에 치이고 널리지 않았는가.”
“그건 자네가 그 아이의 실제 연주를 못 봐서 그래. 영상으로도 제법 느낌이 살긴 하지만, 달라. 실제로 들어보면 전혀 다르다고. 그 아이의 소리가 아니면 안 돼.”
다비트가 딱 잘라 말했다.
“그러니까, 어차피 영상에 담기는 건데 그 차이가 무슨 의미가 있다고.”
“실제 촬영장에서, 그로 인한 주변의 반응이 달라질 테니까. 진짜배기 소리를 들었을 때만 나오는 감동과 벅참. 그 생생한 반응이 카메라에 담길 테니까. 그리고 실제 듣는 것만 못하지만, 영상으로도 다르다고.”
“그건 나도 인정하는데… 난 아무래도 확신이 없네. 일단 인종이 다르다는 문제도 있고.”
“글쎄. 그런 문제라면 오히려 별거 아니지. 아역 배우랑 생김새 차이는 연출로 충분히 커버할 수 있으니까.”
“으음….”
그건 그랬다. 앵글을 잘 잡아서 뒷모습이나 위에서 내려다보는 모습을 위주로, 머리통이랑 연주하는 손가락 모습만 잘 나오게 하면 대충 그림이 나온다. 머리색이야 가발로 똑같이 맞추면 되니까.
아역 배우는 정면이 나올 때나 얼굴을 클로즈업하고, 손은 따로 보여주는 식으로. 반대로 뒷모습, 옆모습 등에서는 바이올린을 연주하고 있는 모습을 동시에 보여주는 거다.
그 다음에 장면들을 적당히 섞어 편집하면 마치 아역 배우가 직접 연주하고 있는 듯 자연스럽겠지… 거기까지 머릿속으로 대강 구상을 맞춘 베르나르가 물었다.
“그런데 그 애가 정말 그렇게 잘한다고? 솔직히 여기서도 완벽히 성에 차는 애를 못 구했는데, 그 작은 동양 땅에 그런 인재가 있다니….”
실력을 의심하는 건 아니었다. 그 역시 영상을 본 순간 눈이 커다래졌으니까.
한데, 여기도 잘하는 애들이 많은데 굳이 그럴 필요까지 있을까 하는 생각. 아는 만큼 들린다고, 그는 다비트만큼의 눈은 없는 탓이었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이곳에서 본 아이들로는 뭔가 부족하다는 것이었다.
이미 오디션도 보길 여러 번. 하지만 전부 묘하게 성에 차지 않았다.
물론 다들 잘하긴 정말 잘했다. 다들 어릴 때부터 바이올린을 잡기 시작해, 본격적으로 전공을 시작한 나이. 웬만한 성인 뺨치게 잘하는 아이들이었으니까.
하지만 왠지 모르게 뭔가 아쉬웠다. 이 정도 나이에 저 정도 연주면 정말 훌륭한 게 맞긴 했지만, 천재로 유명했던 파가니니의 어린 시절이라고 어필하기엔 어딘지 모자란 느낌.
그만큼 감독이 원하는 수준이 높은 것이다. 악마에게 영혼을 팔았다고 악명이 자자했던 파가니니답게, 아직 덜 영근 나이에도 미친듯한 기교를 선보이는 모습을 담아야 하니까.
또 그렇다고 손싱크, 활싱크만 시키고 음악을 따로 입히는 것도 원하는 바가 아니었다. 아무리 잘해도 그건 리얼리티가 떨어질 수밖에 없으니.
“실력이라면 걱정하지 않아도 돼. 전부 소화해 낼 수 있을 테니까. 그건 내가 확신해.”
“나이가… 몇이랬지?”
“지금 만 11세인가 그 정도일 거야. 생일이 늦다고 들었으니까.”
서진은 현재 한국 나이로는 13살이었지만, 생일이 아직 지나지 않아 만으로는 11살이었다.
“음… 찾고 있는 연령이 만 10세 정도였으니 얼추 비슷하긴 한데….”
“동양인은 원래 더 체구가 작고 어려 보이니, 그건 걱정하지 않아도 돼.”
사실 서진은 또래에 비해 키가 작은 편은 결코 아니었지만, 그래도 서구권 어린이들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아담했다. 게다가 기록 속의 파가니니가 워낙 장신이었던 걸 감안하면, 오히려 나이가 조금 넘어도 문제는 없었다.
“다비트 자네가 그렇게 추천한다면야… 한데 아직 답이 없다지 않았는가? 일단 본인이 그럴 의사가 있어야지.”
“….”
가장 큰 문제는 바로 그거였다.
이미 자신의 다른 제안을 거절한 전적이 있는 아이가 아니던가.
사실 다비트는 이미 음악제 때 서진에게 권유한 적이 있었다. 자신을 따라 미국으로 건너가지 않겠냐고.
하지만 서진은 정중히 사양했다. 지금은 딱히 생각이 없다고. 아직은 이곳에서 배울 게 많이 남았다고.
하지만 서진과 헤어지는 것이 무척이나 아쉬웠던 다비트는 미련을 버리지 못했다. 아무래도 자신은 저 동양의 어린 꼬맹이에게 푹 빠져버린 모양이었다.
그래서 영화 촬영을 제안하며 겸사겸사, 한예종을 통해 다시 한번 제의를 넣어볼까 고민하다가 차라리 직접 만나 설득하는 게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아무래도 넓은 세계를 직접 겪고 나면 생각이 달라질 수도 있을 테니까.
‘분명 정말 좋은 기회가 될 텐데….’
오히려 제가 더 애가 타는 다비트였다.
* * *
“유학…이라고요?”
개학과 함께 영재원의 수업 역시 다시 시작되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서진을 기다리고 있는 가장 첫 뉴스는 다름 아닌 유학에 대한 것이었다.
“응. 서진아, 혹시 유학은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있던 거니?”
“글쎄요. 갑자기…. 아직 생각해 본 적 없어서요.”
제의는 한두 군데에서 온 것이 아니었다.
온갖 내로라 하는 곳에서 들어온 권유들.
“여기저기서 워낙 많이 얘기가 들어와서. 사실 안 그래도 어머님이랑 한 번 상담을 하려 했는데, 요즘 바쁘신 것 같아서 너한테 먼저 이야기하는 거야.”
“….”
원래도 그랬지만, 여기저기서 서진을 탐내는 스케일이 이제는 국제무대로 커져 버렸다.
“음악제에서 다비트에게도 권유를 받았었다며.”
“네. 이미 거절했지만요.”
제자 같은 거 안 두기로 유명한 그 다비트. G가 직접 건넨 이야기. 제자로 두려는지까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손을 내민 건 사실이었다.
다른 아이들이라면 당장에 덥썩 잡았을 제안이었지만, 서진은 아니었다.
“흠… 좋은 기회가 되었을 텐데… 아쉽구나.”
“아직은 제가 그 정도로 준비가 되질 않아서요.”
진심이었다.
무엇보다 서진은 평범한 학교생활도 누리고 싶었다. 너무 이른 나이에 유학을 가게 되면, 그만큼 감수해야 하는 것들이 많았다.
”또… 국제음악제 예술 감독을 통해서도 연락이 들어왔는데, 하이페츠 인스티튜트에서 서진이 너를 초청하고 싶다고 하더구나.“
“하이…페츠요?”
이건 서진도 조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하이페츠 인스티튜트(아샤 하이페츠와는 별개의 동명이인에 의해 설립된 재단임)에 들어가는 것이 다비트의 제자가 되는 것보다 훨씬 엄청난 일이라 그렇다기보다는, 개인적 친분이 생긴 다비트와 달리 저쪽 재단과는 아무런 연이 없는 상황이니까.
그런데 자신을 직접 보지도 않고는 러브콜을 보낼 줄이야.
“그래. 너무 좋은 기회라 아까워서.”
“….”
서진은 잠시 말이 없었다.
설마… 또 있는 건 아니겠지?
“그리고 줄리어드 영재원에서도 연락이 왔어.”
…왜 없겠는가.
“줄리어드….”
할 말이 없다.
아니 대체 제가 뭐라고 이런 대단한 곳에서 줄줄이 러브콜을 보내는 거지…? 서진은 머리가 어질해지는 기분이었다.
“아무래도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겠지?”
“…네. 그럴 것 같아요.”
“그래. 그럼 생각해 보고 천천히 답해주렴. 어머니와도 상의해 보고. 누가 뭐래도 결정은 네가 하는 것이니까.”
“네. 배려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 * *
클래식 음악계.
본디 그 세계는 어느 나라나 좁고도 좁았다. 그건 땅덩어리가 큰 미국이라 해서 크게 다르지 않았다.
즉, 다비트를 진원지로 시작된 소문에 하이페츠니 줄리어드니 줄줄이 관심을 보이게 된 것.
그리고 그중에는 핑크스 주크먼이라는 존재도 있었다.
바이올린 및 비올라 연주자, 그리고 지휘자이기도 한 이스라엘 출신의 세계적 거장.
얼마 전 우연히 동양의 어린 소년, 한서진이라는 이름을 가진 소년의 영상을 본 그는 한동안의 고민 끝에 한국으로 직접 발걸음하기로 했다.
‘동양인 소년이라….’
안 그래도 슬슬 후학을 양성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던 차, 한국 출신의 어린 소년이 우연히 눈에 들어왔다.
한국.
자신에게 쓰디쓴 패배를 안겨주었던 유일한 라이벌. 그녀의 출신이 하필이면 한국이었다.
그에 주크먼은 운명의 이끌림을 느꼈다. 아, 이 아이라면….
‘이 아이로 인해 그 오랜 자격지심을 풀 수 있을지도.’
어린 나이에 세계적인 거장을 사사하는 것은 흔치 않은 기회다. 자신에게도 그렇지만, 그 아이에게도 분명 좋은 기회가 될 터.
한데 이상하게도 답이 쉬이 오지 않았다. 답답해진 주크먼은 상황을 살짝 알아보았다.
그랬더니 웬걸, 그 아이를 눈독 들이고 있는 게 자신뿐만이 아니지 않은가.
다비트의 경우에는 벌써부터 함께 협연도 했다 하고, 그자뿐 아니라 몇몇 다른 연주자들도 아이의 존재를 알고 지켜보고 있었다.
새파랗게 젊은 녀석이 벌써부터 후학이라니….
반드시 그 아이어야 한다. 그래야만 했다.
연락에도 대답이 없자 주크먼은 상대를 직접 만나러 가기로 결정을 내렸다. 지금 하고 있는 일만 정리되면 바로 날아가는 거다.
이건 그야말로 유례없는 일. 한예종 측에 방문 예정을 알린 주크먼은 당장이라도 서진을 만날 생각으로 가득 차올랐다.
* * *
영재원 내에서 서진은 여러모로 유명해졌다.
“뭐어!? 미쳤어!”
“레알!? 대박!”
서진의 소식에 영재원 학생들은 모이는 족족 수군거리기 바빴다.
“하이페츠랑 줄리어드를 깠다고?”
“대박….”
“근데 그게 끝이 아니래.”
“뭐어!?”
“그게 말이지…,”
여기까지만 해도 엄청난데, 더한 것도 있었다.
“뭐어!? 주크먼!?”
음료를 쪽쪽 마시던 남학생이 빨대를 그대로 툭 떨어트렸다. 한국이 낳은 세계적 거장 장경화과 한때 라이벌 관계이기도 했다는 그 주크먼!?
“···그런데, 설마 그걸 거절한 건 아니겠지?”
끄덕.
“….”
이런 미친놈.
한데 모여 떠들고 있던 아이들의 얼굴에 약속이라도 한듯 똑같은 표정이 떠올랐다.
어찌 보면 당연한 반응이었다. 이건 솔직히 무현도 놀랐으니까.
“와, 주크먼 충격 먹겠네. 자존심 와장창 났을 듯.”
“이러다 막 걔 직접 보겠다고 당장 한국으로 날아오기라도 하는 거 아냐?”
“미친, 설마.”
설마 하면서도 그런 생각이 진지하게 드는 건 왜일까.
천재 바이올리니스트로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