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 returned as a genius violinist RAW novel - Chapter 39
39화
막 다음 악장으로 넘어온 차였다.
미세조절 나사라도 달려있으면 바이올린 파트가 쉬는 틈을 타 뭐라도 할 수 있겠지만… 알다시피 박물관표 고악기다. 그런 게 있을 리가.
게다가 바로 그 점 때문에 발생한 문제이기도 했다. 한참 동안 사용되지 않은 악기다 보니.
‘괜찮아.’
사실 무대에서 연주 중에 줄이 내려가거나, 끊어지거나 하는 등의 문제는 은근히 자주 발생한다. 아무리 사전에 꼼꼼히 점검한다 해도, 무슨 일이 일어날지는 하늘만이 아는 일.
그렇기에 그에 대비하는 매뉴얼이 존재했다.
협연의 경우, 협연자의 악기에 문제가 생기면 그 즉시 악장이 자신의 악기를 협연자에게 건네준다.
그리고 협연자의 악기는 오케스트라 단원들을 통해 뒤로뒤로뒤로 전해져, 바이올린의 맨 끝, 즉 무대 입구와 가장 가까운 자리에 앉은 단원에게 전달되어 대기실에서 긴급조치를 취하게 된다.
한데 문제는 지금 연주가 피아노와 단둘이 맞추는 소나타 곡이라는 것.
어떻게든 이번 악장이 끝날 때까지 버틸 수밖에 없었다. 찬윤과 같이하는 협연을 자신 때문에 망치고 싶지 않았다.
‘줄이 끊어진 건 아니니 다행히 그 정도 상황은 아니야.’
운지야 전체적으로 조금씩 수정해서 짚으면 되는 일.
서진은 다행히 절대음감의 소유자였다. 그것도 아주 민감한 수준으로.
바이올린 연주자에게는 음감이 상당히 중요한데, 바이올린에서 음정이 틀렸다고 말하는 건 피아노처럼 아예 다른 음을 눌렀다는 의미가 아니었다.
예를 들면 도x을 정확히 짚어야 하는데 아주 미묘하게 손가락 위치가 잘못되어 도와 도x 사이에 있는 수도 없이 많은 음 중 하나를 냈다는 뜻.
예민한 청중이라면 단 몇 헤르츠의 차이도 느낄 수 있기에 항상 조심해야 하는 일이었다. 본인이 음감이 예민한 편이라면 걱정할 것 없겠지만, 문제는 바이올리니스트는 둔감해서 미세한 차이를 잡아내지 못하는데, 정작 관객은 음정에 불편함을 느끼는 경우.
물론 서진은 그럴 걱정은 전혀 없었다.
태연한 신색에 사람들은 설마하니 지금 서진이 해당 줄의 모든 운지를 조금씩 수정해 피치를 조절하고 있을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하지만 모두가 그런 건 아니었다.
주크먼은 어느 순간 그 사실을 눈치챘다.
물론 음정이 확연히 틀린 티가 나서 알게 된 것은 아니었다. 긴가민가하다가, 서진이 운지를 특이하게 하는 장면을 발견한 것이었다.
중간중간 반복되는 3중 코드.
E현은 개방현으로, 그리고 나머지 둘은 1번 손가락, 3번 손가락으로 심플하게 처리하면 되는 것을 굳이 1번, 2번, 4번으로 해서 검지로 E현을 살짝 짚어주는 게 아닌가.
그걸 보고 E현이 미세하게 낮아져 있다는 걸 눈치챘다.
‘대체 언제부터였지?’
설마, 아까 표정이 미묘하게 변하던 순간? 찰나에 음이 흔들렸던 그때, 줄이 살짝 내려갔던 것이다.
소년은 역시나 천재라는 이름답게 악기의 음정이 내려간 순간 완벽하게 대처했지만, 순간적으로 얼굴에 스치는 표정이 있었다.
한데 그조차 눈 깜박임 두 번이 전부일 뿐, 이렇다 할 동요나 당황은 조금도 없었다.
···정말로 대단한 아이.
나이로 미루어 보아 아직 무대 경험이 많지는 않을 터, 이런 일을 처음 겪어보았다면 엄청나게 당황해도 이상하지 않을 텐데….
주크먼 역시 비슷한 일을 겪어봤기에 알았다. 웬만한 연주자라면 이럴 때를 대비한 훈련도 되어 있다지만, 어린아이가 보일 법한 태도라고는 믿기지 않는 상황.
비브라토를 하는 척 음정을 수정하는 것 자체야 흔한 일이나, 그건 어디까지나 한두 번 잘못 짚은 경우이지, 악기의 음정 자체가 내려가 모든 음을 조절해야 하는 경우와는 이야기가 다르다.
물론 그 역시 숙련된 연주자라면 얼마든지 할 법한 일이었다. 하지만 이 아이는 고작 12살이 아니던가.
‘말도 안 되는 존재로군….’
경이적인 수준의 음악적 재능도 그렇지만, 저 차분한 대처능력, 담대함이라니.
주크먼은 더욱 감탄하는 마음으로 서진의 연주를 바라보았다.
어느 순간 같은 것을 깨달은 건 사라 정도 마찬가지였다. 조금도 눈치채지 못했는데, 악기의 음정이 내려가 있었다고?
정말로 몰랐다. 전혀, 짐작조차 하지 못했다. 멀쩡히 조율된 악기로도 음정을 틀리기 십상인 게 바이올린인데….
수백 년 전, 파가니니의 연주를 보았던 이들의 기분이 이런 것이었을까? 경우는 조금 다르지만, 연주 도중 줄이 끊기자 남아있는 다른 줄들로만 태연히 연주를 이어나갔다는 일화.
정말 그런 일이 발생했다면, 눈앞의 소년 역시 같은 대처를 보였을 것 같다는 확신에 가까운 예감마저 들었다.
아마 저 소년이라면 줄이 끊어져도, 그리고 그 남은 줄들의 음정이 엉망이라도 어떻게든 연주해 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는 사이, 중간에 악장 사이를 틈타 살짝 조율을 마친 서진은 연주의 막바지에 이르러 있었다.
3악장 피날레. 프레스토.
빠르고 화려한 선율이 경쾌하게 울렸다.
흥겨운 싱코페이션(당김음)의 리듬. 절로 흥이 나는 멜로디의 향연 끝에,
빠르게 그어지는 세 번의 A음과 화음으로 곡이 끝났다.
짝짝짝짝짝짝짝!
“와아아아!”
짝짝짝짝짝짝짝!
짝짝짝짝짝짝짝!
마지막 음이 토해지기 무섭게 쏟아지는 기립박수.
장내의 모두가 벌떡 일어나 열화와 같은 박수를 보냈다.
* * *
인사를 마치고 무대 뒤로 들어온 서진은 조금 얼떨떨한 기분이었다.
이 정도 호응일 줄은 몰랐는데….
“형, 최고였어.”
“서진이 너야말로.”
서진은 협연자였던 찬윤에게 손을 내밀었다.
“고마워, 형. 다 형 덕분이야.”
“내가 뭘. 선뜻 응해줘서 나야말로 고맙지.”
그의 제안 덕에 이렇게 좋은 무대를 가질 수 있었다.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무대가 될 터.
“서진아아아아~~ 찬윤이 형~~~~!”
어디선가 윤수가 황소처럼 돌진해 왔다.
“진짜 멋졌어~~~~~~~!! 최고오오오오! 대바아아악!”
서진은 혹시 무대에 소리가 새나갈라 얼른 대기실 문을 닫았다. 하… 얘, 아직 6학년이었지….
“진짜진짜! 진짜! 완전 나 쓰러질 뻔했어! 너무 감동 먹어서! 막, 진짜 소름이, 전율이 쫙 돋는데… 눈앞에 천둥 번개가 우르르쾅쾅! 숨이 잘 안 쉬어질 정도였어!”
으음… 능력이 너무 과하게 발휘됐나? 조금 조절할 걸 그랬나….
물론 일부러 했던 건 아니었다. 연주에 극도로 몰입한 결과 자연스레 발현되었을 뿐이니까.
그렇다고 이게 또 완전히 무의식의 영역에서 일어나는 건 아니었다. 그냥 자연스럽게, 의지 하에 컨트롤할 수 있긴 하나, 능력 발현에 신경 쓰기보다는 연주에 집중했던 것뿐.
‘그 덕분에 효과가 너무 좋았던 것 같기도 하고….’
이 능력 때문만은 아니겠지만, 소리의 어우러짐이 남달리 좋았던 면이 있었다. 전부터 느끼던 바였는데 협연 같은 경우에서도 꽤 유용한 능력이었다.
아무튼, 그 덕분에 반응이 좋아도 너무 좋은 게 문제라면 문제랄까.
밖에서는 어이없게도 계속 박수 소리와 함께 앵콜을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이 뒤에 인터미션 아냐?”
“내 말이.”
뒤에 인터미션인데 앵콜은 무슨 앵콜이야.
아니 상식적으로 인터미션 시간이 되면 벌떡 일어나 나가야지. 한 시간 넘게 앉아있느라 온몸이 뒤틀렸을 텐데. 화장실도 가고 싶을 테고.
“근데 계속 외치고 있네.”
“….”
바깥은 여전히 난리였다. 앵콜이 나오지 않으면 자리를 뜨지 않겠다는 듯이.
이거… 어쩌지?
다행히 상황은 앵콜 공연은 2부가 끝난 후 있을 예정이라는 긴급 안내방송에 간신히 진정되었다.
와… 클래식 공연에서 이런 거 진짜 처음 본다. 이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일이람?
“근데 우리는 따로 앵콜 예정 없지 않았나?”
“원래는 그랬지?”
물론 준비하긴 했다.
전체 공연이 다 끝나고, 혹시라도 2부 연주자들이 준비한 앵콜이 바닥나면 영재 학생들도 동원될 예정. 그에 무대에 선 영재들이 다 같이 연주하는 곡 몇 개를 준비해 놓았다.
“근데 하게 될 가능성이 아주 높네. 아무튼… 윤수야, 너도 잘했어. 아까 조금 들었는데 진짜 잘하더라.”
이제야 안심하고 대기실 밖에 신경을 끈 서진은 모두에게 축하를 건넸다.
시작하기 전부터 긴장된다고 난리 쳤던 게 무색하게도 강윤수는 정말로 훌륭히 연주했다. 아무래도 바이올린보다 비올라가 팔자인 모양이다.
“어? 나? 나 완전 망한 것 같은데….”
하지만 정작 본인은 시무룩했다.
“망하긴. 내가 들어본 비올라 소리 중 최고던데?”
“맞아. 윤수야, 잘했어! 진짜 멋졌어!”
“…나, 근데… 뭘 하고 왔는지 기억이 하나도 안 나. 완전.”
“원래 그런 거야. 기억은 없는데, 몸은 알아서 새겨진 대로 움직이더라.”
“아냐. 진짜 망했어. 사람이, 관객이 너무 많아서 진짜 떨리는데…. 아, 진짜 이거 원래 이런 무대 아니잖아…!”
강윤수는 억울했다.
보통 영재 콘서트는 그들만의 무대. 청중도 관계자나 가족, 이쪽에 특별히 관심 있는 일반인 정도가 대부분이다.
그런데 이번 콘서트에는 생각보다 사람이 많이 몰렸다. 예약률이 대박이라고 무대에 서는 친구들이 죄 수군거릴 정도로.
일단 송여름의 이름값이 있으니까, 게다가 대관령 때와 달리 지리적으로 서울이라는 이점이 있는 만큼 대중적으로 훨씬 인지도 높은 무대인 셈이지만….
‘아냐! 이건 아무리 생각해도 서진이 녀석 때문인 것 같아!’
서진이 국제음악제와 그 후의 인터뷰로 유명세를 탄 후 열린 콘서트가 아닌가. 너튜브에서도 사람들이 많이 안다고 했고….
자신뿐 아니라 함께 공연하게 된 다른 학생들까지도 대박 긴장했던 걸 생각하면 무척 억울했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이 또한 좋은 경험.
“야, 고맙다.”
“응?”
“아 몰라… 근데 나 중간에 엄마랑 눈 마주쳐서 완전 멈출 뻔.”
“그래서 나는 엄마랑 눈 안 닿는 구석 자리 드렸지~!”
···불효자식 같으니라고. 아아, 이게 정녕 내가 아는 그 임찬윤의 대사인 것인가….
서진은 속으로만 중얼거렸다.
참고로 서진의 어머니, 선희는 1층 VIP석 중앙에 당당히 앉아 서진을 향해 시종일관 미소를 지어주었다.
“참 서진아, 너 마스터 클래스 신청했어?”
“응?”
찬윤의 물음에 서진이 고개를 돌렸다.
“KH 영재들과 이번 콘서트 출연 학생들을 대상으로 주크먼 마스터 클래스를 연다는데? 나야 악기가 달라 상관없지만, 서진이 네가 참가하면 좋을 것 같아서.”
“음….”
알고야 있었다. 주크먼의 방한 사실을 알고 있던 데다가, 재단 측에서 직접 안내까지 받았으니. 단지 참가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이 될 뿐. 괜히 코 꿰일까 봐.
‘분명 좋은 기회이긴 한데….’
악기를 마저 정리하며 서진은 윤수에게 물었다.
“윤수 너는?”
“나는 당연히 가지! 비올라로도 참여 가능하더라. 아, 맞다! 근데 너 악기, 대체… 뭐야? 이거 완전 소리 쩔던데!?”
뒤늦게 서진의 악기를 본 강윤수가 다급히 물었다.
“이거?”
어쩐지 어깨가 으쓱 올라가려는 걸 참으며 서진이 답했다.
천재 바이올리니스트로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