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 returned as a genius violinist RAW novel - Chapter 41
41화
물론 자신이 연주한 녹음본이라고 해서 전부 그 특유의 느낌이 오는 건 아니었다. 능력이 발휘되는 정도의 차이도 있을 테고, 연주 장소나 시설 등 녹음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도 중요하지 않을까.
그 심상 능력이라는 것도 결국 소리에 베이스를 둔 것이니, 음향 시설이 유난히 탁월한 장소에서는 공간적 울림으로 인해 효과가 증대되어 효과가 커지는 게 아닐까 싶었다.
그렇기에 공연장의 음향 설계에 따라, 실제만큼은 못해도 녹음본을 매개로도 그걸 느낄 수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
‘…몰라. 믿거나 말거나. 어차피 나밖에 모르는데 알 게 뭐야.’
“김치찌개, 된장찌개 나왔습니다.”
“맛있겠다…! 잘 먹겠습니다!”
숟가락을 뜨면서도 눈이 끝까지 화면에서 떨어지지 않는다.
“서진아, 얘. 흘릴라. 뜨거우니까 조심해.”
“앗, 죄송해요.”
갈수록 산으로 가는 댓글에 서진은 피곤해져 인터넷 창을 껐다.
밥이나 먹자.
* * *
마스터 클래스가 열리는 작은 리사이틀홀 근처로 들어서자, 역시나 기자들이 다가왔다.
이번에는 도저히 피할 수 없을 것 같아, 서진은 할 말을 대충 고르며 태연히 발걸음을 옮겼다.
“한서진 학생! 공연 소감을 좀 들을 수 있을까요?”
“서진 학생은 KH 출신이 아닌데 이번 공연은 어떻게 참가하게 되었나요?”
“이번 공연에서 사용한 악기는 어떤 것인가요? 소문에는…,”
“이성 그룹 임석호 회장이 관람하러 왔다는데, 무슨 관계인가요? 서진 학생을 직접 후원하시는 건가요?”
정식 인터뷰 요청도 아니고, 대뜸 질문들을 마구 쏟아붓는다.
어이가 없어진 서진은 마음을 바꿔 인터뷰를 거절하기로 했다.
아니 정작 인터뷰를 요청할 진짜 유명인은 저 안에 따로 있는데, 왜 나한테 난리람? 무려 주크먼이 한국에 왔잖아!
“죄송합니다. 서진이가 마스터 클래스에 가야 해서 어렵겠네요. 비켜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서진의 표정을 본 선희가 곧바로 나섰다. 서진을 뒤로 물리며 정중히 거절했지만, 기자들은 끈질겼다.
“어머니, 보호자로서 한 말씀만…,”
“한서진 학생! 주크먼 씨가 한국에 온 이유가 혹시…,”
어휴. 진절머리가 다 난다.
대체 초등학생을 상대로 이게 무슨 난리인지. 연예인도 아닌데.
사실 저들이 궁금해할 만도 했다. 서진 역시 어리둥절한 일이었으니까.
주크먼은 정작 이번 공연에 서지도 않았는데, 갑자기 웬 마스터 클래스인가 싶은 것이다.
사실 KH 재단에서 처음 요청한 것은 협연이었다. 일명 ‘거장과 함께하는 KH 영재 콘서트’라는 이름으로.
하지만 주크먼 정도 되는 거장의 공연이 그렇게 뚝딱 이루어질 리 없는 일.
협연은 정중히 거절당했으나, 대신 공연 다음 날 따로 스케쥴을 잡아서 마스터 클래스를 따내는 데 간신히 성공했다.
아마도 서진에 대한 궁금증 때문이 아니었을까.
하지만 정작 서진은 이 마클에 참석할지 말지 꽤나 갈등했었다.
사실 서진은 공연 준비에 집중하느라 주크먼의 연락을 아예 못 받은 게 아니었다. 한예종으로부터 메모를 전달받았음에도 모종의 이유로 고민하고 있었던 것.
얼마 전,
공연이 사흘쯤 남았던 시점.
한예종에서 온 연락에 서진은 솔직히 조금 당혹스러웠다.
아니 고작 내가 뭐라고…? 황송하면서도 너무 일방적이라 조금 부담스러웠다.
저 정도 유명세를 가진 거장이면 연주 일정만 해도 연 단위로 다 정해져 있을 텐데, 설마 피 같은 휴가라도 틈타 방한한 건 아닐 테고….
물론 오는 건 자유니, 아쉬운 쪽이 온다는데 말리지는 않겠지만…. 솔직히 서진은 유학을 가지 않겠다는 마음을 바꿀 생각이 없었다.
어린 나이에 유학은 양날의 검이다.
이역만리 타국에 가서 마에스트로 한 명에 의지해 바이올린을 배운다? 가뜩이나 인종차별도 심한 나라에서?
굳이 잘 모르는 사람에게 자신을 쥐락펴락할 수 있는 생사여탈권을 쥐여주고 싶지 않았다.
한국에서 이미 안정적으로 자리 잡아 배우고 있는데, 굳이 그런 모험을 할 필요 없는 일. 한국이 예전과 같은 클래식 불모지라면 모를까, 몇 년만 지나면 K-클래식이라는 말이 생길 정도로 클래식 교육에 두각을 나타낸다.
비록 그게 스파르타식, 주입식 강제 교육 탓일지도 모르겠으나, 도제 제도 같이 중세스러운 시스템보다야 낫겠지.
게다가 그와 장경화, 혹은 사라 정과의 관계에 관해서도 조금 껄끄러웠다. 그가 동양인에 대해 가진 감정이 정확히 어떨지 모르는 일.
지금으로서는 아직 일어나지 않은 미래의 일이지만, 회귀 전 그가 했던 꺼림칙한 발언도 했고 해서 사실 서진은 그를 그리 좋아하지 않는 편이었다. 한국에서 평이 그리 좋지 않았기에.
그래서 여차저차 피하게 된 것. 가뜩이나 공연을 코앞에 두고 있는데 복잡한 일을 만들고 싶지 않아서.
설마하니 공연을 며칠 남기고 갑자기 협연 무대라도 만들 리는 없겠지만, 혹시 모르니까.
괜히 다비트 때처럼 갑자기 함께 무대에 서자는 제안이라도 받았다간 그걸 거절하기도 곤란하고, 수락이라도 했다간 제 밑으로 들어오라는 권유를 거절하기가 더더욱 어려워진다.
다행히(?)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애초에 이건 앵콜 무대랑은 차원이 다른 이야기인 것이다.
대신, 재단 측으로부터 공연과 함께 마스터 클래스가 열릴 거라는 연락을 받았다.
설마하니 자신을 보려고 마스터 클래스를 연 건 아닐 테지만… 사실 지금 돌아가는 상황만으로도 이미 말이 안 되는 일.
어안이 벙벙한 서진과 달리, KH 재단만 신이 났다.
어쨌든 서진은 마스터 클래스는 참석할 생각이었다. 남들은 이미 거장이네 뭐네 하지만, 아직 배울 게 많은 게 사실이니까.
이제 괜찮다며 입구에서 어머니를 보낸 서진은 안으로 들어서기 위해 몸을 돌렸다. 그런데 기자 몇이 끝까지 따라붙었다.
“서진 학생! 주크먼 씨가 한서진 학생을 제자로 들이고자 제안을 했다는 게 사실인가요?”
어떻게든 인터뷰를 따려는 발악. 나름대로 핵심 질문이었다.
“핑크스 주크먼 선생이 미국으로 건너오라는 제안을 했다는데, 정말인가요?”
지긋지긋해진 서진이 자신은 잘 모르는 일이니 본인에게 직접 물어보라고 하려는데,
“그래요. 내가 서진 군에게 그렇게 제안했지.”
진짜로 본인이 등판했다.
“….”
서진은 이제 될 대로 되라 싶었다.
주크먼의 마스터 클래스가 열리는 리사이틀 홀 앞이니 그가 나타난다 해도 이상하지 않은 일이지만, 타이밍도 참….
그의 등장에 기자들이 갑자기 카메라를 들이대기 시작했다.
‘이게 무슨….’
어쩌다 보니 서진과 나란히 서게 된 구도가 되었는데, 그 모습에 기자들은 옳다구나 둘의 사진을 함께 찍었다. 플래시가 팡팡 터졌다.
어이가 없다 못해 가출해버린 서진을 향해 주크먼이 입을 열었다.
“드디어 만나보는 군, 미스터 한.”
그렇게 말하는 주크먼의 눈은 마치 레이저를 번쩍 발사하는 것만 같다.
“…반갑습니다. 마에스트로.”
일단 어쩔 수 없이 인사를 했다. 그 모습이 또 그럴듯했는지, 마구 플래시가 터진다.
“자네를 내 직접 보기를 몹시 기대하고 있었네.”
아… 이제 빼박이다. 자극적인 기사를 뽑아내기에 이보다 좋은 장면이 있을까.
주크먼은 허허 웃으며 서진을 직접 안쪽의 홀로 이끌었다.
흐뭇한 모습에 뒤에서 계속해서 찰칵찰칵 사진 소리가 터져 나왔다.
* * *
그렇게, 기대 반 우려 반으로 시작된 마스터 클래스.
서진은 자신보다 앞 차례의 어떤 학생이 긴장 가득한 얼굴로 연주를 하는 것을 진지한 눈으로 지켜보고 있었다.
리듬에 따라 자연스레 흔들리는 몸.
회귀 전의 기억 탓인지, 서진은 지레 걱정하며 방어적인 마음이 들었다.
쓸데없이 몸을 흔들지 말라며, 누군가의 모습을 흉내 내어 비하하며 허공에 발길질한다든가 그러는 건 아니겠지….
만약 그가 이건 쇼가 아니라며, 우리는 예술을 노래해야 하는 거라며 면박을 주기라도 한다면…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제 차례에 이르러 사라 정을 똑 닮은 활쓰기와 몸의 움직임을 보여주고는, 일부러 쇼를 위해 한 행동이 아니라 곡을 표현하다 보니 몸이 움직이는 것뿐이었다고. 이것도 잘못된 것이냐 되묻는 것도 치졸한 것 같고….
그런 우습지도 않은 고민이 다 들었다.
그런데, 걱정했던 것이 우습게도 막상 수업은 너무나 멀쩡히 진행되었다.
‘아니 그럼 회귀 전의 그때에는 왜 그랬던 거야…?’
지금으로서는 아직 미래의 시점인 몇 년 후의 일.
그때 주크먼은 동양인에 대한 차별적 발언으로 한국에서 크게 논란이 된 적이 있었다. 그래서 서진으로서는 주크먼의 존재가 그리 편치 않았던 것이다.
사실 서진은 그가 어떤 사람인지 직접 겪어볼 생각에 마클에 참석한 것이었다. 더불어, 연주자로서 배울 점이 있다면 수업을 통해 조언도 얻을 겸 해서.
한데 편견을 가졌던 자신이 오히려 이상한 사람이 된 기분이었다.
무슨 심경의 변화가 있던 건지, 아니면 소문이 잘못된 건지 모르겠지만, 주크먼에게서는 그런 느낌이 전혀 없었다. 동양인을 비하한다거나, 장경화이나 사라 정에게 자격지심이 있다거나 등.
주크먼에게 영향을 끼친 가장 큰 원인이 바로 본인의 존재라는 것을, 서진으로서는 까맣게 모를 일이었다.
“···내가 여러분에게 하고 싶은 말은, 기교보다는 지금 시기에만 발달시킬 수 있는 감성, 소양, 예술성을 기르는 데 중점을 두기를 추천한다는 거예요.”
맞는 말이었다.
“단, 기교에 치중하지 않는다고 해서 기초마저 소홀히 하면 안 되겠지요.”
기초가 소홀하면 나중에 기교를 갈고닦을 수 없다. 마음 가는 대로 예술성을 발휘하려면 토대가 견고해야 하는 것이다.
‘지연이한테 들려주고 싶네. 이건 걔가 들었어야 하는 얘긴데.’
처음엔 전공할 생각이 아니었어서 대충 넘어갔던 것인지, 지연은 은근히 기초에서 흔들리는 구석이 있었다.
아쉽게도 지연은 이 자리에 함께 있지 않았다. KH 영재도, 이번 무대에 섰던 연주자도 아닌지라 마클에 참석하지 못한 것이다.
‘마음 바꿔서 전공한다고 했으니….’
도와줘서 나쁠 것 없겠지.
다음은 윤수의 차례였다.
주크먼이 바이올린뿐 아니라 비올라 연주자이기도 했기에, 비올라 역시 참여 가능했던 것.
“오… 훌륭한 연주였어요. 한데… 비올라와 바이올린은 비슷하면서도 다르지요.”
그 미세한 차이를 놓치면 안 된다며 주크먼은 강조했다.
“바이올린보다 단순히 기교가 쉽다고 해서, 바이올린의 쉬운 곡을 하듯 하면 안 된다는 거지요. 비올라에는 비올라에 맞는 테크닉이 있는 법. 활 쓰는 법이나, 운지를 하는 방법도 비올라의 특색에 맞게 달라져야 해요. 그 미묘한 차이가 소리의 질을 가르니까요.”
그렇게 한 명씩 차례차례 가르침을 받기를 한참.
이어, 드디어 서진의 차례가 되었다.
천재 바이올리니스트로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