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 returned as a genius violinist RAW novel - Chapter 43
43화
…그동안은 그냥 남들이 좀 우쭈쭈해 주는 어린애에 불과했구나. 특별한 능력으로 재미를 본 덕에 보다 쉽게 간 것일 뿐, 진정한 소리는 그게 아니었던 것이다.
더욱 깊어진 서진의 소리가 그들이 서 있는 공간을 완벽히 장악했다.
음악을 왜 하나의 세계라고 하는지 조금 알 것만 같았다.
지금 이 순간, 정말로 새로운 세상이 창조되고 있는 느낌이니까.
단 둘뿐인 청중은, 그렇게 서진이 만드는 세상으로 끝없이 빨려 들어갔다.
길고도 짧은 연주가 순식간에 끝났다.
“…고맙구나. 정말 고마워. 덕분에 귀가 호강했어, 허허허…!”
여전히 감동에서 헤어나오지 못한 표정의 임 회장은 천천히 박수를 쳤다.
정말이지 궁금하다.
뭐가 다른 걸까. 왜 이렇게, 대체 무엇이 그리 다르길래 이 아이의 소리는 이토록 특별한 걸까.
하지만 그건 본인에게 묻는다고 나오는 답이 아니었다. 임 회장은 궁금증은 접어둔 채, 서진이 비서에게 돌려준 바이올린을 다시 받아들어 건넸다.
“네게 선물하고 싶구나.”
“네?”
“훌륭한 연주에 대한 보답이다.”
“…아, 하지만 연주는….”
지난번 일에 대해 보답으로 한 것인데, 되레 선물이라니…?
“어서. 받거라. 나쁘지 않은 악기다.”
“아니, 그런 의미가 아니라….”
“지금 쓰기에 딱 적당할 거야. 내 지연이에게 줄 겸 하나 더 맞추었다.”
작게 미소지으며 고개를 끄덕이는 지연의 옆에서 임 회장 역시 허허 웃었다.
사실 연주에 대한 보답은 핑계고, 원래 바이올린을 하나 주려 했었다. 지연에게 전해 듣기를 지금 쓰고 있는 건 한예종에서 대여한 악기라는 말에, 실력에 걸맞은 악기를 맞춰주고 싶다는 생각을 한 것이다.
서진이 재단에서 악기를 후원해준다는 걸 사양했다는 이야기는 그 역시 들어 알고 있었다.
그래서 아예 선물하기로 했다. 이미 대여 악기가 있는 마당에, 굳이 또 대여해줄 필요는 없을 테니까.
하지만 모차르트 바이올린을 선물해 줄 수는 없었다. 그건 모차르테움에서 잠시 빌려온 것일 뿐, 아무리 임 회장이라 해도 소유권 자체를 가져와 줄 수는 없는 일이었다.
“…정말 감사합니다, 회장님.”
아무리 쓰고 있는 악기가 있다 해도, 그래도 자기가 오롯이 소유할 수 있는 악기는 느낌이 다른 법. 서진은 차마 거절하지 못했다.
사실 음색이 너무 좋아 첫 음을 긋자마자 서진도 은근히 감탄하던 차였다. 분명 크레모나에서 이름난 장인에게 의뢰해 제작했을 게 틀림없는.
풀사이즈도 아닌 어린 시절용 바이올린에 이런 공을 들이다니… 역시 재벌 클라쓰.
서진이 다시 한번 깊이 고개를 숙였다.
“그래. 연주해 본 소감은 어떠하더냐.”
“예?”
“모차르트 바이올린 말이다. 네 데뷔 무대의 소감이 궁금하구나.”
새 바이올린에 대한 소감을 묻는 줄 알고 잠시 갸웃했던 서진이 바로 답했다.
싱긋 웃으며.
“즐거웠어요.”
천재들은 과연 어떤 마음으로 무대에 임할지 임 회장은 늘 궁금했다.
“누군가에게 제 음악을 들려준다는 건 언제나 기쁜 일이니까요.”
그리고 오늘 그 궁금증이 해소되었다.
진짜 천재라면 보일 만한 답변이랄까. 그 엄청난 연주를 한 소감이 더도 덜도 아닌 ‘즐거웠다’라니. 역시 이 아이는 영혼부터가 달랐다.
이 아이는 진짜구나….
그 누구도 즐기고 좋아하는 자를 이길 자 없다 하지 않는가. 정말로 미래가 기대되는 소년이었다.
“그리고 오늘도요.”
서진이 임 회장을 똑바로 바라보며 미소지었다.
색다른 자리에서, 색다른 경험을 했다.
이것도 무대라면 무대지만, 정식 공연과는 또 다른 느낌이니까.
후원자에게 발전 정도를 보이기 위한 자리라기엔 애매한 상황. 그보다는 개인적으로 고마운 존재인 친구의 할아버지를 위해 짧은 연주를 들려드린 것에 가까웠다.
그래서인지 순수하게 즐거운 마음으로 연주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재벌 회장 앞에서 재능을 선보이기 위한 것과는 거리가 멀었으니까.
서진의 대답에 회장 역시 빙그레 웃었다.
“즐거웠다니 나 또한 기쁘구나. 한데, 내가 궁금한 게 몇 개 있어 그런데 말이다. 예전에 자선 콘서트에서 곡 말이다. 내가 아는 것과 조금 다르던데… 그 곡의 이중주는 처음 들어보는데, 편곡은 누가 해준 것이냐?”
“제가 했어요.”
“네가… 직접 말이냐?”
“네. 지연이가 꼭 하고 싶어 해서요.”
“….”
임 회장은 지금까지와는 또 다른 의미로 놀랐다. 작곡 및 편곡 실력은 악기 하나 잘하는 것과는 별개의 일이니까.
사실 그동안 다들 서진의 편곡 실력에 대해 별생각 없었던 게 이상한 일이었다. 서진의 실력을 본 주변의 사람들이 전부 비슷한 또래들이라, 그게 그렇게 대단한 것인 줄 잘 몰랐던 것.
하지만 아는 사람은 달랐다.
“혹시 작곡도 따로 배운 적 있는 게냐?”
서진이 고개를 저었다.
물론 영재원에서 바이올린 레슨만 하는 건 아니었다. 기본적인 음악 이론, 시창 청음. 화성학. 음악사. 기초 작곡 등등 전반적인 음악 과목이 다 커리큘럼에 들어있으니까.
하지만 아직은 기초 과정에 있는지라 본격적으로 작곡을 배우지는 않았다.
그리고 그건 회귀 전에도 마찬가지였다. 작곡의 기초를 가볍게 배운 게 전부로, 심화 과정까지는 들어간 적 없었다. 언젠가 제대로 해보고 싶다고 욕심은 있었으나, 건강 악화로 무너지면서 모든 걸 놓아버렸던 것.
“그냥 학교에서 조금요.”
“호… 그런데 이 정도라니….”
제대로 배운 적 없는 초보자의, 그것도 어린아이의 실력치고는 놀라웠다.
“대단해, 정말 대단하구나. 허허… 이 늙은이를 여러모로 놀라게 하는구나. 아무튼, 앞으로 더 필요한 게 있다면 뭐든지 말하려무나. 내가 지원해 줄 수 있는 것이라면 뭐든지 해주고 싶구나. 뭐 필요한 거 없느냐?”
“말씀은 감사합니다만, 아직은 없어요. 악기도 주셨는걸요.”
“하하. 그래. 꼭 지금이 아니라도 되니 언제든지 말해주거라.”
“예. 감사합니다.”
“한데 말이다, 혹 앞으로도 이렇게 종종 와서 연주해 줄 수 있겠느냐? 내 지연이도 볼 겸, 네 연주를 자주 듣고 싶구나. 사례라면 섭섭지 않게 하마.”
그 말에 지연이 서진을 돌아보았다. 예상치 못한 말인 듯 살짝 난감한 표정.
“…죄송합니다. 그건 어렵겠어요.”
서진은 거절의 의사를 내비쳤다. 임 회장에게 받은 것과는 별개로, 곤란한 요구는 거절하는 게 맞았다.
“제가 아직은 대가를 받고 연주할 만큼의 수준이 아니라서요.”
덧붙인 한 마디.
서진은 재벌 그룹 총수의 앞에서도 거리낌 없이 할 말을 했다. 한데 신기하게도 그 모습이 조금도 시건방져 보이거나 하지 않았다.
아마도 그건 서진의 대답이 솔직한 속내 그대로이기 때문일 터. 자존심 때문이라거나, 비싸게 굴기 위해 일부러 튕기는 게 아니라, 정말로 그렇게 생각해 거절했을 뿐이니까.
“···그래. 아쉽지만 어쩔 수 없구나. 허허, 지연이만 매일 귀가 호강하겠구나. 하하….”
이렇게 말하는데 더는 압박을 줄 수 없는 일.
“그럼 어쩔 수 없이 다음 무대를 기약해야겠구나. 머잖아 ‘모차르트의 밤’ 행사가 있을 테니 그때를 기대하마. 김 비서에게 이야기는 전해 들었지?”
“네. 물론이지요.”
‘모차르트의 밤’ 행사.
모차르테움과 이성 재단 측에서 맺은 정식 교류 행사로, 이성 재단 소유의 박물관에 모차르트의 악기를 전시하는 것과 함께, 모차르트를 테마로 하는 음악회를 여는 것이 그 골자였다.
그리고 그 주인공은 바로 서진이 될 예정이었다.
물론, 강제 사항은 아니었다.
일전의 공연에 쓰라고 바이올린을 빌려준 것은 서진의 재능을 높이 산 임 회장이 특별히 모차르테움에 양해를 구해 빌려준 것이지, 당초 재단 교류 차원에서 논했던 공식 행사는 아니었으니까.
그렇기에 그와 별개로, 서진이 원치 않으면 행사의 주인공으로 서지 않아도 상관없었다.
하지만 바이올린을 전공하는 이라면 그 누구도 그걸 마다할 리 없는 일. 서진은 김 비서를 통해 의사를 물어오는 말에 냉큼 수락했다.
다시 한번 꼭, 그 신비로웠던 음색을 느껴보고 싶었다. 정작 그날의 공연에서는, 갑자기 바이올린을 받아든 덕에 경황이 없어 제대로 음색을 느껴볼 정신이 없었다. 박물관에 오래 보관되어 있던 악기인지라 아직 소리가 덜 트여있기도 했고.
이렇게 간간이 타 재단과 교류 행사를 통해 다른 나라에 건너가기도 한다지만, 그래봤자 일 년에 몇 번 정도. 대부분 박물관에 잠들어 있는 악기이기에 당연한 일이었다.
“네가 주인공으로 서 준다면 모차르테움 측에서도 만족하겠지. 네게도 좋은 경험이 될 테고.”
“저야 감사할 따름이지요.”
“한데 정확한 일정은 아직 미정이라, 김비서가 나중에 연락을 할 게다.”
“네. 알겠습니다.”
일단 급한 대로 바이올린부터 공수해 온 것이기에, 아직 정확한 날짜가 나오지 않았다고 한다.
대충 전해 듣기로는 공연에 앞서 먼저 전시가 있을 예정으로, 모차르테움에서 전시했던 것처럼 이성 박물관에서 전시회를 연다고. 음악과 해설이 있는 전시회라는 컨셉으로, 모차르트의 초판 악보들과 함께 기획전을 열 거라는 게 대강의 골자였다.
“여러 가지로 정말 다시 한번 감사드려요.”
그런 만큼 서진은 임회장에게 새삼스레 고마웠다.
교류 행사에 앞서 바이올린을 개인적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모차르테움 측에 허락을 구하는 게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을 텐데. 분명 그만큼의 반대급부가 필요했을 터.
“원, 인사는 그만 되었대도. 정 그렇거든 더욱 갈고닦아 세계 무대에 네 이름을 우뚝 빛내거라. 그게 보답하는 거다.”
“네. 회장님.”
조만간 있을 ‘모차르트의 밤’ 행사가 바로 그걸 위한 발판이 되어줄 터. 데뷔 무대였던 영재 콘서트보다 훨씬 대중의 관심도가 높은 행사가 될 테니까.
‘어째 점점 스케일이 기하급수적으로 커져 가네….’
국제음악제가 아직 배우는 학생 입장로서 참가했던 행사라면, 영재 콘서트는 공식적인 데뷔 무대. 그리고 모차르트의 밤은 완전히 메인으로 서는 무대다. 여태까지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엄청난 주목을 받을 수밖에. 점점 커져 가는 스케일에 서진은 어질어질할 지경이었다.
‘정말로 내가 저 행사의 주인공이 될 수 있을 줄이야….’
자선음악회의 연주곡으로 모차르트의 곡을 고를 때부터 은근히 바랐던 일이긴 하지만, 막상 이렇게 되니 어안이 벙벙하달까. 이 모든 게 회귀 후 불과 1년 만에 일어나는 일들이라니….
하지만 한편으로는 기대되고 들뜨는 마음을 감출 수가 없었다.
어찌 좋지 않겠는가. 서진은 정말로 순수하게 행복한 마음으로 가득 차올랐다.
그 더할 나위 없이 즐거운 표정을 바라보며 임회장은 흐뭇이 웃었다.
문득, 서진을 바라보고 있는 지금 이 순간, 어떠한 예감 같은 것마저 들었다.
바로 눈앞의 이 소년으로 인해, 이 어린 천재로 인해 머잖아 클래식계에 완전히 새로운 시대가 열릴 것이라는 그런 예감이.
천재 바이올리니스트로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