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 returned as a genius violinist RAW novel - Chapter 54
54화
“크하핫…! 소년! 푸흐핫…! 너 진짜 눈치가 없구나?”
“…네? 갑자기 그게 무슨….”
“아무튼 즐거웠어. 조만간 또 보겠지만… 다시 만날 그날까지 둘 다 잘 지내기를!”
그 말을 마친 다비트는 마지막으로 지연 쪽을 흘긋 보더니 손을 흔들며 유유히 멀어졌다. 어쩐지 괴상한 얼굴이 된 지연을 귀엽다는 듯 바라보며.
“하하, 꼬마 숙녀, 실례했다면 미안해! 힘내라고!”
서진은 어색하게 손을 흔들었고, 다비트는 끝까지 유쾌하게 떠났다.
* * *
다비트와 헤어진 셋은 천천히 베니스를 거쳐 빈으로 넘어가기로 했다. 아직 시간이 있었기에 곧바로 넘어가는 대신, 관광 겸해서 중간에 몇 군데를 거치기로 한 것이다.
귀국 후 가지기로 했던 모차르테움 행사 때문에 혹시 몰라 이성 측에 일정을 문의했는데, 아직 논의 중이라 여유가 있다고 해서 마음 편히 체류 기간을 늘리기로 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이성 재단의 성골 중 성골이라 할 수 있는 지연이 함께 있는데, 의사소통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일정이 문제 되는 일은 없을 터.
여행은 정말로 즐거웠다. 기차를 타고 이탈리아의 마을 여기저기를 지나는 시간은 마치 동화 속 세계를 유람하는 기분이었다.
그렇게, 드디어 빈에 도착한 세 명. 마음 같아서는 더 많은 곳을 들러 둘러보고 싶었지만, 공연을 앞두고 일정을 조정해야 하기에 아쉬움을 삼킨 채였다.
“여기가 바로….”
TV에서만 본 그곳.
빈 무지크페라인.
새삼스러운 감회로 웅장한 건물을 바라보는데 입구에서 사람이 나왔다. 마치 엊그제 봤던 것 같은 기분이 드는 다비트와, 모르는 얼굴의 누군가였다.
“오우! 드디어 보는군. 어린 연주자!”
직접 본 적은 없지만 인터넷으로 미리 찾아보아 아는 얼굴. 지휘자인 프란츠였다.
“처음 뵙겠습니다. 한서진입니다.”
서진의 인사에 프란츠가 손을 내밀었다.
“하하. 내가 정말로 만나보고 싶었다고…! 반가워, 정말로 반가워. 어린 파가니니 영상도 잘 보았네! 아차, 나는 프란츠일세.”
프란츠는 생각보다 활달한 남자였다. 나이 지긋하고 점잖은 유럽 신사를 생각했던 서진은 조금 의외였다. 빈필이라면 보수적인 분위기로 유명한 곳이니까.
“그런데 혼자 온 거야?”
“아, 어머니는 요 앞 카페에서 기다리고 계시겠대요. 방해가 될까 봐….”
다비트와 주고받는 말에 프란츠가 답했다.
“이런, 괜찮은데… 다음엔 함께 모시고 오렴.”
“네, 감사합니다.”
“자, 들어가자.”
프란츠는 다비트를 제치고 손수 공연장을 안내해 주겠다며 앞장섰다.
무지크페라인은 그동안 관광하며 보아온 궁정만큼이나 화려하고 아름다웠다. 애초에 옛날에는 음악이라는 게 전부 왕족과 귀족들의 전유물이었으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
내부를 한 바퀴 돌아본 후 프란츠는 안을 보겠냐며 문을 살짝 열어주었다.
“홀 안에도 들어가 봐도 괜찮나요?”
“상관없어. 이제 막 음반 녹음을 끝낸 참이거든.”
“그렇군요.”
빈필의 명성에 걸맞게 음반 녹음 일정이 거의 매일같이 있다더니, 역시나.
살짝 문을 열고 안을 보니, 연습을 하고 있는 건지 음악 소리가 흘러나왔다.
당장 공연 중인 상황이라 해도 믿을 만큼의 수준.
“무슨 곡인가요?”
아무리 서진이라도 모든 음악을 다 아는 건 아니었다. 특히 오페라 쪽은 잘 몰랐다. 유명한 아리아라면 모를까, 중간중간의 지나가듯 나오는 반주까지 전부 알 수는 없는 일.
“이게 제목이…, 이따 저녁에 오페라 공연이 있어서 말이지.”
“아….”
복잡한 아리아 제목을 흘려들으며 서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오늘은 한가한 편이야. 오후에 아무것도 없으니까.”
보통은 오전, 오후, 저녁. 꽉꽉 채워 일정이 있다고. 한다. 오전에는 음반 녹음, 오후에는 콘서트. 저녁에는 거의 매일 같이 오페라 공연.
“그럼 리허설 일정은 어떻게 되나요?”
당연히 오늘 저녁에 있을 거라는 오페라 리허설을 묻는 게 아니었다. 서진과 다비트가 서기로 한 무대의 리허설.
“음… 일정 봐서 조율해 보든가, 안 되면 어쩔 수 없고.”
“네?”
“하하. 서진, 걱정 말라고. 알아서 잘 될 테니까.”
옆에서 다비트가 안심해도 된다며 호언장담했다. 여기 원래 이렇다고.
몰랐는데, 다비트의 말을 들어보니 원래 빈필은 오페라 공연에도 리허설을 잘 안 하기로 유명하다고.
그 이유는 워낙 단원들 실력이 탄탄한 것도 있지만, 그럴 시간이 없는 탓이 가장 컸다. 빈필의 단원들은 기본적으로 연주회 공연과 오페라 악단 일을 병행하기에.
아니 정확히는 오페라 극단의 오케스트라 역할이 메인이다. 애초에 빈필의 유래가 거기에서 출발했기에.
옛날에는 지금과 같은 개념의 연주회를 위한 상설 관현악단이 없었다. 악단이라면 으레 오페라를 위해 존재하거나, 혹은 왕족, 귀족들의 전유물로서 개인 고용한 악단이 전부였다.
그렇기에 작곡가가 신곡을 발표하려 해도 필요할 때마다 그때그때 구성해 콘서트를 여는 게 보통. 대중들에게 지금과 같은 상설 공연이 열려있을 리 없었다.
‘…세상 좋아졌지. 단돈 몇만 원이면 말석이나마 콘서트 티켓을 사서 이런 훌륭한 연주를 들을 수 있다니.’
“우리 악단의 역사는 대충 알려나?”
“네. 알고 있어요.”
빈필 역시 원래는 지금과 같은 형태가 아니었다.
원래는 빈 궁정 오페라극장 소속의 관현악단이던 것을, 따로 콘서트용으로 활용해 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에 출발한 아이디어. 그게 바로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탄생한 계기였다.
‘그게 1830~40년경의 일이었다니 벌써 그 역사가 200년이 다 되어가는 일이구나.’
그만큼 엄청나게 보수적이기로 유명하다지. 내로라하는 작곡가들이 거쳐 가기도 했고.
지금 서진이 서 있는 건물 역시 수백 년의 역사를 자랑했다. 빈필은 초반에 몇 개의 공연장을 옮겨 다니다, 얼마 후 새로 빈 무지크페라인 건물이 생기며 완전히 자리 잡았는데, 그곳이 바로 이곳이다.
‘이곳에서 브람스와 브루크너 등 당대 유명한 작곡가들의 작품들이 초연되었지….’
그렇게 점차 명성을 쌓으며, 20세기 들어서는 파리나 잘츠부르크 등 빈 이외의 지역에서도 공연하는 등 인기를 끌다가 세계대전으로 큰 위기를 맞이했는데, 아마도 그때 나치 독일군을 위한 자선 공연 등으로 간신히 살아남았던 거로 안다.
온 세상이 비극이었던 시기.
그렇게 간신히 명맥을 유지하다, 전쟁이 끝나고 세계가 안정되며 다시 전성기를 맞이하고는 지금까지 그 명성을 이어온 것.
‘확실히 절도 있구나.’
특유의 빈 스타일로 통일된 연주법도 그렇고, 음악에서 느껴지는 격식이랄까 무언가 남다르다.
서진은 문가에 서서 귀를 기울이며 한편으로는 편성을 살펴보았다. 언젠가 오케스트라도 제대로 해보고 싶은데, 이 기회에 눈여겨 봐둬야지.
“정통 유럽식의 배치군요.”
가운데 지휘자를 두고 왼쪽에 바이올린 파트. 오른쪽에 비올라 파트를 두는.
“전통 독일식 배치기도 하지.”
다비트가 말을 받았다. 프란츠는 고개를 끄덕이며 몇 가지 설명을 덧붙였다.
“메인 공연장인 무지크페라인 음향설계를 연구한 끝에, 몇 가지 세부적으로 빈필만의 배치가 적용된 부분이 있지.”
배치 덕분인지는 몰라도 소리가 정말 장엄하니 멋있었다.
이렇게 떼로 연주하고 있는데도 비브라토가 섬세하게 느껴져 온다니. 비브라토 방법도 그렇지만 주법이 어지간히 통일되어 있지 않으면 소리가 한데 뭉개져 제대로 들리지도 않을 텐데.
그만큼 까다롭다는 뜻이겠지.
문득, 음악의 본고장과는 거리가 먼 동양에서 온 어린 소년을 배척하거나 하진 않을지, 새삼스러운 걱정이 들었다.
한때 동양인이나 여성 단원은 아예 뽑지 않기로 유명하던 곳이 아닌가. 지금은 그런 규정이 없어지긴 했지만, 여전히 벽이 높다고.
지금은 외국인에게도 문이 열려있다고는 하나, 최소한 빈에서 정통 음악을 배운 게 아니라면 여전히 차별한다고 들었는데…. 빈 음대에서 공부하거나, 빈필 단원에게 도제식으로 배우거나 하는 식으로, 빈필만의 스타일을 익히지 않으면 받아주지 않는다고.
서진이야 단원이 될 게 아니라 협연자로 잠깐 서고 말 거니 상관없었지만,
동양인, 그것도 한때 잘 나가던 일본도 아니고 그때까지만 해도 듣보잡 소국이었던 한국 출신으로서 빈 필의 지휘자 자리를 맡은 적 있던 장명훈이 얼마나 대단한지 새삼 느끼는 바였다.
듣기로는 빈필에 최초로 여성 지휘자가 나온 것이 10년이 채 안 된 일이라는데…, 여성차별뿐 아니라 인종차별도 상당한 상황임을 감안하면 정말이지 엄청난 일이었다.
“이왕 온 김에 바로 한 번 맞춰보는 건 어때?”
“리허설 안 할 수도 있다고 하지 않았어요?”
“그렇긴 한데, 다들 너를 궁금해해서 말이지.”
프란츠가 문을 활짝 열고는 박수를 두 번 짝짝 치자, 모두 연주하던 걸 멈추고 이쪽을 바라보았다.
* * *
YN 음악 저널. 자칭 이모팬 1호인 강민지는 오늘도 열심히 서진을 스토킹 중이었다.
업무와 팬질이 같은 연장선상에 있다니 이렇게 행복할 데가. 위에서는 쓸 기사가 걔밖에 없냐며 구박이었지만, 강민지는 굴하지 않았다. 이러한 노력이 언젠가 분명 누구보다 빠르게 특종을 건져낼 기회로 이어지겠지.
그러던 중, 우연히 눈에 들어온 외국 영상.
“어린 파가니니? …어, 이거… 우리 꼬맹이잖아!”
무슨 일인가 하고 자세히 찾아보던 강민지의 눈이 커졌다.
“세상에! 내가 이럴 줄 알았어! 영화라니! 파가니니 아역이라니!”
벌써 촬영지인 이탈리아 쪽에서는 기사가 상당히 나가 있었다. 안 그래도 인맥을 총동원한 결과, 영화 ‘파가니니’ 촬영에 아역 대역을 구하고 있다는 걸 알아낸 차였는데….
“역시, 역시!”
아직 외국에서만 기사가 난 거라, 한국까지는 알려지지 않은 모양이었다. 강민지는 마구 흥분해 관련 기사를 뒤지기 시작했다. 이탈리아어는 젬병이라 번역기까지 동원해 얻은 결과는,
“어어!?”
더욱 큰 건이 있었다. 바로, 서진이 빈 필하모닉과 파가니니를 주제로 협연 무대를 가진다는 것.
“저번에 다비트와 했던 것처럼 협연을… 빈필이랑!? 꺄악!!! 이게 여태 왜 안 알려졌지? 엠바고 걸린 건가?”
그럴 리가. 이게 뭐라고 엠바고까지 걸리겠는가.
“영화 촬영에 빈필과의 협연까지… 이 정도면 완전 대박인데!?”
타타타타. 타이핑을 하는 강민지 기자의 손이 빨라졌다. 다른 데 빼앗기기 전에 이걸 당장 터트려야 한다!
* * *
멀리 빈에서 날아온 소식에 한국 음악계가 떠들썩해졌다.
빈에서 열리는 공연 소식이 대대적으로 보도되면서, 제2의 사라 정이니 어쩌고 하면서 서진에 관한 기사가 쏟아져 나왔다.
천재 바이올리니스트로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