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 returned as a genius violinist RAW novel - Chapter 59
59화
서진은 사뿐사뿐 걸음을 옮기며 분주히 손을 놀렸다.
걸음걸음마다 마주치는 시선에 경악이 어린다. 말도 안 되게 아름다운 소리에,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놀라는 반응이 이어졌다.
뒷열에서 무슨 일이 생긴 지 뒤늦게 알아챈 앞쪽의 관객들도 죄다 고개를 뒤를 향해 있는 대로 꺾고는 서진이 걸어오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다행히 자리를 이탈하는 사람은 없었으나, 이미 흥분의 도가니였다.
“어머, 어머! 저기 봐!”
“웬 꼬마가 걸어오면서 연주하고 있어!”
벌써 중1의 나이. 나름대로 한국에서는 ‘청소년’에 속하는 나이지만, 동양인 특유의 작은 체구 탓에 이곳에서 서진은 언제나 ‘꼬마’에 불과했다.
“파가니니 예고편 장면이랑 똑같네!?”
“그건 어른이었는데, 얘는 어린 소년이네? 아, 얘가 그 아역인가?”
그러던 중, 서진은 관객 중 하나가 되어있는 지연과 눈이 마주쳤다.
오늘의 쇼를 미리 알고 있던 지연과 선희는 서진의 배려에 미리 서진을 구경(?)하기 가장 좋은 자리에 앉아있었다.
빙그레.
서진의 천진한 미소에 미친 듯이 좋아하는 관객들.
몇몇은 손을 뻗어 서진을 만져보려 하는 통에 곤혹스러울 정도였다.
서진은 하마터면 집중을 잃고 삑사리를 낼 뻔했다.
‘아니 만지긴 왜 만져대…! 날 만진다고 소리가 나는 것도 아닌데.’
서진의 난입(?)에 맞추어 오케스트라도 열일하고 있지만, 아무도 무대 위쪽은 신경도 쓰지 않았다.
무대 앞까지 다다른 서진이 위로 걸어 올라가기 전까진.
다행히 무대 끝, 양 측면에는 임시로 계단을 설치해 두어 지난번처럼 올라가지 못해 낑낑댈 일은 없었다.
관객들을 뒤로하고 계단을 올라 무대 중앙에 선 서진은 그대로 연주를 이어나갔다.
서진이 자아내는 영롱한 소리가 사람들의 귓가를 파고들었다.
파가니니가 아닌 서진 본연의 소리.
아까는 예상치 못한 퍼포먼스에 놀란 것이라면, 이제는 연주 자체에 입이 딱 벌어졌다.
웬만한 프로 성인 연주자들도 하기 힘들다는 카프리스 24번을 이렇게 쉽게 해 보이다니….
소리는 또 어떤가. 수백 년 전 그때를 안 살아봐서 모르겠지만, 솔직히 진짜 파가니니도 이만큼 하지는 못했을 것 같다. 한 음 한 음 마음에 인을 새기듯 박혀 드는데, 멍하니 듣고 있노라면 정신이 아득해지는 기분이었다.
피날레.
글자 그대로 신들린 듯한, 미친 연주.
수없이 많은 음표의 향연이 폭풍처럼 휘몰아친다.
격한 연주를 버티지 못하고 끊어져 너덜거리는 활을 치켜든 채, 서진이 동작을 멈추었다.
“….”
“….”
잠깐의 정적 후, 모두가 약속이라도 한 듯 벌떡 일어났다.
심지어 오케스트라 단원도 함께였다.
짝짝짝짝짝짝짝짝짝짝짝짝!!!
관객을 포함한 오케스트라 전원의 기립박수.
빈필 역사에 한 획을 그은 연주였다.
* * *
무대 뒤에서 다비트 역시 박수로 서진을 맞이했다.
“잘했어 소년! 정말 잘했어!”
“고맙습니다, 다 다비트 덕분이에요.”
서진이 고개를 꾸벅 숙였다. 제노바에 이어 빈에서까지. 그가 딱 붙어 가르침을 준 덕에 이만큼 빠르게 성장할 수 있었으니 스승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 일.
“내가 무슨. 본인의 능력일 뿐이지. 그나저나 하하… 나는 어쩌라고. 이 뒤를 이어나가라니… 하하하….”
말과 달리 다비트는 호쾌히 웃으며 서진을 안아주었다. 잘했다고, 너무너무 잘했다고.
서진은 커다란 품을 느끼며 씨익 마주 미소지었다. 하하… 이 양반이. 무슨 이런 말도 안 되는 엄살을.
“정말 수고했고, 회포는 조금 이따 풀자고.”
서진은 다비트의 말에 긴장을 반쯤 내려놓으며 자리에 앉았다.
프로 무대는 이번이 처음이었는데, 반응이 좋아 다행이었다. 음악제의 무대와 영재 콘서트는 일반적인 공연과는 성격이 조금 다르니까.
‘사실 은근히 긴장했는데 말이지.’
과할 정도로 빡세게 연습을 했던 것도 그런 이유.
사실 파가니니의 곡은 회귀 전 그때도 제대로 연주해내지 못했던 곡이었다. 그때 기교를 연습하며 어찌나 파가니니를 욕했는지….
“다시 한번 감사드려요. 전부.”
“별말씀을. 자, 그럼 다음은 내 차롄가?”
둘에게 할당된 공연 순서는 제일 먼저 서진의 카프리스 24번, 그다음이 다비트의 라 캄파넬라. 마지막으로 둘의 듀엣으로 Io ti penso amore를 할 예정이었다.
그의 라 캄파넬라 실황공연을 들을 수 있다니… 서진의 눈이 기대감으로 반짝였다.
라 캄파넬라는 서진이 바이올린 곡 중 가장 좋아하는 곡이었다. 비록 회귀 전에는 제대로 레슨받지 못했지만, 이번에는 꼭 해 봐야지.
종소리를 닮은 라 캄파넬라의 선율이 울려 퍼졌다.
‘역시 다비트….’
파가니니의 곡에서는 따를 자 없다는.
이제 그 위명의 반을 제가 차지하게 되리라는 사실은 전혀 생각지도 못하는 순진한 서진의 감상이었다.
절정의 소리가 울려 퍼졌다.
오직 줄 몇 개로 연주하는 악기로 어떻게 이런 풍성한 소리를 낼 수 있는지. 마치 여럿이 연주하는 듯한, 혼자서 오케스트라를 대신하는 듯한 풍부함이었다.
열 손가락으로 치는 피아노라면 모를까, 바이올린은 구조적 한계상 원래 화음을 내기 힘든 악기인데….
피아노의 선율과 비교해도 결코 뒤떨어지지 않는 다채로움.
그러고 보니 라 캄파넬라는 동명의 피아노곡으로도 유명했다. 서진이 연주한 카프리스 24번과 마찬가지로 파가니니의 곡을 듣고 감명받은 리스트가 편곡한 곡.
리스트가 어떤 부분에 감명을 받은 건지 알 것만 같았다. 서진의 눈이 스르르 감겼다.
다른 사람의 연주를 듣는 것도 상당한 영감을 얻을 수 있는 일. 그게 세계적인 거장의 연주라면 더더욱.
한 소절, 한 소절 씹어 삼킬 듯 곡을 음미하던 서진이 눈을 반짝 떴다.
‘이 주법. 여길 이렇게 가볍게….’
예전에 이걸 연습하며 정말로 많이 욕했었는데.
변태 같은 곡이라고, 파가니니가 지 자랑하려고 만든 게 틀림없다며 끝없이 구시렁거렸지. 활이 마음먹은 대로 잘 퉁겨지지 않아 어찌나 짜증이 나던지….
파가니니의 곡들 대부분이 작곡될 당시에는 본인 외에는 아무도 못 하는 그런 수준의 곡이었는데, 우습게도 시간이 지금 흐른 지금은 전공하는 학생이라면 어느 정도 다 기웃댈 수 있는 곡이 되었다. 그만큼 시간이 흐르며 교수법과 연주법의 발달로 인해 전반적인 실력이 향상되었다는 뜻.
그러는 사이, 절정에 이르렀던 곡은 어느덧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짝짝짝짝짝!
서진은 무대 뒤에서 그 누구보다도 가장 열렬히 박수를 쳤다.
역시, 라 캄페넬라는 바이올린이 최고다.
그것도 다비트의 것이.
* * *
이어진 순서는 다시 서진. 정확히는 서진과 다비트.
잔잔한 피치카토 소리와 함께 이제는 어느덧 익숙해질 대로 익숙해진 곡이 시작되었다.
Io ti penso amore
제목의 뜻은 ‘나 오직 그대만을 사랑해.’
사실 곡의 제목이 저렇게 붙은 것은, 이 노래가 원래 파가니니의 바이올린에 맞추어 여주인공이 무대에서 함께 노래를 부른 데에 기인했다. 그 아리아의 제목이 바로 저것이었는데, 아마 여주인공에 대한 파가니니의 마음을 뜻하는 게 아닐까.
하지만 지금 둘의 듀엣에는 곧 개봉될 영화에서 사용된 버전과 달리 가사가 없었다. 현악 2중주로 작곡된 곡이었으니.
그렇기에 관객들은 더욱 궁금해했다. 제목에 딱 어울리는 이런 애절한 선율이라니… 나중에 공개된다는 아리아에 대한 호기심이 더욱 깊어지는 것이다.
다비트가 거듭 주장했던 대로, 이 곡은 이제 온전히 서진의 곡이 되어있었다. 정말로 서진이 오롯이 작곡했다 해도 믿을 정도로.
그가 아니면 그 누구도 이렇게 연주할 수 없을 테니까. 결코 마음을 마구 휘저어대는 듯한 이런 소리를 낼 수 없을 테니까.
더욱 완숙한 경지에 이른 서진의 바이올린이 애끓는 소리를 토해냈다.
음악으로 통한다는 게 이런 것일까. 서진은 다비트와 시선을 교차하며 한 음, 한 음 주고받을 때마다 그런 기분을 느꼈다.
영혼이 공명하는 듯한 느낌.
다비트뿐만이 아니었다. 관객들과도 역시 마찬가지.
저 많은 사람이 오직 자신에게 몰입하고, 자신 역시 오직 음악에만 몰두해 안과 밖의 경계 없이 온통 하나가 된 순간.
‘뭐지…?’
순간,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일종의 전능감이랄까…, 소리를 자신의 의지로 완벽히 지배할 수 있을 것만 같은 느낌.
이 공간을, 자신이 자아낸 소리가 닿는 공간 내의 범위를 자신의 소리로, 자신의 의지로 마음대로 물들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한 생각이 드는 순간, 무언가가 사람들의 마음을 휩쓸고 지나갔다.
카타르시스, 정신적 고양감, 승화… 무엇이라 말해도 딱 이렇다 맞아떨어지지 않는 무언가. 단순히 ‘감동의 도가니였다’ 정도의 표현으로는 턱도 없는 무언가가 있었다.
예술적 경험을 통해 맞이하게 되는 절정감의 극치.
두 번 다시 잊지 못할 만큼 마음에 무언가가 깊이 새겨지는 순간이었다. 서진의 연주에 깊이 빠져있던 관객들은 모두 그것을 느꼈다.
짧지만 그만큼 강렬하고 아름다운 곡이 끝났다.
빈의 노을은 어느덧 그들의 음악으로 완전히 물들어 있었다.
* * *
그건 뭐였지….
‘내가 알고 있던 심상 능력이라는 게 빙산의 일각이었던 건가…?’
어쩌면 자신도 모르는 진짜 힘이 따로 있을지도.
예전에는 파가니니에 관한 일화를 약간 과장해서 쓴 기록이라 생각했다. 여자들이 파가니니의 곡을 듣기만 해도 기절한다니, 말이 되냐고.
아마도 코르셋이 너무 불편해서 그런 거라고, 꽉 조이는 옷을 입은 채 흥분한 나머지 그런 일이 발생한 걸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아니었을지도.
정말로 자신과 비슷한 능력을 가진 누군가가 있었을 수도 있는 일이었다. 그게 파가니니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서진아!”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에 멍하던 정신이 퍼뜩 들었다.
“서진아, 우리 아들…! 정말 잘했어. 엄마 진짜 감동해서 쓰러질 뻔했다니까!?”
이런… 엄마도 그 기절 행렬에 포함되시면 안 되는데.
“우리 아들이 옆을 지나가는데… 쟤가 내 아들이에요! 하고 소리치고 싶어서 어찌나 힘들었는지 말이야…!”
“서진아, 완전, 연예인보다 더 멋졌어!”
옆에서 지연이 한술 더 떴다. 두 여자는 앞다투어 칭찬을 건네며 사람들의 시선을 피해 한가한 곳으로 이동했다.
* * *
1부를 끝으로 서진과 다비트의 차례는 끝났기에, 2부에는 편한 마음으로 감상할 수 있었다.
몹시 홀가분하게도, 따로 앵콜 준비도 하지 않아도 되었다. 빈필이랑 같이 맞춘 게 하나도 없는 데다가, 아마도 빈필이라면 앵콜 레퍼토리도 이미 다 정해져 있을 터라 끼어들 구석이 없었다.
시선을 돌려보니 한쪽 구석에 한국에서 온 취재진이 와 있는 게 보였다. 아마도 한국인 영재 소년과 협연을 한다는 소식에 원정을 보낸 촬영팀일 터.
다행히 한국에서처럼 마구잡이로 인터뷰를 하러 달려들지는 않아 서진은 느긋이 빈필의 연주를 즐겼다.
귓가를 울리는 세련된 오케스트라의 소리를 배경 삼아 서진은 아까의 무대를 다시 한번 떠올려 보았다.
어쩐지 꿈결 같았던 시간.
청중들과 하나 되어, 연주하는 곡과 완벽히 호흡하는 경험이었다.
그래서인지 2부의 연주가 다 끝난 후에도 뭔가 아쉬운 기분이 사라지지 않았다.
이대로는 뭔가 부족한 느낌.
이 잔뜩 고취된 감각을 가진 채, 아무것도 안 하고 숙소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아쉽지, 소년?”
다비트 역시 마찬가지인지 때마침 서진에게 물어왔다.
“네. 빈에서 이렇게 공연하는 게 또 언제가 될지 모르니까 말이에요.”
“그래서 말인데. 내가 좋은 생각이 있는데 말이야.”
“…?”
천재 바이올리니스트로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