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 returned as a genius violinist RAW novel - Chapter 6
6화
“…뭐?”
“브루흐, 저도 할 수 있어요.”
오히려 운이 좋았다. 다른 곡도 아닌 브루흐라니.
“….”
하지만 지현은 농담이라 생각했다.
1악장도 아니고 3악장이다. 난이도가 상당하기로 유명한, 최소한 몇 년은 배워야 가능한 곡이 아니던가. 그것도 전공할 생각으로 죽어라 연습해야 가능한.
“…정말?”
서진의 진지한 얼굴에 지현의 표정이 점점 형용하기 어려운 모양으로 변했다.
아니 이게 과연 현실적으로 정말 가능한 일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서진이 굳이 이런 거로 거짓말을 할 이유는 없었다.
“네.”
“…농담 아니라? 정말?”
끄덕.
물론 마지막으로 연주한 게 벌써 까마득 몇 년 전(?)인데다가, 그때의 몸도 아니니 연습도 꽤 해야겠지만… 그럼에도 자신 있었다.
적어도 머릿속 기억만큼은 뚜렷하니까.
‘누군 입시곡으로 안 해봤나.’
그날, 자신을 보던 박주원의 가소롭다는 표정이 생각났다. 그러거나 말거나 어린애라 그냥 귀엽게 생각하고 말자 했는데, 그렇다고 져줄 수는 없다. 이쪽도 나름대로 중요한 게 걸려있으니까.
‘연습할 시간이 좀 빠듯하긴 하지만….’
할 수 있다. 아니, 반드시 해낼 것이다.
그런 서진의 태도에 최지현은 정말로 가능할 것 같다는 믿음이 들었다.
한편으로는 서진에게 너무 미안했다. 혼자 이렇게 애쓰고 있는데 자신이 너무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 것 같아서.
레슨을 봐주는 것 말고도 좀 더 힘이 되어주고 싶은데….
‘내가 뭐라도 해줄 수 있는 게 없으려나… 아!’
문득 떠오르는 게 있었다.
‘그날의 무대를 반드시 동영상으로 촬영해 남겨야겠어!’
혹시 모르는 일 아닌가. 정말로 서진이 기적적으로 완벽한 연주를 해냈음에도, 학교 측에서 모른 척 저쪽의 손을 들어줄지.
그러니 심사가 최대한 공정할 수 있도록, 기록을 남겨 학교 홈페이지든 너튜브든 어디에든 올리는 거다. 만에 하나 억울한 결과가 발생해서는 안 될 일이니까.
* * *
KH 아시아 문화재단.
대한민국을 대표할 영재를 키우며 그들이 뿌리내릴 수 있는 문화·예술적 토양을 가꾼다는 목표로 설립된 기관으로, 약칭 KH 재단이라고도 불렸다.
KH 재단이 중점적으로 육성하는 예술 영재 분야는 크게 음악과 미술 두 분야였는데, 비록 모그룹인 KH 아시아 그룹이 한국 최고는 아니었지만, 적어도 문화예술 분야에 있어서만은 KH 아시아를 넘어설 재단이 없다고 모두가 인정하고 있었다.
그런데…
쾅.
낙하산으로 들어와 명함만 파놓고 나 몰라라 하는 회장 따님을 대신해 온갖 실무를 도맡는 허 과장이 책상을 힘껏 내리쳤다.
한때 한국을 대표하는 영재들을 가장 많이 배출한 KH 재단이었는데, 요즘은 상황이 달라졌다.
“이렇게 영재 발굴이 지지부진해서야…! 이러다 이류로 전락해 버리겠다고!”
“과장님, 이게… 방법이 없습니다. 요즘은 워낙 국가에서 적극적으로 지원하는지라… 아시다시피 한예종 예비학교가 영재교육원으로 바뀐 후로 내로라하는 영재들은 전부 그쪽으로 간 실정이잖습니까.”
“그래도 어떻게든 해봐야지! 이사장님 성화 어쩔 거야!?”
한예종이야 그 성격이 재단 등과는 조금 다르니 그렇다 쳐도, 다른 재단이 치고 올라오는 게 문제였다.
이게 어디 재단 이사장님만 문젠가. 저 위의 회장님까지 심기가 불편하시다지 않은가.
“머잖아 강원도에서 국제음악제가 열린다고. 세계적 거장들도 줄줄이 참석하는 무대인데, 그런 자리에 내보낼 만한 우리 재단 출신 영재가 없다니 이게 무슨 참담한 시추에이션이냐고!”
“그렇다고 과장님, 이게 영재라는 게, 발견한다 한들 하루아침에 키울 수 있는 것도 아니잖아요. 중도에 그만두는 아이들도 꽤 많고…,”
“그러니까 일단 풀을 넓혀야지. 재능을 보이는 아이라면 어떻게든 찾아내서…, 그래, 그 뭐냐. 요즘 그 무슨 너튜브인가 이런 게 있다며. 그거라도 좀 뒤져보든가. 요즘은 학원에서 자기들 홍보하려고 원생들 영상도 많이 올리고 그런다더라고. 왜, 동네 학원에서 좀만 재능있으면 바람 불어넣으면서 학부모들에게 전공하라고 들쑤시고, 그럼 혹해서 막 하루에 열두 시간씩 연습시키고 그러잖아. 요즘은 안 그러나?”
그런 것에까지 눈을 돌릴 만큼 허 과장은 요즘 마음이 급했다. 위에서 얼마나 쪼아대는지, 지들은 아무것도 하는 것 없으면서 아랫사람 닦달만 하면 어디서 영재가 뚝 떨어지는 줄 아는 모양이다.
“너튜브요? 과장님이 그런 것도 아세요?”
2010년대 중반을 향해가는 지금, 나이 든 사람들은 너튜브를 잘 사용하지 않았다. 아직 젊은 축에 속하는 이대리에게는 익숙한 이름이었지만, 과장님은 왠지 석기시대 사람일 줄 알았는데…
“이놈이 나를 무슨 꼰대인 줄 알아!? 아무튼 뭐라도 뒤져봐. 다 고만고만하겠지만, 그래도 그중에 뭐라도 건질 게 있을지 어떻게 알아. 빨리 찾아!”
“예, 예. 알겠습니다요~!”
어쩔 수 없이 대답은 하면서도 이 대리는 크게 기대하지 않았다. 너튜브 같은 데에 쓸만한 인재가 있을 리가.
* * *
드디어, 둘의 경쟁 무대가 열리는 당일이 되었다.
나름의 공정성을 기하기 위함인지, 아니면 저쪽이 더 잘하는 걸 남들에게 확실히 보여주기 위함인지, 둘의 경쟁 무대는 오케스트라 공연에 이어 학부모들에게 공개하기로 했다.
서진이 다니는 초등학교는 사립학교 못지않게 학구열이 센 동네에 위치해 있었다.
한 마디로 비싼 동네.
어떤 면에서는 사립초보다 선호한다는 학군지 초등학교.
집안 형편이 좋지 않은 서진이 이곳 학교에 배정받게 된 이유는, 그의 집이 비싼 아파트 단지 한편에 딸린 임대 세대에 해당하기 때문이었다.
정부 정책에 의해 어울리지 않게 억지로 끼어 있는 국민 임대 아파트.
자칫 어린아이를 주눅 들게 하기 쉬운 환경이었지만, 인생 2회차인 서진은 아무렇지도 않았다.
물론 서진도 회귀 전의 어린 시절에는 주변과 비교되는 형편에 기가 죽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저 인생을 한 번 더 살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된 것에 감사할 따름.
“어머, 주원 엄마~”
“수지 엄마, 안녕하세요.”
아이들의 공연을 보기 위해 학교를 방문한 학부모들이 삼삼오오 모여 인사를 나누었다.
한눈에 딱 보기에도 치맛바람 엄청나 보이는 학부모들.
겉으로 꾸민 모습뿐 아니라, 참석하는 학부모들의 면면이 실제로 대단하긴 했다.
이곳 초등학교 학부모들은 전문직은 기본으로, 대기업 사장이나 임원들, 준재벌급 부유층 등등 상류층 사람들이 많았다. 심지어 그 유명한 이성 재단 이사장도 학부모로 있다 하니 그 쟁쟁함이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관객석에 모여앉은 학부모들은 자신의 아이들이 옹기종기 모여앉아 연주하는 곡을 흐뭇한 얼굴로 감상했다.
사실 그리 대단한 연주는 아니었다. 아무리 사교육이 센 동네라고는 하나, 취미 정도로 악기를 배우는 학생의 수준이야 뻔했다.
하지만 제 자식의 성취가 그저 어여쁜 게 부모의 마음.
그중에서도 특히, 발군의 실력으로 악장을 맡고 있는 박주원 학생의 어머니는 그 누구보다 뿌듯한 마음이었다.
‘…그런데 이 뒤에 이어 바로 선발 테스트를 한다고?’
한 마디로 두 아이가 각각 연주하는 독주 무대.
상대는 갑자기 나타난 5학년 아이라는데, 그것도 소문으로 듣기엔 이제 갓 바이올린을 배우기 시작한.
학교 측의 결정에 어이가 없었다. 선발에 공정함을 기해야 하는 건 맞겠지만, 안 봐도 뻔한 일을 굳이 이렇게 벌이는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이 정도는 담당 선생님 재량으로 충분히 정리할 수 있는 일 아닌가.
‘어디 한번 보자고.’
소문이 어떻게 알음알음 퍼진 건지, 학생들 사이에서도 둘의 경쟁이 화제였다.
“야야, 5학년에 걔 알아?”
“누구? 아, 한서진?”
“어, 갑툭튀 모차르트.”
“뭐야, 그게.”
“갑자기 너무 잘해서 그렇게 부른대. 나 걔 하는 거 한 번 봤는데, 미친. 진짜 소름. 소리 진짜 좋아.”
“그래? 나도 연습하는 거 들어봤는데 그냥 지겹던데. 계속 도레미파솔라시도 같은 것만 하던데. 그리고 바이올린 소리 원래 다 그런 거 아냐?”
“뭐래. 그건 스케일이라 그렇고, 딴 애들 하는 거 봐. 미친, 완전 소음공해. 내가 바이올린 해봐서 아는데 진짜 쩔어. 걔 완전 미친 거.”
“어, 맞아. 실제로 들으면 진짜 우와~ 한대. 직접 본다고 방과 후 구경 가는 애들도 있더라.”
“그래? 나중에 막 유명해지는 거 아냐? 사인받아놔야겠다!”
“에이, 그래 봤자 아직 초보라며. 박주원 못 넘지.”
“야, 그건 넘사고. 어딜 비비냐.”
“아닌데? 얘가 더 잘하는 것 같은데?”
“에이, 설마. 박주원은 예중 준비하잖아.”
그렇게 클래식에 조금도 관심 없는 아이들 사이에서도 서진은 제법 유명세를 끌었다. 오케스트라 공연에 이어 연주를 한다고 하니, 몇몇 아이들은 직접 보러 오기도 했다.
“서진아, 긴장하지 말고.”
“네.”
“긴장되니?”
“아뇨.”
“괜찮아. 심호흡하고.”
지현은 당일까지도 안절부절못하며 걱정이 태산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따로 레슨을 해줄 시간조차 제대로 없었다. ‘어’하다 보니 시간이 흘렀고, 연휴가 낀 주말을 지나고 나니 바로 오늘이었던 것.
“···네.”
어째 선생님이 더 난리다. 정말 아무렇지도 않은데.
서진은 원래 일단 무대에 오르면 다른 아무것도 신경 쓰지 않는 타입이었다.
일부러 그러려 노력하지 않아도 자연스레 자신만의 세계에 빠져들어 다른 생각은 아무것도 들지 않았다. 긴장감은커녕 오히려 그 순간을 즐길 정도로.
그걸 무엇에 비유하면 좋을까… 그래, 마치 게임에 빠져드는 친구들의 이야기와 비슷한 것 같다. 게임에 몰입해 플레이할 때 그 누구도 긴장하지도 주변을 의식하지도 않듯, 오직 음에만 온 신경이 집중되는 것이다.
기교적으로 어려운 부분을 연주할 때에도 남들은 순간적으로 긴장이 된다는데, 서진은 그냥 연습해온 그대로, 무아지경 속에 손이 움직이는 대로 놔둘 뿐이었다.
“서진아, 이제 준비하렴.”
그러는 사이, 앞서 먼저 연주한 박주원의 곡이 끝나고 서진의 차례가 되어있었다. 행사를 진행하는 담당 선생님의 안내에 서진은 무대로 이어지는 문 앞에 섰다.
바깥에서는 아직까지 박수 소리가 크게 들리고 있었다.
서진이 듣기로도 제법 잘했다. 흘긋 내다보니, 객석에 앉은 박주원 학생의 어머니는 눈물까지 글썽이며 기뻐하고 있었다.
그 모습에 지현은 걱정 가득한 얼굴이었다.
당연한 말이지만, 뒤 차례에 연주하는 게 불리하다. 평가하는 사람들로서는 같은 곡을 두 번 듣게 되는 셈이니까.
하지만 서진은 조금도 개의치 않았다.
그만큼 죽어라 노력했으니까.
아직 온전히 몸에 익지 않은 곡을 제 것으로 만들기 위해, 밤낮을 쉬지 않고 연습하고 또 연습했다.
그러면서도 조금의 스트레스도 받지 않았다. 오히려 즐겼다. 반쯤 미친 사람처럼.
그러니 오늘, 그 결과물을 보여줄 때였다.
‘어머니도 와 계시니까.’
더욱 잘해야지.
“다음으로 5학년 한서진 학생의 차례입니다.”
저벅저벅.
조금도 긴장하지 않은 태도의 서진이 무대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그 옆에 최지현도 함께였다.
반주는 최지현이 직접 해주기로 했다. 바이올린뿐 아니라 피아노도 어느 정도 칠 줄 아는 그녀는 고작 단 한 번의 리허설만으로도 서진을 완벽히 보조해 냈다.
객석을 슥 한 번 둘러본 서진은 곧바로 바이올린을 들어 올렸다.
천재 바이올리니스트로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