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 returned as a genius violinist RAW novel - Chapter 60
60화
씨익 웃은 다비드가 답했다.
“소년. 길거리 연주해 본 적 있어?”
“길거리 연주요?”
서진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러고 보니 한 번도 없었다. 한국에선 원래 길거리에서 클래식을 연주하는 일이 거의 없으니까.
하지만 여기 빈은 다르다. 제법 실력 있는 전문 연주자부터, 취미로 하는 아마추어 노인까지. 누구나 길거리에 나와 자신의 음악을 들려준다.
“한번 해 보지 않겠어?”
“우리 셋이요?”
서진이 지연을 돌아보며 말했다. 다비트가 길거리 연주라니… 이 사람이 이런 것도 했나?
보안은 괜찮나? 나야 무명이지만, 워낙 얼굴이 알려진 만큼 조금 우려되었는데… 한쪽에 경호원이 따라다니는 듯한 모습을 보니 안심이었다.
지연 역시 살짝 당황한 눈치였다. 반면, 함께 듣고 있던 선희는 기대감에 눈이 초롱초롱 빛나고 있었다.
“나, 난 좋아…!”
몸을 뺄 줄 알았던 지연이 냉큼 대답했다.
하긴, 이럴 때 아니면 언제 다비트와 같은 거장과 길거리 연주를 해 보겠는가.
그렇게 그 자리에서 갑자기 즉석 연주가 결정되었다.
적당한 곳에 자리를 잡은 셋은 악기를 꺼내 들었다. 마침 광장에는 선객이 없었다.
아마티 바이올린은 공연이 끝나자마자 비서의 손에 들려져 호텔로 안전히 이동되었다. 서진은 아직 이런 비싼 몸값의 악기를 길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꺼내 보일 만큼 강심장이 못 되었다.
하지만 그걸 보냈음에도 여전히 악기가 하나 남아 있었다. 맨 처음 선물 받았던 바이올린. 그사이 완전히 손에 익은 덕에 사실 서진은 아직까지 이쪽을 더 선호했다.
지연과 서진은 지난번에 함께 듀엣곡을 여럿 해본 적 있기에 자연스레 합이 맞았다. 거기에 다비트가 적당히 반주를 즉흥적으로 넣었다.
하나둘 모여들던 사람들은 어느새 광장을 빽빽이 채우고 있었다. 몇몇은 동영상까지 촬영하기 시작했다.
“와, 저기 봐!”
“진짜 잘한다!”
“꼬맹이 둘이랑… 어? 저 사람 혹시?”
“다비트잖아!”
“진짜?”
“잠깐만, 옆에 남자애….”
몇몇이 다비트를 알아본 건지 웅성거렸다. 그중 일부는 오늘의 공연을 보고 나온 사람도 있는지 서진을 알아보는 사람도 있었다.
광장을 물들이는 정열적인 바이올린의 선율에 사람들은 가던 길도 잊고 발걸음을 멈춰 세웠다. 순식간에 야외음악회나 다름없는 무대가 펼쳐졌다.
박수 소리와 휘파람 소리. 날것 그대로의 즐거운 웃음소리.
“어, 어어!? 아까 걔다!”
“어? 그 꼬마 천재?”
그중에는 아까 서진과 입구에서 부딪쳤던 한국인 관광객 두 명도 있었다.
뒤늦게나마 부랴부랴 표를 구해보려 애썼으나, 입석 표조차 구하지 못해 로비에 앉아 영상을 통해 보는 게 고작이었던 둘은, 우연히 발견한 길거리 공연에 계라도 탄 기분이었다.
“대박! 나 완전 쟤랑 인연 있나 봐! 여기까지 와서 두 번이나 마주치다니! 그것도 딱 공연 당일날, 아쉽게도 공연을 못 봤더니 길거리 연주를 듣게 될 줄이야…!”
대학생쯤 되어 보이는 젊은 여성이 신나 외쳤다. 아이러니하게도 더 유명한 다비트는 모르면서, 서진의 존재는 단단히 새기고 있는 듯 시선이 온통 한 명에게만 꽂혀 있었다.
그만큼 언젠가 들었던 그의 연주가 뇌리에 남았기에.
그렇게 저마다의 이유로 모여든 사람들은 순식간에 그들의 음악에 푹 빠져들었다.
지연은 지금 순간이 너무나도 즐거웠다. 그동안 음악을 하면서 이런 느낌을 받았던 적이 있었던가. 그녀에게 있어 클래식이란 늘 경직되고 딱딱한 분위기에서만 해오던 것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와아! 꼬맹이들 최고다!”
“꼬마 신사 숙녀, 잘 어울리는데!”
웃음이 절로 나오며, 바이올린을 배우길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트리오뿐 아니라 셋은 각각 솔로 연주도 선보였다.
서진이 연주하는 차르다시의 느릿한 선율이 봄바람을 타고 너울너울 퍼져나갔다. 몸과 마음이 지치는 저녁 무렵이 아닌가. 서진은 이들의 마음을 깊이 어루만져주고 싶었다.
서정적이고 느릿한 곡조로 시작한 음악은 어느새 격렬한 멜로디를 선보이고 있었다. 어깨춤이 절로 나올 만큼 흥겨운 박자.
차르다시 자체는 헝가리의 민속 무곡에서 유래한 것이었지만, 서진이 연주하는 것은 이탈리아 작곡가인 몬티의 곡이었다. 워낙 유명한 곡인 만큼 모르는 사람이 없다시피 한.
몇몇 사람들은 정말로 쌍쌍이 손을 잡고 흥겹게 춤을 추기 시작했다.
이어 다비트의 치고이너바이젠의 비장한 선율이 흘러나왔다.
집시들의 자유분방함과 정열, 특유의 감성을 담은 언제 들어도 전율이 느껴지는 곡.
집시의 애수가 광장에 깊게 내려앉았다.
그러는 사이 사람은 더 늘어 이제는 주변이 완전히 빼곡히 사람으로 둘러싸였다.
그 모습에 조금 당황하려던 지연은 이내 마음을 다잡고 활을 들어 올렸다. 옆에 든든한 일행들이 괜찮았다.
지연 역시 사라사테를 골랐다.
카르멘 판타지.
오페라 카르멘의 명장면을 재해석해 바이올린의 선율로 자아낸 명곡.
보통 때라면 이렇게 많은 사람들 앞에서, 그것도 반주도 없이 생 솔로로 엄두도 못 냈을 일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어쩐지 자신감이 충만히 넘쳐 올랐다. 서진이처럼 너무나 멋지게, 당당히 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현란하고 드라마틱한 테크닉이 야무진 손끝에서 펼쳐졌다. 스페인의 열정이 바이올린 현을 통해 소리라는 형태를 얻어 사람들의 귓가를 두드렸다.
어느새 검푸르게 물들어가는 하늘. 하나둘 켜지기 시작하는 가로등.
달콤한 향기를 머금은 밤바람이 뺨을 스쳐 지나갔다.
* * *
음악이 끝나고도 사람들은 전부 해산하지 않고 일부 남아 여운을 즐기고 있었다. 그중 몇몇은 너무 행복한 시간이었다며, 너도나도 한 마디씩 인사를 던지고 갔다.
“얘야, 내 평생에 바이올린 연주를 듣고 이런 기분을 느낀 건 처음이었단다. 정말 고맙구나.”
“차르다시를 들으며 눈물이 났어. 어떻게 이런 표현이… 감정이 정말로 벅차올라서….”
“고마워요. 정말. 영원히 잊지 못할 거예요.”
“왜 이렇게 주책맞게 갑자기 눈물이… 하하. 정말 좋은 연주였어요.”
서진이야말로 왠지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자신이 일으켜낸 소리의 파동에 정작 제가 영향을 받은 모양이다.
자신의 음악이 누군가에게 위안이 될 수 있어 기뻤다. 누군가 자신의 음악을 이토록 좋아해 준다는 게, 정말로 눈물 나게 고마운 일이었다.
“정말 즐거웠어요…!”
함께 광장의 분위기를 느끼며 잔잔히 미소짓고 있던 지연이 말했다.
“요즘 우리 꼬마 아가씨가 많이 긴장하고 있는 것 같아서, 해소할 겸 좋을 것 같았어.”
“아….”
길거리 연주는, 지연이 유학 문제로 많이 초조해 있다는 걸 눈치챈 다비트의 친절한 제안이었다. 지연은 그의 마음 씀씀이에 고맙다며 꾸벅 머리를 숙였다.
“덕분에 정말 잘 들었어요. 제 귀가 호강이네요.”
선희 역시 부족한 영어 실력으로나마 다비트에게 감사의 뜻을 전했다. 덕분에 정말로 즐거운 경험을 했다.
“감사는 제가 아닌 아드님에게 하시죠. 오늘의 주인공은 누가 뭐래도 서진이었으니까요.”
바로 그 주인공. 서진은 누가 뭐래도 가장 즐거운 시간을 보낸 사람이었다.
사실 그도 야외무대는 처음이었다. 정확히는 길거리 공연이.
길거리 공연은 음악회와는 또 다른 느낌이었는데, 그 색다른 분위기가 정말로 좋았다.
아직 한껏 달아오른 기분이 가라앉지 않는다. 온몸 가득 흥분이 혈관을 달콤하게 도는 느낌. 코앞에서 사람들과 함께 호흡한 경험이 주는 여운이 무척이나 길다.
이 경험으로 서진은 새삼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자신의 소리를 더욱 많은 사람들에게 들려주고 싶다고.
꼭 정식으로 티켓을 사서 공연장에 들어오는 게 아니더라도, 이렇게 누구에게나 열려있는 음악이고 싶은 것이다.
자신의 소리에 특수한 효과가 있다는 걸 알기에 더더욱 그랬다. 별로 대단한 건 아니지만, 그래도 누군가의 마음을 충만하게 해줄 수 있다는 것으로도 너무나 뿌듯해서.
그런 의미에서 음반 같은 걸 내는 것도 좋을 듯했다. 이왕이면 너튜브보다는 제대로 녹음된 소리가 훨씬 좋을 테니까.
그리고 한 가지 더 욕심을 부리자면, 이왕이면 진짜 자신의 음악을, 그러니까 자신이 작곡한 곡을 들려주는 거면 더욱 좋을 것 같았다.
‘당장은 욕심이겠지만, 언젠가….’
“저기….”
누군가 자신을 부르는 듯한 목소리에 서진이 뒤를 돌아보았다. 한국어가 들려왔으니 필경 자신이나 지연을 부르는 것이겠지.
“네?”
“저… 혹시 사인 가능할까…요?”
서진의 모습이 너무 어려 반말을 하려던 상대는 저도 모르게 말끝에 ‘요’를 붙였다. 어쩐지, 아무리 어린애라고 해도 그냥 편하게만 대할 수는 없을 것 같았다.
“…사인이요?”
태어나 처음 들어보는 요청이었다. 내가 그만큼 유명했었나 싶어 서진은 어리벙벙한 기분이었다.
“응, 네. 저, 한국에서부터 팬이라서… 내가 진짜, 동영상 진짜 수백 번 재생해 봤어, 요!”
“말씀 편하게 하세요.”
서진이 싱긋 웃으며 답했다.
“아, 정말? 그래도 될까?”
“네, 누나.”
배낭여행을 온 듯한 풋풋한 대학생. 회귀 전 연령으로 치면 또래지만, 어쨌든 지금은 까마득하게 나이 차가 나니 누나라고 불러주는 것쯤이야.
누나라는 말에 뭐가 그리 좋은지 여자는 작게 꺄, 외치며 종이를 꺼내 들었다. 아까 하나 챙겨 뒀던 공연 팸플릿이었다.
“오늘 아까 공연도 꼭 보고 싶었는데… 너무 늦게 알아서…! 아, 아쉽다.”
“그러게요. 자, 여기요.”
즉석에서 만들어 낸 사인에 여자는 만족하며 미소를 가득 머금었다. 그 모습에 함께 있던 일행으로 보이는 여자 역시 슬쩍 사인을 받아갔다. 원래 옆에서 받아가면 괜히 자기도 안 받으면 손해일 것 같고 그런 느낌이 드는 법이다.
“고마워. 덕분에 정말 행복한 시간이었어.”
“나도 정말 좋았어. 이번 여행 중에 가장 좋은 기억으로 남을 것 같아. 그냥 바이올린 소리일 뿐인데… 이상하더라. 마음이 뜨겁게 차오르는 기분이랄까.”
“맞아. 그러는 한편으로는 근심걱정이 다 사라진 듯 편안해지는데… 희한한 경험이었다니까? 마법이라도 부린 게 아닌가 진지하게 생각했을 정도로. 마음이 편해지더니 막 갑자기 눈앞에 한국의 가족들 얼굴이랑 우리 집, 내 방, 뭐 그런 게 떠오르는데… 괜히 얼른 귀국하고 싶어졌지 뭐야.”
까르르 웃으며 여자가 친구의 말을 받았다.
“그러게. 나도 비슷한데 진짜 신기했어. 음식이었으면 진짜 마약이라도 넣었나? 했을 텐데, 이건 음악이니까. 하하.”
아하하.
그 비슷한 뭔가가 있긴 합니다만…. 차마 말할 수 없는 비밀이었다.
“그럼 앞으로도 좋은 연주 부탁해! 안녕~!”
다비트가 아닌 서진에게만 사인을 받은 두 여자는 경쾌히 손을 흔들며 떠났다.
한국인은 그 둘밖에 없었기에, 너도나도 서진을 알아보고 사인을 해달라 달려드는 사태는 일어나지 않았다.
“…이런 일도 겪어보는군요.”
“그러게. 우리 아들 인기 좋네?”
“엄마….”
여전히 얼떨떨한 서진의 어깨에 손을 처억 얹으며 다비트가 말했다.
“앞으로 자주 겪게 될 거니, 미리 익숙해져 두는 게 좋아.”
“…하하.”
음?
옆에서 쿡 찌르는 느낌에 돌아보니, 이번에는 지연이 요상한 표정으로 자신을 쳐다보고 있었다.
천재 바이올리니스트로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