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 returned as a genius violinist RAW novel - Chapter 65
65화
그러고 보니 무슨 행사가 있다고 했지. 이왕 여기까지 온 것, 참여할 수 있는 모든 걸 하고 돌아가고 싶었다.
궁금한 얼굴을 한 서진을 향해 요한이 입을 뗐다.
“실은 이게 가장 중요한 부탁일세. 오늘은 한 차례 미리 악기의 소리를 틔워 본 것이고, 본 된 행사는 따로 있으니까. 혹시 서진 군이 시간만 괜찮다면, 꼭 참여해 주었으면 하는 자리가 있는데….”
이어진 설명에 서진은 무척 당황했다. 이건… 생각했던 것보다 스케일이 훨씬 크다.
“잘츠부르크 주지사가 방문해서… 언론에서 취재도 올 거라고요?”
유럽 대부분의 마을들이 그렇듯, 잘츠부르크는 온 도시가 선대의 유산으로, 정확히는 모차르트로 먹고사는 도시였다.
하지만 너무 모차르트만 팔기엔 조금 그러니까, 이것저것 관광 명소와 엮어서 잘츠부르크주를 홍보하는 영상을 만들 거라고. 잘츠부르크의 경치를 즐기며 하이킹을 할 수 있는 산과 자전거 코스로 유명한 호수. 모차르트와 관련된 곳곳의 명소와 전통 음식 등. 잘츠부르크의 매력을 다양하게 뽐낼 컨텐츠를 기획하고 있다고. 거기에 서진 군이 참가해 주었으면 좋겠다는 설명.
“아니, 저는 모차르트와 조금도 관련 없는 외국인인데… 왜 하필 저를요?”
서진의 솔직한 질문에 요한도 솔직히 답해 주었다.
“그러니 더욱 한국에 홍보하기 좋을 테니까 말일세.”
“한국에요? 아….”
관광은 결국 외국인을 끌어들이는 일이다. 그러니 자국민보다는 그 홍보 대상이 되는 나라의 사람을 쓰는 게 좀 더 효과가 있을 거라는 심산.
한데 왜 하필 한국을 상대로? 한국이 오스트리아 관광에 그렇게 높은 비중을 차지하는 국가였는가?
“아, 그건 올해 한국과 오스트리아의 수교 몇 주년이더라… 아무튼 백몇십 년쯤 되는 기념행사가 열릴 예정인지라, 오스트리아 정부 차원에서 한국과의 교류에 매우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는 실정이라 말이지. 조만간 총리가 직접 한국을 방문할 계획도 잡혀 있다 들었네. 수교 이래 최초의 양자 방문이라고. 아, 어쩌면 이와 관련해서 한국 쪽의 행사에 관해서도 서진 군에게 제안이 올지도 모르겠네.”
서진의 의문을 알아챈 듯 요한이 먼저 설명해 주었다.
“….”
서진은 점점 어질어질했다.
그냥 혼자 틀어박혀 소리나 틔워주고 가면 그만인 거라 생각했는데, 양국 간 수교 행사라니… 이거 점점 자신이 낄 만한 스케일이 아니었다. 다행히 저 교류인지 수교인지 행사는 자신과 상관없는 이야기겠지만.
“어떤가? 이왕 온 거, 꼭 한 번 함께해 주었으면 하네만….”
서진은 잠시 고민 끝에 고개를 끄덕였다.
갑자기 전해 들은 소식에 당황스러운 것과 별개로, 이왕 여기까지 온 거 무조건 고였다.
“좋은 기회에 감사드려요. 누를 끼치지 않게 열심히 하겠습니다.”
“누라니, 당치도 않네! 내 조금 전에 직접 소리를 들어본바, 진심으로 확신하네. 하하. 역시 악기도 제게 걸맞은 주인을 알아보는 모양이야!”
“맞습니다. 정말이지 귀가 호강한다는 게 바로 이런 거구나 싶더군요.”
다들 호들갑이 장난이 아니었다.
“하하. 과찬이십니다. 그저… 이곳 홀이 유난히 울림이 좋았던 덕분이죠.”
별로 특별할 것 없는 평범한 전시 공간이긴 했으나, 특유의 신비로운 소리를 내는 데에 이유 모르게 공간이 도와주고 있는 느낌이랄까. 이 공간과 모차르트 바이올린의 소리가 찰떡같이 어울리는 기분.
“그하하! 내가 들어본 겸양의 말 중 가장 참신하면서도 말이 안 되는군!”
요한은 희한한 소리로 웃으며 눈물까지 찔끔 흘렸다. 서진은 머쓱하니 그냥 뒤통수만 긁적였다.
“…하하.”
아무튼 민망해 몸 둘 바를 모르겠다. 그래도 관계자들 모두 다 너무나 만족한 듯해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그럼 내친김에 다른 악기들도 연주해봐도 될까요?”
“오, 물론이네, 오히려 이쪽에서 부탁할 일이지!”
서진은 이어 다른 악기들도 꺼내 보았다.
그렇게 한참, 작은 무대라면 무대라 할 수 있는 짧은 연주가 이어졌다.
“…정말 고맙네, 서진 군. 덕분에 악기들이 묵은 때를 벗고 오랜만에 신나게 노래했네. 내 귀에게도 그렇지만, 이 악기들에게도 아주 특별한 경험이 된 매우 소중한 시간이었어.”
귀중한 경험인 것은 서진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렇게 박물관에 보관된 악기를 직접 만지고 연주해 볼 수 있다니… 솔직히 바이올린을 전공하는 이라면 어떻게든 한번 만져보고 싶어 먼저 나서서 안달이 날 일인데, 이토록 후한 대우를 받으며 마음껏 연주해 볼 수 있어 너무 좋았다.
* * *
한국에 도착한 선희는 며칠 푹 쉬며 여독을 푼 후 일상으로 돌아갔다. 당장 일을 시작하는 건 아니었지만, 천천히 면접을 다니며 구할 생각으로 다시 평범한 나날에 적응해 나갔다.
주방에서 믹스 커피 한 잔을 타와 소파에 앉은 선희가 가만히 눈을 감았다.
마치 꿈만 같았던 유럽에서의 시간.
아들과 함께했던 몇 주간의 시간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것이었다. 아마 평생 가장 소중했던 추억으로 간직되겠지.
언젠가 유럽여행을 꼭 한 번 가보길 꿈꾸며 살았는데, 그걸 이렇게 일찍, 다른 이도 아니고 아들과 오붓이 이루게 될 줄이야.
생각하면 할수록 대견하고 기특한 아들이었다. 제대로 해준 것도 없는데 제 배에서 어쩜 그리 대단한 아이가 나왔는지….
커피를 한 모금 머금은 선희가 습관처럼 서진의 기사를 검색했다.
원래도 선희는 이렇게 종종 서진의 이름으로 기사를 찾아보곤 했다. 좋은 이야기가 있으면 가장 먼저 알려주고, 혹시라도 악플 같은 게 달려있으면 열심히 신고하고자.
[모차르트의 오리지널 바이올린 연주자로 선정된 한서진 군. 잘츠부르크를 대표해 연주해…,]그러던 중, 눈에 확 뜨이는 기사가 있었다.
“어머!?”
잘츠부르크에 간 것까지는 알았는데, 이런 엄청난 일이라니…!?
핸드폰으로 주기적인 연락을 하고 있으니 모차르테움에 보관되어 있는 바이올린의 소리를 틔워달라 부탁받은 거야 얼마 전의 연락 덕에 알고 있었다. 그런데 그건 고작 빙산의 일각일 뿐, 이런 엄청난 행사에 참여하게 될 줄이야.
시차 때문에 가장 최근 연락을 주고받은 게 엊그제. 그때까지만 해도 별다른 이야기 없었길래 정말 생각도 못한 일이었다.
부랴부랴 핸드폰을 집어 들어 아들에게 연락을 하려던 선희는, 현지의 시간을 깨닫고는 아차 하고 다시 내려놓았다. 다 좋은데, 유럽과는 시차가 너무 심해서 탈이다.
기사 때문일까, 자랑스러운 아들을 보고 싶은 마음이 문득 더욱 강해졌지만, 선희는 마음을 꾹 내리누르며 구인 정보를 찾기 시작했다. 가만히 들어앉아 아들 타령만 하느니, 이곳에서 뭐라도 도움이 될 수 있는 일을 해야지.
* * *
오스트리아의 아홉 연방 주 중의 하나로 인구 약 50만 명의 잘츠부르크주.
그곳의 주도인 잘츠부르크에서 바로 모차르트가 태어났다.
덕분에 관광지로 유명해져, 때로는 현지 주민들보다 관광객들이 더 많을 때도 있는 그런 곳.
거의 1년 내내 음악회가 열린다 해도 과언이 아닌 음악의 도시로 유명한 잘츠부르크이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건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이다. 유수의 음악가들이 참여하는 다양한 공연을 보기 위해 세계 각지에서 여행자들이 몰려드는.
그렇게 성수기면 늘 떠들썩해지는 도시답게, 오늘 역시 잘츠부르크는 북적였다. 그 이유가 보통 때와는 조금 다르긴 했지만.
빌 하즐라 주지사의 방문에 작은 도시가 들썩였다.
오스트리아 전통의상을 입은 서진은 멋쩍은 얼굴로 주지사와 함께 사진을 찍었다.
김치~를 속으로 외치며 지어 보이는 미소.
어디선가 나타난 카메라들이 펑펑 플래쉬를 터트려댔다. 들었던 대로 언론에서 취재도 온 것이다.
그런데 그게 무려 오스트리아 공영방송이었다. ORF라고, ‘Österreichischer Rundfunk’의 약자를 딴 이름의.
서진은 이쯤 되니 그 무엇에도 더는 놀라지 않을 기분이었다.
‘그래도 조금 부담스럽긴 한데….’
서진이 받은 요청은 행사의 오프닝에 바이올린 연주를 해달라는 것. 곡은 특정해주지 않고 연주자가 원하는 대로 고르라고 했다.
그에 서진은 고민하다가, 모차르트의 음악 대신 잘츠부르크의 전통 음악을 고르기로 했다.
“서진 군. 혹시 선곡을 물어봐도 될까요?”
“물론이죠.”
서진은 순순히 답해 주었다. 잘츠부르크를 대표하는 유명한 캐롤을 골랐노라고.
“오. 좋은 선택이에요. 잘츠부르크는 ‘고요한 밤, 거룩한 밤’이 탄생한 도시니까요.”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이 캐럴은 오스트리아에서 탄생한 음악으로, 2011년 세계 유네스코에 오스트리아의 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된 곡이었다.
아쉽게도 크리스마스 시즌은 이미 지났지만, 잘츠부르크를 대표하는 음악으로서 이만하면 손색이 없을 터.
‘정확히는 잘츠부르크 인근의 오베른도르프라는 곳이 탄생지지만, 지역적 인지도를 고려해 잘츠부르크를 탄생지로 친다고 하니 딱 적당하겠지.’
아무리 행사라도 오스트리아 국가를 연주하는 건 좀 오버스러우니까.
“한데 관광객들은 대부분 모차르트나 사운드 오브 뮤직이라는 영화를 입에 담던데… 서진 군은 바이올리니스트이니 모차르트를 고를 줄 알았는데, 의외군요.”
“아. 저도 그걸 고민하지 않았던 건 아닌데…, 전통 음악이 더 홍보하기 좋잖아요. 대중적으로 익숙하기도 하고요.”
아무래도 모차르테움과도 관게된 행사니까, 당연히 모차르트의 곡을 골라야 할 것만 같은 기분.
하지만 서진은 일부러 모차르트를 제외했다.
“혹시 모차르트를 고르지 않은 이유를 물어봐도 될까요?”
“네. 별다른 이유는 아니고, 주지사님도 아실지 모르겠지만….”
서진이 모차르트의 곡을 고르지 않은 데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이곳 잘츠부르크와 모차르트의 관계가 정작 그 당대에는 그리 좋지 못했잖아요.”
잘츠부르크는 모차르트로 유명한 정도를 넘어 거의 그걸로 먹고사는 곳이긴 하지만, 정작 당시의 모차르트는 자신의 고향을 조금도 사랑하지 않았던 것이다.
‘오히려 어떻게든 벗어나고 싶어 안달이 나 있었을 뿐이었다지.’
모차르트는 고향을 떠나 하고 싶은 음악을 자유롭게 할 수 있기를 언제나 갈구했다.
하지만 이곳 잘츠부르크, 정확히는 잘츠부르크의 권력자들은 그런 모차르트를 억지로 잡아둔 채 자신들이 필요로 하는 음악을 만들게 했다.
“아이러니죠. 수없이 많은 사람들을 음악으로 행복하게 해준 모차르트가, 정작 이곳에서 자신은 행복하지 않았다니 말이에요.”
“맞네. 당시의 일은 모차르트가 남긴 편지에 잘 드러나 있지요.”
“아… 그런 것도 있었군요. 저는 모차르트가 끝내 고향을 등지고 떠났다는 정도밖에 몰랐어요. 그렇게 빈에서 데뷔한 모차르트의 이름을, 잘츠부르크가 작정하고 싹 지워버릴 만큼 사이가 좋지 않았다고, 그래서 세상을 떠날 무렵에는 잘츠부르크에서 거의 잊혀진 이름이 되어버렸다고요.”
그런데 현재에 이르러 잘츠부르크의 많은 주민들이 모차르트의 이름으로 먹고산다니… 참으로 아이러니였다.
그래서 서진은 모차르트의 음악보다는 캐럴 ‘고요한 밤, 거룩한 밤’이 진정으로 잘츠부르크를 대표한다고 생각했다.
“…그래도 모차르트의 곡을 고르는 게 나았으려나요?”
혹시 하는 마음에 물어보았는데, 주지사는 서진의 대답에 상당히 놀란 눈치였다.
천재 바이올리니스트로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