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 returned as a genius violinist RAW novel - Chapter 76
76화
그 그룹 외에도, 영화를 보고 나오는 이들의 반응은 대부분 좋았다. 스토리는 맹탕이고, 연기는 ‘음…’이었지만, 음악으로 모든 게 커버된다는 게 공통된 평.
회귀 전과는 상당히 달라진 흥행 성적이었다.
* * *
다비트는 참 한국을 좋아하나 보다.
몸값 비싸신 양반이 자주도 온다 싶은 거로도 모자라, 진즉에 돌아갈 줄 알았는데 여태 밍기적거리고 있다니.
물론 이 경우엔 며칠 후 부산에서 있을 콘서트 때문에라도 일정이 그렇게 된 것이겠지만, 희한하게도 그 이상으로 자주 마주치는 느낌이랄까.
“박수!”
짝짝짝!
흥행 성적이 제법 좋다며 다비트의 입이 귀에 걸렸다. 콘서트 관람 차 부산에 내려온 서진을 보자마자 함지박이 미소를 지을 만큼.
“서진, 이게 다 네 덕이야, 하하하! 역시 난 한눈에 알아봤지! 어쩐지 이 나라가 느낌이 좋더라니! 서진 네 재능을 한눈에 알아보려고 그랬나 봐, 하하하!”
서진 역시 기분이 좋았다. 사실 그렇게 엄청난 흥행까지는 아니고, 예상보다는, 정확히는 회귀 전의 그것보다는 괜찮은 성적 정도지만….
“다비트는 언제나 과찬이 너무 심해요. 그게 유일한 단점이라고요.”
“뭐? 하하하!”
아무래도 좋은 다비트였다.
살짝 먼저 개봉한 해외에서는 벌써 음반도 엄청나게 팔리고 있는 상황. 영화 수입보다 오히려 그쪽이 더 컸으니 어찌 신나지 않겠는가.
그리고 거기에는 서진의 몫도 있었다.
“그래도 내 말 듣길 잘했잖아. 안 그래? 아무리 예술가라도 주머니가 텅텅이면 생겼던 의욕도 쪼그라드는 법이라고.”
다비트가 박박 우겨 서진은 끝내 다비트와 함께 작업했던 곡의 공동 저작권을 가지게 되었다.
양심에 찔려 어떻게든 극구 사양하려 했으나, 다비트를 이길 수는 없었다.
-아니 이게 온전히 제 아이디어도 아니고… 어차피 원래 있던 곡을 살짝 손본 것에 불과한데…,
-그렇게 치면 나도 마찬가지인걸. 원곡은 파가니니 것이니까.
아니 그 말이 아닌데…. 이유를 설명할 수 없어 곤란한 것이다.
뭐 회귀 전의 미래에서 그가 쫓아와 따질 것도 아니니 서진은 그냥 넘어가기로 했다. 그럴 만한 이유를 댈 수가 없으니.
그 결과 상당한 음원 수익을 얻게 된 것.
“서진. 너는 출연료 외 개런티가 없어서 영화가 잘됐다고 해서 따로 수익도 안 나오잖아. 이거라도 챙겨야지.”
“네. 덕분에 정말 감사해요.”
“무슨 말을. 참, 그나저나 이번 기회에 아예 본격적으로 음반을 녹음해 볼 생각은 없어?”
이 역시 다비트가 전부터 제안하던 것이었다.
역시나 번번이 거절하고 있었고.
“글쎄요… 아직은요.”
서진은 기존의 생각에 변함이 없었다. 아직 완성되지 않은 소리를 남기고 싶지 않다는.
무대 위의 공연이 영상으로 기록되는 것도 어떻게 보면 비슷한 일환이긴 하지만, 그 성격이 다르다.
음악을 배우는 과정의 일환으로 무대를 겪고 그 결과 연주 장면이 자연스레 영상으로 남는 것과, 아예 녹음을 목적으로 음반 작업을 하는 것은 이야기가 전혀 다르니까.
“흠. 아쉽네.”
물 들어올 때 노 저어야 하지 않겠냐며 다비트는 입맛을 다셨다.
“뭐, 음반이야 언제든지 가능할 테니… 나중에라도 생각이 바뀌면 얼마든지 말하라고.”
“네. 감사해요.”
다비트는 무려 도이치 그라모폰을 연결해 주겠다며 적극적이었다. 음반 수입도 수입이지만, 한서진의 이름을 더욱 단단히 새겨놓을 기회라며.
“아… 질척거리는 것 같아 별로인데, 정말 아쉽네. 서진 네 실력이라면 분명 음반도 대박 날 텐데. 봐, 이 영화만 해도….”
솔직히 이게 이 정도로 수익을 낼 줄은 상상도 못 했다. 심지어 다비트 본인도 크게 기대하지 않았을 정도로.
“아하하… 잘생겨서라니까요?”
“네가?”
“아뇨. 다비트, 당신 얘기잖아요…!”
그렇게 얼버무리고 있지만, 사실 서진은 나름대로 짐작 가는 바가 있었다.
‘그 특수한 능력의 효과 덕분일지도….’
덕분에 둘의 듀엣곡은 나날이 더욱 유명해지고 있었다. 둘이 함께 공연한 예전 영상의 조회수가 역주행으로 치솟을 만큼.
덩달아 서진의 이름도 점점 일반인들에게까지 알려지기 시작했다.
* * *
“자세한 상태는 좀 더 검사를 해 봐야 알겠지만…, 일단 병명은 맞습니다.”
공연 때 손가락이 찌릿함을 느낀 것을 간과하지 않고 서진은 곧바로 병원을 찾아왔다.
보호자 격으로 선희도 함께였는데, 아들의 병에 대해 끝까지 아닐 거라고, 오진이었을 거라고 믿고 싶었던 선희는 결국 내려진 선고에 안색이 파래졌다.
“정말…그 병이라고요…?”
지난번에는 유전자 검사 결과가 나오기 전이라 아직 좀 더 지켜보는 중이었는데, 이번엔 결국 확실히 땅땅땅 못 박힌 것이다.
자신을 향한 모친의 시선에 서진은 씁쓸하게 웃어 보였다.
내심 아니길 바랐는데, 회귀로 인해 혹시 무언가 달라졌을까 기대했는데, 아니었다.
그래도 한 가지 다행이라면 다행인 것은, 경험으로 인해 회귀 전의 그때보다는 병명을 쉽게 찾을 수 있었다는 것.
회귀 전에는 오만 가지 검사를 해 본 끝에야 나온 병명이었지만, 이미 알고 있는 마당에 또 그럴 이유는 없었다. 게다가 의사 역시 진즉부터 같은 병명을 예견했기에, 유전자 검사를 통해 결과지를 받아보는 건 어렵지 않았다. 사실 서진은 이미 알고 있기에 그럴 필요도 없었지만, 확실히 진단받기 위해서는 그 편이 좋았다.
“그래도 유전적 요인으로 인한 유병 인자가 있는 것일 뿐, 아직 발병한 상태는 아니니 아직 크게 걱정할 상황은 아닙니다. 다만…,”
의사는 하늘이 무너진 듯한 그녀의 반응에 매우 조심스레 말을 이었다.
“지금 환자분께서 한창 신체적 변화가 급격한 사춘기의 나이에 해당하다 보니, 이 시기엔 특히 주의해 주는 것이 좋습니다. 바이올린을 한다고 들었는데… 원래도 손가락 건강에 그리 좋지 않기에, 아직 몸이 다 무르익지 않은 상황에 무리를 하면 악영향을 끼칠 수 있어 주의하는 게 좋겠습니다. 이게 한 번 급성으로 진행되고 나면, 그다음에는 되돌릴 수 없거든요. 아직까지는 딱히 치료제가 나온 게 아니라, 지금으로서는 최대한 발병을 늦추고, 발병된다 하더라도 진행을 늦추는 방향으로 조심하는 게 답입니다.”
한 마디로 당분간 무리한 연습은 삼가라는 조언. 적어도 질풍노도의 사춘기 시기 동안 만큼은.
예상한 말이었지만 서진은 가슴이 답답해졌다.
‘사춘기 동안 만큼만’ 이라고는 하지만, 그게 어디 하루 이틀인가.
바이올린을 제대로 할 수 없다니… 제 인생에 있어 가장 중요한 목표를 하루아침에 빼앗긴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의사의 조언을 허투루 들을 수는 없었다.
기껏 회귀해 다시 꿈을 꿀 수 있게 되었는데, 만에 하나 다시 발병하기라도 하면 정말로 모든 게 물거품이 되고 말 테니까.
* * *
바이올린을 시작한 이래 왕성하게 대외활동을 하던 서진은, 언제 그랬냐는 듯 갑자기 칩거하다시피 틀어박혔다.
바깥에서는 여전히 대중들에게 떠들썩 입에 오르내리고 있었지만, 정작 서진은 그 유명세와는 전혀 거리가 먼 생활을 하고 있었다.
이유는 여러 가지였지만, 거기에는 손가락의 문제가 가장 컸다.
하늘이 무너져내린 듯 눈물을 보이시는 어머니 앞에서 서진은 의연한 척 간만에 꿀 같은 휴식을 가졌다.
선희는 치료 방법을 찾겠다며 백방으로 알아보고 다녔다. 한편으로는 만일을 대비해 돈이라도 많이 벌어놔야겠다며 일을 늘리려 무리를 하려 들었다.
서진은 기겁해 만류했다.
“엄마! 그럴 필요 없어요. 저 돈 많아요!”
그러고 보니 정신이 없어서 말씀드리는 걸 깜박했다. 음반 수익에 대해 적당한 때 ‘짠’하고 서프라이즈로 알려드리려 했는데….
“영화 OST?”
“네. 아시다시피 영화가 꽤 인기거든요. 관객은 그리 많은 편은 아니지만, 음악을 많이들 좋아해 주셔서요.”
“그게 그렇게나 큰돈이 된다고?”
“네네. 그러니 돈은 걱정 마세요. 그리고 제가 알아보니 조심만 하면 큰 문제는 없을 거래요. 기업에서 치료제도 열심히 개발하고 있고요.”
오히려 자신을 위로하는 아들의 모습에 선희는 눈물이 핑 돌았다.
고작 중학생밖에 안 되었는데, 어쩜 이렇게 어른스러운지… 기특한 정도를 넘어 어머니로서 부끄러울 지경이었다.
“그리고 음악도… 당분간 다른 방향으로 틀려고요. 안 그래도 생각하고 있던 것이기도 하거든요.”
바이올린을 제대로 연습하지 못하는 건 아쉽지만, 그래도 할 게 그것밖에 없지는 않았다.
서진은 이참에, 단지 연주 테크닉 향상을 꾀하는 것만이 아니라 전반적인 음악 분야를 심도 있게 공부하기로 했다.
특히 그중, 전부터 관심 가졌던 작곡 분야도 본격적으로 파고들어 볼 생각이었다.
작곡에 관해선 클레어가 도와주기로 했는데, 자신도 본격적으로 전공한 건 아니라 제대로 가르쳐줄 입장은 못 되지만, 기초 정도라면 얼마든지 가능하다며 적극 지지해 주었다.
물론 다른 전문가들도 많지만, 그녀와 합이 잘 맞는 편인지라 단순히 배운다는 느낌보다는 함께 작업해 나간다는 생각으로 당분간 같이 작곡을 공부하기로 했다.
“그렇구나….”
그래. 약해질 수 없지. 아들이 저렇게 노력하고 있는데.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범위에서 최선을 다해야지.
그날부터, 선희는 두 손 걷어붙이고 나서서 서진에게 몸에 좋다는 것들을 먹이려 노력했다. 매일매일 정성 어린 집밥을 차려주고, 건강을 꼼꼼히 챙겼다.
그렇게 나름대로 충실히 보내는 하루하루.
그러는 동안에도 영화 파가니니의 OST가 인기를 더하며 다비트 외에도 여기저기서 음반 녹음하자는 제의가 왔지만, 서진은 일단 다 뿌리쳤다.
하나같이 좋은 제안들이었지만, 별로 아쉽지는 않았다. 좀 더 깊이 있는 연주를 위해서라도 아직 배움이 더 필요하다는 생각이었니까.
한편으로는 윤수와 찬윤을 비롯한 친구들에게도 연락이 왔다.
-서진아, 요즘 무슨 일 있어?
-혹시 슬럼프나 그런 거야?
귀국하면 같이 실내악 모임을 결성해 무대에 서보자 했는데 연락이 통 없으니 걱정이 된 것이다.
서진은 유전병 문제는 제외하고 솔직하게 답했다. 손가락에 문제가 생겨서 당분간 쉬엄쉬엄 갈 예정이라고.
무대는 삼간다 해도 소소한 실내악 활동 정도는 꾸준히 해나갈 생각이었기에, 조만간 한예종으로 합류할 예정인 둘의 존재가 무척 기대되었다.
* * *
상대적으로 느긋하고 널널하게 살다 보니 누군가를 만나는 데 충분한 시간을 쓸 마음의 여유도 생겼다.
예전과 달리 바쁜 와중에 간신히 짬을 낼 필요가 없기에, 서진은 오랜만에 맛있는 거나 사주겠다는 임회장의 제안에 흔쾌히 응했다. 안 그래도 한 번 인사하려 하기도 했고, 지연의 소식도 은근히 궁금하기도 해서였다.
‘…어?’
한데 막상 가보니, 자리에 있는 건 임회장 한 명만이 아니었다.
“허허. 미안하네, 서진 군. 이이가 어찌나 부탁을 하던지….”
정확히는 ‘회장님들’이 있었다. 이성 그룹의 임회장과, KH 그룹의 박회장.
“미안허이. 내 임회장에게 간곡히 부탁했네. 나도 같이 좀 보자고.”
천재 바이올리니스트로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