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 returned as a genius violinist RAW novel - Chapter 81
81화
음? 상관없긴 한데, 왜 나한테 직접 묻지 않고 굳이…?
“혹시 곤란한 거라면….”
아. 혹시 결례가 될까 봐 에둘러 살짝 물어본 모양이었다.
“저는 상관없어요.”
이게 뭐 파가니니가 콘서트장에서 ‘짜잔’하고 신곡을 발표하던 그 시대의 일도 아니고, 콩쿨에 제출할 생각이라긴 하지만 이 정도의 노출 자체는 상관없었다. 세상에 완전히 오픈하는 것도 아니니.
“출품 제한에 걸리지는 않은지 확실히 알아본 거지?”
대부분의 작곡 콩쿨에는 미발표 신작이라는 제한이 있었다. 기존에 연주된 작품이나, 다른 콩쿨에서 시상된 작품을 제외한다는 것이었다.
“네. 공개적으로 무대에 올릴 건 아니니까요.”
미공개라는 의미가 작품 자체를 베일에 쌓아 꽁꽁 감춘 채 출품해야 한다는 뜻은 아니었다.
애초에 작업 과정에서 그 누구에게도 보이지 않는다는 건 불가능한 일. 눈앞의 장명훈도 그렇지만, 같이 활동하는 친구들은 이미 서진의 곡을 들어볼 만큼 들어보았다.
“한데, 굳이 빈필과 먼저 상의해 볼 필요는 없을 것 같아요. 제 가능성을 좋게 봐주신 건 무척 감사한 일이지만, 저는 어차피 콩쿨을 통해 공개할 생각이라서요. 이 곡을 빈필과의 협연을 통해 세상에 내보인다는 건 생각해 본 적도 없는 일인걸요.”
곡을 살짝 들려주는 것 자체야 어렵지 않으나, 어차피 콩쿨에 내보낼 생각이기에 서진은 완곡히 거절했다.
괜히 자신으로 인해 빈필의 명성에 누가 될 수도 있는 상황을 만들고 싶지 않았다.
지금 제게 중요한 건 냉정한 평가. 그리고 만에 하나 잘 됐을 경우 따라오는 부상 – 병역특례 – 이었으니까.
빈필과의 협연은 일정상 그 후의 일이니 천천히 생각하기로 했다.
* * *
스위스, 제네바.
“한스, 그건 조금 무리수가 아니겠는가. 여태 그런 전례가 없는데…”
제네바 콩쿨의 주최 측이 모여 머잖아 열릴 이번 작곡 및 피아노, 바이올린 부문의 세부 계획에 대해 토론하고 있었다.
그중 작곡 부문의 심사위원에 선정된 5명.
심사위원장을 맡기로 한 한스는 성격 독특하기로 정평이 나 있었는데, 그런 그답게 파격적인 주장을 하고 있었다.
“우리 콩쿠르가 그간 꾸준히 작곡 부문을 운영해 왔는데 정작, 그렇게 뽑힌 곡들이 이렇다 할 성과를 거둔 게 없지 않은가. 대중들한테 물어보게. 누구 하나 아냐고.”
“아니 그야… 현대 클래식의 특성상 어쩔 수 없는…,”
“그래. 난해하다, 독특하다, 그런 이유로 공연 레퍼토리에 올라가는 일도, 대중에게 이름을 알리는 일도 거의 없는 게 현실이지. 그것도 좋게 말해 그렇게 표현하는 거지, 대부분은 그냥 자장가거나, 반대로 공포영화 BGM이냐고 하는 게 현실이잖나!”
이러니 클래식은 죽었다 소리가 나오는 거 아니냐며 한스는 혀를 끌끌 찼다.
“과거의 찬란했던 시절의 유산만 답습할 뿐, 발전이 없으면 결국 망하게 되어있네. 그리고 그 발전의 척도 중 하나는 더욱 많은 이들의 관심이고.”
현대 클래식은 결국 그들만의 잔치가 될 뿐, 아무리 애써봤자 관객들이 찾는 건 결국 차이코프스키와 모차르트지, 생소한 현대 작곡가가 아니었다.
이것이 아무 길 가는 대중들 붙잡고 물었을 때 이야기가 아니라, 나름대로 클래식을 접한다는 사람을 타깃으로 해도 그랬다. 클래식 공연을 보고 나오는 이들을 붙잡고 물어봐도 100명에 한 명 정도나 현대 작곡가의 이름을 알까 말까 한 현실이었으니까.
“당장 우리부터가 적극적으로 연주하고 활용하지를 않지 않은가. 우리가 뽑은 음악을 우리도 안 쓰는데, 어떻게 대중적으로 향유되기를 바라느냐 이 말일세!”
“….”
할 말이 없었다.
물론 아예 안 쓰지는 않았다.
연주 콩쿠르 결선에서 지난 작곡 콩쿨의 우승 곡을 지정곡으로 제시하는 등 나름대로 방안을 확보하고 있긴 하지만, 그걸로는 부족한 느낌이었다.
그도 어쩔 수 없는 것이, 현대음악이 대중들에게 점점 외면받고 있는 게 현실인 것이다.
그나마 한계선이, 소위 ‘뉴에이지’라 불리는 구라모토 유키. 조지 윈스턴, 앙드레 가뇽 등등까지랄까.
흔히 뉴에이지라고 분류되는 음악들을 전부 싸잡아 같은 카테고리로 칭하기엔, 그 특징이 어쿠스틱 멜로디부터 전자음악까지 지나치게 다양하다는 점이 있었지만, 어쨌든 그때까지만 해도 대중들에게 제법 먹혔다.
하지만 그 후로는….
뉴에이지가 1986년 그래미 어워드에 정식 장르로 인정된 것이 이미 수십 년 전, 21세기에 들어선 지 한참인 지금은 또 상황이 달랐다.
“그러니 이번 콰르텟 예선 심사에, 지정곡 외 자유곡으로 현대곡 중 하나를 고르게 하자는 걸세.”
“글쎄. 그래봤자 소용없을 것 같은데….”
다들 그중에서도 ‘유명한 클래식’이라 할 수 있는 스트라빈스키, 라벨 등의 19세기 음악을 선택하지, 진짜로 현시대에 작곡된 음악을 선택할 것 같진 않으니까.
애초에 현대음악이라는 범위가 워낙 넓고 모호한 게 문제였다. 19세기 근대에부터 20세기, 현재(contemporary)에 이르기까지, 전부를 포함할 수 있는 단어인 것이다.
뭐, 굳이 하려면 특정 시점 이후로 지정할 수도 있겠지만… 차라리 라벨, 쇼스타코비치처럼 어느 정도 시대분류가 가능한 20세기 곡이면 모를까, ‘최근 작곡된 곡’이라고 명시하는 것도 애매했다.
그 말에 한스가 다시 반박하고 나섰다. 그야 현대음악 작품(contemporary work)에 해당하는 작곡가 리스트를 명시해주면 될 일이라고.
“그럼 그건 이미 자유곡으로 택하는 게 아니지 않은가.”
“아니, 뭐. 어쨌든 자유곡 여부가 중요한 게 아니라 어떻게든 현대곡을…,”
“게다가 곡이 다 다르면 연주의 우위를 가려내기가 어렵지 않겠는가. 엄정해야 할 콩쿨에서….”
물론 자유곡 제시가 아예 없는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익숙한 작곡가들의 곡이라면 모를까, 자칫하면 심사위원도 처음 보는 악보가 등장할 수도 있기에 조심스러운 것. 심사를 하려면 적어도 악보에 대한 이해는 선행되어 있어야 할 테니까.
“나도 좋은 생각인 것 같네.”
둘의 갑론을박을 듣고 있던 다른 심사위원, 한국인 출신의 남자가 입을 열었다.
“미스터 진, 자네까지!”
“매의 눈으로 우열을 가려내야 하는 본선이나 파이널이면 모를까… 예선 정도면 그 정도는 상관없지 않을까 싶은데. 저쪽 부문에는 협조를 요청하면 되는 일이고.”
“아니지, 오히려 예선이라 더 문제지! 수없이 많이 밀려드는 지원자를 걸러내려면 똑같은 곡으로 비교하는 게 가장 수월할 텐데, 자유곡을 받으면 어쩌자는 건가!? 차라리 본선 이후의 무대라면 몰라도!”
“아무튼 예선이고 결선이고, 나는 괜찮다고 보네.”
다섯 명의 심사위원 중 의장을 비롯해 두 명이 찬성이었다. 다수결로 간다 치면 남은 건 한 표.
“좋아, 다들 일단 진정하고. 일단 이건 저쪽 부문과도 상의를 해야 하는 문제라네. 우리끼리 결정할 수 있는 게 아니니까. 하지만 일단 우리끼리 의견은 통일해놔야 하니 모두의 의견을 묻겠네.”
격렬히 반대하던 남자, 울프강은 제게 찬동하는 한 명을 제외한 나머지 한 명에게 물었다.
“미쉘, 자네 생각은 어떠한가?”
“일단 좋은 생각인 것 같은데, 그 정도로는 부족하지 않을까?”
가만히 듣고만 있던 그가 대뜸 입을 열었다.
“…음?”
“그건 그거대로 하고, 내게 또 다른 생각이 있네만. 이렇게 하면 어떻겠나?”
* * *
서진은 바로 제네바 콩쿨에 신청서를 넣기로 했다.
제네바 콩쿨은, 1971년 첼리스트 장명화가 드보르작의 곡으로 동양인 최초의 우승 기록을 세운 것으로 유명했다.
“보자….”
먼저 서진은 홈페이지에 나와 있는 자격 요건 및 응시 요강을 꼼꼼히 읽어보았다.
올해는 현악 4중주 그리고 작곡. 이렇게 크게 두 부문이 함께 개최되었다. 작곡은 원래 격년으로 개최되는데, 피아노, 성악, 현악 등의 나머지 부문도 연도에 따라 번갈아 열렸다.
‘음… 바이올린 부문이 따로 없는 게 아쉽네.’
있었더라면 복수 지원을 해봤을 텐데. 관련 규정을 보니 두 부문에 복수 지원을 하면 안 된다는 말은 없었다.
현악 4중주도 나쁘지 않은 선택이지만, 당장 구성원이 없었다. 요 몇 년간 친한 이들을 중심으로 다양한 편성의 실내악 활동을 꾸준히 해왔다고는 하지만, 정식으로 콰르텟 팀이 고정된 상황은 아닌 것이다.
“아무튼 올해의 작곡 부문 지정 장르는….”
나열된 악기 중 하나를 택하여 솔로곡, 혹은 현악 4중주였다.
‘일단 다행이네.’
바이올리니스트인 서진에게는 마침 잘된 일이었다.
보이스 앙상블 같은 거였으면 난감했을 텐데. 그쪽은 아무래도 잘 모르니….
서진은 콩쿨 요강을 마저 꼼꼼히 읽어보았다.
“얘들 되게 살뜰히 활용해 먹는구나.”
결선에 진출한 악보는 전 수상자들에 의해 연주된다는 말에 이어, 이번 수상작은 다음 해 콩쿨의 지정곡으로 쓰일 예정이라는 말.
어쨌든 서진으로서는 나쁜 일이 아니기에 고개를 끄덕이며 이번에는 혹시 하는 마음에 현악 4중주 쪽을 살펴보았다.
“음? 예선작 제출에 현대곡(contemporary music) 범위 내에서 자유곡 가능?”
현대곡이라… 느낌상 대충 21세기 전후의 음악을 말하는 듯한데…. 따로 명시된 리스트도 없고 해서 애매했다.
현대곡 및 자유곡에 관한 언급은 그 후로도 여러 번 나왔다.
‘…이번엔 여러모로 특이하네?’
특히 자유곡이 이렇게 많다니. 예선이나 본선은 그렇다 쳐도 심지어 결선에서까지.
게다가 중간중간 현대음악 작곡가의 곡을 지정곡으로 제시해 둔 것이, 은근히 자유곡에서도 현대음악을 택하기를 유도하는 느낌이었다.
‘뭐 어차피 내가 나갈 것도 아니니…,’
서진은 딱히 연주 부문의 콩쿨을 준비해 온 게 아니었기에, 작곡 이외에는 지원해 볼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런데,
“진진진진!! 써진!”
어디선가 나타난 윤수가 호들갑을 떨며 종이를 흔들어 보였다.
“야야야, 이거 봤어? 올해 콰르텟이네!?”
윤수의 눈빛이 번쩍이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윤수로서는 천금 같은 기회일 터.
비올라는 사실 독주 무대를 갖기 쉽지 않은 악기라 안정적인 연주 활동을 하려면 고정적인 멤버가 필요했는데, 그런 면에서 이번 콩쿨은 최적의 기회였다.
콰르텟을 결성하는 거야 얼마든지 할 수 있는 일이지만, 이름을 알리는 건 별도의 문제.
만약 이번 콰르텟 콩쿨에서 우승을 하게 되면 대번에 인지도 있는 현악 4중주단으로 발돋움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써진! 우리 이거 같이 나가자!”
“나?”
“응응! 완전 기회라고!”
“아니 어차피 내후년쯤에 비올라 부문 따로 열 텐데… 우리 준비한 것도 하나도 없는데 갑자기 가능하겠어?”
“독주 콩쿨은 독주 콩쿨이고, 이건 또 다르잖아! 그리고 이거 봐봐, 봐봐. 이거, 이러면 네 곡도 되는 거 아냐?”
“응?”
“현대곡 범위 내에서 자유곡으로 예선 제출이 가능하다잖아! 네 곡을 사용해 우리가 짜잔! 콩쿨에 선보일 수 있다고!”
천재 바이올리니스트로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