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 returned as a genius violinist RAW novel - Chapter 83
83화
듣자 하니 작곡 부문에는 이미 악보를 제출한 상황이었다. 현악 4중주 부문에 신청서를 넣고는 심사용 영상을 제출하기 전 문의가 들어온 것이었고.
그 말에 심사위원들이 일제히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후, 메일로 접수된 서류 더미에서 문제의 작품을 찾아낸 한스가 인원수만큼 인쇄해 악보를 돌렸다. 제출받은 악보 파일 자체로 음원을 재생할 수도 있었지만, 고전적인 종이 악보를 선호하는 그는 일부러 눈으로 먼저 훑어보고자 했다.
“…!”
오래지 않아, 너나 할 것 없이 눈이 번쩍 뜨였다.
악보만 보고 전부를 이야기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한 가지는 알았다.
이걸 꼭 들어보고 싶다. 원작자의 손으로, 작곡자의 의도가 그대로 녹아있는 연주를 꼭 직접 들어보고 싶어진 것이다.
“나는 찬성일세.”
“나도.”
“…나도 일단, 허락해줘도 될 것 같네, 흠흠.”
이걸 절대로 놓쳐서는 안 된다는 것이, 모두의 머릿속에 공통적으로 떠오른 생각이었다.
* * *
“안녕? 오랜만이야.”
서진은 실로 오랜만에 지연을 마주했다.
“…아. 음, 오랜만이다.”
뭐지, 이 어색함은.
그동안 카톡으로 종종 연락을 주고받긴 했는데, 이렇게 몇 년 만에 만나니 기분이 무척이나 이상했다.
그동안 지연이 한국에 한 번도 온 적 없었던 건 아니었다. 방학 때면 가끔 한국에 돌아왔었으니까.
그렇다고 해서 따로 만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서진이 지연의 귀국 소식을 들은 건 어디까지나 임회장을 비롯한 제삼자를 통해서였고, 지연이 직접 입국했노라 따로 연락을 해온 적은 없었다. 그렇기에 서진 역시 만나자는 말을 딱히 꺼낸 적 없었던 것.
“이제 완전히 귀국한 거야?”
“응. 잘 지냈어?”
오랜만에 보는 지연은 훌쩍 키가 커 있었다.
물론 서진 역시 상당히 자랐기에, 예전과 달리 지연은 서진보다 훨씬 눈높이 아래에 있었다.
분명 마지막에 봤을 때만 해도 키가 엇비슷했는데….
“그냥. 그럭저럭. …너는?”
“나도.”
짧은 안부 인사가 지나고 곧바로 어색함이 찾아왔다.
“어…!?”
다행히 어디선가 등장한 윤수 덕분에 뻘쭘한 대치는 금세 깨졌다.
대관령 음악제에서 처음 얼굴을 튼 둘은, 연락을 할 만큼 친하지는 않지만 적어도 서로 얼굴은 알아보는 정도의 사이는 되었다.
“어어, 유학 진짜 끝마치고 돌아온 거야!?”
“어.”
지연은 짤막이 인사만 건넸다.
초등학생 시절보다 부쩍 성숙해진 만큼, 지연은 더 도도해진 듯했다.
윤수는 멍하니 입을 헤 벌린 채 지연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성장한 만큼 미모 역시 그에 비례해 부쩍 물이 올라있었는데, 이즈음의 시기가 못생김의 피크를 찍는 나이 때임을 감안하면 지연은 떡잎부터 남다른 비주얼이었다.
“야, 넌 가서 연습이나 해라.”
서진은 윤수를 걷어차 치워버렸다. 이놈 때문에 잠시 어색함을 덜긴 했는데, 있으면 괜히 헛소리나 할 것 같으니 쫓아내야지.
다시 단둘이 된 서진은 어색한 가운데 입을 열었다.
“어… 너도 콩쿨 같이 하는 거지?”
“응. 너는 복수 지원이라며?”
“으응.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어.”
“역시, 여전히 대단하구나.”
지연이 서진을 뚜렷이 바라보며 미소지었다. 다양한 의미가 담긴 듯한 표정.
“응? 아니, 그런 건 아니고….”
“그래도 나도 만만치는 않을 거야.”
“저기, 우리 같은 팀인데. 경쟁하는 게 아니라.”
“…아무튼.”
혼자 열혈 만화 주인공처럼 애쓰는 게 왠지 귀여워서 서진은 작게 웃었다.
원래도 훈훈한 서진이 미소지으니 순간 지연은 표정 관리에 실패했다. 답지 않게 말도 더듬고 말았다.
“…흐, 으흠. 그, 그럼 난 가, 가볼게. 나중에… 나중에 봐!”
* * *
짝짝짝!
녹음실에서 연주를 마친 넷에게 무현이 격한 박수를 쳐 주었다.
무현은 서진 팀의 이번 콩쿨을 전반적으로 지도해주기로 했는데, 지금 보니 뭐 딱히 해줄 것도 없어 보였다. 자유곡인 자작곡이야 작곡가 본인이 있으니 말할 것도 없고, 그나마 지정곡의 레슨을 조금 봐주는 정도가 전부.
“브라보! 한 번에 완벽해!”
모두에게 하는 칭찬이었지만, 정확히는 서진을 향한 것이라는 걸 모두 알았다.
왜냐하면 그들 모두 같은 생각을 하고 있으니까.
연주의 합이 잘 맞는 건 둘째 치고, 곡이 정말 말도 안 되게 좋았다.
“완전 드림팀이구나. 나머지 셋이야 한두 번 호흡을 맞춰 온 게 아니니 그렇다 쳐도 지연이는….”
부쩍 성장했구나… 대견스러운 시선이 지연을 향했다.
비록 유학 가기 전 그녀의 담당 지도교수는 아니었으나, 지연의 존재라면 무현도 알았다.
아니, 이 한예종에서 그녀를 모르는 사람이 누가 있었을까. 자그마치 재벌가 금지옥엽인데.
“감사합니다.”
상당한 재능에, 원래도 잘하던 그녀였다. 단지 서진 옆에만 서면 태양 앞의 달처럼 빛이 바래는 느낌에 안타까웠던.
하지만 이제 자신만의 색을 찾은 느낌이었다.
그런데 또 그 색이 서진의 것과 기가 막히게 잘 어울리는 게 아닌가.
한눈에 보아도 그간 많은 고뇌와 노력이 있었겠구나… 싶었다.
“…아, 그래도 이대로 바로 괜찮을까요?”
대번에 오케이라는 무현의 말에 서진이 떨떠름히 물었다. 그래도 콩쿨에 내는 건데 만전을 기해야 하지 않을까.
사실 작곡 부문에만 내는 거라면 굳이 영상을 녹화할 필요 없었다. 제출한 작곡 파일 자체로 음원 재생이 가능하니까. 하지만 현악 4중주 부문에 내려면 직접 연주한 영상이 필수였다.
그리고 이왕 녹화한 거 작곡 부문에도 이걸로 낼 생각이었다. 이왕이면 작곡자의 의도를 조금이라도 더 잘 살려 연주해낸 버전으로 제출해 나쁠 것 없으니까.
작곡자가 연주자 본인이니, 서진이 직접 한 것보다 더 완벽히 곡을 표현해낼 방법이 또 어디 있겠는가.
“물론이지. 이건 정말 혼자 듣기 아까운 정도라고. 정말로 끝내주는 곡, 그리고 그에 걸맞은 훌륭한 연주였으니까. 곡과 연주자의 하모니가 아주 완벽해. 어서 빨리 세상에 알리고 싶어 안달이 날 만큼. 너희들이 바로 새로운 사조를 여는 그런 존재가 될지도 모르겠구나. 그래. K-콰르텟으로 시작된 한서진 사조라고 이름 붙이면 딱이겠군.”
K-콰르텟.
이 민망한 이름은 서진 팀의 이름이었다. 우리가 다 한국인이니까 한국 콰르텟이라는 뜻에서 붙인 이름.
옆에서 지연이 촌스럽다며 기겁했지만, 윤수는 꿋꿋했다. 서진 역시 ‘거기에 한국인이 우리뿐인 것도 아닐 텐데…’ 라며 반대했으나, 윤수는 ‘몰라 먼저 쓰면 그만이지’라며 끝까지 뜻을 꺾지 않았다.
“네. 저도 정말 기대되네요.”
그렇게 탄생한 손발이 오그라드는 이름.
비록 이름은 조금 그렇지만, 어쨌든 그 내용물만큼은 진짜배기였다. 서진의 능력을 기대할 대로 기대하고 있던 지연도 깜짝 놀랄 정도로.
그녀로서는 서진의 곡을 처음 접하는 자리. 그 감상은…
‘뭐랄까. 정말로 여태까지는 없던 그런 곡이랄까.’
교수님의 말대로 새로운 사조의 지평을 열 수 있을 만큼.
‘더 이상의 가능성은 없을 줄 알았는데….’
지금은 뭉뚱그려 클래식이라 하고 있지만, 르네상스, 바로크, 고전, 낭만… 등 시대에 따라 음악은 꾸준히 변화해 왔으며, 그 당시 청자들에게는 각기 다른 장르로 인식되어올 만큼 큰 발전을 겪어왔다.
그러한 각 사조를 대표하는 작곡가들은 나름대로 혁신을 이루며 음악사의 새로운 장을 연 존재들. 어떠한 새로운 사조 속에서 그 양식을 가장 아름답고 체계적으로 사용하여 곡을 쓴, 즉 새 시대를 연 작곡가들이 바로 역사에 이름을 남기게 된 것이다.
그러다 그 사조가 지나고, 다른 특성을 가진 새로운 사조가 시작되면 또 그 안에서 새로운 작곡가가 나타나고, 그렇게 천재들 역시 시대 속에서 나타나는 것이었다.
그렇게 음악이 꾸준히 학문적 발전을 해오며 근대, 현대음악에 이어 현재에 이르게 된 지금.
과연 미래는 어떠할까.
아니 미래까지 갈 것도 없다. 현재에 이르러서는 더 이상 그것이 제대로 이어지지 않고 있으니까.
모차르트는 모차르트 시대의 클래식을 썼고, 라흐마니노프는 라흐마니노프 시대의 클래식을 썼듯, 현대에는 현대의 클래식을 써야 하는 것인데, 문제는 그게 잘 먹히지 않는다는 것.
무조음악, 12음 기법, 우연성에 의한 음악, 총음렬기법, 테이프 음악, 구상음악, 전자음악 등등에 이르기까지…
혁신에 혁신을 지향하는 현대음악이 미래에는 또 어떤 방향으로 발전할지 모르는 와중에, 대중들은 이미 이를 어려워했다.
시대상은 분명 저러한 변화를 요구하는데, 그게 정작 관객의 취향과 맞지 않는 것.
…그런데 서진의 음악은 먹혔다.
지연 역시 같은 음악가의 입장이기에 일반 대중들의 반응을 완벽히 짐작할 수는 없지만, 그럼에도 느껴졌다.
“대체 무슨 마법을 부린 거야?”
얼떨떨한 그녀의 질문에 무현 역시 거들었다.
“동감이구나. 내가 정말이지… 태어나 처음 보는구나. ‘청중들도 좋아할 법한 현대음악’이라는 것을 말이다. 어쩌면 네가, 이 21세기 현대 클래식의 새로운 사조를 여는 존재가 될 수도 있겠구나 싶을 정도로 말이다.”
“아하하. 너무 과찬이신데요…?”
나가도 너무 나갔다.
이건 딱히 작곡 능력 덕분이라기보다, 예의 그 심상 능력 덕분에 연주가 유난히 특별히 들리는 덕분이 아닐까.
그게 고전 클래식 곡일 때는 워낙 명곡이라 그렇겠거니 하던 것을, 직접 작곡한 곡인 탓에 괜히 그 곡까지 후광을 입어 대단해 보이는 게 틀림없었다.
“아니, 진심으로. 정말 그렇게 생각해.”
“…하하 감사합니다. 그냥 열심히 한 덕분이죠, 뭐.”
무현이 다시 한번 확신을 가지고 말했지만, 서진은 어색하게 웃을 뿐이었다.
뭐 글쎄… 뚜껑 열어보면 알겠지.
일단은 스타트가 좋으니 서진 역시 기분이 흐뭇했다.
* * *
시간이 훌쩍 흘러 드디어 콩쿨이 시작되었다.
작곡 부문의 콩쿨 진행 순서는 예선, 본선 리허설 및 결선 연주로 이루어져 있었는데, 예선에서는 악보 및 음원 파일, 작품설명서 등을 제출해 심사받는 방식이었다.
주제 및 작곡 의도, 소재 및 악기 다루는 법, 작곡 기법 등등을 기재한 작품설명서와 함께 심사에 필요한 파일을 제출한 서진은, 오래지 않아 본선 연주심사 대상자가 되었다는 결과를 통보받았다. 악보심사를 통과한 것이었다.
작곡 부문은 특이하게도 본선이 곧 결선이기에, 예선 통과를 확인한 서진은 곧바로 바이올린에 집중했다. 어차피 작곡은 악보로 판가름 나는 것이지, 출품자 본인의 연주 솜씨와는 상관없기에 본선에 진출했다 하더라도 크게 신경 쓸 게 없었다.
다행히 두 부문의 일정은 겹치지 않았다. 무대라는 한정된 공간과 인력을 나누어 쓰다 보니, 자연히 일정이 겹치지 않게 잡힌 모양이었다.
두 부문에의 복수 지원. 그리고 둘 모두 본선에 진출했다는 소문에 서진은 순식간에 유명인이 되었다.
“쟤가 걔?”
보기에는 평범하디 평범한 동양인 꼬맹이인데, 쟤가 그렇게 대단하다고?
이번 복수 지원은 둘째 치고, 원래부터 아주 유명했다는 말에 참가자들은 서진을 향해 힐끔힐끔 시선을 던졌다.
대체 소문이 어떻게 퍼진 건지는 모르겠지만, 심지어 제출곡에 자신의 자작곡을 냈다는 것도 암암리에 다들 아는 사실이었다.
정말 대단한 배포였다. 보통 최선을 다한다는 말로도 부족해, 사활을 걸게 마련인 콩쿨에서 그런 도전을 하기 쉽지 않을 텐데.
…그만큼 자신이 있다는 것이겠지.
등등의 시선이 온통 시끌시끌 서진에게 쏠렸다.
“안녕? 네가 한서진, 맞지?”
그러던 중, 누군가가 서진에게 말을 걸었다.
천재 바이올리니스트로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