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 returned as a genius violinist RAW novel - Chapter 85
85화
다비트 G와 함께 만들었다는 곡.
물론 그것도 그 공동작곡이라는 게 정말이라는 가정 하의 일이지만.
그걸 확인해보고자 지켜보려는 것뿐이었다. 솔직히 말해 눈앞의 소년은 이렇다 할 이력이 없으니까. 예중, 예고를 나온 것도 아니고, 고작해야 영재원을 다녔다 한들 정식으로 작곡을 배운 것도 아니지 않은가.
다비트라는 유명인사와 함께 한 이름값이 있으니 대놓고 무시할 수는 없지만, 그는 기본적으로 개나 소나 작곡을 우습게 알고 덤비는 꼴이 보기 싫었다.
지금이 몇백 년 전 옛 시절도 아닌데, 연주자 출신들이 뭐라고 곡을 끼적댄단 말인가. 예전처럼 천재들을 비롯한 극소수의 계층만 음악을 하던 시대면 모를까.
임종훈은 굳게 믿고 있었다. 작곡은 오직, 제대로 공부한 이들만이 유의미한 결과물을 낼 수 있는 그런 종류의 것이라고.
그런 의미에서 눈앞의 두 꼬맹이 둘 다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나름대로 촉망받는 바이올리니스트 출신이라고는 하나 나이도 어리고, 제대로 사사한 적도 없는 이들.
단 4명만 뽑는 결선에 어떻게 이런 어중이떠중이 어린애들이….
100여 명이나 지원을 했는데 정말 어이가 없는 일이 아닌가. 작곡계에 이토록 인재가 없다는 것에 절망마저 느꼈다.
“이제 시작하다 보다. 그럼, 건투를 빌어.”
지난번과 마찬가지로 임종훈은 휙 떠나버렸고, 페르디난트는 그게 영 마음에 들지 않는지 눈살을 찌푸렸다.
“저 사람 왜 저래?”
“내버려 둬.”
자신들을 향해 깐족거리는 태도는 서진 역시 모르지 않았다.
무슨 생각인지도 뻔히 보였다. 작곡을 배운 적도 없는 상대가 우습게 보이는 게 틀림없을 터.
‘우물 안 개구리라는 게 딱 저런 건가.’
자신을 무시하는 거면 몰라도, 페르디난트에게는 큰코다칠 텐데.
아이러니하게도 작곡 천재 페르디난트는 정작 작곡 관련 공식적인 이력이나 경력이 하나도 없었다. 그러니 실력을 보기 전까진 감히 상상도 못 할 수밖에.
“맞아. 무대로 보여주면, 곡으로 승부하면 그만이니까. 자, 준비 끝! 이제 시작해 볼까?”
* * *
결과는 곧바로 나왔다.
물론 아직까지는 리허설 무대로 진짜 파이널 연주는 아니었지만, 처음으로 다른 지원자의 곡을 들은 파이널리스트들은 듣는 순간 결과를 깨달았다.
가장 먼저 페르디난트의 곡.
g 마이너의 바이올린 독주곡이 전자음이 섞인 반주와 어우러지며 낭창하게 울렸다.
‘이건 못 이기겠구나.’
페르디난트의 곡이 울리자, 서진을 제외한 나머지의 흙빛으로 변했다. 순서도 하필이면 맨 처음으로 나온 곡이 모두의 기를 죽였다.
…그저 멍하니 들을 뿐.
그러다 보니 얼마나 시간이 빠르게 흘렀는지, 그다음은 서진의 차례였다.
“…와.”
“아….”
이것도 만만치 않았다.
첫 번째 곡만큼 비범한 천재성이 느껴지는 건 아니었지만, 또 다른 의미로 충격적이었다.
스트링 콰르텟이라고 해서 흔히 결혼식장에서 들을 법한 고전적인 선율이 흘러나오는 건 결코 아니었다. 어디까지나 현대음악이었으니까.
긴장과 고조, 이완과 해소를 반복하는 선율. 그 속에서 청중들은 숨도 쉬지 못하고 곡에 끌려갔다.
신기하게도, 일렉트로닉 악기를 쓴 것도 아닌, 바이올린, 비올라, 첼로라는 전통적인 악기만으로도 서진의 곡은 무척이나 현대적인 소리를 자아내고 있었다.
그런데 그게 결코 귀에 거슬리고 난해하기만 한 것이 아닌, 음식으로 치면 난생처음 맛보는 무척 새로운 맛인데도 입에 착 감기는 느낌이랄까.
난해하지 않은 심플함. 그것이 신기를 넘어 경이로울 정도였다.
‘쉽고 아름답다’라는 단순한 명제. 그것이 그토록 어려운 것이 아니었다면, 현대음악이 현대의 청중을 사로잡는데 그토록 고전하지 않았을 터.
하지만 그것을 서진은 해냈다. 현대음악인데 난해하지 않고, 나아가 극도의 심미적 만족도를 줄 수 있다니.
‘후….’
이렇게 제 곡이 연주되고 있는 걸 들으니, 직접 연주하는 것과는 기분이 또 남달랐다. 손끝으로 낳은 자식을 감상하는 듯한 기분이랄까.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연주자의 기량이 서진의 기대에 못 미친다는 것이었지만….
‘결선 연주 때는 좀 낫겠지.’
가장 앞선 두 명의 차례가 끝나자 리허설 무대에는 적막만이 감돌았다.
사운드 체크 및 테크니컬 리허설을 위한 무대이기에 곡을 끝까지 다 선보이지는 않았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알 수 있었다.
“….”
“….”
아. 길고 짧은 건 굳이 대볼 필요가 없구나.
굳이 대본다면 저 둘을 대보는 정도만이 의미가 있겠다 싶은 깨달음의 순간이었다.
* * *
결선 연주를 앞두고 열린 작곡 부문 회의.
회의실에 모여앉은 이들은 또 새로운 일로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
“…작곡자 본인에게 연주를 직접 요청하자니, 그게 무슨…?”
“말 그대로요. 애초에 작곡자 본인보다 자신의 악보를 정확히 알고 있는 사람은 없으니 말이오.”
“혹시 2번 연주자 때문이오? 그, 동양인 소년….”
한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혹시 참가자가 요청한 것이오?”
“아니. 참가자 측이 아닌, 콰르텟 멤버에게서 들어온 요청일세.”
“뭐라고? 아니 이게 무슨….”
원래 결선 연주는 콩쿨 주최 측에서 연주자를 제공하는 게 원칙이었다. 단, 콩쿨에 따라 개인이 연주자를 선정하는 것이 가능하기도 했다. 물론 연주료는 작곡가 본인 부담해야 했지만.
“원칙적으로 안 될 건 없는 일 아니오? 개인이 따로 섭외한 연주자가 작곡가 본인이 되는 것일 뿐.”
“아니 원칙을 말하려는 게 아니라… 그거야 참가자 본인이 희망할 경우에 가능한 것이지, 주최 측에서 먼저 그런 요청을 하는 건… 아니 대체 왜 이런 이야기가 나온 것이오?”
“후… 그게, 콰르텟 측에서 도저히 못 하겠다고 말이 나왔네.”
“…뭐!?”
실은 악보를 받아본 콰르텟의 바이올리니스트가 난색을 표했다. 이 주법을 작곡자의 의도대로 정확히 연주하고 있는 건지 잘 모르겠다고.
정확히는 작곡자가 직접 보내온 예선 영상을 비슷하게 따라 할 자신이 도저히 없다는 고백.
나머지 파트는 모르겠는데, 작곡자가 직접 연주한 1바이올린 파트가 문제였다.
다른 것도 다른 것이지만, 중간중간 무척이나 특이한 주법이 나오는데… 현대곡에서 괴이한 주법을 창작해 내는 경우가 한두 번이 아니긴 했지만, 이건 어떻게 비슷한 소리를 낼 엄두도 안 났다.
주법 자체야 뭐 대충 설명 쓰인 걸 보거나 영상에서 보이는 대로 따라 하면 되긴 하겠는데, 문제는 그 결과물이 전혀 다르다는 것이었다.
왜 같은 곡을 연주했는데 저 소년이 한 것 같은 느낌이 나지 않는 거지?
분명 한다고 했는데, 이 전혀 다른 음색은 무엇이란 말인가. 제가 표현력이 이렇게 달렸었나… 자괴감마저 들 정도였다.
사실 서진이 작곡한 곡이 기교적으로 서진밖에 못 한다거나 그러한 경우의 것은 아니었다.
다만, 서진이 아니면 그 소리가 나지 않을 뿐.
그래서 고민 끝에 콰르텟의 바이올리니스트는 차라리 결선에서 작곡자가 직접 연주하는 게 어떻겠냐는 제안을 건네게 된 것.
“허… 무슨 이런 상황이….”
“아니 다들 실력이라면 어딜 가도 빠지지 않는 이들일 텐데?”
“그러게 말이오.”
모두 지난 콩쿨을 통해 검증된 실력 있는 콰르텟들이니 연주를 심각하게 망칠 리는 없을 터였다.
하지만….
제출된 영상과 현저히 비교될 정도의 연주를 했다가는 괜히 두고두고 욕을 먹을까 봐, 스스로 그게 신경 쓰이는 것이다. 아무래도 곡을 심사하는 데 있어 연주의 퀄리티가 영향을 미치지 않을 수 없으니.
“뭐, 콰르텟 측의 말도 틀린 소리는 아니니 제안해 봐서 나쁘지 않을 것 없지 않겠소? 파가니니나 리스트를 생각해 보시오. 원래 자기 곡은 자기가 발표하는 게 제일 잘 맞는 법이니까.”
자존심의 문제도 있고 하니 웬만해서는 이런 소리 안 할 텐데, 굳이 먼저 이야기를 꺼낸 걸 보면 어지간히도 곤란한 모양이었다.
“파가니니라니… 너무 나간 것 같소만….”
“아무튼 말이오! 아무튼, 그럼 콰르텟 멤버에게는 따로 양해를 구하고, 바이올린 파트만 작곡자 본인에게 하도록…,”
“잠깐잠깐. 아니 어차피 그러는 거, 차라리 전체 연주를 하게 하는 게 낫지 않겠소?”
“음? 그건 무슨 말이오? 어디서 갑자기 멤버를 구해올 수 있다고…,”
“아, 모르셨나 보군요. 저 소년은 이번 콩쿨에 콰르텟 부문에도 지원했소.”
“오오! 그게 정말이오!?”
놀라운 소식에 미처 몰랐던 이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지원자들 사이에서는 떠들썩한 일이었는데, 자신의 분야 외에는 관심 없는 외골수들이 모인 자리인 만큼 정작 모르는 이들도 제법 있었다.
“그러면 오히려 잘 됐군. 일단 본인에게 의견을 물어보는 걸로 하지!”
* * *
“서진아, 무슨 일인데?”
주최 측으로부터 예상치 못한 요청을 전해 들은 서진은 곧바로 친구들을 불렀다.
“아, 너희랑도 상의해야 할 것 같아서. 나랑 관련된 이야기이긴 한데, 결국 우리 콰르텟 전체의 일이기도 하거든.”
“왜? 무슨 문제 있어?”
“아니, 문제는 아니고….”
서진은 주최 측에게서 들은 내용을 나머지 멤버들에게 설명해 주었다.
“작곡 콩쿨 결선에서… 우리가 직접 연주를 하는 게 어떻겠냐고? 그러니까 네 곡을 말이지?”
“응.”
잠시간의 침묵 후, 도저히 이해가 안 간다는 듯 하윤이 첼로를 까딱이며 물었다.
“그게 그 정도로… 곤란한가?”
그에 지연이 바로 답했다.
“음. 나는 알 것 같은데. 이해가 잘 안 가면 이렇게 상상해 봐. 파가니니가 곡을 발표하려는데, 그걸 다른 사람더러 연주해 달라고 하면 기겁하겠지?”
“….”
“대충 그런 느낌 아닐까?”
“바로 이해했어.”
서진이 맡은 1바이올린 파트를 직접 연주해보지 않아 정확히 똑같은 기분을 느끼진 못하겠지만, 제 몫인 첼로 파트를 연주하는 것만으로도 어느 정도 알 수 있었다.
…이 곡, 정말 만만치 않구나.
그런데 같은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지연의 감상은 어떻겠는가. 그녀는 백기를 든 콰르텟의 마음을 너무나 잘 이해한다는 표정이었다.
“근데 파가니니처럼 애초에 신체조건이 다르다거나, 기교가 그렇게 엄청난 곡도 아니잖아.”
“그게 전부가 아니니까.”
손가락 길이부터가 문제였던 파가니니 같은 경우는 아니지만, 어쨌든 도저히 연주하지 못하겠다는 건 매한가지라는데 어쩌겠는가.
“아무튼, 그래서 너희들 의견을 구하려고 해.”
“서진이 넌 어떤데?”
“사실 난 안 그래도 먼저 문의해 보려 했었거든. 따로 구해서 해도 되냐고.”
서진이 아는바, 따로 규정이 없어도 참가자 측에서 원한다면 보통은 허용해 주곤 했다. 만약 문제가 생길 시 책임은 본인 몫이라고 명시함과 함께. 혹여 따로 구해 온 연주자의 실수로 평가에 치명적인 마이너스가 된다 해도 본인 탓이라는 뜻이었다.
“아…. 사운드 체크 때 연주가 조금 실망스러웠나 봐?”
서진은 대답 대신 슬쩍 웃어 보였다.
스스로 생각해도 자신이 직접 연주해 보이는 게 가장 나을 듯했다. 마침 이렇게 멤버도 있고 하니.
서진의 반응에 잠시 서로를 쳐다보던 셋은 입을 모아 한뜻으로 답했다.
천재 바이올리니스트로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