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 returned as a genius violinist RAW novel - Chapter 86
86화
“나는 좋아.”
“나도 찬성!”
“날 뺄 생각은 아니지?”
흔쾌히 모두 찬성이었지만, 서진은 조금 걱정스러웠다.
“우리 결선 가게 되면 일정이 그거보다 앞인데… 콰르텟 결선 앞두고 괜찮겠어?”
“그거 자체를 리허설이라고 생각하지 뭐.”
“그러게. 딱이네.”
서진은 진심으로 고마웠다.
만약 정말로 좋은 성적으로 수상하게 되면, 수상 소감에서 모두의 이름을 꼭 잊지 말고 언급해야지.
* * *
두 부문의 일정을 번갈아 소화하다 보니, 어느새 또 콰르텟 부문의 다음 라운드가 다가와 있었다.
세미 파이널 라운드.
세미 파이널, 즉 준결선은 총 두 번의 리사이틀로 구성되어 있는데, 1차 리사이틀은 바르톡의 곡 중 하나를 택1, 그리고 자유곡 하나, 이렇게 총 두 곡을 선택해 연주하는 것이었다.
저 ‘자유곡 선택’은 꽤 특이한 점으로, 맨 처음 콩쿨 계획이 발표되었을 때부터 많은 문의가 빗발친 부분이었다.
서진 역시 혹시 몰라 정말로 아무런 장르의 제약 없이 아무거나 원하는 걸 골라도 되냐 문의했더니, 전부 자유에 맡긴다는 답이 돌아왔다. 그저 현악 4중주용 곡이기만 하면 된다고.
고민하던 서진 일행은 서진이 작곡 부문에 제출한 악보가 아닌, 다른 서진의 곡을 골랐다.
곡이야 이미 작곡 부문에서 공개되었으니 비공개의 원칙에 걸릴까 봐는 아니었다. 단지, 작곡 부문에 낸 곡은 아무래도 그 무대에서 가장 임팩트 있게 최초로 공개하는 게 좋을 거라는 판단 때문이었다. 미리 확인한 바, 일정상 작곡 부문의 결선 연주보다 콰르텟 부문의 리사이틀이 먼저였기 때문이었다.
그런 이유로 따로 고른 곡은 작곡 콩쿨에 낸 것만큼 야심작은 아니었지만, 제법 괜찮은 것이었다.
“참, 지연아. 회장님께 정말 감사하다고, 대신 인사 좀 전달 부탁할게.”
임회장은 끝내 서진에게 새 악기를 선물했다. 준결선 진출을 축하한다며, 결선을 앞두고 넉넉히 미리 보내온 것이었다.
이번 것은 풀사이즈의 과르네리였다.
지난번에는 3/4 사이즈를 쓰느라 선택지가 많지 않았는데, 풀사이즈가 된 후로 서진은 임회장의 권유로 재단 소유의 이런저런 악기들을 직접 만져볼 수 있었다.
그중 스트라디를 제외하면 가장 궁합이 잘 맞는다 싶었던 게 바로 과르네리.
서진이 누누이 말하길 스트라디바리는 반드시 직접 장만하겠다고, 누군가에게 받는 것보다는 그게 더 의미 있지 않겠냐고 강력히 주장해온 탓에 스트라디는 일부러 제외했다.
회장 역시 같은 생각인지 이번에는 그렇게 과르네리가 당첨(?)된 것. 그것도 재단 소유의 악기를 대여해 준 것이 아니라, 경매에서 손수 낙찰받아 마련해 준 것이었다.
“뭘 새삼스럽게 나까지 나서서 인사를. 콩쿨 다 끝나고 네가 직접 말하는 걸 제일 좋아하실걸?”
“그야 나도 알지. 한데 지금은 직접 전할 수가 없잖아.”
콩쿨 중이라도 전화야 가능했지만, 차라리 나중에 따로 찾아뵙고 말지 전화만 딸랑 하기엔 오히려 예의에 어긋나는 것 같았다.
그렇다고 또 아직 끝나려면 한참 남았는데, 이런 걸 받아놓고 그때까지 묵묵부답인 것도 마음이 불편했다.
그런 서진의 설명에 지연은 어깨를 으쓱하며 답했다.
“그럴 것 없다니까? 후원 조건에, 계약서에 땅땅 쓰여 있는 걸 받은 것뿐인데, 굳이 그렇게 감사를 표할 것까지야. 아, 참고로 나도 이미 쓸 만한 거 받았으니까 괜히 미안해하지 말고.”
“어어, 응.”
뭐라 할 말이 없어 서진은 고개만 끄덕였다. 듣고 보니 맞는 말인 것 같기도 하고….
“…우와, 부럽다, 진짜 부럽다….”
옆에서 하염없이 부러움을 토하던 윤수의 목소리였다. 한때 그 역시 바이올린을 했던 이로서, 탐나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리차드 용 오닐처럼 유명해지면, 너한테도 후원 쏟아질 거야. 분발하라고.”
“그래야지… 아니 근데! 서진인 뭐야? 서진인 아직 그렇게 유명한 것도 아닌데 다들 후원 못 해 난리잖아!”
“얜… 특별하잖아. 미래의 가망성을 본 거지. 우리 할아버지가, 좀 돗자리 까셔.”
제 할아버지를 정확히 꿰뚫고 있는 지연의 평가였다.
“그래. 나도 그렇게 되려면 서진이 옆에 철썩 붙어있어야겠다.”
물론 윤수는 이미 충분히 서진과 찰떡같이 붙어 다녔다.
윤수뿐 아니라 K-콰르텟 멤버 4명은 매일 똘똘 뭉쳐 다니며 순식간에 친해졌다. 거기에 페르디난트까지 해서, 총 5명은 이번 콩쿨의 명물이었다.
올해 16살, 대체 무슨 일이냐며 다를 혀를 내두르곤 하는 것이다.
사실 윤수는 서진을 꼬시며 했던 말과 달리 실제로는 큰 기대 없이 나온 것이었는데, 서진 덕에 우승도 꿈이 아닌 듯 보이니 무척 고마워할 수밖에 없었다. 아직은 고작 준결선에 진출했을 뿐이지만, 분위기라는 게 있지 않은가.
“서진아… 고마워. 다 네 덕이야. 진짜, 내가 진짜 여기서 우승해서 군대 안 가면, 너 2년 동안 업고 다닌다!”
“…?”
서진의 표정이 묘해졌다.
“왜, 왜? 뭐 잘못됐어?”
뭔가 불길함을 느낀 윤수가 주춤거리며 물었다.
“우승이랑 상관없이 넌 군대 가는데?”
“뭐어어어어!?”
“현악 4중주는 병역특례 해당 콩쿨이 아니거든.”
“….”
“아, 내후년인가 열릴 비올라 부문은 해당하는데… 그래서 너 이번에 안 나갈 거라 생각했던 거고.”
“으아아아아!”
‘진작 말해주지!!!’라는 외침이 메아리처럼 울렸다. 괴성을 지르며 머리를 감싼 채 홀을 뛰쳐나간 윤수는 오래지 않아 점이 되어 사라졌다.
“…바보.”
옆에서 지연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가끔 좀 엉뚱하긴 하지만, 어쨌든 서진도 윤수가 있어 다행이었다.
처음의 뻘쭘함이 언제였냐는 듯 약방의 감초 같은 윤수의 존재에 지연과도 다시 자연스러워진 것이다.
“그나저나 찬윤이 형도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찬윤은 어차피 올해는 해당도 아니고, 해당한다 해도 윤이상 콩쿨을 끝낸 직후라, 준비할 시간이 없는 상황이었다.
“어쩔 수 없잖아. 악기가 안 맞는데.”
“그러게. 그래도 나중에 내 바이올린 소나타 발표할 때 같이 해주기로 했으니까, 지연이 너도 꼭 보러 와.”
“응. 꼭 갈게. 초대 안 하면 화내려 했어.”
“아하하하….”
거기까지 얘기한 지연이 갑자기 목소리를 낮춰서 살짝 물었다.
“그런데 너, 손은… 이제 완전히 괜찮은 거야?”
진즉부터 물어보고 싶었던 건데, 아무래도 말 꺼내기가 쉽지 않아 이제야 묻는 것이었다.
“…아.”
“우연히 들었어. 할아버지가 말해준 건 아니야.”
지연은 무척이나 안타까운 마음이었다.
왜 하필 우리 집안의 그 몹쓸 유전병이… 아무런 핏줄 관계도 없는데….
물론 이 병이 유전병 중 꽤 흔한 편인지라 그런 것과 상관없이 얼마든지 환우가 될 수 있는 일이었지만, 그게 하필 서진이라는 게 안타까울 따름이었다.
“이제 괜찮아. 적당히 조심하면서 지내면. 걱정해 줘서 고마워.”
서진이 빙긋 웃었다.
그러는 사이, 중간의 휴식 시간이 끝나고 다시 리사이틀이 재개될 시간이 되었다.
첫 번째 곡은 바르톡의 현악 4중주 제4번 C 메이저. Sz.91
흔히 다장조 하면 떠올리는 분위기와는 전혀 다른 곡조가 시작되었다. 온음음계를 기반으로 전통적인 조성에서는 벗어나 있지만, 나름대로 C음에 기반한 오묘하면서도 매력적인 선율.
바르톡 특유의 음색이었다.
바르톡은 헝가리 출신으로 1945까지 살다간 20세기 음악가에 속하는 이였다. 헝가리의 국민악파이자, 현대음악의 형성에 크게 기여한 거장으로서 그래미 어워드의 수상자이기도 한.
또한 그는 작곡가 못지않게 피아니스트로도 이름을 날렸던 존재로, 민속 음악을 베이스로 음악 이론을 깊이 연구한 음악학자이기도 했다.
후기 낭만주의 시기의 국민악파 성향으로 시작해, 현대음악의 지평을 여는 독창적인 작곡법을 창시하는 등 음악 이론적으로도 뛰어난 성과를 보여, 현대의 작곡가들에게 거의 필수적으로 작곡 기법이 연구되는 존재.
그에 서진 역시 작곡을 공부하며 상당히 깊게 파고들었다.
다양한 여러 가지 피치카토로 대표되는 다양한 주법, 현악기를 타악기처럼 활용하는 테크닉 등 다양한 실험적 특징이 많았는데, 현악기의 음향적 가능성을 폭넓게 보여주는 작곡 기법에 서진 역시 많은 영감을 받았다.
함께 연주하는 이들 모두 기본적인 연주실력뿐 아니라 곡에 대한 이해가 상당했기에, 곡조의 수준은 한결같이 훌륭했다. 뒤늦게 결성한 콰르텟이었지만 상당히 철저히 준비했던 것이다.
물론 거기에는 서진의 능력도 한몫했지만.
청중들마저도 깊이 빠져든 마법 같은 음색.
콩쿨을 직접 보러 올 정도로 나름대로 클래식에 조예가 깊은 관객들이라고는 하나, 그래도 현대음악의 진입장벽은 진입장벽이었다.
그러나 서진의 연주는 그것을 가뿐히 허물어 주었다. 관객들은 홀린 듯 빠져들었다.
그건 심사위원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오, 갓…!’
‘이 정도 연주를 듣게 될 줄이야….’
바르톡 특유의 분위기를 매우 잘 해석한 연주에 심사위원들은 내심으로 극찬과 호평 일색이 되었다.
하지만 진짜 놀랄 일은 따로 있었다.
바르톡 다음 차례로 예정되어 있던 서진의 곡.
곡이 시작하기 전까지, 심사위원들은 작곡자의 이름에 떡하니 콰르텟 멤버의 이름 중 하나가 쓰여있는 것을 보고 시종일관 갸우뚱한 기색이었다.
자유곡이니 자작곡을 들고 와도 규정상으로는 문제가 없었지만, 최대한의 성과를 보여야 할 콩쿨에서 검증되지 않은 곡이라니…?
곡의 수준은 즉 연주의 수준과도 연관되어 있기에, 콩쿨에 있어서는 선곡 자체도 중요했다. 그런데 준결선이라는, 나름대로 중요한 자리에 자작곡을 선택한 것이다.
‘…아.’
그러고 보니 저 소년이 바로 복수 지원으로 유명한 그 한국인이구나…!
그렇게 기대와 호기심 반으로 심사위원들은 연주를 듣기 시작했다.
그리고….
“….”
“…!”
긴가민가하던 심사위원들의 반응은 첫 소절이 시작되자 곧바로 깨끗이 날아갔다.
서진은 콩쿨이 시작한 이래, 어느 때보다 깊이 집중했다. 자신의 곡이다 보니 절로 몰입이 되는 것이다.
그에 자연스레 심상 능력이 발동되었다.
그전까지는 소리의 조화를 꾀하는 정도로만 가볍게 발동된 능력이었다면, 이번에는 적극적으로 곡의 색채를 자신의 색으로 물들여나갔다.
관객들은 숨 쉬는 것조차 잊고 음악과 하나가 되었다. 그리고 그건 심사위원들이라고 다르지 않았다.
오히려 더하면 더했지, 음악적 이해도가 높은 만큼 더욱 깊이 빠져들 수밖에 없는 것이다.
현대음악 특유의 난해함을 몰아내고 쉽고 단순한 매력으로 승화한 듯한 음색.
그러면서도 또 화려한 분위기가 있었다.
날뛰는 듯 톡톡 튀는 음이 춤을 추며 뛰논다. 그 즐거운 음의 향연이 눈앞을 화사하게 물들였다.
관객을 완전히 압도하는 연주.
활이 멈추자, 격한 박수 소리가 터져 나왔다. 심사위원들마저 열렬히 박수를 치고 있었다.
“후, 하….”
가득 차올랐던 긴장과 집중이 풀어지자 격한 호흡이 새어 나왔다. 발갛게 상기된 넷은 모두 만족스러운 숨을 토해냈다.
설령 콩쿨에서 유의미한 결과를 보지 못한다 해도, 이 순간의 기억만으로도 충분히 가치 있는 경험이 되리라, 모두는 그렇게 생각했다.
천재 바이올리니스트로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