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 returned as a genius violinist RAW novel - Chapter 9
9화
모두의 시선이 전화를 받은 선생님을 향해 꽂혔다.
갑자기 한예종이라니…?
“한서진 학생의 영재원 입학 관련해서 서류가… 필요하다고요? 아, 예. 그러니까 학생과는 이미 이야기가 된 거고…,”
전화기 너머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아 정확히는 알 수 없지만, 이쪽의 반응만으로도 대충 상황이 유추되었다.
그랬다. 서진은 며칠 전 이미 한예종에서 연락을 받은 차였다.
전화번호를 어떻게 안 건지는 몰라도, 직접 특별 입학을 제안해 온 것.
한예종 측에서 서진에 대해 알게 된 것은, 한예종 교수를 지인으로 둔 어느 학부모 덕이었다. 바로 그날의 무대를 보러 온 이들 중 하나였던.
그녀의 추천에 이어, 너튜브에 올린 영상을 보고는 곧바로 연락을 취한 것.
서진으로서는 당연히 두 팔 벌려 환영이었다. 한예종을 누가 마다할까. 심지어 저쪽에서 먼저 제안을 한 것을.
덕분에 서진은 학교 일이 어떻게 되든 전혀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있었다.
이건 정말로 엄청나게 파격적인 일이었다. 언제나 학생들이 줄 서서 들어가려고 난리지, 한예종 측에서 이렇게 먼저 손 내민 건 단 한 번도 전례가 없는 일이었으니까. 그것도 정규 입학 시기도 아닌 상황에 특례로.
오죽하면 서진도 아직 잘 믿기지 않아 어안이 벙벙할 정도.
애초에 한예종을 쳐다볼 생각도 하지 못한 건, 지원 시기가 지난 탓도 있지만, 아직 실력이 안 된다는 생각에 다음을 노리려 했던 것이었으니까.
아무래도 브루흐가 정말 인상 깊긴 했던 모양이다.
‘하긴, 내 스스로도 제법 잘했다고 생각했으니까.’
하지만 서진이 한 가지 모르는 게 있었다. 서진의 실력은 스스로 생각하는 것 이상이라는 것.
그 증거로 한예종뿐 아니라 온갖 기관에서 연락이 왔다.
따르르.
또 다른 내선전화가 울렸다.
“…KH 아시아 재단이요. 네? 학생과 이미 이야기되신 일이라고요?”
으잉? 이건 또 무슨 소리래? 연락이 온 적은 있지만, 분명 거절했는데.
어쩐지 당분간 귀찮은 일이 잔뜩 생길 것만 같은 예감이 들었지만…
어쨌든 결론적으로 둘 모두 나름대로 윈윈이 되었다. 서진의 양보(?) 덕에 박주원도 기회를 얻게 되었으니까.
‘박주원에게 있어 이게 정말로 잘된 일일지는 모르겠지만.’
어설픈 영재 타이틀은 오히려 독이 될 수도 있다.
영재로 선발된 아이들 중 누가 정말로 성공할지는 끝까지 가보지 않고서야 아무도 모르는 일.
타고난 재능에 가장 크게 좌우되곤 하는 예술계에서, 자신의 길이 아닌데 단꿈에 젖어 헛되이 시간만 낭비하는 꼴이 될 수 있으니까.
서진은 박주원이 자신을 향해 했던 생각을 그대로 돌려주었다.
‘뭐 내 알 바 아니지만.’
어차피 이 바닥에서 오래 볼 것 같지는 않으니.
* * *
그날 이후, 대체 서진의 존재를 어떻게 안 건지, 각종 재단에서 학교 측으로 줄줄 연락이 왔다.
-네. 전화 받았습니다. 예? 어디라고요? 이, 이성 재단이요?
딸을 통해 이야기를 들은 건지 뒤늦게 그날의 소식을 알게 된 이성 재단 이사장.
-네? 예술의 전당이요…?
예술의 전당 영재원.
-…교수님, 누구시라고요?
그리고 어느 예중에서도 관심을 보였다. 학생의 진학 계획에 대해 궁금하다고, 직접 만나보고 싶다며.
졸지에 학교는 전화통에 불이 났다.
“아니 대체, 다들 어떻게 알고 연락하는 거야…?”
“그러게 말이에요. 아무래도 그 너튜브인가 뭔가 그것 때문이 아닐까요?”
“아, 이번 공연 영상을 누가 올렸다며?”
“그거 하나로 이렇게 난리가 날 수가 있나? 내가 막귀라 그런가… 잘하는 건 알겠는데, 그렇게 치면 박주원인가 걔도 잘하지 않았어? 그게 그렇게 차이가 나는 건가?”
“…그러니까 이렇겠죠?”
심지어 전화로도 부족해 간혹 직접 찾아오기까지 하는 경우도 있었다.
“아니, 얘는 이렇게 연락이 안 되는 거람? 이거 솔직히 본인한테도 좋은 기회잖아.”
“글쎄요. 우리만 탐내는 게 아닐 수도 있죠.”
“뭣이!? 아니 우리가 제일 먼저 발견했는데! 뺏길 수야 없지!”
하교 시간의 어수선한 틈을 타 교내에 들어온 KH 아시아 문화재단의 관계자들은 오늘이야말로 서진을 설득하고야 말겠다고 의지를 불태웠다.
우연히 너튜브에서 서진의 동영상을 보고는 ‘이 아이다!’ 하고는 바로 행동에 나선 게 얼마 전.
한데 그렇게 서둘렀는데도, 아직도 학생에게 긍정적인 답변을 받아내기는커녕 제대로 면담조차 하지 못했다.
처음에는 직접 통화가 연결돼 이야기를 나누는 데 성공하긴 했으나, 그 후로는 아예 연락 자체가 되지 않았다. 오죽하면 학교에 직접 찾아왔을까.
재단에서 서진에게 특별히 관심을 보이는 이유는 명확했다.
사실 서진의 현재 실력이, 나이 대비 곡 난이도가 엄청나게 높은 수준은 아니었다.
하지만 본디 영재성을 판단하는 핵심은 그런 게 아니었다. 어린 나이에 벌써 얼마만큼의 난이도의 곡을 하는지는 크게 중요한 일이 아니었으니까.
솔직히 기교야 일찍 시작하면 얼마든지 남들보다 몇 년 앞설 수 있다. 하지만 그게 영원히 강점으로 남을 수는 없는 일이었다.
나이에 안 맞는, 어린 나이라고는 믿기지 않는 뛰어난 기교로 유명하다가, 성장하면서 표현력이 따라와 주지 못해 오히려 평범해지고 마는 비극. 그건 흔하디흔한 이야기였다.
또 반대로 간혹 어릴 때는 특유의 감수성으로 풍부한 표현력을 보이다가 나이가 들며 되려 평범해지는 경우도 왕왕 있는데, 한때 신동이라고 유명하던 아이들이 기대에 짓눌려 그렇게 되는 경우를 이 대리는 많이 봐왔다.
그렇기에 중요한 건 당장에 보이는 곡의 수준이 아닌, 앞으로 음에 얼마나 깊이를 더해갈 수 있느냐의 여부.
이대리가 본 서진은 결코 어릴 적 잠깐 반짝하다 사라지고 마는 그런 어설픈 재능의 소유자가 아니었다.
“근데 얘 어디 가면 찾을 수 있지? 몇 학년 몇 반이야?”
“몰라. 5학년이랬으니 그쪽 대충 뒤지면 되겠지.”
“근데 이미 집에 간 거 아냐? 그럼 학교를 돌아다녀봤자 소용없을 거 아냐.”
“그렇다고 그냥 갈 수는 없잖아. 어차피 집 주소라고 아는 것도 아니고. 뭐라도 알아봐야지.”
동료의 대답에 남자는 고개를 끄덕이며 지나가던 학생 하나를 불러세웠다.
“학생, 뭐 하나만 물을게.”
다행히 아직 집에 안 가고 남아있는 5, 6학년 학생들이 많아서 아무나 붙잡고 물어볼 수 있었다.
원하는 답 역시 어렵지 않게 나왔다. 동영상을 보여주며 묻자 몇 명은 모른다며 지나쳐갔지만, 다행히 아는 학생이 있었다.
“아, 한서진이요? 걔 저희 동생이랑 같은 반인데, 5학년 3반이에요~!”
똘망하게 생긴 남학생은 친절하게 안내까지 해주었다.
하지만 둘은 교실에서 서진을 만날 수 없었다.
방과 후에 학생이 반에 남아 있을 리가.
다행히 담임은 없고, 몇몇 학생들만 남아 청소하고 있었다. 담임이 봤다면 외부인 출입으로 한 소리 들었을 텐데.
“한서진이요? 걔 시청각실에 있을 거예요. 방과 후 끝나면 거기서 연습하거든요.”
누군가가 일러준 말에 둘은 곧바로 방향을 틀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서진이 직접 연주하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사라사테의 서주와 타란텔라.
부드럽게 시작한 연주는 넘실거리는 음의 향연으로 이어지며 화려한 기교를 뽐내고 있었다.
“…와. 말도 안 되는 수준이네, 진짜.”
영상도 영상이었지만, 직접 들으니까 진짜 차원이 달라서 할 말을 잊었다.
이게 배운지 겨우 3개월의 실력이라고?
영재성을 판단하는 데에는 당장의 기교보다는 그 이상의 것을 보아야 하는 건 맞는데, 서진은 그것까지 다 갖춰 있었다.
영상으로 본 브루흐도 그랬지만, 이건 정말 진심으로 놀랐다. 그사이 더 발전해 있다니….
물론 난이도야 브루흐 쪽이 더 높겠지만, 곡을 표현해내는 깊이, 그 해석이 남다르달까. 이건 배운 지 몇 달밖에 안 된 초등학생이 보일 수 있는 수준이 도저히 아니었다.
…저 아이는 진짜 천재다. 배운 기간이 짧은 것까지 감안하면, 앞으로의 성장 가능성은 짐작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안녕? 네가 서진이니?”
잠깐 연주가 멈춘 사이, 안으로 들어선 이 대리는 서진을 향해 최대한 친근히 인사를 건넸다.
“누구세요?”
인사와 함께 짧은 자기소개가 오갔다. 그리고 이 대리는 곧바로 본론을 꺼내 들었다.
“KH 아시아 재단이요…?”
서진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그도 그럴 것이 원래 회귀 전의 생에서 서진은 그곳 출신의 영재였다.
나쁘진 않았지만, 이제 와서 굳이 같은 곳을 다시 택할 이유는 없는 상황. 이왕이면 새로운 물에서 놀아봐야지.
그걸 모른 채 이 대리는 함께 온 후배와 함께 KH 아시아 재단의 영재지원사업에 대해 장광설을 늘어놓았다. 서진을 바라보는 그의 시선이 아주 타오를 듯 뜨거웠다.
“저희 영재원은….”
건성으로 대충대충 듣는 서진과 달리 어느새 다가온 최지현은 꽤 진지하게 경청했다. 지금 옆에 담임 선생님도 보호자인 어머니도 안 계시니 자신이라도 신경을 써 주려는 것이다.
“…네. 그렇군요.”
한예종과는 별개로 재단의 지원 또한 받을 수 있다는 점이 조금 끌렸지만, 그뿐이었다.
“그런데 그게 사실이니? 바이올린을 배운지… 이제 겨우 몇 달 정도라고?”
이 부분이 가장 궁금했다. 소문으로야 그렇다는데, 그게 진짜인지.
아무리 봐도 말도 안 되는 소리긴 하지만 그래도 또 모르는 일이다. 세상에는 정말 자신이 상상 못 할 재능이 존재할 수도 있는 법이니까.
“···네. 맞아요.”
잠시 망설이던 서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오오, 하는 탄성과 함께 구체적 감탄이 터져 나왔다.
“와, 진짜 세상의 상식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천재가 있다던데 정말로….”
진실은 ‘회귀 전 기간 + 몇 달’이지만, 이미 그렇게 알려진 덕에 빼도 박도 못하고 거짓말을 해야 하는 상황.
‘이런 거 별로 좋지 않은데….’
나이에 맞지 않는 수준으로 과하게 천재 소리를 듣는 것. 자칫 독이 될 수도 있는 일이다.
“진짜, 진짜, 너 정말 말도 안 되는 천재였구나!? 연주를 직접 듣기 전에도 그랬는데, 오늘 정말 깜짝 놀랐어. 특히 그 뭐냐, 왼손 피치카토를 끝낸 후 다시 이어지는 부분 있잖아. 뭐랄까,”
“맞아. 그 부분을 이렇게 가뿐하게 표현할 수 있으리라곤….”
두 관계자는 호들갑을 떨며 어떻게든 서진을 설득하려 했다.
그런데 그때,
문밖에서 또 다른 누군가가 나타났다.
“실례합니다, 혹시 여기 한서진 학생….”
이성 그룹에서 찾아온 사람들은 KH의 직원들과 딱 눈이 마주쳤다.
순식간에 상황을 파악한 두 무리 사이에는 어색한 불편함이 흘렀다.
천재 바이올리니스트로 돌아왔다